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분배 제약 조건

소요유 : 2013. 11. 3. 19:39


최근 내가 존경하는 어떤 분하고 말씀을 나누었는데,
내가 드린 말씀 중에서 좀 미진한 부분이 있어,
급히 보졸(補拙)한 내용을 여기 기록으로 남긴다.

과연 복(福)을 사람들과 어떻게 나눌 수 있는가 하는 주제를 중심으로,
즐거운 말씀을 나누었다.

복(福) 앞에 행(幸)자를 덧붙이면 행복(幸福)이 된다.
뒤에 리(利)자를 더하면 복리(福利)가 된다.

복은 원래 제물로 바치는 주육(酒肉)을 가리킨다.
나아가 이게 전변하여,
매사 불순(不順)하지 않은 상태, 즉 순조로운 모습을 이르는 말이다.

행복(幸福)은 서양식으로 말하자면 happy라기보다는 나는 luck, fortunate쯤으로 풀이 한다.
흉한 것을 피하고 길한 상태에 놓인 상태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다소 운(運)과 관련되어 있다.
내가 행복지려고한들 마냥 내 뜻대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란 뜻이다.

반면 복리(福利)는 이것보다 구체적이다.
복과 함께 구체적인 이득이 지금 현재 말씀 앞에 놓여져 있다.

지금 이 복을 남에게 베풀 때,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적으로 나눌 것인가?
아니면 제약 조건하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문제다.

내가 가진 복을 외부에 전달, 분배할 때,
어떤 형식이 바람직한가 하는 것이다.

가령 악인에게 분배될 가능성에 대해,
대비를 하여야 하는가?
이게 심히 우려된다면 우리는 분배를 중지하여야 할 수도 있다. 

구데기 무서워 장을 담지 말아야 하는가?

나는 애초에 우리 밭 위에 떠오른 달님이,
모든 초목을 무한 사랑으로 적시우듯,
무엇을 제약조건으로 하지 않아야 한다고 의견을 내었다.  

그런데 말씀을 다 마치고 헤어지고나서,
조금 지나자 이내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래 그것을 조심스럽게 모아,
서둘러 말씀을 여쭈었던 것이다.

이하는 그 내용들이다.

*** 

비인부전(非人不傳)
사람 됨됨이가 아니면 전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지요.

혹 시간이 나시면 저의 글 하나를 소개해두니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대(對)하여,
부처의 대자대비(大慈大悲) 정신은 또한 어떠합니까?

관음보살, 지장보살, 유마거사 ...

이들은 대자대비의 화신들입니다.

중생에게 무차별적으로 자비를 베풉니다.

가령, 물에 빠지거나, 
불구덩이에 빠진 사람이,
관음보살 명호를 외면,
관음보살이 나타나 구해주신다는 것인데,
거기엔 위험에 빠진 사람의 현우(賢愚), 선악(善惡)에 구애를 두지 않습니다.

제가 그날은 월광(月光)이 온 제 밭 언덕을 적시듯,
은혜를 베푸는데 차별이 없음을 말씀드렸습니다만,
비인부전이라 함은 이와는 완연히 다릅니다.

이것은 무문(武門)내지는 병가(兵家)의 행세(行世) 모습입니다.

세상엔 악과 선이 혼재하여 있으니,
선악(善惡), 피아(彼我), 적부(適否)를 나눠 가려야 한다는 말씀이겠습니다.

묵자(墨子)는 겸애(兼愛)라 차별 없이 사람을 사랑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유가 특히 맹자는 이를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맹자는 이를 두고 어버이를 부정하고, 군주를 부정하는 것이니 금수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에게 친소(親疎)가 있으니,
가깝고 먼 관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실적으론 순서, 질서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말씀이지요.
priority
유가는 그래서 별애(別愛)입니다.
장유유서(長幼有序) 역시,
이리 줄을 세워야 한다는 말이겠습니다.

컴퓨터의 세계에선 내부적으로 priority를 해결하기 위하여,
고도의 기술적 해법과 이론들이 많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task 간에 processing의 다툼이 생기거든요.
이를 효율적으로 통제하지 않으면 task processing 간에 충돌이 일어나,
엉망진창이 되고 말지요.
이것은 시, 공간 분배의 문제이기 때문에,
공학적으로 해결하여야 할 아주 중요 주제입니다.
굳이 말씀드린다면,
이 세계에선 ‘별애(別愛)를 통해 겸애(兼愛)를 지향한다.’로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게 가능한 것은 예컨대 time-sharing 기법 때문인데,
이는 시간을 잘게 잘라 task 마다 분배를 하되,
초고속으로 순번대로 돌려 처리가 되기 때문에 인간 수준에서 보자면,
거의 동시에 task 처리가 수행되는 양 느껴지지요.

