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여성과 위생, 그리고 제초에 대하여

농사 : 2012. 8. 18. 16:47


내 처는 제초제라면 질색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여 지난 2007년 이래 3년간의 주말농사 시절,
그리고 그 이후 3년 간 정식으로 농원을 조성한 밭엔 제초제는 물론 농약, 비료조차 넣지 않았다.

노파심에서 한 마디 덧붙인다면,
그러하다한들 농약, 비료를 사용한다 하여 남을 비난은 하지 않는다.
당연 나는 그럴 주제도 아니 되고, 자격도 없다.
각행기로(各行己路),
각자는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니까.

여기 시골에서 사귄 전문 농부 하나는 유기농이 말은 그럴 듯하지만,
그리 한 사람들은 대개 다 망해 나갔다고 이른다.
이게 나를 으르고 겁박하기 위한 것이 아닌 게,
그 동안 가만히 지켜보자하니 과장은 있을지언정,
마구 엉터리로 꾸며낸 것은 아닌 듯싶다.
힘은 힘대로 들고,
시장에선 제대로 인정도 해주지 않으니,
여간해서는 세운 뜻대로 나아가기 어려우리라.

대개 제초제를 쓰지 않는 경우,
야채의 경우 검은 비닐을 덮고,
과수인 경우엔 부직포, 차광막 또는 방초망 따위를 깔곤 한다.

나의 경우엔 방초망 따위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풀과 함께 키운다.
내가 기르는 블루베리는 관목이니 사과나무처럼 키가 큰 것은 아니나,
명색이 나무인 바라 성목이 되면 어느 정도 풀을 이겨내리란 기대가 있다.
해서 이리 초생재배의 길로 들어선 것인데,
이젠 어느 정도 틀이 잡히고 요량이 서서 앞길이 보이는 양 싶다.

처는 서울에서 일주일에 두어 번 여기 시골로 드나들며 내 수발을 든다.
못난 사람 곁에서 고생이 자못 크다.
여기 도착하면 바로 풀을 잡는다고 낫을 들고는 씩씩거리며 밭으로 간다.
그래 보았자, 종일토록 고작 이랑 하나를 붙들고 씨름을 하는 정도인데,
작정하고 이랑 거죽을 완전히 벗기듯 풀을 뽑아낸다.
인디언이 적의 머리 가죽을 벗길 때도 이 지경이었을까?

(이랑 머리를 완전히 벗겨낸 형국인데 저것을 보는 내 마음은 그리 편치 않다.)

내가 이르길 그것은 100평 농법에나 쓸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식이라면 물리적으로도 이 농원 전체를 처리할 수 없다.
그러면 대꾸하기를 그냥 놔두면 씨를 내리기 때문에 빨리 조치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냥 내버려둔다.
그런 식으로 흙장난 하듯 실컷 놀다나 가라는 심사다.
이리 방치해두며,
나는 나대로 설겅설겅 풀을 다스린다.

처음부터 그리한 것은 아니나,
이제는 터득한 바, 한 소식을 얻었음이니,
나무 주변 풀만 대충 다스려 통풍이나 지장이 없을 정도로 낫으로 쳐내고 만다.
그리하고서도 나무는 처가 다스린 이랑보다 사뭇 잘 자란다.

(작년에 심은 것인데 상상외로 잘 자랐다. 풀을 헤치고 보면 나무 밑둥엔 풀도 별로 없고 땅은 촉촉하다.
사실 여기엔 초생재배 외에도 식재 방법을 내가 새로 고안해낸 까닭도 있다.
이 방법은 완전 성공한 폭이라 하겠다.)

