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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카드 거치대

농사 : 2012. 6. 4. 09:48


어제 아침에 예초기를 메고 망초, 돼지풀 따위를 베었다.

아침엔 하늘도 우중충 별로 덥지도 않을 양 싶지만,
낮이 되면 햇볕이 기세 좋게 내리쬐어 묘목 표토를 바로 말려버린다.

오전에 이미 온 몸이 땀으로 젖었다.
잠깐 예초 작업을 했을 뿐인데 속옷까지 다 젖어버렸다.

해는 따갑고,
숨은 가쁘고,
오늘 따라 더 이상 일을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쉬는 것은 게으름을 피우는 것 같아,
밭 일 대신 다른 일을 찾아 채워 넣기로 한다.
그래서 진작 만들었어야 할 플래카드 거치대를 이제야 만들게 되었다.

얼마 전 안성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분이,
이웃 포천에서 농사를 짓는 조카 분을 데리고 우리 농원을 찾아왔다.

나보다 앞서 농사를 짓고 계신 분인데,
나처럼 초생재배를 한다고 한다.
초생재배를 하는 분은 흔치 않기에,
서로는 서로를 존중하고 이내 동지가 된다.

실례를 무릅쓰고 배운 재주대로 순간 관상을 보았다.
진득하니 성실하게 앞길을 개척하는 타입이다.

여하간 그는 조카가 농사일을 새로 시작했는데,
그게 여의치 않아 공부 삼아 데리고 다니면서 근처 농원들을 탐방하는 것 같다.
뜻이 아름답고, 신실하니 보기가 좋다.

나는 그들에게 두더지 퇴치법을 자세히 일러주었다.
일행 중 전기 쪽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있어,
결선 법을 쉽게 가르쳐줄 수 있었다.

그가 말한다.

“몇 해 전 이웃 농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여기 농장이 거기와 한 데로 같은 곳이라고 했는데,
이제 보니 다른 곳이군요.”

“네, 가끔 그곳 주인이 그리 말한다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만,
거기와 여기는 주인이 다른 농장입니다.”

이웃 농장 주인이,
우리 농원을 자기네 것이라고 거짓 선전을 하는 것이다.

나는 농원 밖 길거리까지 간판을 세우고 싶지 않다.
이웃 농원은 자기 농원에 커다란 간판을 세우는 것도 모자라,
동네 곳곳에 표지판을 박아두었다.
시골 동네에 밭두렁, 논두렁마다 설치된 간판, 표지판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흉물로 보일 수도 있다.
아니, 섬세하고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에겐,
의당 언짢은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만약 농원마다 저리 간판을 길목마다 내다 걸고,
요양원마다 표지판을 마을 곳곳에 세우다 보면,
거리는 이내 너절하니 엉망이 되고 말 것이다.
시골길이 농부 탈을 빌려 쓴 장사꾼들에 의해 이리 침탈당하고 있으니,
과시 세상은 아사리 판으로 돌아가고 있음이다.
여기 농원 근처엔 (노인)요양원이 많이 있다.
몇 가지 놀라운 이야기를 듣고 있으나,
나중에 틈이 나면 요양원 실태에 대하여 자세히 취재하여 여기에 기록해둘 예정이다.

푸릇푸릇 풀이나 나무 또는 작물이 자라야 제격일 터인데,
지나치는 길 변에 간판이 불쑥불쑥 나타날 때마다,
그 아름답지 않은 모습에 마음이 편치 않다.

하지만, 자신을 알리려면 도리 없이 표지되는 것을 내달 수는 있으리라.
나는 가급적 표지판을 우리 농원 안으로 한정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요즘 세상엔 차량마다 네비게이션을 갖추고 있으니,
이리 절제하여도 그리 큰 지장이 없을 것이다.

나는 동네 길목마다 흉측하니 안내 길 표지판을 달지도 않지만,
농원 안에도 아직은 간판만 세워두고는 미처 글자를 새겨두지 못했다.
하지만 내 농원이 남의 농원으로 편취 당하는 것이 그리 달가운 노릇이 아닌즉,
오늘은 이리 시간을 내서 플래카드를 내다 걸 수 있는 거치대를 만드는 것이다.
설마하니 이리 걸린 표지를 보고서도 염치없이,
이곳을 자기 농장이라고 설레발을 치지는 못할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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