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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법 유감(遺憾) 3

농사 : 2012. 2. 7. 17:33


지난 주말농사 시절 시골 현지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술잔 나누며 정답게 몇 차 교분을 나누었다.
그가 젊은 시절 산에 들어갔던 적이 있다한다.
이 이야기를 듣자 이 사람이 제법 진지한 구석이 있구나 싶었다.

잡살뱅이, 욕심쟁이, 사이비 종교쟁이, 야살이꾼, 무지렁이 ...
여기 시골에서 짧은 동안 천태만상의 인간군상을,
그 동안의 내 일생 전체보다 외려 더 많이 겪은 폭이다.
여기 시골은 가린 것, 감춘 것이 없기에 더욱 적나라하니 잘 드러나 있다.

저이는 내가 농원을 개설하면서 관정을 팔 때,
이제까지의 태도를 싹 바꾸어 외려 훼(毁)살을 부렸다.
주말농사 시절의 객이 아니라,
동네에 주인으로 등장하려니 바짝 긴장하고 있음인가 싶다.

아, 이자가 입산(入山)을 하려 한 것이 아니라,
도산(逃山)내지는 도산(盜山)을 하려 함이었고뇨.

산에 듦은 산을 배우려고, 닯으려고 또는 잃었던 무엇인가를 찾으려 드는 것,
허나 도산이라 함은 이 세속을 그저 피하려 함이든가, - 逃山
아니면 산의 정신을 도둑질 하여 제 구린내 나는 몸에 척하니 걸치려 하였음이다. - 盜山
이게 그럴싸하니 제법 폼나는 일이라 여겼을 터이다.

일요일마다 빠지지 않고 예배당에 감이,
예수의 마음을 닮고, 배우려 함이 아니라,
끼리끼리 배 맞추고, 복을 빌고, 안가(安家)를 꾀하고자,
그저 구신도귀(求神禱鬼)함에 불과하다면,
이 어찌 안타깝다 하지 않으랴?

착한 척 보이려고 산에 드는 것을 도산(盜山)이라 이른다면,
착한 척 하느라고 교당(敎堂)에 드는 것 역시나 도산(盜山) 또는 도교(盜敎)라 나는 이르리라.

헌즉, 산에 듦은 참으로 무섭고 두려운 것이다.
삼가, 내가 나를 속이지 않고 들어야 함이니.

나는 그 치열함을 알기에 이 늦은 나이에도 감히 입산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매일 매일 그저 비겁하니 등산만 할 뿐이다.

인도인은 일생 4주기를 지난다.
학습기(學習期) , 가주기(家住期) , 임서기(林棲期), 유행기(遊行期).
나는 지금 집을 떠나 밭에 들었음이니,
가히 임서기쯤에 임하고 있을 만한데,
실인즉 입산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고뇨.

두어라,
매일 매일 일상이 실인즉 유행기(遊行期)에 다름 없으니,
새삼 전기(前期)를 어이 구하랴.
운문(雲門)은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라 하지 않았음인가?
하기사 농부가 되니 참말로 매일 매일 일상이 그대로 좋은 날이다.
운문은 중이 아니라 차라리 농부였으면 더욱 일찍 도를 이루었을 것이다.

***

젊은 시절 배코머리 치고 중이 된다.
시퍼런 청춘을 수도원에 의탁하고 순종하여 신에게 온 생을 던져 수도사가 된다.
이 얼마나 저리도록 시리고, 떨리도록 아프며, 푸르게 거룩한가?

스님 네들이 출가해선 삭도(削刀)로 머리를 자른다.
그들은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라고 이른다.
12연기(十二緣起)를 순관(順觀) 할 때 처음 출발은 무명으로부터다.
자르고 잘라도 또 자라나는 머리카락, 풀을 아우러 무명에 빗댄,
저들의 비유가 고심참담(苦心慘憺)한 가운데 사뭇 그럴 듯하다.
 
( ※ 12연기(十二緣起) :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처(六處),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
 
첫 출가함에 계사(戒師) 스님으로부터 수계 받고 본사(本師)께선 머리카락을 자른다.
이때 낙발(落髮) 게를 읊는다.
 
毀形守志節 割愛無所親
出家弘聖道 願度一切人

형을 허물어 지절을 지키며,
애를 끊고 소친과 이별한다.
출가해 성도를 넓히고,
일체 중생을 제도할 사.
 
