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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사

생명 : 2015. 9. 26. 15:43


엘사


집과 집 사이에 끼인 좁다란 틈바귀, 거기서 아기 고양이 울음이 들렸다.

처가 말하길 구원을 기다리는 목소리다 하였다.

나는 그냥 놔두고 차차 도리를 찾는 게 낫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동티가 난다.

하였던 것인데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플래시를 들고 가서 살펴보았다.

과연 아기 고양이는 지붕에서 떨어져 틈바귀에 갇혀 있었다.

녀석을 양쪽에서 몰아 간신히 잡아 지붕 위로 올려주었다.

다음 날부터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연 놀랍게도, 

아기 고양이 여섯이 한꺼번에 나타났다.

게다가 몹시도 신경이 날카로운 어미 고양이도 밥그릇에 들러붙었다.

수개월 저들을 돌보았다.


맨 처음 구해준 아기 고양이는 성질이 순하고 우리를 잘 따랐다.

녀석에겐 씩씩하게 자라라고 엘사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기 고양이들은 대개 눈에 눈곱이 끼고 피부에 부스럼이 있었는데,

손에 잡히는 아이들은 붙잡아 약을 넣거나 발라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엘사가 소리를 잘 내지 못하며 시름시름 앓는다.

녀석을 붙잡아 동네 동물병원으로 데려갔더니 호흡기병이란다.

자연계에선 이 병에 잘 걸리는데 대개 20% 정도만 살아남는다 한다.

동물병원 의사는 말한다.

그리 개체 수를 절로 조절한다.

아니 그러하면 고양이가 엄청 불어날 것이다.


녀석은 차차 나아지는 듯하다가,

어느 날 보니 잘 걷지를 못한다.

병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매일 밥을 잘 먹고 있으니 시간을 두고 하회를 기다릴 뿐.

아기 고양이는 여섯 중 엘사를 포함하여 두 마리만 살아남았다.

어미도 언제 부터인가는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 그들은 세상을 등졌으리라.

참으로 고양이들의 삶은 생각할수록 아프구나.

도대체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데 일주 전이다.

집 사람이 큰일이 났다고 소리를 지른다.

가보니 못 보던 아기 고양이 다섯이 출현하였다.

기존 나머지 두 마리는 어디론가 쫓겨났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새로운 어미가 아가들 다섯을 데리고 이리로 옮겨 온 것이다.

어린 아가들을 돌보지 않을 수도 없어 먹이를 주긴 하나,

이들 때문에 엘사 등이 쫓겨난 것을 생각하다.

참으로 어지럽게 얽힌 세상사다. 


천지불인(天地不仁)


지붕 위 한쪽으로 피신한 엘사를 몇 차 보았으나,

어제 오늘은 보이질 않는다.

이대로라면 아마도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녀석은 이 고통에 찬 진세(塵世)를 여의리라.


‘엘사야’


僧問。蛇吞蝦蟆。救則是。不救則是。師云。救則雙目不睹。不救則形影不彰。 

(瑞州洞山良价禪師語錄)


중 하나가 있어 스님께 여쭙다.

뱀이 개구리를 삼키고 있는데, 

구하는 게 옳은지 아니면, 구하지 않는 게 옳은지요? 

스님이 이르다. 

구하는 즉, 두 눈이 멀 것이요. 

구하지 않은 즉, 형체도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동산 스님의 이르심을 듣고,

저 번뇌 많은 중은 과연 마음이 편안해졌을까?


자, 동산양개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이제 깨우친 도리가 서는가?

아직도 아지 못하시겠음인가?

그러하다면, 다음의 말씀은 어떠한가? 


昔洪州廉使問馬祖。喫酒肉即是。不喫即是。祖曰。喫是中丞祿。不喫是中丞福。徑山國一禪師。人問。傳舍有二使。郵吏為刲一羊。二使聞之。一人救。一人不救。罪福異之乎。國一曰。救者慈悲。不救者解脫。


(※ 郵吏 : 驛戰管郵遞的小官

   서양식으로 말한다면 postman쯤 된다할까?

   공문서 수발 담당 관리를 일컫는다.

   郵館 : 設在驛站的旅店

   郵驛 : 古時辦理傳送公務信件的地方)


지난 날, 홍주 염사(안찰사)가 마조 스님께 여쭙다.


‘술을 먹는 게 옳습니까?

아니 먹는 게 옳습니까?‘


마조 조사께서 이르신다.


‘먹으면 승상의 재록이요.

아니 먹으면 승상의 복이니라.‘


경산에 국일 선사가 계시다.

어떤 사람이 스님께 여쭙다.


‘역참에 관리가 둘이 있었습니다.

우리(郵吏)가 양 하나를 막 잡으려(죽이려) 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는 하나는 구하려 하고,

하나는 구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죄와 복이 어찌 다른지요?


국일 선사가 이르다.


‘구한 자는 자비,

아니 구한 자는 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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