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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박(劫迫) - ⅰ

소요유 : 2013.08.25 10:01


겁박(劫迫)

옆 밭에 집을 짓는다고 한다.

지난 달 그쪽 지주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리고 오늘 다시 연락을 주고는 만나자 한다.
여기 시골 토지 소유 이후 25년간,
저들과는 일면식도, 말 한 번 나눈 적이 없는 상태다.

시골 동네라 이웃 토지간 경계가 확실하지 않다.
일부 저자의 땅을 우리가 점유하고 있는가 보다.

그러한데 이자들이 맹랑한 것이 울타리를 칠 터이니 바로 나무를 옮겨 가란다.
고추라든가 들깨 따위 일년생일지라도 수확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하는 것이 상도에 어긋나는 일일진대,
항차 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느닷없이 나타나 그리 할 수 있음인가?
사전에 미리 연통을 넣고 사정을 살피며 의견을 나눠도 자칫 어려움이 있을 터인데,
도깨비놀음도 아니고 단 하루 사이에 이리 사단을 벌일 수 있음인가?

게다가 근 25년간 우리 땅으로 여기고 경작을 해왔음이며,
그 이전 전 주인 역시 그 앞서 수십 년간 그리 지내왔다.
또한 토지 경계면도 확연히 높고 낮음이 갈려,
양쪽은 한 길 정도의 깊은 법면으로 나누어져 있다. 

집을 지을 요량이라면,
사전 측량도 해야하고, 설계 시간도 걸렸을 터인데,
이틀 사이에 나타나 이런 억지를 부릴 수 있음인가? 
성냥갑으로 짓는 것이 아닐진대,
어찌 하여 사전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내게 교섭을 하지 않았음인가?
도대체가 저런 염치, 배짱이 놀라울 따름이다. 

내 그날 처음 만나지만 지주 아들을 대하자마자 자진하여 협조해주겠다고 말하였은즉,
그쪽에서도 상도를 지켜 처리를 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로되 고집을 핀다.
설왕설래가 있은 후, 울타리 치는 것은 좀 미루겠다는 것으로 타협이 되었다.

내가 틈을 째고 한 마디를 찔러둔다.

“울타리 치는 것을 물리는 것이 문제의 초점이 아니다.
나는 기실 이리 된 마당이니 하루라도 빨리 처리되길 원한다.
다만 기왕의 나무 식재 등의 물리적으로 이유로,
도대체가 빨리 하려고 하여도 할 형편이 아니다.
그러한즉 결과적으로 울타리 치는 것이 미뤄지는 것이지,
원하는 바를 실현하기 위한 요청 대상이 아니다.”

본질은 울타리 설치 연기가 아니라,
애시당초부터 지상물, 지장물 처리는 상당량의 물리적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
이것을 피차는 인지하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러할 때라야 염치가 생기고 사람의 건전한 도리를 돌볼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울타리를 치자면 나무를 먼저 뽑아야 하고, 경지 정리를 일부 다시 하여야하기 때문에,
여러 문제들이 선행 처리가 되어야 한다.
이는 며칠 내로 해결될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함인데 단 이틀 전에 전화통화하고, 
오늘 만나서 그리 억지를 피는 것을 보자하니,
이 사람들이 필시 점잖은 이들은 아니리라.

하다못해 고추가 키워진다 하여도,
가을까지 기다림이 상도일 터인데,
항차 나무가 들어서 있음인데,
사전 연통도 없이 단 이틀 새에 이리 사단을 벌일 수 있음인가?

게다가 내가 남의 땅을 자의로 잠식해 들어간 것도 아니요,
25년 전 매매 당시부터 당연 우리 땅이라 여기고 매입하고,
그리 지내왔음인데 이제 와서 낮도깨비장난도 아니고,
그리 무리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음인가?
더욱이 상대는 건설업을 한다고 한다면,
더욱도 이런 일에 상리가 터있지 않았겠음인가 말이다.

