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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말(泡沫)

소요유 : 2013. 6. 30. 12:32


인터넷 상, 나는 낯을 내놓고 여기저기 나도는 편이 아니다.
거기 내가 흘린 자취가 내가 떠난 다음에도 낯설게 덩그란히 남아 있을 터.
나는 훗날 언제고간에 블로그에 쓴 글도 죄다 지워 말끔히 헹군 후 떠날 생각을 해보곤 한다.

최근 모 블루베리 관련 카페 하나에 처음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카페 매니저와 진작 면식이 있어 가입을 한참 전에 한 적은 있지만,
가입 인사 말 외에는 그동안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그 매니저를 만나 도움도 받고,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답례 차 거기 카페에 활동을 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돌아와 몇 차례 글을 올렸다.
무상 나눔란에 블루베리를 내놓기도 하였다.

그런데 차츰 익숙해져 거기 분위기를 파악하게 되자,
내 성정엔 도시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유상종이라 끼리끼리 모이는 것인데,
이를 탓하거나 비난할 까닭은 없다.
인연이 아니면 그저 빗겨가면 그뿐인 것임이리니. 

여기 시골 마을에 보니 이웃끼리 정자에 옹기종기 모여 한담을 나누곤 한다.
이리 정담을 나누고 저녁나절 한 때의 무료함을 달래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도 사람 사는 곳의 재미 중 하나이리라.

이 카페 역시 거의 그런 수준이 아닌가 싶다.

“오늘은 늘어지는 날 .., 옥상이나 올라가 보아야겠다.”

이런 내용의 짤막한 글이 하나 올라왔는데,
의외로 거기 댓글도 적지 아니 달린다.

도대체가 남이 옥상에 올라가거나 말거나,
내가 한가하니 이런 따위의 글을 읽으며 시간을 축낼 까닭이 있는가?
이런 생각이 확 밀려오자 문득 ‘포말’이란 단어가 형상화되며 의식에 떠오른다.

謂百二十剎那成一怛剎那。
六十怛剎那成一臘縛。此有七千二百剎那。
三十臘縛成一牟呼栗多。
此有二百一十六千剎那。三十牟呼栗多成一晝夜。
此有少二十不滿六十五百千剎那。此五蘊身一晝一夜。
 (阿毘達磨大毘婆沙論)

120 찰나 = 1 달찰나.
60 달찰나 = 1 납박
30 납박 = 1 모호율다

216,000 찰나 = 1 모호율다
30 모호율다 = 1 주야

계산해보면,
(24 * 60 * 60) / (120 * 60 * 30 * 30) = 1/75 = 0.01333

곧 찰나는 1/75초가 되는 폭이다.

세상의 법상은 생겨났다가, 머무르고, 머물렀다간 사라진다.
마치 포말(泡沫)처럼.

찰나찰나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90 찰나를 일념(一念)이라 하는데,
(일념 가운데,) 한 찰나 동안에 900 번 일어나고 사라진다고 한다.

是法即生即住即滅,即有即空,
剎那剎那亦如是法生法住法滅。
何以故?九十剎那為一念,一念中一剎那經九百生滅。 (仁王般若經)

그러니 결국 한 생각 속에 81,000번의 생멸이 있다는 말씀이다.

도대체가 이 찰나간 수만의 생멸이 거듭되는 자질구레한 생각의 파편을 카페에 쏟아내고,
그것도 모자라 거기 코를 꿰어 킁킁거리며 따라나서는 이들이라니.

내가 거기 블루베리에 관련된 내용을 추려 올렸으나,
저들은 명색이 블루베리 카페라면서도 저 한가하니 옥상에 올라가겠다는 소리보다,
사뭇 주목을 하지 않는다.

아, 포말(泡沫) 같은 찰나간 생멸에 이끌리는 저들이라니.

當觀諸法亦如是 如大海水起聚時 暫生泡沫而無實

(제법(諸法) 역시나 큰 바다물이 솟아오를 때, 잠시 생기는 포말처럼 실이 없다.)

諸所生滅猶如幻化。
夢中所見芭蕉野馬山中之響鏡中之像水中泡沫。

(생멸이란 마야(幻)와 같다.
꿈속에서 파초를 보는 것과 같고, 아지랑이를 보는 것과 같다.
산중 메아리와 같고, 거울 속의 형상과 같으며,
물속의 거품과 같다.)

여기서 파초야마(芭蕉野馬)의 해석이 좀 어려울 텐데,
재미가 있으니 잠시 풀어본다.

파초는 파초수(芭蕉樹)라고나 할까 큰 나무 형상을 한 것을 말한다.
목수가 목재를 구하러 산에 들어갔다.
파초가 크게 자란 것을 보고는 되었다 싶어 얼른 달려들어 도끼로 뿌리째 잘랐다.
그리고는 이파리를 하나하나 벗겨내는데 남는 것이 하나도 없다.
도무지 아무런 목재로서의 쓸 견실한 실체가 없어 망연자실하고 만다.

야마(野馬)는 야생마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유사(遊絲)라고도 하는데,
봄철 들녘, 실처럼 가느다란 기운이 어른어른 오르는 것 바로 아지랑이를 뜻한다. 

생각이란 것이 한 순간 거품처럼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이로니,
찰나간 무상하기 짝이 없는 게 아니더냐?

그러한 것인데 저들은 어찌하여 저 시시한 것들을 인터넷에 올리고,
그것도 모자라 남이 내다 버린 쓰레기 밭을 뒤적거리며,
히히닥거리며 즐거워하고 있는 것인가?

공화(空華)
헛 눈꽃(眼花).
내 눈 앞에 언뜻 잠깐 스쳐지나가는 환(幻)일런데,
흙 모아 두꺼비집짓기 놀음에 열중하고 있다.
장마지면 바로 쓸려 사라지고 말 것임인데. 

色如聚沫,受如浮泡,想如野馬,行如芭蕉,識如幻法。

거품을 모아 한 형상 짓고,
거품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보고(感受),
아지랑이 같이 곧 스러질 생각을 일으키고,
파초를 본 듯 혹하여 행하고,
환(幻)지어 인식한다.

내 뭣 모르고 잠시 잠깐 저 카페에 몸을 기탁하였음인데,
과연 저곳에 계속 머물며 생멸이 다함이 없는,
팔만일천 바다 속에 함께 몸을 던져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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