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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영웅은 없는가?

소요유 : 2013. 4. 14. 11:26


이 시대, 영웅(英雄)은 없는가?

‘영웅은 없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더 이상은 영웅이 나올 수 없는 세상이다.'라 고쳐 말하여야 할 것이다. 
며칠 전 모임에서 만난 어떤 분의 말씀이다.

조각가이자 농부라 하는데,
그는 재주가 남보다 승(勝)하기에 이리 양안(兩岸)을 넘나드시는 것일까?
말씀을 듣다보니 재주가 그러한지는 아직 잘 모르겠으되,
필시 언덕 하나만으로는 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이 언덕 저 언덕을 넘어 다니심이 아닐까?

대학 출강을 하는 이이니 말씀을 나눠 배움이 있겠다 싶었다.
내가 묻기를 예술가와 농부가 어찌 다르냐 하였더니,
그이가 말하길 ‘비슷하다.’라며 운을 뗀다.

‘무엇이 비슷한가?’

‘무엇을 만들어 내려 애를 쓴다.’

그는 지금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양 싶다.
그날 그 자리 그의 말 갈피를 헤집자니, 
‘무엇을 만든다’ 할 때의 의미도 그리하여 돈을 번다라는데로 나아가고 있다.

그는 지금 양봉기술을 배우고 있다 한다.

그래 내가 되물었다.

‘그렇다면 벌과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如何如何’

그저 별로 챙길 만한 말이 아니라,
나는 홀로 생각하고 만다.

‘예술가나 농부나 그리 열심히 추구하나 이 시대 영웅이 될 수 없다면,
그렇다면 벌들이야말로 영웅이 아닌가?’

앞서 그는 이 시대에 영웅은 결코 나올 수 없다고 말하였다.

그의 말에 의지한다면,
농부나 예술가나 힘을 다함에 돈을 벌고자 함이며,
영웅이 되면 큰돈을 만질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이 시대 구조는 이미 영웅이 나올 수 없다고 했다.

벌들은 열심히 살아들 가고 있다.  
하지만 저들이 ‘돈’을 필요 이상으로 벌자고 기를 쓰는 것도 아니오,
그렇다고 영웅이 되려 의욕하고 있지도 않다.
내가 곁에서 저들을 지켜보건대 참으로 자신의 자리를 잘 지켜, 
즉 수분(守分)하고 있으니 지상의 왼갖 꽃들을 심방(尋訪)하여,
대지를 젖과 꿀이 흐르도록 하고 있음이 아니더냐?

저들은 저마다 제 직분에 충실할 뿐,
욕심을 더 내어 ‘돈’을 ‘영웅’을 탐하지 않는다.
실로 지족(知足)하고 있음이 아니더냐?

이 지상에서 저리 완벽하니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존재가 어디에 있음이더냐?
하면 정작은 저들을 영웅이라 불러야 옳지 않겠는가 말이다.

不知足하면 화가 막대하다 하였다.
족함을 모르니 끝없이 나아가 구하려들 터니,
언제고 재화(災禍)가 어찌 따르지 않으랴?
知足하면 그저 얻는 바외 더는 욕심을 내지 않고
무위(無爲) 무덕(無德)함이니 언제나 꽉 차 족할 따름이라.
그러하니 재화(災禍)를 면하고 신명을 지키리라.

이게 노자의 말씀이다.

知足者常樂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사람만이 끝없이 욕심을 내어, 
여름 진탕 고생하여 모아둔,
꿀을 탈취하고 설탕물로 속이고 있질 않는가?
가여운 영웅들. 

그는 말한다.

‘이 시대 예술가는 머리와 입 두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

‘입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작품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재주이다.’
‘어떤 이는 작품은 별 일이 없는데 설명을 그럴 듯이 잘하여 주목받는 이도 있다.’
‘모두들 재주들이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자신을 잘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이 시대 예술가는 예술이 아니라 파는 재주가 승하여야 한다는 말씀으로 귀결된다.
갑자기 생각이 난다.
‘팔지 못하면 죽는다.’
세일즈맨들이 외치는 저 말이 오늘 한 예술가의 심장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스포츠 선수도 기량이 뛰어나서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들이 자신의 상품을 잘 팔아먹기 위해,
얼마나 많이 그를 들러리 세우냐에 따라 평가될 뿐이다.
결국 자본가의 꼭두각시 노릇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성과가 측정이 되고 대중의 환호가 달라진다.

