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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 ⅲ

생명 : 2013. 9. 30. 21:02


올봄 작년에 이어 같은 장소에 말벌이 집을 짓기 시작했다.
작년엔 이게 몹시 위험하다는 말을 듣고는 소방대원의 힘을 빌어 제거하고 말았다.
그들이 이리 허무하게 저들을 쓸어버릴 줄은 미처 몰랐다.

금년엔 저들을 차마 없앨 수 없었다,
그래 그냥 두고 보기로 하였다.
매일 드나드는 세면장이지만 난 저들과 동거하기로 했다.
다행이 그들은 나를 단 한 번도 침을 내어 쏘질 않았다.
나는 가끔 저들에게 타이르곤 했다.

“내가 너희들 삶을 존중해줄 터이니,
너희들 또한 나를 경계하지는 말라.”

그런데 어느 양봉업자는 저들이 일반 벌들을 해한다고 한다.
난 이게 저으기 걱정이 되었다.
일반 벌들이 사라지면 블루베리 화수분 활동에도 지장이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과연 장수말벌이 아닌 쌍살벌도 일반 벌들을 해하는가?
내년엔 내 어찌 저들을 대하여야 하는가?
하지만 금년엔 저들을 마지막까지 보살펴 주리라.
이리 작정을 하였었다.

그런데 참으로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열흘 전쯤인가?
저들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간혹 한두 마리가 벌집을 서성거리곤 하였지만,
떼로 웅성거리던 녀석들이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
날씨가 서늘해져서 다른 거처를 마련하고 이사를 간 것인가?
여기보다 더 안전한 곳이 또 있을 터인가?
아니면 저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 것일까?

(마침 오늘, 텅빈 벌집에 끈 떨어진 한 마리가 찾아와 옛 일을 슬피 새기고 있음인가?)

일편 걱정이 덜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내내 서운하기 짝이 없다.

나는 빈 벌집을, 근처를 오가며 그저 하릴없이 쳐다본다.
저들은 그 치열하였던 여름날의 열정을 나 몰래 어디에 감췄음인가?
설혹 땅으로 옮겨 갔을지라도 저들의 뜻과 이상은 종내 하늘나라에 있음이 아니겠는가?

우리들 생명의 저 맹목적 의지란 얼마나 서러이 찬란한가?
그래서 더욱 허망하지만.

난 내버려진 벌집을 망연히 쳐다보며,
요해할 수 없는 삶의 굴레 앞에 그저 처연해질 뿐,
더 이상 나아갈 재주가 없다.

여름 내내 내 머리 위를 휭하니 비행하며 지나쳐 가며,
저들과 나는 자신들의 앞길을 각행기로(各行己路) 각기 나눠 지쳐나갔었다.

쌍살벌 녀석들이 두 발을 허공 아래로 축 늘어뜨리고 날아다니는 모습은,
생을 관조하듯 얼마나 여유롭고 경이로웠던가?
가을이 되자 소리 소문도 없이 쓱싹 사라짐은,
이 또한 얼마나 싹싹하니 염치 바른가?

명년에 다시 나타나면,
내 아무 주저 없이 다시 저 자리를 내어주마.

이리저리 재고 따지며 다음 일을 걱정하며,
네들을 내치지 않고,
저 곳을 온전히 맡기며,
맞이하련다.

두 발을 축 늘어뜨리고는 그리 멋지게,
마술처럼 날아다닌던 녀석들은 과연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가?

몹시도 서운한 어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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