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준협박

소요유 : 2014. 5. 3. 11:03


내가 예전에 기르던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뒤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뒤를 휙 돌아보니 무엇인가 커다란 덩치가 덮쳐오고 있는 중이다.
나는 순간 강아지 묶은 줄을 하늘로 치켜 올리며,
쳐들어오는 물체를 발로 냅다 질러버렸다.

커다란 적견(赤犬)이 우리 강아지를 습격하고 있었던 바라,
강아지는 하늘 높이 연처럼 날아오르고,
적견은 깨갱 소리를 지르며 뒤로 퇴각하였다.

나는 체질도 약하고 근력도 내세울 바가 없다.
다만 순발력만은 재빠르다.
군대시절 체력이 딸려 내내 고통이 심했다.
하지만 빠른 시간에 처리하는 일만은 자신이 있었다.
총 분해결합 훈련시엔 언제나 일등이었다.
분해가 끝났을 때는 노리쇠를 들어올리고,
결합이 끝나면 손을 높이 올려 마쳤음을 고한다. 
내가 분해 결합이 끝나 손을 높이 올리다 보면,
아직 분해도 마치지 않은 이들이 태반이었다.
처음엔 나 홀로 손을 들고 있자하니,
내가 무엇인가 잘못하였는가 싶을 지경이었다.

적견이 등 뒤에서 습격을 해왔지만,
과시 전격석화(電擊石火)처럼 강아지를 빼돌리고,
그야말로 비기일각(飛起一脚)이라,
바람처럼 다리를 날려,
붉은 적당을 물리쳤다.

저 개가 그동안 우리 산동네에서 강아지를 상해하거나 죽인 예가 적지 않다.
그러한 전력이 있음인데 어찌 상기도 개 관리를 소홀히 하고 있음인가?
조그만 강아지는 저런 커다란 개한테 물리면 한방에 절명(絶命)하고 만다.

내가 개 주인에게 관리를 소홀히 한 것을 탓하자,
주인이 이리 이른다. 

‘그것을 왜 내게 말하느냐?
잘못을 저지른 것은 개이니 개한테 물어라.’

나는 종교가 없지만,
내 처는 천주교 신자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저이가 성당에서 곧잘 사회를 보곤 한다고 한다.

사회는 목소리가 좋다든가, 말주변이 반지르한 것을 으뜸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바르고 정갈한 것을 기둥으로 삼아야 하리니,
당신네 성당 모임은 사뭇 엉터리가 아닌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자,
모두들 그것은 내가 저지른 것이 아니고 개가 잘못을 저지른 것이라,
발뺌을 하기 바쁘다.

내가 최근에 묘목 몇 주를 구하였는데,
배송 시기를 제 임의로 바꿔 정하는 등 영 석연치 않다.
당장 배송할 듯 공고를 하더니만,
해명도 없이 5월 초가 되어야 일괄 배송을 한다고 한다.
그동안 조금이라도 더 키워서 보내겠다는 말씀이렷다.
어지간히 적은 묘목이겠구나 바로 짐작이 선다.

그러던 것이 어제 배송되어 왔다.
그런데 박스 안엔 조그마한 묘목이 다 엎어지고 뛰쳐나와 난장판이다.
이것은 일응 수인(受忍)할 수도 있다.
배송 연구가 충분치 않다면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길 수도 있으리라.
그러한데 몇 주가 보이질 않는다.
박스 바닥에 흩어진 흙을 헤치고 찾아내었다.
이쑤시개 정도로 가늘다.
이것은 심어도 제대로 살 수 있을까 전망이 서지 않는다.

보자하니 내게 온 것뿐이 아니고,
다른 이들도 나와 사정이 비슷한 이가 태반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보다는 사뭇 착한 이들이라 그러하겠지만,
불평도 없이 그저 사정을 평이하니 글로 늘어놓을 뿐이다.
게다가 우리네 풍속이란 나대면 각박하다거나 쩨쩨하다는 평을 받고 만다.

몇 주가 빠져 배송이 되었다든가,
또는 나처럼 실낱같은 묘목들이 몇 주 섞여 있는 것이 일반이다.