하지만 내가 단 한 치의 땅일지라도,
남의 것을 탐을 내어 억지를 부릴 위인이 아니로되,
그만 그 선에서 끝내고 말았다.
그렇지만 기 백이 넘는 나무는 물론 지상 설치물들을 옮기는 것이 예삿일은 아니다.
이 또한 내가 감당할 일이리라 여기고, 일의 되어가는 순서를 따르면 되리라.

그러하고 헤어졌는데,
얼마 있지 않아 방금 만난 이의 아버지라는 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뜸 반말로 말을 부려 놓으며 다음 주 안으로 울타리를 칠 터이니 그리 알란다.
이것은 뭐 장터를 돌아다니는 각다귀도 아니고 이리 그악 무지스러울 수 있겠는가 싶다.

그래, 
아들이 돌아가 함께 구수회의를 하여 달리 의견이 모아졌다 하자.
그러하다면 처음의 약속과 달라졌음이니,
내게 사정을 이야기하며 양해를 구하여도 시원치 않을 판에,
처음 만나는 이에게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반말로 지껄일 수 있음이며,
급기야는 쌍욕을 뱉어낼 수 있음인가?
내가 엄히 이를 나무라자,
쌍욕을 섞어 협박을 해대며 사람을 보내니 기다리라 한다.
이거 완전히 깡패 양아치들이 노는 수법이라.
도대체가 내 여기 시골에서 만나는 노가다, 건설업 하는 치들은 어찌하여 하나 같이,
주먹이 먼저고 욕을 앞세워 위력을 행사하기 바쁜가?

이제껏 이게 통하고 제 욕심을 채워왔을는지 모르지만,
나한테는 이런 비열한 짓거리가 통하지 않는다.
내가 잘못이 없는데 이런 따위의 양아치 겁박에 물러설 위인이 아닌 바라.

저자들은 일마다 주먹과 욕심으로 사태를 처리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다만 사리(事理)와 도리(道理) 그리고 내 양심에 기대어 임할 뿐이다.
그러하기에 나는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고 부끄러움이 없다.
내 결단코 말하거니와,
저런 이들은 내 앞에서 간단히 제 욕심을 채울 수 없다. 

좀 있자 하니 두 사람이 달려왔다.
지주와 형님 아우 하는 사이라고 하면서,
자신 역시 그 땅의 공유지분자라 한다.
이번에 분할하면서 자신은 반대 편 토지를 나눠 가진 모양이다.

자초지종을 다시 벌려놓고 살펴보자.
내 앞에서인지 몰라도 연신 송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저 아버지 된다는 자의 주장이 상도에 어긋난다는 것을 자신도 인정한다고 한다.

“도대체가 양아치 깡패도 아니고,
바로 약속한 것을 일언반구의 양해도 없이 뒤집으며,
반말에 욕설을 퍼붓고 있으니 저이가 지금 제정신인가?

내가 몰라서 이러고 있음이 아니다.
자주의사(自主意思)로 평온 공연하게 토지를 점유하고 있으면, 시효취득이 가능하다.
이미 20년 이상 점유를 하고 있었음이며,
그 동안 당신들이 점유(방해)제거를 청구한 적조차 한 번도 없질 않는가?
나는 상당히 유리한 위치에 있다.

내가 당장이라도 등기소에 가서 등기 청구를 하면,
저것이 내 것이 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이게 오늘날 우리나라 민법의 정신이다.

게다가 일년초도 아니고 수목이 들어서 있으면 더욱 내게 유리하다.
명인(明認) 표시가 되어 있으면 그 누구도 손가락 하나 댈 수 없다.
난 진작부터 울타리를 두르고, 팻말을 세워두었으며, 관수 설비까지 되어 있다.
게다가 CCTV까지 설치되어 있다.
도대체 이보다 더 확실한 명인방법으로 공시할 수가 있음인가?

내가 사실 이런 말조차 꺼내는 것조차 싫다.
기왕에 돌려주기로 하였음인데 법을 핑계되며 생색을 낼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난 법이 여하 간에 남의 것을 탐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하기에 애초 그 아들을 만났을 때에도 내가 자진하여 협조하겠다고 말하였던 것이다.