여기 형을 허물고, 애친(愛親)을 끊는다는 말처럼 삼엄한 말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음인가?
몇 번 대하여도 처음인 양,
손끝부터 시작한 소름이 팔뚝을 자르나니 살처럼 지난다.
내가 가끔씩 저들을 탓하곤 하지만,
이만으로도 삼가 저들에게 존경의 념을 바치지 않을 수 없다.
 
달리 복전(福田)이라 이르는 오정덕(五淨德)에 역시 같은 말씀이 있다.
 
一者 發心離俗,
二者 毁其形好
三者 永割親愛
四者 委棄軀命
五者 志求大乘
 
예서 형을 허문다는 말은 곧 법복(法服)을 입는다는 것이니,
이는 삭발염의(削髮染衣)한다는 말과 같다.
머리카락을 밀고 물들인 옷을 입는다는 것이니,
과연 무명초(無明草)를 자름으로써 무명 번뇌를 끊을 수 있음인 것이며,
애친을 잘라 적막(適莫)을 없앨 수 있음인가?
 
내가 여름 내내 예초기를 메고, 낫을 들고,
온 밭을 헤매이다시피 분주히 돌아다녔지만 풀은 매양 다시 돋아난다.
체발(剃髮)하고 승복(僧服)을 입는다고 무명에서 벗어난다면,
온 천하에 구경열반(究竟涅槃)에 든 중들이 갠지스 강 모래알보다 더 많이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나 또한 예초기 멘 시간으로 따지자면,
군(郡)내 참피온은 따논 당상이니,
어찌 초선(草禪)이 아니되었으랴?

도대체가 석가가 무엇이관대,
다투어 등잔불에 달겨드는 부나비처럼,
혹은 심청이 임당수 푸른 물에 꽃잎 되어 뛰어들 듯,
막 갈아내어 시퍼런 검날보다,
더 푸르디 푸른 청춘들이 사리지 않고 저 제단 앞에 제 몸을 사르는가?

무농약, 무비료, 무멀칭, 무경운, 무관수 ...
이 얼마나 황홀한 소식인가?
자연농법은 도대체 그 어느 거룩한 성자가 내세웠기에,
이리도 오금이 저르르 떨리도록 푸른 영혼을 잡아 흔드는가?

『 아래 : 최근 이곳에 있었던 어느 분의 댓글 인용 』

“위에 답주신분들 마음편안하시지요 순리대로사시니까요 성주참외200평당1000만원넘긴농부많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궁굼타 생각드시면 오세요 그사람들 찾아 구경시켜드릴께요 남의논빌려서 일은안하고 무슨농ㅇ회다 하면서 군청앞에가서 대모하던놈 지금 거지되어 노가다판 다니고 소값 내린다고 남들은 화물차에 소 싣고 서울대모갈때 자기는 소몰고 우시장가서 비싸게 소 다 팔아먹고 지금은 검정색승용차 몰고 논과밭 사로 다닙니다 인간덜된넘이 대모하로 다닐때 풀한포기 더뽑고 소한마리 팔아서 저금 차곡차곡하는 그런 농부가 됩시다 제발 말이많은 일부 나일론 박사말좀 듣지 맙시다 농사는 하느님이 아닌 하늘과 동업해야 부자됩니다”

남들은 끼룩끼룩 짝지어 나는 기러기처럼 애인과 팔짱을 끼고 꽃놀이를 할 때,
선방에 들어, 돼먹지도 않는 화두랍시라 끼고앉아 졸음에 겨워하고,
밤엔 들창문 열고 하염없이 달보고 애호신음(哀呼呻吟) 슬피우노니.
저 젊은 풋중의 한이 들창을 새어나가 문득 접동새 울음으로 화하는도다.

“남들은 화물차에 소 싫고 서울로 우르르 몰려가 데모할 때,
어떤 이는 소 몰고 우시장에 가서 비싼 값에 팔아먹고,
지금은 검정 승용차 몰고 폼을 잡는다.”

아, 한참 젊었을 때,
기지촌 창녀의 벗은 다리 훔쳐보고 발딱 서듯,
참으로 찬란하니 서럽도록 염치없이 꼴리는 말씀이로구나.

