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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없는 길 - 분불(焚佛)

소요유 : 2011. 11. 30. 17:48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소위 고문관이라 이르는 후임병을 깊이 사귄 적이 있다.

군 생활을 제대로 이겨내지 못하고,
벼랑으로 마냥 미끄러져 내리는 저들 고문관들이라 불리우는 사람들.

하지만 사병들은 모두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고단한 일상이라,
생심 내어 저들을 챙겨줄 여력들이 없다.
아니 실제론 저들을 챙겨주기는커녕 외려 따돌리고, 기합주고, 욕보이며,
즐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마치 짐승들 세계에서 병이 나거나 상처를 입은 개체를,
무리들이 쫓아내고 괄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후임병 J는 점점 더 시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당시 그보다 수개월쯤 앞선 선임병인지라 처지가 더 나은 형편도 아니었다.
그와 단둘이 수직을 서게 되면 나름 격려도 해주고 힘을 보태주었다.

나는 서울, 그는 부산 출신이다.
외박을 나갈 때 부러 그와 일정을 맞춰 그를 데리고 나왔다.
집에 함께 가서 지내기도 하였는데,
나중 제대하고 나서는 서울, 부산을 번갈아가며 만나기까지 했다.
내가 기실 사람 사귀는 데 그리 재주가 없는 편인데,
그와는 힘든 시절을 함께 보내 인연이 깊다.
제대 후 당시 그는 아직 취직을 못하여 어려운 사정이었는데도,
나를 꼭 모셔야 된다고 부산까지 초청하여 과분한 대접을 받기도 하였다.
언젠가 그는 교도관이 되었다며 내게 편지를 보내왔는데,
그라면 아주 모범적이고 성실하게 맡은 일을 해내고 있을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인간적이기 때문에 나는 그리 믿는다.

그를 내가 유의해서 주목한 것은 바로 그의 성실성이다.
그리 무리로부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처지이면서도,
그는 늘 성실했다.
일이 아니라,
인간을 향한,
인간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성실함 말이다.
 
나는 군 시절 후임병에게 기합을 주거나 욕설을 퍼부은 적이 거의 없다.
대개 기합을 오지게 주거나 엄한 선임병에겐 모두들 알아서 설설 기며 섬긴다.
하지만 나처럼 인간적으로 대하면 몇 명을 빼고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대한다.
우는 아기 젖준다는 식으로 요구하는 바 없으니 저들로선 내게 비위를 맞출 까닭이 없다.
따지고 보면 제 몸 하나도 가누기 힘든 시절인데,
엄한 시어머니가 아닐진대, 무엇이 무섭고 귀하랴?
게다가 제대하면 별 관계도 없는 인연즉,
후일을 염려할 바도 없다.
대단히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처세의 태도이니 그리 나무랄 것도 없다.

내 동기는,
잡귀 쫓으려 옥추경 외우듯 늘상 이리 말했다.

“조선 엽전들은 북어 패듯 패야돼.
패면 잘 돌아가거든.”

사람을 자신의 수단으로 대하며,
어찌 이용할까만 연구하는 사람 하나를 알고 있다.
평소엔 술 먹고 히히닥거리며 정분을 쌓는다.
그리하다 요긴한 일이 생기면 그를 꾀어 동원하고 잇속를 한껏 취한다.
나중 소용이 다하면 등을 돌리고, 얼굴을 바꾸며 이내 차버린다.
그리고는 또 다른 바지저고리를 구한다.

그의 사귐의 기초는 ‘인간됨’이 아니라 ‘실속’이다.
자신에게 보탬이 되거나 이용할 만한 구석이 있는 사람만 사귄다.
그럴 구석이 하나도 엿보이지 않으면 사람 취급도 하지 않고 거만하게 군다.
하지만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자에겐,
똥구멍을 살살 간질이고,
제 입술에 꿀을 바르고, 얼굴에 분칠을 하여,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접근한다.
그런데 여담이지만 더욱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은,
이것을 뻔히 알면서도 여기 빌붙어 술 받아먹고 뽕을 빼려는 인간도 있다.
천리마 등짝에 붙어 천리를 가려는 등애같은 속물인저.
내 설혹 둔마일지라도 어찌 등애를 가리지 못할 것이며,
천리마를 엿보랴?
내 발굽이 실한 이상,
걷다 보면 종국엔 천리를 가고도 남을 것임이니,
천리마가 어디 따로 있음인가?

열닷새째 연일 파리 날리고 있던 차,
손님이라도 하나 들면,
문설주에 기대어 졸고 있던
술집 작부는 화들짝 놀라,
납가루 잔뜩 섞은 박가분으로 하얗게 부셔지는 얼굴을,
애써 다려 피며 교태를 짓는다.
치맛단을 슬쩍 거둬 올리고,
저고리 옷섶을 은근히 벌리며,
개미지옥 함정을 파고, 천라지망(天羅之網) 죽음의 그물을 편다.

