Bongta      

명예

소요유 : 2012. 5. 14. 18:47


내가 소싯적에 두루 묶어 문학이라 칭하는 것,
좁혀 소설책들을 소나기처럼 접했던,
그래 나 같은 부족한 이에겐 차라리 조우(遭遇)라고 일러야 마땅할 기억 하나가 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과시 대학이 아니라 고등학교라 일렀을 정도로,
가근방에선 엄격하기로 소문이 났다.

내가 명색이 소속으로 말하자면 공대인데,
필수 교양과목이란 명목으로 국문학을 배워야 했다.
그것도 요즘 시쳇말로 빡세게 치뤘다.
학기 내에 읽어야 할 국문학 리스트가 전해졌는데,
이를 일일이 찾아가며 찾아내는 것만도 여간 벅찬 것이 아니었다.
나는 당시 남산에 있는 국립도서관을 드나들며 이런 과제를 익혔다.
나중엔 이것만 추려 별도의 책을 팔아먹는 이도 등장했다.

나는 당시 돈이 별로 없어 그 힘든 남산 도서관의 언덕배기를 걸어올라 다녔다.
당시 우리 학교 도서관엔 제법 책이 많았지만 빠진 것은 이리 보충을 했다.
하기사 있더라도 이미 동기들이 이미 다 대출해내갔기에 얻기가 힘들었다.

하여, 미처 얻기 힘든 것은 부득이 건너뛸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사정 가운데서도 나는 제법 준수한 점수를 얻었다.
나는 차라리 이과가 아니라 문과가 적성이 맞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런 회의도 했다.
왜냐 하면 분명 이과 부문에서 성적을 내고 있지만,
문과도 익숙지 않아 그렇지 힘을 내면 제법 공부할만한 것임을 나중에야 깨달았던 것이다.
당시 우리네 풍토는 사내장부는 이과에 투신하여야지,
문과 따위는 할 일이 아니란 엉터리 분위기가 팽배했었다.
박정권의 기술입국, 중화학공업육성 따위의 시대적 당위가 온 세상을 휩쓸고 있었음이니.

어쨌건 이런 성적이 스스로 생각해도 의심스러웠는데,
짐작컨대 아마도 그 솔직한 진실성을 평가자가 애린(愛隣)의 심정으로,
거둬 올려주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때 이광수의 소설 하나를 읽었다.
‘사랑’이란 제목의 그것.
거기 호르몬이 등장한다.
‘아모로겐’, ‘아우라몬’ 따위가 그것인데,
당시 내겐 처음 듣는 사뭇 인상적인 이야기들이었다.
지적 감수성이 한창일 때라 그것을 접하자,
호승심에서 잊지 않으려고 외우기도 했던 것임이라.

오늘 어느 기사를 읽으니,
(‘젊음 주는 묘약’ 황혼 로맨스)
늙을수록 성생활을 지속하면 더 건강하다고 하더라.
나는 이를 대하고는 문득 춘원의 ‘사랑’을 떠올린다.

당시 처음 듣는 사랑 관련 호르몬 그 자체에 대한 지적 충격도 충격이지만,
그보다는 외려 이런 의문 덩어리를 나는 더 곰삭히며 놀라워했던 것이다.
즉 호르몬이 나와서 육신을 통제하는 것이라기보다,
육신(肉神)의 상태에 따라 호르몬이 나온다는 것.

여긴 이제까지 알고 있는 피상적인 지식 체계, 그 가치 전도가 있다.
호르몬이 육신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정육(精肉), 더 좁히면 정신이 육신(肉身)을, 호르몬을 거느린다는 것이다.

탑골공원엔 늘 검버섯 핀 노인네들이 득실거렸다.
이게 지금은 종묘 쪽으로 떠밀려버렸다.
예비군 훈련 때 풍문으로만 떠돌던 박카스 아줌마라든가, 모포 아줌마들.
박카스를 팔면서 몸을 팔고,
모포를 좌르르 풀밭에 깔고 정조를 파는 이들처럼,
저들 노인네를 상대로 몸뚱아리를 내다 파는 이들이 있다.

저들은 호르몬을 파는 이들인가?
사랑을 파는 이들인가?
거룩한 사랑의 전도사인가?
건강 도우미들인가?

그런데,
따지고 보면,
사랑이 육신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욕(情慾)이 정신을 일깨우는 것이 아닌가?

이 의문은,
내가 더 늙어,
혹여 탑골공원으로 진출하게 될 때쯤이면,
보다 명확해질런가?

알 수 없어라.

조선의 천재,
이광수가 훗날 친일파로 낙인이 찍혀,
한참 전 이미 무덤에 누운 상기도 누 천, 누 만년 오명을 벗기 어려울 새라.