그러함인데도 상대가 카페장인 바라,
이를 상대로 불평을 늘여놓지는 못하고,
참아내고들 있음이 아니더냐?

은근히 딱해보이기 시작한다.
갓 귀농한 농부라면 서투르니,
내 우정 다독이고 타이를 수 있으련만,
저이는 사뭇 농사 이력도 오래되고,
경험이 많은 이인지라 저리 일처리를 안일하게 할 수 없음이라.

내가 나서서 이 일을 지적하리라.
하여 글 하나를 점잖게 닦아 올렸다.

‘처음해보는 이가 작업을 하다 보니’

어느 댓글 중에 달린 그의 변을 대하자,
나는 바로 이 적견 이야기를 떠올려보는 것이다.

그는 적견 주인과는 다르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덧붙이고 있음이니,
인사불성 개 주인과는 사뭇 다르다.

그런데 이어지는 그의 말을 대하자,
나는 기어이 이 글을 써서 남겨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대로 가지고 계시면 내가 가지러 가겠습니다’ 

그로서도 당황스럽고 일면 화도 나리라.

하지만 가지러 가겠다는 말은,
그의 결기를 알고도 남음이 있겠으나,
바른 대처라 생각되지 않는다.

가까운 곳도 아니고 전국을 찾아나서 저 일을 할 노릇인가?
정히 공고를 하여 모든 이를 상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댓글 단 이를 상대로만 한다면 면피용 생광(生光)에 불과할 수도 있다.

게다가 반품, 교환 등 여러 대안이 있는데,
상대의 의견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저리 내지를 수 있음인가?
한편, 이리 호기를 부림이니,
이로써, 나머지 사람들은 꿈쩍말고 입 닥치고 있거라.
이런 주문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음인가?

이미 상품 대금을 지불하였음이고,
내게 도착한 이상 이 물건은 이제 내것이다.
계약은 그 조건 내용이 교환됨으로써 완결된다.
이제 물건이 도착함으로써 물건과 댓가 수수, 이 두 가지 교환 조건이 만족된 것이다.
다만 하자가 있음인즉 이에 대한 손해배상이란 문제가 새로 제기되는 것이다.
반품이든, 교환이든 이 모두 하자의 정도에 따라,
피해자가 자유 선택적으로 대응할 문제인 것이다.
그러함인데 무조건 '가지러 가겠다'는 말은 가당치 않은 말이다.
내 물건을 그 누가 마음대로 가져갈 수 있으랴?
반품, 교환은 그가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요구 또는 허락이 있어야 된다는 말이다.

이것을 해치면,
설혹 금덩이를 가져와도 무례한 짓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찾아오며 맞는 일이 간단한가?
맞이 하려면 시간을 내어 그에 묶여 있어야 하고,
군일을 더하여 부담하여야 한다.
찾아온다는 것이 자신에겐 맺힌 것을 해소하는 일이 될 수 있겠지만,
상대에겐 또 다른 폐를 끼치게 됨을 어이 모를 수 있음인가?
이게 시혜가 아니란 말이다.

어찌 보면 준협박처럼 들리기도 한다.
변상이라는 것이 손해 이상을 구하게 되면,
이 또한 정당성을 잃게 된다.
취리도 정도껏 하여야지,
상대의 불리한 처지를 노려,
한도를 넘겨 구하려 들면 공갈죄가 성립된다.
(※ 참고 글 : ☞ 2009/08/21 - [소요유] - 공갈

그런데 변상을 구할 처지에 있는 이의 의사를 구하지도 않고,
그 이상의 비용을 치루면서 스스로 감당하겠다는 것은,
자신의 결기를 넘어 상대를 치고 넘어가자는 수법이 아닌가?

이는 말로 뱉어낸 사과를 무지르는 일이요,
변상 또는 배상의 상리(常理)를 사뭇 해하는 일이거니와,
짐짓 상대를 겨냥하여 으르고 어르는 짓이 아닌가?

사과나 변상이 문제가 아니라,
이쯤 되면 제 자격지심을 피해자를 상대로 풀어내겠다는 심보가 아닌가 말이다.

이것은 사뭇 점잖지 못한 모습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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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14. 5. 3. 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