가령 축구선수라면
저 조각가의 말씀을 빌자면,
‘발과 입’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농구선수라면 ‘손과 입’이 되겠다.

그는 이 시대 영웅은 없다고 말하며,
지금 양봉을 배우고 있음이다.
예술가가 본업인 조각을 버리고 벌통에 그림을 그려,
그것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고,
꿀을 잘 팔 궁리를 틀고 있음이다.
그는 지금 손이 아니라 입을 염려하고 있다.
조각장도(彫刻匠刀)를 버리고 입에다 열심히 새빨간 루주를 칠하기 분주하다.

블루베리 열매도 달리기도 전에 명품 블루베리 생산가로 표창을 받는 세상이다.
기백 돈을 들이면 유명 언론사로부터 명장, 명품 상장을 폼 나게 사다 걸 수 있다.
대중 역시 질이 아니라 포장, 이름에 넋을 맡긴지는 사뭇 오래된 일이다.

그러하다면 부처의 이 말씀은 무엇이란 말인가?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

이미 2500년 전에 외마디 소리로 내지른 저 말은 별다른 게 아니다.

“내가 곧 영웅이다.”

인터넷으로 인해 온 세상은 시, 공간 지평을 한껏 넓혔다.
유사이래 지금처럼 시, 공 제약이 풀린 시대는 없었다.
이젠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는 조건 상황에 가까이 놓여져 있는 것이다.
가령 자료가 없어서, 정보가 없어서, 선생을 만나지 못하여 ...
따위의 남을 핑계될 여지가 없게 되었단 말이다. 
블루베리만 하여도 미처 읽고 배울 시간 이 부족할 정도로,
온갖 훌륭한 자료가 넘쳐나고 있다. 

그러함인데 종일 컴퓨터, 스마트 폰에 족쇄가 채워져 몇 시간씩 묶여들 지낸다.
배움은 없고 그저 질펀하니 시간의 낭비만 있을 뿐, 
인드라망 그물 코, 망점(網點, node)에 갇혀 파드득 거리는 나방들이라니.

저들은 이 광대무변하며 찬란한 세상에서,
다만 저리들 망점에 묶여 남의 이야기에 취해 서산의 지는 해를 맞고 만다.

부처가 말한 독존(獨尊)이 아니라,
의타기성(依他起性)의 존재로 스스로를 한정, 전락시키기 때문에,
‘이 시대 영웅은 없다.’
이런 말법이 스스럼없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우리들이 꿈꾸는 영웅이 결코 전망되지 않는다는 선언처럼,
달콤하니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은 더 이상 없다.
내가 영웅이 될 수 없음은 내 탓이 아니라 세상 탓이니까,
나는 못난이가 아니라 다만 시대의 희생양일 뿐이다.

이리도 가여운 사람들이라니.
사람들은 이 때 저마다의 달팽이 껍질 속에 그야말로 와거(蝸居)하여,
스스로를 전락시킴으로서 외려 위안을 받는다.
자기를 스스로 기망(欺罔)하고 있는 이 슬픈 형식이라니.

江山代有人才出

어느 시대나 인재는 나오는 것.

나도 하나, 너도 하나.

각자는 독존이기 때문에 누구나 지금 그 자리에서 영웅인 것이다.
창조적으로 자기를 표현하며 살아간다면,
그게 곧 유식(唯識)에서 말하는 원성실성(圓成實性)일 것이다.
각자는 저마다 독각(獨覺), 홀로 깨여 천하를 독보(獨步)하는 것일진대,
어찌 영웅이라 이르지 않을쏜가?  
나밖에 별도로 영웅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저 조각가가 벌통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자청하여 자기 손을 홀대하고 입만을 가꾸려 애를 쓰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부처는 그러하기에,
일찍이 선언하셨음이니,
‘너희들 모두가 이미 곧 영웅이니라.’