짐작하건대는,
풀이 자라면서 과습, 건조를 동시에 조절해주고,
통기, 과온(過溫) 방지, 냉해, 동해 따위에도 어느 정도 좋은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왜 여성은 풀만 보면 저리 원수 대하듯 하는가?
어느 날 풀을 다스리다가 슬그머니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바둑을 두어보면 대개 여성 바둑은 엄청 사납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상대의 돌을 잡아먹으려 대든다.
남성 바둑은 유장하여 포석을 깊고 멀리 짜며 훗날을 기약한다.
하지만 여성은 우선 당전하는 현실의 싸움에 치중하여,
돌을 호령하며 치열하게 판위를 달려 나간다.

이 양자에 우열이 있을까?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당금의 현실을 아끼고 미루다가 장차 실패하면 얻는 게 하나도 없게 된다.
그러느니 당장 취하고 보는 게 때로는 현명한 방책이 될 것이다.
바둑 격언에 "고수는 수를 아끼다 망한다." 했는데 바로 이 경우라 하겠다.

그런데, 여성들이 남성보다 현실적이고 이해타산에 밝은 이유는 무엇일까?
며칠전 여기서 만난 여호와의 증인 신도 한 분은 이를 두고,
‘여자들은 가까운 일에 밝다.’라고 일러주신다.
사뭇 그럴 듯한 풀이라 나는 생각한다.

저들의 생리적 조건이 사고를 이리 제한하는 것이 아닐까?
불확실한 미래를 기대하느니 현실에 충실하는 게 낫다는 것.
이를 저들은 저들의 처한 현실 제약조건으로 말미암아,
몸으로 체득하여 본능적으로 따르는 것이리라.

여기 다소 길지만 이에 대한 이야기 하나를 소개해둔다.
지난 내 글인데 끌어 당겨둔다.

***

남자는 理, 이치, 사리, 근원적 원리에로의 지향성을 갖고 있다.
반면 여자는 利, 이해, 생존, 생활, 구체적 현실 지향적이라는 것이다.
이게 남자, 여자를 나누어 보는 나의 code 체계다.

남자는 의리(義理)에 복무하지만, 여자는 이해(利害)에 복무한다.

사기에 보면,

士爲知己者死 - 사나이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母爲悅己者容 - 여자는 자기를 즐겁게 해 주는 사람을 위해서 화장을 한다. 

이런 말이 있다. 흥미 있는 얘기인즉 출전에서 인용해본다.
이게 재미없는 분은 이 부분을 건너 넘으셔도 좋겠다.   
저 아래 ####로,

예양(豫讓)은 춘추시대의 진국인(晉國人)이다.
453년,당시 진국에는 6대가족이 정권을 다투었다,
원래는 범씨(范氏), 중행씨(中行氏)의 수하로 있었으나,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귄신 지백(智伯)을 친구로 삼았다.  

조양자(趙襄子)와 지백(智伯)의 사이는 서로 원수지간이었다.
조양자는 한(韓)、위(魏) 양가와 연합하여 지백을 멸하려하였다.
조양자(趙養子)는 자기에게 항거한 지백(智伯)을 쳤다.
그리고 끝까지 자기를 괴롭혔던 지백이 미워,
그의 두개골에 옻칠을 해서 술잔으로 사용하였다.
그렇게 비참하게 최후를 마친 지백에게 충성을 약속했던
예양은 복수의 칼날을 갈면서 이렇게 결심하였다,

"사나이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士爲知己者死),
 여인은 자기를 기쁘게 하는 이를 위하여 얼굴을 가꾼다(母爲悅己者容)"라고 하였다.
그리고 '지백이야 말로 진실하게 나를 알아준 사람이었다.
내 반드시 그의 원수를 갚고야 말겠다.
그래야 내 혼백이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라고 결심한다.