그러함인데 애들 장난도 아니고 단 이틀 언간, 만나자 마자 나무를 빼라며,
욕설을 퍼부으며 겁박을 할 수 있음인가?
천하에 이런 불한당들이 어디에 있음인가?
돌아가 말하라.
지금 이 시각이후로 내가 점유권을 행사하려 하니,
저 땅에 단 한 발자국이라도 들어오면 바로 형사 고소하겠다.”

상대가 건설업 사장이라 한다.
일반인도 아니고 그동안 많이 단련을 받아 형편을 잘 알 처지가 아닌가 말이다.
이리 안하무인 형편무인지경을 달릴 수 있음인가?

푸성귀 농사를 짓고 있어도 차마 그럴 수 없음인데,
장장 25년간 무사 공연하니 점유권을 행사하고 있었음인데,
단 하룻만에 나타나 나무를 옮겨 가라니 이게 사람 사는 도리라 할 수 있음인가?
저러고도 건설업을 영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음이더냐?

“그동안 어찌 살아왔는지 모르겠으나,
그리 막무가내로 상대를 으르고 겁박하며 혹간 약자로부터 이를 취하였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날 밤 변솟간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
정녕 조금이라도 바른 구석이 남아 있다면,
마음이 아파오며 부끄러워지는 바라.
이게 넋가진 사람이 가진 기본 도리인 게라.
당장 와서 내게 정식으로 사과하라 이르라.”

초록은 동색이라는데 속으로 어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대타로 달려온 이들은 연신 얼굴을 다려 펴며 좋게 해결해주십사 한다.

이러고 저들이 돌아갔다.

그러함인데 조금 있다가 아들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다시 처음의 약속대로 처리하는 것으로 하겠단다.

도대체가 그 회사 과장이라는 직임을 가졌음인데,
자신의 아비가 저지른 패악질에 대하여 우선은 사과라도 하고 말을 나누어야지,
중학생도 아니고 아무런 해명도 없이 애초대로 하잔다.

가만히 있는 사람을 흔들어 욕을 뵈이고는,
이젠 그만 없던 일로 하자는 저 염치는 도대체 무엇인가?

상궤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이들이다.

내, 저 불한당 녀석들 때문에 공연히 시간을 축내고,
종일 시달렸음이니 저들은 의당 상응하는 만큼의 책임을 부담하여야 할 것이다.
이 모두 스스로 자청한 바이니 수원수구 누구를 탓하랴?

***

며칠 후 아들이 찾아왔다.

제 욕심을 채우려 하더라도, 
짐짓 꾸며 사과 인사를 닦아 세우며 대들어도 모자를 판인데,
사과는 일언반구도 없이 저 나무를 언제 치워줄 것이냐 묻는다.
내가 공유지분자라는 이에게 이미 이른 바가 있음인데,
그것은 어찌 되었는가 하니 그제서야 아버지가 해외여행 중이란다.
여행을 하든 아니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 하니까,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마지못해 뱉어낸다.

처음 대하는 이에게 반말을 마구 뱉어내고,
욕설을 퍼부을 때는 언제고 남을 대신하여 단 한 마디 죄송하다는 말로써,
사과에 갈음이 되는가?

이러자 그 아들이라는 자가 말하길,
그럼 어떤 식의 사과를 원하느냐 되묻는다.

말 한 토막 뱉어내고는 이를 사과라 이르는,
저 파렴치에 나는 분노를 넘어 절망한다.
도대체가 저런 셈법으로 이 세상을 얼마나 휩쓸고 다녔겠는가?
이리 능갈치며 만나는 이가 약자라면 유린하고,
강자라면 빌붙어 깨춤과 숭어뜀을 번갈아 가며 살아가지 않았겠음인가?
참으로 욕되고  추하다 하지 않을 수 없음이다.

그것은 내게 물을 노릇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물어라.

그러자 알았다 하고는 돌아갔다.

오늘 그 아버지로부터 내용 증명이 왔다.

무단 점거니 임대료를 물리겠다 한다.

내 본디 처음부터 돌려주려고 하였음인데,
저자는 스스로 화를 불러들이며 사단을 일으키더니만,
급기야는 오늘은 입에 칼을 물고 깨춤을 추려 하고 있음이다.

하회가 자못 재미로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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