연예인, 스포츠 선수가 이미 거리에서 혼을 팔아재낀지 사뭇 오래 전이나,
예술가도 이리로 투항해 오고 있는 것이다.
하기사 종교 전종자(專從者)도 태반이 그러한 세상인데,
새삼 그 무엇이 새롭다고 놀라리.

‘이 시대 영웅은 없다.’

이 말을 뱉어내는 한 그대는 결코 영웅은 될 수 없다.

하지만, 이 말에 혹(惑)하지 않고 매(昧)하지 않는 한,
그대는 당금 이 자리의 영웅이 어찌 아니랴?

江山代有人才出

이 말을 남의 말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로 새기는 순간,
새벽길이 열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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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은유시인 2013.04.14 12:23 PERM. MOD/DEL REPLY

    이 시대의 영웅으론 안철수가 제격 아닐까요?
    영웅이란 스스로 영웅임을 자처할 줄도 알아야 할 것이고 다수의 대중이 영웅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해서 드리는 얘깁니다.
    저도 처음엔 안철수에 대해 많은 기대를 했습니다만, 울먹이며 대통령후보 사퇴할 때 그가 영웅이 아님을 직감했지요. 영웅은 결코 비겁한 울보처럼 울먹이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여긴 까닭이지요.

    사용자 bongta 2013.04.14 15:58 신고 PERM MOD/DEL

    울면 최소 유권자 반을 울릴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감성의 시대에 사나이가 울면 여성들이 덩달아 울면서 표를 헌정하지요.
    그가 영웅은 몰라도 대통령이 되고 싶은 야망은 있는가 봅니다.

    대중으로 추대되어 왕이 될런지는 몰라도 영웅은 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제가 늘 하는 이야기로 떼씹은 보았어도 집단지성은 없습니다.
    대중이 밀어서 영웅이 된다면 대통령은 물론 연예인도 영웅이게요.

    절에 가면 대웅전이라고 있지요.
    대웅(大雄) 큰 수컷.
    대웅전 안에 턱하니 또아리를 틀고 있는 불상을 그저 들어다 뜰에다 내팽겨쳐야 합니다.
    하고서는 그 자리에 내가 가서 앉아야 합니다.

    목불, 철불.
    그 가짜배기 불상을 까부수고,
    내가 애오라지 불성(佛性)의 온전한 구현체로써 서야합니다.

    출세간, 대웅이나 영웅이나 모두 나를 찾는데 있음이나,
    모두들 한눈 팔기 바쁘지요.
    씹 팔아 비단 팬티 사입을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왜 15년, 20년 뒤에도 남아있는 만화, 만화가가 없을까', '신윤복, 김홍도는 300년이 지나도 신윤복, 김홍도인데 왜 만화가는 그러지 못할까'하는 질문이죠. '뭘 그려야 돈을 벌까' 그러면서 그린 그림은 그 시기가 지나면 안 맞거든요. 다음 시대에 봐도 생명력 있는 만화, 늘 고민하면서 삽니다."

    마침 오마이뉴스에서 읽은 것인데,
    약간의 이견이 있습니다만 이 싯점에서 잠깐 남의 글을 빌려다 놓습니다.