그는 우선 이름을 바꾸고는 죄인으로 가장하여 비수를 품고
조양자의 궁정으로 내시로 들어갔다.
몰래 조양자의 측간에 잠입하여 벽을 발랐는데,
조양자가 똥누러간 사이에 그를 찔러 죽이려다 사전에 발각되고 만다.
그러나 조양자는 지백을 위하여 원수를 갚으려 하였다고 당당하게 외치는
예양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 사람은 의로운 자다. 단지 내가 조심하여 피하면 그만이다.
게다가 지백이 망하고 후사조차 없는데도 그의 신하된 자로서 원수를 갚겠다고
저렇게 자기희생을 서슴치 아니하니 이 자야말로 천하의 현인이로다." 하고
말하면서 수하에게 그를 의인(義人)이라 생각하고 석방하게 하였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이번에는 얼굴을 바꾸었다.
예양은 몸에 옻칠을 하여 나환자로 변장하고,
목소리도 바꾸기 위해 숯을 삼켜 벙어리가 되어 저자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다니니,
그 아내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 친구가 알아보고는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그대같이 재주 있는 사람이 조양자의 신하되어 섬기면 필시 총애를 받게 될 것이다.
그대가 이에 하고자 하는 일을 하면, 도리어 쉽지 않겠는가.
왜 자신을 이렇게 고생시키는가." 

예양이 답하였다.

"몸을 바쳐 신하가 되고서 죽이고자 한다면, 마음을 두 갈래로 품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하는 까닭은 장차 천하 후세에 남의 신하가 되어서
두 마음을 품는 자를 부끄럽게 하고자 함이다." 

예양은 이렇듯 자기의 방식대로 복수를 완성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첫 번째 기회가 무산되자,
거지의 행세를 하며 다시 기회를 기다렸다가
조양 자가 외출할 때 다리 밑에 숨었다가 그를 찔러 죽이려고 하였으나,
말이 놀라는 바람에 다시 붙잡혔다.
조양 자는 이번에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를 잡은 후에 조양 자는 그를 책하며 말하였다.

"너는 범 씨와 중행 씨의 수하였다가 그들을 멸한 지백에게는 왜 복수를 하지 않았느냐?"

예양이 답하길,

"나는 범 씨와 중행 씨의 수하로 있었을 때는 그들은 나의 능력을 알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지백은 기꺼이 나의 능력을 인정하여 중용하였다.
내 능력을 인정해준 그를 위하여 어찌 내가 복수하지 않을 수 있으랴 !"

"아아! 예자여!
그대가 지백을 위해 충절을 다하였다는 명예는 이미 이루어졌고,
과인이 그대를 용서함도 이미 충분하다. 이제 그대는 각오하라!"

이에 예양은 울며 말한다.

"현명한 군주는 남의 아름다운 이름을 덮어 가리지 아니하고,
충신은 의로운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 죽을 의무가 있습니다.
지난번 군왕께서 이미 신을 관대히 용서하시어,
천하에 그 어짐을 칭송치 아니하는 자가 없습니다.
오늘의 일로 말하자면, 신은 죽음을 당해야 마땅하오나,
원컨대 신이 군왕의 옷을 얻어 그것을 칼로 쳐서,
그로써 원수를 갚으려는 뜻을 이루게 해주신다면,
비록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이에 조양자는 옷을 벗어 주었다.
예양은 조양자에게 간청하여 그의 옷을 받아 펄쩍 뛰면서 칼로 세 번 그 옷을 베었다,

“내 비로소 지하에서 잠이든 지백에게 보답할 수 있겠다.”는 말을 남기고
칼을 입에 물고 엎어져 태연히 자결하였다.
조나라의 지사(志士)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모두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고 한다.

####

士爲知己者死

여기를 보면 男이 아니고 士로 되어 있다.
같은 남자면 다 남자가 아니다.
선비 士이니 선비쯤 되어야 知己者死할 수 있는 것이다.
의리를 위해 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사나이,
목숨 보다 더 중한 것이 없는데,
죽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얽혀진 명분을 위해
제 명을 내놓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일이다라며,
이를 필부지용으로 폄하하는 사람도 있기는 있다.