사랑이 문제가 아니라,
실인즉 명예란 것이 더 귀한 것인 줄 저이는 왜 몰랐던가?
 
그는 사랑을 알았지만,
역사와 명예를 미처 꿰뚫어 살피지 못했던 것임이라.
애석타 할 노릇이다.
저이의 더럽고 추접함 이면에 이런 안타까움도 있는 것이라.

그러한즉 인생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울어야 한다.
접동새 토혈(吐血)하듯.
이 울음을 제대로 울 수 있을 때,
사람은 조금이나마 회한이 덜어질 수 있을 것임이라.

공수부대 출신이 말한다.
우리 구호는
‘충성’, ‘명예’, ‘단결’이었다고.

병 출신인 내겐,
‘명예’란 구호가 눈에 확 띈다.

우리네는 자존을 뭉개뜨리는 경험밖에는 없었다.
해가 뜨면 돌리기 바쁘고,
해 지면 고참들에게 시달리기 영일이 없었다.
24시간 인간적 자존심을 짓밟히고, 육체는 유린당했다.
거기에선 병들에게 명예심을 갖길 원하지 않았다.
그저 졸개들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말 잘 듣는 노예로 부역이나 잘하면 족하다는 것이렷다.

하지만 저들은 ‘명예’를 이야기 했구나.
아, 그러함이니,
일당백(一當百), 일기당천(一騎當千)일 수 있음이었구나.
과연 그러하구나.

개인의 명예, 자존을 짓밟아,
개흙 같이 짓뭉개지기 바쁜 사병들의 현실.

그러함이니 저들은 한낱 소모품, 졸개들을 벗어날 수 없다.
외려 군 지휘관들은 이를 원했던 것이 아닐까?
그저 기계 부속품처럼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속하는 이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11人으로 팀을 이룬,
저들 명예심 가진 공수부대 요원들은,
11人 팀 하나가 곧 단위 부대임이라,
어찌 일기당천(一騎當千)이 아니 될 수 있겠는가?

사랑을 노래한 춘원은 그럴듯한 소설을 남겼지만,
그의 명예는 무덤가에 자라는 잡풀만도 못하게 버려져 있다.

헌데,
박카스 아줌마한테 정욕을 푼 노인네들은 과연 사랑을 살 수 있음인가?
명예를 건질 수 있음인가?
다 말라비틀어진 ‘아우라몬’ 대신 ‘아모로겐’일지라도,
저들의 식어가는 잔명(殘命)을 부추길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건강을 지켜줄 수 있음인가?

밭일을 하면서 길바닥에서 흘려드는 말을 주워들었다.
천하의 욕심꾸러기가 수입 챙기는 소리였다.

흔히 나이가 많아지면서 욕심이 많아진다고 한다.
잔바람 소리에도 바스락 거리면 흔들리고 말 몸뚱이 하나가,
그 남은 잔명(殘命)을 노욕(老慾)으로 가까스로 붙들어 잡고 서있는 게다.
그래 늙은이는 의외로 욕심이 많다.
이게 이내 노추(老醜)가 되곤 한다.
사뭇 경계할 노릇이다.

헌데 저이는 젊어서부터 욕심이 많았다고 한다.
대저 어린 것은 설익어 서툴고, 늙은 것은 농익어 추하다.
그러함인데 어려서부터 욕심이 등천한 이라면,
이것은 더 이상 어찌할 방도가 없다.
저이는 꽤나 오래 삶을 지탱할 것이다.

이런 경우엔 굳이 사랑이 필요 없다.
그저 끝 간 데 없이 욕심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리라.
만약 이게 그치면 그는 죽을 것이다.
평소 하지 않던 짓하면 그날이 수상쩍은 날이 될 것이로다.

심지에 기름 자아올려 불 밝히듯,
욕심이란 기름을 퍼 올려 저자는 다 쪼그라져가는 육신을 지탱한다.
이 얼마나 끔찍스럽도록 추한 영혼인가 말이다.

그러고 보니,
사랑하며 수명을 늘리는 이는 복된 인생이다.
누구는 욕심의 끈을 놓치면 파멸할 팔자니 이 얼마나 욕된가 말이다.
하니 춘원이 비록 나라를 팔아먹어 천고의 매국노가 되었지만,
그전까지는 사랑을 노래하고 있었음이니,
그에겐 그리 유예된 시절이라도 있었음이 다행이라 할 것인가?

그래, 아무렴 그렇고 말고,
오래 살려는 이는 사랑이든 욕심을 굴뚝에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한없이 지피어내거라.

하지만 역사 속에서 오래 살려면 다만 명예심을 지켜내야 할 것이다.

나는 다만,
은원(恩怨)도 빗기고,
명예, 장생(長生)도 벗기고 그저 천명대로 살기를 바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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