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된사람(成人)

소요유 : 2012. 7. 5. 10:37



나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인간이 제일 싫다.

최근 내가 다니고 있는 농민대학에서도 강의시간을 훨씬 지나 나타나는 인간들을 가만히 지켜본다.
이들은 대개 정해져 있다.
이런 부류들은 하는 짓거리도 거칠고 못났다.
어느 날 늘 늦게 강의실에 들어오는 녀석이 큰 소리로 인사를 치루며 들어선다.
강사가 이미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 자의 큰 소리는 마치 대감 행차시에 잡인을 물리는 벽제(辟除) 소리를 방불한다.
나중에 지인 하나는 저 양아치 같은 녀석 때문에 꼭지가 돌아,
야단을 치려고 일어나려다 겨우 참았다고 전한다.

녀석은 꼴에 도사 복장을 하고 수염을 기르고 다닌다.
내가 보기엔 초탈한 모습이 아니라 꼭 수년래 빨지 않은 거지 복장으로 보였는데,
과연 그날 일로 확연해졌다.
저게 저리 한 번 튀어보겠다는 수작질일 터이니,
거래해보지 않아도 저치의 면목을 짐작할 수 있을 터이다.
거죽으로 저리 요란히 꾸미려는 자들은,
곧 내실이 없고 거짓도 불사하겠다는 경향이 짙다.
나는 이런 자들을 그리 옳게 보지 않기에 늘 의심하고, 사뭇 경계한다.

최근 내가 농장에서 나온 소출물을 면식인 하나에게 팔았는데,
대금을 이틀 후에 치루겠단다.

약간의 면을 트고 있는 처지인즉 마다할 까닭이 없다.
그러라 했다.

그런데 약속 기일이 지나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다.
다음 날 연락을 하니 다시 이틀 후에 직접 들려 처리하겠단다.

우리 같으면 약속을 어기지도 않겠지만,
설혹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다면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 미안하다 이를 것이다.

약속이란 오늘에 서서 내일을 기약하는 것이지만,
내일 일은 아무도 온전히 알 수 없다.
하여 때론 어쩔 수 없이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가 생길 수 있다.
이러한 것을 어찌하랴?
이게 사람살이인 것을.
하지만 이때에 이르러 진심으로 송구한 마음을 일으키고,
용서를 구함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만약 이리 예를 치루지 못한다면 이를 어찌 제대로 된 사람이라 이를 수 있겠는가?

그런데 아무런 연락도 없었음은 물론 통화시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다.
이자가 평소 행실로 미루어 그리 미덥지 못하더니만,
과연 그러하고나 싶었다.

그런데 다시 이틀이 되었음에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이거 보통 빚쟁이 수법인데 이자가 그런 부류가 아닌가?

빚을 지고도 갚지 않자,
빌려준 이가 빨리 갚으라고 채근을 한다.
그러자 빚쟁이는 내일은 꼭 갚을 터이니 염려 말라고 한다.
하지만 내일에 이르르면 여전히 이러 저런 핑계를 대며 다시 다음 날로 미룬다.
이러하길 석 달 열흘이 지나면 슬슬 주객이 전도된다.
주인은 애가 끓고 객은 거만해진다.
주인은 말한다.
그럼 이자는 감해줄 터이니 원본만이라도 돌려 달라.
빚쟁이는 코웃음을 치며 요지부동이다.
급기야 주인은 원본 일부라도 돌려달라고 애원을 하게 된다.

하지만, 또 다시 석 달 열흘이 지난다.
어느 날 빚쟁이 집을 찾아가니 집은 텅텅 비고,
헤진 고무신짝이 마당가에 나뒹굴고 있을 뿐이다.
굿 해먹고 헤어진 무당년 앞마당인들 이리 허망하고 쓸쓸할까나?
수소문을 하니 어둑새벽에 안개비를 헤치고,
남부여대(男負女戴) 줄행랑을 치더란다.

이게 보통의 빚쟁이 행보다.

나는 순간 저자가 이런 경로를 밟지 않을까 염려한다.
다시 연락이 되었다.
이자는 또 이틀 후에 직접 들리겠단다.
삼세번을 채우겠다는 것인가?

나는 인내하며 아무런 불평 한 마디 없이 그러마하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삼세번을 꽉 채우고 나면,
그 때는 아마도 댓가를 되우 치르게 될 것이다.

이틀 후 그는 찾아왔다.
다행이다.
내가 다행인 것이 아니라,
그자가 다행이란 말이다.
아니 그러했다면 그자는 제법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여기 시골엔 무지렁이가 정말 너무 많다.
이들은 어찌 이런 형편으로 살아들 가는 것인가?
신용을 한 번 잃으면 다시는 회복하기 어렵다.
신용만이 문제인가?
제 위신, 체면, 자존이 허물어진 것은 또 얼마나 치욕스러운가?

이게 얼마 전에 일어난 일이다.
그런데 오늘 만나기로 한 다른 어떤 이가 또 약속을 어겼다.
여기 시골 촌것들은 정말 너무도 못난이들이 많다.

비가 가만가만 곱게 내린다.
오늘 같은 날은 음악을 들으면 딱 좋다.
음악을 들으며 묘판 정리나 하면 딱 제격이다.

논어에 나오는 말씀을 다시 새겨본다.

久要不忘平生之言,亦可以為成人矣。

비록 오래된 약속일지라도, 평소에 했던 말을 잊지 않으면,
이 또한 된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오랜 전에 뱉어낸 말일지라도,
내가 상대에게 약속을 한 이상,
잊지 않고 지켜야 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인격을 갖춘 하나의 사람으로서 살아간다 할 수 있다.

사람은 된사람, 난사람, 못된사람, 못난사람으로 나뉜다.
한자로 하자면 된사람은 성인(成人), 난사람은 걸인(傑人)이라 한다.
걸인은 대개 선천적으로 뛰어난 재질을 가진 자이나,
성인은 후천적으로 닦아 깨인 사람을 일컫는다.
약속을 잘 지킨다 함은,
잘났다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다.
제대로 익은 사람 말이다.

최근 별 교류는 없었지만 면을 트고 있는 분으로부터,
내게 필요한 것을 알아보아주겠다는 말씀을 듣다.
약속이라 할 것도 없이 그냥 의례적인 말로 치부하여도 될 정도의 이야기였는데,
며칠 후 우정 찾아 주셔서 해결이 되었다는 말씀을 전해 듣다.

나는 이때에도 久要不忘平生之言 이 말씀을 떠올렸었다.
과연 성실한 분은 이리도 다르구나 내심 고개를 주억거렸었다.

설혹 나하고는 성정도 다르고, 지향하는 바가 다를지언정,
성실한 사람은 늘 미덥고 안심(安心) 즉 마음을 편안히 해준다.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을 경계하고 멀리해야 한다.
비록 얼핏 보기에 사람이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하여도,
언젠가 비상(非常)한 때에 이르러 이런 자는 그대를 곤란에 처하게 할 우려가 많다.

내가 그리하여 늘 말하지 않던가?
사람은 평상시가 아니라 비상한 때에 이르러야 그 진면목이 드러난다.
이때에 이르러 낭패를 겪지 않으려면,
평상시에 이런 자들을 사뭇 경계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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