하지만, 이게 利害를 셈하며 제 뜻을 행한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설혹 제 이름을 남기기 위해,
즉 명예를 탐한 것이 아니냐 하는 핀잔을 퍼붓는 사람일지라도
그저 단순한 利를 탐한 것은 아니라는데 동의하실 것이리라.
즉, 예양이 밥을 구하고 있는 게 아니고,
돈을 구하고 있는 게 아님은 분명하지 않은가 말이다.

반면 여자는 얼굴을 가꾼다.
그들은 왜 얼굴을 가꾸는가?
남자를 위해서인가?
과연 그런가?
 
내가 여자는 主利라고 하였을 때, 그들이 利를 위주로 좇음을 말하고 있지만,
그 저변에 흐르는 근원의 동력은 따로 있다.
저 존엄한 숙명, 한편으로서는 슬프고, 한편으로는 잔인한 그 숙명.
 
그게 무엇인가 ?
생존본능, 생식본능, 종족보존.
이에 갇혀 있는 존재를 나는 여자로 보고 있음이다.

이게 여자의 책임인지, 조물주의 기획인지 모르지만,
나는 하여간에 여자에게 본원적으로 들씌워진 숙명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니 그들이 얼굴을 꾸미고 있는 것은 남자를 위함이 아니다.
아름다움을 구하고 있음도 아니다. 

남자를 구함으로서 생식조건을 확보하고,
종국엔 씨를 받아, 지상에 생명을 내놓는 것이다.
저 대지가 곡식을 내어놓듯이 그들은 종족보존의 위대한 대업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러하니, 저 어리석은(?) 사나이들,
예양과 같은 뜬 구름 의리, 명분이란 얼마나 헛되고 헛된 것인가 말이다.
예양은 빨간 피 도는 생명 한 톨도 이어가질 못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오히려 생명을 버리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여자는 그러하니,
이 거친 세상에서 생명을 이어나갈 조건을 가려 택하기 위해
셈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어여쁘다는 얼굴을 앞세우고
가슴 속에 주판을 품고 살고들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 가슴은 남자와 다르게 불룩 튀어 나와 있음이 아닐까 ?

그 누가 여자는 약한 존재라고 하였는가?
바둑을 둬보면 나의 이야기가 그저 엉터리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남자 바둑은 원대한 포석으로,
유연한 판 짜임으로 기리(棋理)를 추구해나간다. 

허나 여자 바둑은 다짜고짜 싸움으로 치달아 나간다.
한 집 짓는 게 급한 것이다. 돌 하나 따 먹는 게 더 실속 있는 게다.
그들은 이해에 복무하고 있는 것이다.

사내가 철이 들 때는 언제인가 ?
계집 얼굴이 가면일 수도 있다라는 자각의 순간에 찾아든다.
저 아름다운 얼굴이 가면이 아닌가 하는 의심으로부터,
여자를 알게 되고, 차츰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가게 되는 것이다.
진실한 여자는 이 경계를 넘어섰을 때, 발견된다.
당신은 그런 여자를 하나라도 알고 있는가? 

당신 가까이 그런 여자가 있다면,
그대는 인생에서 반은 성공한 것이다.
그들은 당장의 빵, 집, 옷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보기엔 남자들은 전부 철없는 아해들인 것이다.

맞는 말이다.
사내 자식들 폼 잡고 우쭐대지만, 
게서 집이 나오나, 빵이 나오는가?
그들은 얼굴을 팔아,
사내 녀석들을 들로 보내, 사냥을 시키고, 투전판으로 내몰아
돈을 따오게 만드는 것이다.
의기양양하게 들로, 산으로, 강가로 나가 열심히 싸우고 돌아온다.

그들에게 전해지는 보상은 그 짧디 짧은 일순간의 사정(射精)의 열락뿐인 것을.
뒷전에서 그녀들은 앗아 거둔 지폐를 세며,
조물주의 기획에 기꺼이 공범이 된다.