때론 어떤 특정 작업을 급히 처리해야 할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 때는 interrupt를 걸어 작업 흐름을 째고 들어갑니다.
현실 세계와 비교한다면 앰뷸런스 차량이 신호를 무시하고 도로를 
독점하는 비상사태와 비견될 것입니다.

잠깐, 인간의 구체적 현실외 기계 장치에서도,
자원 소비의 분배 문제가 중요한 과제라는 말씀을 드려보고 싶었습니다.

묵자의 말씀을 들으면 마치 예수를 대하듯 경건해집니다.
저는 묵자를 앞에 두면 언제나 예수를 생각하게 됩니다.

정강이뼈가 다 드러나도록 갈심진력하며,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고픈 성자(聖者) 묵자.

맹자는 묵자를 매몰차게 비판하였습니다만,
이는 마치 지금 복지 문제를 두고 싸우는 보수와 진보 진영의 싸움처럼,
상대를 잡아먹지 못하여 이를 날카롭게 드러내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하지만 묵자는 겸애론자이니 당연 맹자처럼 상대를 죽일 듯이 포달을 부리진 않았지요.
묵가는 모두들 사랑하여야 하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활동하던 시기는 춘추전국시대이니,
전쟁이 제일 극성을 떨었던 때이기에 더욱 가슴을 아프게 울립니다.

그들은 제 사상을 실천하기 위해,
말로만 떠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실천현실 속에서 약자의 편에 주저없니 나섭니다.
요즘 우리네 보주주의자들이  갖은 핑계를 대며,
이리저리 발을 빼는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天下之人皆不相愛,強必執弱,富必侮貧,貴必敖賤,詐必欺愚。
凡天下禍篡怨恨,其所以起者,以不相愛生也,是以仁者非之。
既以非之,何以易之?子墨子言曰:「以兼相愛交相利之法易之。」

천하인이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필시 강자는 약한 자를 잡아 누르고,
부자는 반드시 가난한 자를 업신여길 것이며,
귀한 자는 천한 이에게 언제나 오만할 것이고,
속이길 일삼는 자는 어리석은 자를 기필코 속여 먹을 것이다.
무릇 천하의 화(禍)와 찬탈과 원한이 일어나는 이유는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래서 인자(仁者)는 그것에 반대한다.
그것을 반대한다면 그럼 어떻게 그것을 바꿀 수 있겠는가?
묵자는 말한다.
서로 사랑함으로써, 서로 이익을 나누는 법으로써 그것을 바꾼다.

묵자란 책엔 정말 겸(兼)이란 글자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도 나옵니다만, 바로 이 부분(兼相愛)에서,
흔히 우리가 배운 겸애설을 반갑게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그 다음 부분 交相利에 주목합니다.
이익을 서로 교환한다, 교류한다, 나눈다 쯤으로 해석해 볼 수 있는데,
저는 여기에 묵가의 사상은 현실적 부정합 문제가 발생한다고 봅니다.

모든 사람의 이로움이라는 것이,
과연 의로움과 양립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저는 일으킵니다.

맹자라면,
의롭지 못하다면,
악인을 쳐 없애고 정의를 구현하여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임금도 폭군이라면 얼마든지 갈아치울 수 있다고 기염을 토하지요.

맹자 4단론의 義는 交相利와 충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돌아갈 利란 현실 세계에선 그 구현이 대단히 어렵습니다.

공리(公利)
이게 참으로 아름답고 고상합니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뻘밭에선 도대체가 이게 실현 가능한가?

공평 분배 문제는 義란 칭량 장치를 통해 검증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아니 義란 저울 같은 것이라기보다, 맹자는 외려 칼 정도로 생각하였지 않은가 싶습니다.
不義는 단칼로 베어내어야지 저울로 달 것까지 없지요.  
이게 맹자의 주장인 셈입니다.

의(義)롭지 않은데,
도대체가 이(利)를 그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묵자의 사상은 이 부분에서 취약합니다.
아니, 그실은 의(義)의 개념 자체가 다른 것입니다.
최소한 이(利)의 공평,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진 사태를 의(義)롭다 보는 것입니다.
저들은 책상머리에 앉아 말로만 주절거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실제 몸을 던져 그들의 사상을 실천하며, 이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갑니다.
약자 편에 서서 강자의 횡포를 함께 온몸으로 막아냅니다.