  2. 물건너 고을 2013.04.14 18:47 PERM. MOD/DEL REPLY

    <고흐>의 “끈 있는 구두” 에 대한 하이데거의 설명.
    ... 이 구두의 튼튼하고 듬직한 무게 속에는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거치른 밭의 밭고랑을 천천히 걷고 있는 끈질김과 강함이 겹쳐 있다.
    어두워 가는 저녁 들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걸음의 외로움이 구두 밑으로
    스며들고 있다.
    이 구두 속에 울리고 있는 것은 대지(大地)의 말없는 부름이며,
    풍요롭게 익는 보리의 조용한 증여(贈與)이며, 겨울 들판의 황량해진
    휴한지의 뜻 모를 거절인 것이다.
    양식을 확보하려고 애쓰는 탄식, 그것을 견디어 낸 근심, 가난을 극복했다는
    말할 수 없는 기쁨, 태어남에서 오는 떨림, 죽음의 위협에 의한 전율.
    이 구두라는 것은 <大地>에 귀속되며, 그리하여 농부의 <世界>속에 보호되는 것이다.
    그리고 김윤식의 덧붙임.
    <고흐>의 구두에 나타나 있는 것은 구두의 참된 있음의 모양이다.
    <대지>를 <대지>로 실현케 하는 것, 자연을 자연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드러 낸다><실현케 한다>의 뜻이 존재물이 숨겨져 있지 않음 가리키는 것이라면
    예술의 본질은 <진리>의 실현이 되는 것이다.

    예술가와 농부는 <大地>를 <大地>로 실현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사용자 bongta 2013.04.15 18:06 신고 PERM MOD/DEL

    제가 어제 오늘 서울에 갔다 오느라 미처 블로그를 대할 틈이 없었다가,
    이제야 주신 글을 대합니다.

    ‘예술가와 농부는 <大地>를 <大地>로 실현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이 말씀이 제겐 아주 귀합니다.

    대지를 상대로 무엇인가를 이악스럽게 빼내어 먹고자 하기 때문에 늘 탈이 납니다.
    도대체가 땅을 저리들 엉망진창으로 만들면서 감히 농부라 할 수 있겠는가?
    제가 2077년도에 처음으로 주말농사를 하면서 땅을 대하였는데,
    여기 시골 농부들을 보고는 기겁을 했습니다.

    자기 각시를 그저 아기들 빼내는 수단으로 보고 대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대지도 함께 하며 사랑하며 배우는 존재로 모실 때라야 진짜배기 농부가 될 터인데,
    어떻게 하든 소출만 많이 올리려고 집중하기 때문에 여러 무리가 따릅니다.

    지모신(地母神)의 은덕(恩德).
    땅의 은혜로운 덕성을 느끼고 보고 배우지 못한다면,
    설혹 만석꾼일지라도 농부라 이를 수 없습니다.

  3. 주몽 2013.04.17 13:33 PERM. MOD/DEL REPLY

    산천은 시대마다 인물을 낳으니,
    이 시대라고 해서 영웅이 없겠습니까?

    '이 시대 예술가는 머리와 입 두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의 머릿 속에는
    온통, '영웅이 없다'고 외치고 싶은 마음만 간절할 것 입니다.

    조각가가 머리를 포기하고, 입으로 말하고자 하니,
    거기에는 예술혼은 없고, 추한 상혼만이 덩그라니 남아있을 뿐 입니다.

    핑게에 의지하고 싶은 가엾은 영혼들은, 여우와 학의 이야기처럼 의타하는 법이니,
    언제나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겠습니까?

    분수를 지켜 자족할 줄 안다면,
    누구라도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칭송할 수 있겠지요!

    사용자 bongta 2013.04.15 18:10 신고 PERM MOD/DEL

    제 글이 서툴러 저 분을 공연히 잘못 소개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번밖에 뵌 적이 없어 저 분에 대하여 충분히 알지를 못합니다.
    다만 영웅이 없다라는 말씀에 대하여는 동의할 수 없더군요.

    우선은, 제가 평소 영웅이란 말을 의식하고 살지는 않습니다만,
    만약 영웅이 있다면 별도로 밖에서 구할 일이 아니라,
    자신으로부터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영웅부재의 시대를 탓하는 태도도 좀 비겁해보였습니다.
    아마 백 년만 지나도 이 시대에 깨알처럼 많은 영웅이 있었다고 후인들이 칭송할 수도 있지요.

    騎驢覓驢

    말 타고 말을 찾는 격으로,
    사람은 무엇이든지 자신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리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가에서는 이를 照顧脚下라 하지 않습니까?