풋나기 중은 이 욕정을 떨치고자,
동지 섣달 은성철벽인 양 떡 버티고 서계신 뒷산 얼음벽을 깨고 찬물을 몸에 끼얹어 가라 앉힌다.
그도 아니 되면 시퍼렇게 날 벼린 패검(佩刀)으로 기어히 남근(男根)을 끊어내기도 한다.
그러함인데 저자는 저리도 이죽거리며 돈지갑을 만지작거리며 히죽이고 있고나.

허나,
중이 되지는 못할망정 저들의 구도심, 아니 순정을 어찌 훼할손가?
승용차가 아무리 탐난들, 저 애끓는 축산인의 마음을 차마 비웃을 수 있음인가?

훼절하고 당꼬모자 얻어 쓰고 일제의 앞잡이가 되었다한들,
어찌 북풍한설 만주벌을 누비시던 독립투사의 의기를 얕보랴.

내가 자연농업교도가 되거나, 아니 되거나,
어찌 저들의 토혈하듯 피끓는 순정을 폄하할 수 있음이랴?

설령(設令) 너와 나는 가는 길이 다르다고 할지언정,
이게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 아니어든?

제 아무리 값나가는 승용차를 타고 뻐기고 다닌다한들,
저이들을 어찌 인의지사(仁義之士)라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비상한 때라야, 진면목을 알아본다고 했음이다.
저리 利에 밝으니 위험에 처하였을 때 어찌 의리를 지킬 수 있음인가?
닦아주고 햝아줄 때가 모두가 아니다.
한 사람을 마주함에 비상하니 위태로울 때를 생각하라.
그 때에도 저자가 내 친구가 되어 남아줄 수 있을까?
진국 남자가 아니라면,
설혹 지금 당장 알사탕을 섬짝으로 지고 온다하여도 침 한 방울 흘리지 말지어다.

***

한 9년 전쯤이다.
일이 있어 여의도를 겨우내 나들던 때가 있었다.
때는 한 겨울인데 순복음교회 앞자락 강변께엔 늘 모진 바람이 불어,
인도를 오종종 뛰어가는 이들을 닦달하듯 뒤쫓아 가며 엄습했다.
 
나는 가끔 순복음교회 앞에 있는 버스정거장 매표소에서 비둘기 모이를 사고는 했다.
당시 한 봉지에 2000원 했는데 지금은 얼마가 되었을까?
보나마나 중국산이거나 미국산 등외품 사료일 터인데,
한줌에 2000원이라니 엔간히 비싼 폭이다.
사람 먹는 쌀보다 더 비싸다.
집에서 불린 보리나 쌀을 가져다 줄 때도 있지만,
어떤 때 짬이 났으나,
맨손일 경우는 부득불 사지 않을 수 없다.

아침이면 비둘기들이 눈구덩이 위에 꼼짝 않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그곳을 지나며 늘 보게 된다.
아무리 미련하더라도 바람 몰아치는 계단을 피해,
어디 구석진 곳에라도 있었으면 좀 나을 텐데,
언제나 정거장 옆 한강 둔치로 내려가는 시멘트 계단 위에,
고단한 생을 좌판 벌려 시위하듯 떨고들 있다.
모진 운명에 자해라도 하듯이, 그리 항거하는지도 모르겠다.
필시 한 밤을 그리 떨며 새웠을 텐 데 너무 안타가워 가슴이 매워온다.
 
저들을 볼 때면 사는 것이 무엇인가,
인생도 저 위에서 보기엔 저리도 한참 미련하게 보이진 않을까 싶다.
여름 한철 잠깐 멋있게 날자고,
(뭐 알고 보면 여름이라 한들 그리 녹록한 것은 아닐 테지만, 인간 눈에는.)
그 추운 겨울 변변한 먹이도 없이 북풍한설을 맞으며 저리 인내하여야 한단 말인가 ?
모이를 주기는 주는데 잘하는 짓인지 가끔 회의가 들 때도 있다.
모진 추위를 못 이기면 못이기는 대로 명줄을 놓게 되면,
그나마 고생이라도 빨리 면하게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구차한 명을 한줌 모이로 더 늘인들,
결코 그 녀석들에게 덕이 되지도 않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새삼 지난 일을 이리 되떠 올리는 까닭은 무엇인가?
요즘 고물할아버지네 집을 드나들며 엇비슷한 생각을 하곤 한다.
 