그래 묵자란 책엔 공격을 막아내는 내용이라든가, 농성술, 축성술 따위의
토목공학적인 실용편도 적지 아니 실려 있습니다.

이들은 나중에 유가에 밀려 진나라의 천하통일 이후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겸애론이 전쟁통에 강력한 위세를 떨쳤지만, 
전쟁이 끝나자 사막에 물이 스며들 듯 역사의 뒤안길로 잠적해버립니다.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제가 이 부분에 대하여는 충분히 조사를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저 혼자 그냥 추측만 할 뿐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그전엔 필요하니까 융성하였고,
그이후엔 그럴 필요성이 없어졌거나, 억눌러졌기에 사라진 것입니다.
그전엔 수요가 많았던 게지요.
하층민들이 핍박과 설움에 처했을 때,  
묵가는 그들 편에 서서 도움을 주고, 세상을 향해 제 주장을 외쳤습니다.
당시 백성들의 대부분은 이런 열악한 처지에 내몰렷을 터인니,
묵가의 진심을 왜 아니 지지하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천하통일이후 권력자는 이런 세력을 달가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맹자가 利를 義란 체로써 걸러내고, 칼로 가를 때,
법가는 利를 法으로 분배하려고 하였다고 저는 정리를 하곤 합니다.
그 구체적인 장치가 상벌(賞罰)인데,
잘하는 이에겐 상으로 격려하고, 죄를 지은 자에겐 벌로서 응징하자는 것이지요.

묵자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자고 하였지만,
유가는 의로운 사람, 법가는 공이 있는 사람 위주로 줄을 세우자는 것이지요.

양자(楊子 = 양주 楊朱)는 이들 사이에선 아주 독특한 사람입니다.
흔히 제 터럭 하나하고 천하하고 바꾸지 않겠다 말을 들며 그를 이기주의의 화신인 양,
알고들 있지만 이는 전혀 그릇된 오해입니다.

유가나 법가가 국가란 조직을 위해 사람들을 동원하고 묶는데,
충효, 예, 법 따위를 들고 나와 교묘히 이용한 측면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조직에 매몰된 개인의 주체적 가치, 인격을 양자는 조명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사상은 고대엔 당연 발을 붙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제 글이 최근 카페에서 지워졌는데,
그게 조직을 위해 필요할 수도 있으니,
설혹 네가 옳아도 참고 물러서야 한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양주(楊朱)를 배워두어야 합니다.
도대체 시비, 진위를 가리지 않고,
조직에 왜 개인이 함몰되어야 하는가?
이런 의문, 그리고 자각은 양주에 의해 비로소 제기되는 것입니다.
사실 양주의 사상을 천하인이 모두 제대로 꿰고 있다면,
온 세상은 바로 천국이 될 것입니다.

묵자는 실천에 있어선 예수를 닮았고, 사상에 있어선 부처를 연상하게 됩니다.
맹자는 의롭지 않은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고 외칩니다.
법가(한비자)는 악한 놈은 볼 것도 없이 벌을 주고 옥에다 가두자는 주의입니다.
물론 반대로 공을 이룬 자는 포상하여 상찬합니다.
저들은 이 상벌을 귀천을 가리지 않고 엄격하게 집행합니다.  

저의 경우엔 이 3인, 4인을 모두 사랑 합니다.
구체적 실천 현실에서 이들 중 하나의 입장을 택일 하여야 할 경우가 생기곤 하는데,
이 갈등 구조 하에서 제가 어떠한 길로 나아가야 하는가?
이것은 때론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대개는 제가 어떠한 것을 선택할런가 지켜보는 것을 저는 즐깁니다.
그 긴장 속에서 저는 스스로를 시험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용케 어찌 헤치고 나가는가를 지켜보는 것은 아주 재미있습니다.
나중에 힘든 고개를 넘긴 저를 볼 때는 스스로 제가 대견스럽게 보입니다.
하지만, 이겨내지 못하고 구부러진 모습을 목격하게 될 때는 참담하지요.

성인(聖人)들도 이리 제 각각인데,
저 같은 범인이 어찌 지혜를 낼 수 있겠습니까?
다만 이리 생각할 자료를 엉성하나마 급히 엮어 드려보는 것입니다.

저는 저들 사상을 대립항(對立項)으로 보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내 몸, 마음 밭에서 어찌 회통(會通)될 수 있으런가?
이게 평생 제게 놓인 과제상황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것은 아주 흥미진진한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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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13. 11. 3. 19: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