자 새벽이 된다.
사내들은 다시 일어나 전사(戰士)가 된다.
우쭐대며, 거드름 피며 계집 마중을 받으며 동굴 속을 나오지만,
그들이 할 일은 여전히 피투성이 되도록 싸움박질 하는 것이다.
그녀들은 동굴 속에 앉아, 개짐 개고, 기저귀 장만하고,
뱃속에 자라고 있는 생명을 셈한다. 

하지만, 이들 철없는 사내 녀석들의 공상 속에서 우주의 진실이 벗겨지고,
이해를 벗어난 아름다운 우정이 빛나
우리의 가슴을 청량히 적시고 있는 게 아닌가 말이다.
사내들의 이 보상이 그래 넉넉한가?
이게 보상인가 ?
보복인가?
질곡인가?
음모인가? ....

***

이야기가 한참 길어졌다.
여성의 속성내지는 존재 조건이 무엇인가?
내 나름대로 짚어보자하니 다소 곁길로 새나간 셈이다.

자, 그럼 다시 돌아와 여성은 왜 풀만 보면 깡그리 잡아 없애려고 대드는가?
나는 이것을 위생조건으로 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세상에 위생(衛生)을 처음 고안해낸 것은 남자가 아니고 여성이 아닐까 싶다.
설혹 남자가 실행은 했다고 해도 남자들을 그리 하도록 뒤에서 조정한 것은 여자일 것이다.
나는 그리 믿는다.

그런데 위생(衛生)이란 무엇인가?
위(衛)는 지킨다는 뜻이다.
영어로 하자면 guard내지는 protect쯤에 해당된다.
생(生)을 지켜내는 것.
이게 위생인 게다.

여성은 소위 사기위생(四期衛生),
즉 월경기, 임신기, 산욕기, 수유기 때마다 위생, 즉 삶을 지켜내야 한다.
자신과 아이의 생을 말이다.
이러한 필요성은 사내 녀석에겐 없다.

남기여혈(男氣女血)이라,
여성은 핏덩이, 살 곧 이 육체를 이고 지고 사는 것임이라,
평생 피를 쏟고, 아이를 낳고, 젖을 내어, 기르고 ...
이 때마다 자신의 몸이 열려 외부와 접촉한다.
까딱 잘못하여 열려있는 동안 사기(邪氣)가 침입하면 명(命)을 잃는다.
그러한즉 위생에 힘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여자들이 집안을 윤이 나도록 닦고, 쓸며 바지런을 떠는 것은,
성정이 깔끔해서라기보다도 근원적으로는 생명을 지켜내기 위한 것이 아닐까?
이게 여성분들의 숙명인 게라.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여성들이 저리 풀을 악착같이 깎아내고 뽑아내려 하는 뜻을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작물이란 명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외부의 물체를 솎아내 차단하여야 하는 것임이라.

저들 생각은 기실 내가 보기엔 작물을 위한다기 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명운을 되돌아보기 위한 확인 작업이 아닐런가?
나는 심술사납게도 저들의 진지함을 이리 희화화(戱畵化)한다.

이것은 거의 본능인 게라.
저것을 막을 수 없느니,
아니,
막으려 든다면 이는 저들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임이라.

허나,
나는 저 풀을 사람 입장에서 대하지 않기로 한다.
풀, 작물, 흙의 처지에서 보자 하여도 과연 풀이 없어져야 할 대상인가?

바로,
이 의문의 지점에 나의 농사의 지향(指向)이 정해진다.
나는 사람의 위생이 아니라,
저들 자연의 건강을 돌보기로,
아니 지켜보는 자로서 임하기로 하는 것이다.

풀을 어찌 할 것인가?
이게 나의 최대 농사 과제였는데,
처음엔 막막하였으나 요즘엔 앞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해마다 식재 면적은 넓어지는데,
품은 외려 줄어들고 있다.
서서히 틀이 잡히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생육 상태도 기대이상이다.

방금 품은 줄고, 틀이 잡히고 있다고 하였는데,
따지고 보면 이는 농법이 완성되어 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욕심이 적어졌다 또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리 이르는 것이 근리(近理)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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