  4. 주몽 2013.04.17 13:50 PERM. MOD/DEL REPLY

    옛 사람이, '심외무물이요, 심외무사'라 하였으니,
    인생사 모든 것이 마음에서 생멸 합니다.

    마음 자리를 한 번 바르게 세우면, 생활이 반듯해지고
    마음을 한 번 잘못쓰면 삶이 삿되게 됩니다.

    예술가가 예술을 포기하고, 학자가 연구를 포기하고, 농부가 농사를 포기한 채,
    입으로만 그러듯 하게 포장 한다면, 예술과 학문과 농사는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그래서 고인이, '물유본말하고 사유종시하면, 바로 도에 가까운 것이다'라고 하였사오니,
    근본을 중요시하고 일의 시작을 가지런히 하는 것이, 도인의 본분이 아니겠습니까?

    사용자 bongta 2013.04.18 09:49 신고 PERM MOD/DEL

    위로 천자부터 아래로 서민까지 모두 저마다 바로 수신하면,
    곧 온 세상이 낙토가 될 것입니다.

    제가 전일 찾아온 여호와증인을 데리고 이웃 밭을 구경시켰습니다.
    이웃 남자가 남에게 빌린 밭인데 비닐을 걷지 않고 두어 차례 묘목을 심고 캐내었지요.
    그곳이 지금은 방치되어 풀이 비닐을 덮으며 키만큼 자라 있습니다.
    땅 속으로는 층층이 비닐 따위가 켜로 쟁여져 있는 상태입니다.
    게다가 묘목 담았던 포트, 비료 부대 따위가 나뒹굴다 지쳐,
    나중엔 바람에 날려 이웃 논으로도 굴러가고,
    제 밭으로도 날아들길 이태 동안 지속하여 제가 고생을 좀 한 편입니다.
    올해엔 저것들이 풀과 함께 엉켜 봄바람이 불어도 별로 날아오질 않는군요.

    여호와증인 말씀은 늘 불완전한 인간이 하는 일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으니,
    나중에 전능하신 하늘의 심판이 필요하다는 식이었기에,
    그를 그 현장에 데려갔던 것입니다.

    인간이 불완전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손 놓고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할 것이 아니라,
    엄히 징치하여 바로 잡는 노력을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저들은 세상일엔 참견을 하지 않는 주의라더군요.
    해서 범죄 행위를 목격하여도 간여를 하지 않는다더군요.
    종국엔 하늘의 심판이 있으니까 인간이 나설 일이 아니란 투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저 패륜의 현장을 보고서는 서너 차례 뱉어내더군요.

    ‘정말 나쁜 자식이군요.’

    이웃 밭 남자는 일요일이면 열 일 재끼고 교회당에 갑니다.
    얼핏 듣건대 장로라 떠벌리는가 봅니다.

    엿새 죄를 짓고, 하루는 하늘을 상대로 복을 빕니다.

    수신은커녕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신독한다 함인데,
    이것 다 엿 바꿔 먹을 노릇입니다.

    엿새 죄를 짓고, 하루는 하늘을 상대로 복을 빌어,
    마음의 안녕을 구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여간 수지 맞는 장사가 아닐까요?

    저는 세상 사람들의 수신을 믿지 않습니다.
    아니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그 나쁜 행위에 대해 잡도리가 依律껏 행해지길 바랄 뿐입니다.

    忍土에선 苦存으로 하루하루 추접스런 생을 이어가기 바쁜 사람들이 차고 넘칩니다.
    저들을 사랑으로 보듬는 훌륭한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만,
    저는 금 밖에 선 이들에겐 상응하는 댓가를 치루도록 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요청된다고 생각합니다.
    따지고 보면 모두 가여운 인생들이지만,
    놔두면 백년하청 都是 앞날이 무망하기 때문입니다.

    한 두번 사랑으로 품었으되 전혀 개전의 기미가 없다면,
    도리없이 형벌로 다스릴 밖에 없지요.
    실유불성을 가르치는 불교에서도 일천제가 있지 않습니까?