어느 때부터인가,
저들 비둘기들이 내가 나타나면 우르르 몰려와 지붕 위에 내린다.
얼추 스무 마리 남짓 한 무리가 내가 들어선 마당가를 굽어본다.
강아지들 물그릇, 사료 그릇을 닦아 챙기고,
묵은 사료를 마당가에 죽 흩으면,
저들은 아귀다툼을 하며 마당가로 내려온다.

저 아사리(阿闍梨) 판에서도 힘 센 녀석이 먹이를 많이 주워 먹는다.
나는 그중 비쩍 마른 녀석을 겨냥해 새로 사료를 꺼내 던져 주지만,
정작 그 녀석은 놀라 내쳐 날아가 버리고,
엉뚱하게도 겁 없이 달겨드는 배짱 좋은 녀석 차지가 되고 만다.

원래 아사리(阿闍梨)는 불교 용어로서,
제자에게 본이 되거나 의식을 전수해주는 승려를 말한다.
그러하니, 이는 곧 가르침을 펴는 위치에 있는 승려이니,
계를 내려준 수계사(授戒師) 즉 화상(和尙)과는 다름이 있다.
 
나에게 계를 내려 처음으로 문 안으로 이끌어주신 스승도 귀하지만,
가르침을 내려 깨우쳐 주시는 스승은 또 어찌 귀하지 않으랴.
 
어쨌건 이런 거룩한 승려를 이르는 말이 어찌하여,
‘아사리 깽판’이란 험한 말이 되어, 저잣거리 진흙 바닥으로 내리 앉아버렸는가 말이다.
이판사판(理判事判)이란 말도,
원래는 각 이판과 사판이란 스님의 직분을 가르는 말이 아니었던가?
그런 것이 이 말은 이젠 막장에 다다라 엉망이 된 지경을 이르는데 쓰인다.
야단법석(野壇法席) 역시나 마찬가지다.
야외에서 펼쳐진 스님의 설법 자리가,
시장바닥처럼 왁자지껄하며 시끄럽기만 할 뿐.
감로(甘露) 법음(法音)은커녕,
불사(佛事) 독려, 기복(祈福) 구걸로 장터를 방불 한다.
 
속됨을 여의고 이름도 거룩한 성(聖)스러움을 추구하는 저들 집단의
아름다운 말들이 세간에 이르러서는 헤진 걸레짝보다도 더 못한 취급을 받고 있음이다.
 
이게 속인들 스스로 허물어져 자포자기 심정으로 어깃장 부려본 소이(所以)이어든,
출세간인들의 타락함에 근인(根因)이 있든,
승속(僧俗) 모두 엉켜 들여가는 세간사이니 모두 책임이 있지 않을까 싶다.
성속(聖俗) 모두 참회해야 할 노릇이다.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하였음이니,
저 비둘기들의 먹이 다툼은 곧 불인(不仁)의 현장이다.
하지만 인간은 불인(不仁)하지 않다.
아니, 않으려 한다.
인(仁)을 추수(追隨)한다.
 
나는 이를 대(對)하여 인인(人仁)이라 말하고 싶다.
천지가 불인(不仁)하다 한들,
인간은 인(仁)하다.
그런 의미에서 천도를 거스르는 것이,
바로 인간의 도리일런지도 모른다.
나는 이 길을 걷는 것이 인간이 마땅히 좇아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도교(道敎)에서 도를 수행하여,
삼천갑자 동방삭처럼 수십만 년 살게 되었다 할 때,
이게 어찌 자연스러운 노릇이겠는가?
도교 역시 자연을 거스르고 사람의 길을 닦고자 하는 것임이라.
하늘을 거슬려 인간의 가능성을 무한히 시험해 보고자 하는 노력,
이게 도 닦음, 즉 수도(修道)의 본래 진면목이다.
자연(도리)을 좇는 것이 아니라,
인간 독존(獨存)의 의지를 하늘에 대극(對克)하여,
창처럼 꼰아 든 인간의 자존(自尊)의식,
나는 이 의식을 꿋꿋하게 시험하고 펴보는 것,
또한 인간의 처연한 숙명이라고 생각해본다.