그런데 참으로 세상 이치는 아리송하고 어리숙하다.

계급(class)으로 나뉘어진 정치경제적인 구조 속에서,
제 계급의 이익에 반하는 정치 집단을
한 낱, 한 점의 갈등도 없이 열렬히 신봉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야말로 진짜배기 고문관이라 이름하여야 할 터인데,
저들의 이름은 ooo연대, xxx연합 따위로 거창하니 포장되어 팔리고 있다.

달콤한 말씀의 냄새에 취하여 제 몸뚱아리를 일당 5만원에 간단히 팔아재끼고,
우중에도, 밤중에도 까만 선글라스를 쓰고,
베니어판으로 만든 피켓을 들어 영혼을 검게 박제화(剝製化)한다.

부나비처럼 죽음의 불꽃에 달겨들어,
자신을, 남겨진 이웃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이들이 있는 한,
교묘한 술수는 먹히우고,
작당질하는 이들의 실속은,
만경(萬頃) 부잣집 곳간처럼 늘 가득 채워진다.

저들의 육체는 그리하여 스스로 타자의 소유물로 위탁되고,
영혼은 선글라스에 감춰진 채 일회용으로 길 위에서 타자에 의해 소비된다.

이를 노예라 부르지 않을 까닭이 있는가?

상처입고 굴속에 든 처량한 신세들이,
서로의 피와 고름을 핥으며,
감춰진 비굴함을 교번으로 격려(?)한다.
그래 이런 이들은 늘 말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둥글게 살아라.”
“좋은 게 좋다.”

(※ '좋은 게 좋다'란 말에 대한 나의 생각 :
      ☞ 2008/02/23 - [소요유] -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
      ☞ 2008/02/23 - [소요유] - 황희-일리-삼리)

어제의 글에 등장하는 박은 내게 이리 말한다.
(※ 참고 글 : ☞ 2011/11/29 - [농사] - 괴한)

“이사 가면 그 뿐이다.”

그러자 순간 이 말이 떠오른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절이 옮겨 갈 수 있는가?”

이 말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라면,
조심하여야 한다.
스스로 점검하길 나는 혹시 노예의식에 잡혀있지 않은가?
이리 자문해보아야 한다.

나라면 절집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도끼로 절간 기둥을 패고,
오함마로 불상을 부수고,
시줏돈만 탐내는 땡초들을 다 내쫓고.
다시 절을 세울 것이다.

나는 주인이다.
그런 고로 문득 부처가 된다.
부처를 의욕하지도 않았음에,
나의 행덕(行德)으로 어느 날 부처가 되는 것임이라.

이게 부처가 말씀하신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의 함의가 아닌가?
운문(雲門)의 우불살불(遇佛殺佛),봉조살조(逢祖殺祖)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아닌가?
단하천연(丹霞天然)은 그러하기에 소목불(燒木佛)이라,
목불을 쪼개어 불을 쬐었음이 아닌가?
(※ 참고 글 : ☞ 2008/02/29 - [소요유] - 야반삼경(夜半三更) 문빗장 - 주반칠흑(晝半漆黑))

내 노파심에서 한 마디 보태둔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들을 필요도 없는 헛말이로되,
혹 얼척없는 촌놈이 곡해를 하고 또 괴한으로 변신할까봐 애써 풀어둔다.
단하천연이라야 목불을 뽀갤 수 있는 것,
핫바지저고리가 어찌 감히 목불아냐 진흙으로 만든 인형일지라도 훼할 수 있으랴.
이 말씀은 곧 그 만한 위(位)에 오른 경지이기에 가한 것.
한즉 양아치가, 사마귀 주제에 어찌 흉내내어 수레에 대들랴?
제가 뱉은 말에 스스로 놀래 이사가기를 꾀하는 용렬한 자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자기가 자기에게 주인이 아닌 바임이라,
그러하기에 제 말에 확신을 갖지 못하니 이사갈 궁리를 트지 않겠는가 말이다.
나는 어떠한가?
내 단호히 말하거니와,
단하천연 한 다스가 떼거리로 달겨들어도,
땅에 떨어지는 동백꽃이듯 목아지를 똑똑 따버렸음이다.
이미.
 

                                                        (丹霞寺內現代人刻的天然祖師像)

비겁하게 왜 이사를 가는가?
제가 싸놓은 똥이 그리도 구리고 무섭더란 말이냐?
나약한 겁쟁이.
엄동설한 눈 속에서,
아직도 헤진 갈옷을 입고, 떨고 있는 허재비가 그대를 보고 웃고 있지 않음인가?