    영원히 부처가 될 수 없는 망종들이 과연 세상엔 있는 것인가?
    이런 상념에 젖을 때는 슬픔과 분노가 늘 병발하며,
    가슴과 머리를 자르르 질러갑니다.

  5. 주몽 2013.04.18 11:07 PERM. MOD/DEL REPLY

    '하늘의 심판이라......' - 종종 지혜가 부족한 광신도나, 용기없는 심약한 자들은
    자신의 할 일을 회피하면서 종종 하늘을 들먹 입니다.

    단군할아버지 시대에 저술된 사마천의 사기에도, "제요자 방훈. 기인여천, 기지여신."이라고 하여 "그의 인자함은 하늘과 같았다....."라고 하늘을 들먹이고 있으며, "요립칠십년득순,이십년이로, 령순섭행천자지정, 천지어천(薦之於天)."이라고 하여, 마치 '하늘에 천거"한양 기술하고 있습니다만,

    기실, 고문자학에서 '천(天)'자의 자형을 분석해 보면, '천'이란 둥근 머리에 사람이 두 팔을 벌리고 남쪽을 향하여 앉거나 서서 바라보는 자형 입니다.
    당연히 남쪽에는 북쪽의 왕을 향해 도열한 신하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조정에 모여 있습니다.

    즉, 천자(왕)는 지고무상한 존재라는 의미 입니다.
    어찌 불인한 하늘이 인간의 선악을 징치할 수 있겠습니까?
    이야말로 옛 사람들의 코미디인 것을, 현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 소치일 따름 입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적인 존재가 바로 깨달은 사람들이니,
    이들이 바로 불인한 하늘을 대신해,
    인간세상의 생노병사와 권선징악을 주관합니다!

    사용자 bongta 2013.04.19 08:38 신고 PERM MOD/DEL

    아, 이리도 간절하니 사무치도록 일러주시니,
    가까이서는 마치 해를 맞듯, 멀리서는 구름을 뵙는 듯,
    기인여천, 기지여신 같사옵니다.

    불어괴력난신이라 하였듯이,
    사람은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며,
    만약 신이 있다하여도 그것은 그의 일이언데,
    사람이 제 노릇을 하지 않고 신에게 미룰 까닭이 있겠습니까?

    가만히 저들을 쳐다 보면, 기실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로써 증표를 얻어 가지려 함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때가 많습니다.

    사뭇 간사한 마음이라 이르지 않을 수 없는데,
    저들은 이런 자신들의 태도를 아주 대견스러운 양 뽐내며 우쭐거리고는 하지요.

    오늘 사람의 일을 등한시 하고,
    알지도 못하는 내일 하늘의 일에 매달리는 모습은,
    仁하지도 知하지도 않으니 정작은 하늘과 가깝지 않다 하겠습니다.

    도시 천지가 정녕 불인한 것일지라면,
    그에게 매달리며 인정을 베풀라고 빈들,
    어찌 효험이 있을 것이옵니까?

    관음이 무연자비하시어 환란으로부터 중생을 구하여주심은,
    그가 원력을 세워 보살도를 행하기 때문이지 신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치를 들어 거꾸로 되짚어 보자면,
    중생 역시 관음과 다름없는 보살행을 함으로써 불국정토를 만들어나가야지,
    그저 목이 터져라 관음 명호를 외우고,
    일신의 복락을 꾀하고자 관음주력에 매진한다면,
    과시 천리호차라 어찌 증험이 있으리오리까?

    한 불교도가 있어 관음을 사모함은,
    그의 덕을 보려함에 있음이 아니라,
    그의 본을 배워 저도 관음이 되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이 때라야 온 세상이 꽃비 나리는 정토가 되는 것이리오니,
    이게 보살도의 본령이라 생각합니다.

    천도는 불인함으로써 바른 하늘의 길을 여시는 것이옵되,
    인도는 인함으로써 사람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올런지요.