이렇듯 도교에서는 수심연성(修心煉性)한다 하였다.
유교에서는 이를 일러 존심양성(存心養性)이라 하였고,
불교에서는 명심견성(明心見性)이라 하였음이지,
그저 노자에서 말하듯 추구(芻狗)를 대하듯 무심한 자연을 따르라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 실인즉, 인인(人仁)은 천지불인과 함께 우주의 서로 다른 모습을 각기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인은 인답게, 천지는 천지답게 나아가는 것,
이게 불인(不仁), 인(仁) 전체를 초월하는 우주의 참 모습이 아닐까?

(※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天地之間 其猶橐籥乎 虛而不屈 動而愈出 多言數窮 不如守中.)

비둘기들은 저 혼자 살겠다고,
강한 놈이 약한 놈을 궁박하여 쫓아낸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약한 이웃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고,
또한 가난한 이를 보살펴 함께 손잡고 씩씩하니 웃음 지으며 거친 세상을 걸어간다.
전자가 천지불인의 실상이라면,
후자는 인인(人仁)의 길이다.
 
하늘을 향해,
올연(兀然)히 일어서서
사람의 길을 밝히고자 하는 태도,
당연 천지의 도를 거스를 수밖에 없다.
여기 천지와 인간의 대립이 있다.
인인(人仁)은 그러하기에 선한 의지가 작동하지만,
천지불인은 무심(無心), 무사(無私)할 뿐이다.
선악을 떠나 나는 이게 인간이 마땅히 가야할 길이거니와,
호오불문(好惡不問) 인간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하늘은 하늘의 길을 가고,
땅은 땅의 길을 가고,
사람은 사람의 길을 제 각기 걷는 것임을.
천도가 있다면, 이들 삼자를 전체로 아울러 일러야 마땅히 천도라 할 수 있지,
천지불인 이리 하나로 좁혀 천도라 이름할 까닭은 없다.
 
자연보호라는 것도 어느 것이 어느 것을 감히 보호해준다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존중해 주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너는 너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걸을 뿐인 것을.
 
혹자 중엔,
스스로 불인(不仁)하면서,
천지불인 천도를 따르고 있다고 우쭐거리는 치들이 있다.
가령, 염치 버리고 남의 것 빼앗고,
눈이 시뻘개져 마지막까지 쥐어짜 욕심껏 자연을 유린하면서도,
부끄러움도 없이 원래 자연은 그러한 것이라고 외친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니 그리 사는 것이 마땅하다고 그들은 말한다.
 
천지불인은 어디 한 곳에 매인 바 없음이니, 천도무사(天道無私)하다.
삿됨이 없다.
그러하기에 공평하며,
만물이 생성화육(生成化育)한다.

하지만, 그 치들은 다만 사익을 탐하여 유의(有意)할 뿐인 것을,
어찌 천지불인의 무사무욕(無私無慾)함과 견줄 수 있으랴.
불인(不仁)은 그러하기에 달리 무위(無爲)라 불리운다.
유위(有爲)한 저 치들은 배움이 없고, 깨우침이 없는 어리석은 깡패와 다를 바 없다.
저들은 결코 불인(不仁)한 것이 아니다.
단지 천박하고 사악(邪惡)할 뿐이다.

저들은 결코 하늘의 길, 땅의 길을 좇음도 아니오,
인간의 길조차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있음이다.

***
 
비둘기가
지붕에 앉아,
스물 남짓 외로운 둥지를 튼다.
 
잠깐새,
마당가에 내린
외로운 이들 스물은 이내 뻘건 전사(戰士)가 된다.

은은한,
달빛 아래
천년 비의(秘義)를 내려주시던 아사리는 아니 계시다.
 
지금 거기
개판, 깽판, 아사리 깽판.
깨진 사금파리처럼 스물 남짓 '숨'이 아프게 나뒹군다.
 
지금 거기
나는 仁과 不仁,
그 갈래 길에 망연히 서 있다.

***

최근 도성구우님에 의해 촉발된 말씀들의 언저리.

위에서 인용한 어떤 분의 댓글, 저 이악스런 마음보,
그리고 자연농업을 추수(追隨)하는 이들의 순정.

이게 내 의식 안 뜰에 극대비 콘트라스트로 내려 앉아 있다.
그래 이리 두서없는 상념을 비로 쓸듯 가만히 모아 여기 떨궈둔다.

(* 본문 중 일부, 저의 예전 글 조각을 헐어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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