머리 깎고 중이 되었는데,
어이하여 중놈이 절을 떠나는가?
중노릇 제대로 하려면,
도끼로 당집을 그대로 찍어 쓰러뜨려야 한다.
날이면 날마다 절 하나씩을 뽀개버려야 한다.
절간에 기식하는 땡중들은,
하루에 열두 명씩 모가지를 싹둑 잘라버려,
개골창에 내다버려야 한다.

서양의 니체 역시 신의 사망 선고를 내렸다.
   - 신, 이성, ... 미신, 맹종, 추접한 텃새 근성, 촌놈 의식, ...
그 역시 부처에 다름 아니다.
노예를 죽이고,
주인이 된 이는 모두 부처란 이름으로 불리운다.

이 때라야 천국의 문이 열려 하느님을 영접할 수 있음이며,
제석천(帝釋天)은 수미산 꼭대기 도리천에서 지상으로 꽃비를 내릴 것임이라.

이 때라야 주인이 된다.
연화좌(蓮花座) 주인 자리에 앉은
부처가 되는 것임이라.

***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

“사람 셋이면 누구일지라도 게서 내 배움을 구할 수 있다.”

이 진부한 이야기를 간밤에 자면서 떠올렸다.

좋은 것은 본으로 삼아 따르고,
나쁜 것은 안을 살펴 즉 피드백 하여 고쳐나갈 수 있다는 말씀인 게라.

오늘 원문을 다시 따라가 본다.

三人行,必有我師焉。擇其善者而從之,其不善者而改之。

이 어찌 그른 바 있으랴.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이런 의문이 이불자락을 재치자 바로 뒤따라 일어난다.

그렇다면,
법구경의 이 말씀은 어떠한가?
사실 정확하게는 법구경이 아니라 법구비유경(法句譬喻經)이란 경이다.
법구경의 이본(異本)쯤 된다.

내 한 말씀도 놓치고 싶지 않아,
한어(漢語) 경문(經文)을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따라가 보기로 한다.

※ 주의 : 아래 글이 길어 겨운 이는 굵은 활자체만 대하길....

<法句譬喻經雙要品>
......
地有故紙,佛告比丘取之,
受教即取。佛問比丘:「以為何紙?」諸比丘白佛:
「此裹香紙,今雖捐棄處香如故。」佛復前行,
地有斷索,佛告比丘取之,受教即取。佛復問曰:
「此何等索?」諸比丘白佛:「其索腥臭,此繫魚之索。」
佛語比丘:「夫物本淨,皆由因緣以興罪福,
近賢明則道義隆,友愚闇則殃罪臻。
譬彼紙索近香則香,繫魚則腥,
漸染翫習各不自覺。」 於是世尊即說偈言:
「鄙夫染人,  如近臭物,  漸迷習非,
不覺成惡。  賢夫染人,  如附香熏,
進智習善,  行成芳潔。」

땅에 떨어져 있는 오래된 종이를 보시고,
부처께서 비구를 시켜 그것을 줍게 하였다.
비구는 가르침을 따라 그것을 주었다.
부처께서 물으셨다.

“그게 어떤 종이냐?”

비구가 말한다.

“이것은 향을 쌌던 종이입니다.
비록 버려져 있었습니다만 아직 향내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셨다.

땅엔 끊어진 줄이 하나 버려져 있었다.
비구에게 그것을 줏으라 이르셨다.
가르침을 받자와 그것을 줏으니,
부처께서 다시 물으신다.

“그 줄은 무엇이드냐?”

비구가 부처에게 고한다.

“그것은 비린내가 납니다. 생선을 묶었던 것인가 봅니다.”

부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신다.

“무릇 만물은 본래 청정하다.
모두 인연에 따라 죄와 복을 부른다.
현명한 이를 가까이 하면 도의가 흥륭하고,
우암한 이를 벗으로 가까이 하면 재앙과 죄가 이른다.
저 종이는 향을 가까이 한즉 향내가 나고,
저 줄은 생선을 묶었은즉 비린내가 난다.
차츰 차츰 물들어 자신도 모르는 새 익숙해지고 만다.”

이에 세존께서 게를 지어 내리 설하신다.

비루한 인간은 더러운 냄새나는 물건을 가까이 하듯,
점차 그릇된 것에 익어 악에 빠지는 것을 모른다.
현명한 이는 아름다운 향기에 젖듯,
지혜롭게 나아가 선을 익히니,
향기롭고 깨끗한 덕행을 이루나니.


내 말하노니,
진실로 그대가 배움을 원하면,
행여라도 비루한 인간으로부터 뭣을 구하려 할 것이 아니라,
오늘 당장 행장 꾸려 길을 떠나야 한다.
길 없는 길,
그대의 마음속에 잠긴,
그 자드락 길을.

***

구사학유(求師學儒)
분불학불(焚佛學佛)

유학을 배우려면 선생을 구하나,
불학을 배우는 자는 부처를 불 질러야 하느니.
삼백예순날 한결같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삼가 손곧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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