    만약 천지가 인하려 한다면 당장 하늘과 땅이 뒤집히며,
    새가 땅을 기고, 두더지가 하늘을 날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함이니 하늘에 빌며 인정 좀 쓰라고 떼를 쓰는 것은,
    천도를 모르는 소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여호와의 증인처럼 정강이가 다 헤지도록 갈비 맞아가며,
    방방곡곡을 누비고, 몇 해를 두고 매양 미루며,
    내일이면 곧 오시리란 하느님을 팔 것이 아니라,
    차라리 喪心에 빠진 오늘의 제 이웃 손을 꼭 잡아주고 함께 우는 것이,
    하느님 법답고 실답지 않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제가 언젠가 저 분에게 스피노자의 사과 이야기를 해드렸는데,
    그렇지요.
    급한 것은 하늘 나라가 아니라 사람의 나라가 먼저라 하겠습니다.

    아마 내일이 아니라 오늘에 사는 모습을 하느님이 보시면,
    화를 내시기는커녕 가상타 하시지 않으리요.

  6. 玄武 2013.04.21 12:20 PERM. MOD/DEL REPLY

    잠시 고국에 다녀왔습니다.

    행동하기에 너무나도 알맞은 기온과
    벚꽃이 화사한 그곳은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곳을 잘 가꾸는 것은…….아니지요 가만두어도 될 것들입니다.

    일각이 천금이라는 사월의 밤은.
    지인들과 봄 향기에 취해 늦은 귀가로.
    오늘과 내일로 넘어가는 경계에 서 서.
    담 너머 이웃집 꽃나무로 대신했습니다.

    두 집 담 너머에는 분홍 진달래와 목련
    거기에 벚꽃과 보리앵두 꽃까지 갖추었더군요.

    맑은 목련 한 잎이 분홍 진달래를 따르고.
    하햔 벚꽃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데.
    넌 가? 난 가? 다음은 누구 차랜가?

    차례를 세어 가는데. 안개인가? 빗물인가?
    차창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은 세우細雨는?

    ***

    그동안 올리신 글들은 차분히 음미하겠습니다.

    사용자 bongta 2013.04.22 08:10 신고 PERM MOD/DEL

    꽃피는 시절에 그리던 한국에 다시 오시니 날을 잘 받으셨군요.

    헌데 어제는 곡우인데도 곳곳에 눈이 내렸습니다.
    아마도 여기에 계시지 않고 이미 떠나셨을 터인데,
    요즘 이곳 시절이 참으로 수상쩍긴 합니다.

    요 근래 매년 추위도 세지고, 더위고 심해지니,
    이를 두고 혹자는 '날씨가 미쳤다.' 이리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엔 이는 전적으로 사람들로 인한 재앙일 뿐이지요.

    시인은 봄밤이 일각천금이라 노래하지만,
    여기 시골은 아직도 추워서 난로를 켜야 지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의 수레바퀴는 이 어수선한 세상을 헤치고 여전히 굴러갑니다.
    하우스 안이지만 꽃망울들이 터지고 있습니다.
    꽃들은 어이하여 이 하수상한 시절을 아랑곳하지 저리도 곱게 피어나는지?

    이제 농원 식재 구역 디자인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가자,
    잔여 땅에 벼르던 유실수들을 올해서야 수십 그루 심었습니다.
    아마도 3년 후부터는 블루베리와 함께 과수들이 꽃을 다투어 피울 것입니다.
    그날 제 마음도 한결 조촐해지길 바랍니다.

    玄武님의 아름다운 봄밤을 기원합니다.

  7. 은유시인 2013.04.23 10:25 PERM. MOD/DEL REPLY

    봉타 선생님!
    봄입니다.
    촉촉히 내리는 봄비....
    지금 농사 짓느라 여념이 없으시겠지요?

    사용자 bongta 2013.04.23 10:45 신고 PERM MOD/DEL

    은유시인 선생님.
    그렇군요.
    봄입니다.
    그런데 여긴 아직도 추운 편입니다.
    그래도 매화 꽃은 피어나는군요.
    저는 늘 여일합니다만,
    선생님도 편안하시겠지요.

    봄꽃 터지듯 툭 건네주신 말씀이,
    꽃다이 여기 전곡 골짜기에 퍼져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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