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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맹과니(靑盲과니)

소요유 : 2014. 4. 3. 13:07


청맹과니(靑盲과니)

청맹과니란 본디 눈은 멀쩡하니 뜨고 있는데,
앞을 보지 못하는 자를 뜻한다.
이로부터 그 뜻이 전이되어 사리에 밝지 못하여,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이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와 비슷한 우리말로는 당달봉사가 있다.

청맹(靑盲)은 본시 병명인데, 그 유래가 제법 오래되었다.
이 병명은 우리가 흔히 일컫는 본초경 즉 신의본초경(神農本草經)에도 등장하는데,
이게 진한(秦漢)시대 또는 전국시대에 저술된 것이니,
실로 25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그 병인(病因)에 대하여 여러 의학서에 구구하니 지적을 하고 있지만,
명대 왕긍당의 증치준승(證治准繩)의 다음 글은 내가 보기엔 아주 적실하니,
그 원인을 잘 짚어내었다고 생각된다.

여담이지만,
여기 준승(准繩)에 대하여는 내가 별도의 글 하나를 지어 바로 내놓고자 한다.
(※ 여기 등장하는 准은 準에 通한다.)

☞ 규구준승(規矩準繩)

明代王肯堂《證治准繩》認爲青盲病因有二
一是神失,乃屬傷於七情
二是膽澀,系屬傷於精血。
並指出傷於神失,治療尤難。

병인의 하나는 신(神)을 잃음이니,
칠정(七情)이 상했기 때문이다.
(※ 神은 잘 해석을 하여야 하는데,
이게 사뭇 여러 가지로 읽혀질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신경 또는 정신 정도로 새기면 근리(近理)하리라.)

두 번째는 담(膽)이 뻑뻑해지는(澀) 것이니,
이는 정혈(精血)이 상하는 종류로 보아야 한다.
(※ 삽(澀)은 여기서 내가 뻑뻑해지는 것으로 풀이했는데,
이에 관련되어 또 하나의 글을 바로 올려두고자 한다.
☞ 삽(澁, 떫음)과 계면활성제

결국 정신적, 육체적 두 가지 요인이 있다는 말인데,
나이가 들어가며 기능 저하로 오는 경우는 의당 있을 법하지만,
젊은이가 이 병에 걸림은 대체로 신경성 장애일 경우가 많다.
예컨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급성으로 이 병이 올 수 있다.

이 병은 오늘날 흔히 녹내장으로 칭해지는데,
대개 병원에서는 안압을 떨어뜨리는 것을,
그 치료의 기둥으로 삼고 있다.
내 이에 대한 의견이 있기는 한데,
이 자리에선 장황하니 설명할 계제가 아니니,
삼가기로 하고 다만 한 말씀만 내놓기로 한다.
즉 젊은이의 병발에 대하여는 그저 안압만 낮추는 것으로,
치료를 다하였다 할 것이 아니라,
왕긍당의 지적처럼 오욕칠정을 잘 다스림만 같지 못함을 알아야 하리라.

각설하고,
오늘 청맹과니를 떠올리고 있는 까닭이 무엇인가?
이를 말씀 드려보기로 한다.

안청(眼晴)이 푸르면 무엇하는가?
정작 신실(神失)일지어니.

거죽으로 눈을 멀쩡하니 뜨고 있지만,
정신이 온전치 못하니 언제나 허당인 게라.

단편적이 정보와 지식은 차고 넘친다.
특히 오늘날 인터넷과 같은 매체가 발달하자,
초등학생이나 오십 노객이나,
정보원(情報源) 접근성이나,
그 정보의 습득 난이성(難易性)엔 그리 큰 차이가 없다.

이젠 정보원 취득이 문제가 아니라,
그 정보에 대한 해득 내지는 해석 능력이 더 중요하다.

똑같은 사물을 대하면서도,
어떤 이는 사물의 표징(表徵) 이면에 숨어 있는 뜻을 바로 요해(了解)해낸다.
반면 어떤 이는 수 만 번을 대하여도 언제나 새롭고 오리무중이다.

이는 어떠한 까닭인가?
생래적으로 총명하냐 우둔하냐도 문제가 되겠지만,
난 이는 지속성에 더 중요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 중국 속담 하나를 소개한다.

三天不念口生 三天不做手生

삼일 책을 읽지 않으면 입이 생소(生疎)해지고,
삼일 일을 하지 않으면 손이 생소해진다.

여기서 책을 읽지 않는다는 말은,
가령 정신노동을 하는 이를 두고 말한다면,
부단히 공부하고, 사무치게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움을 뜻한다.

내가 不做를 일을 하지 않는다고 새겼지만,
본 뜻은 몸을 놀리는 일을 업으로 하는 이를 두고 말한다면,
그 기예 닦음을 하루도 쉴 틈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컨대 김연아라한들 하루라도 연습에 소홀히 하면,
몸이 굽고 펴는 (屈伸) 이치,
그 골격과 근육의 생리학적 흐름을 익힐 수 없다는 뜻이다.

이에 적절한 말로는 온습(溫習)을 들 수 있다.
익힘은 그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 죽을 때까지 된장 익히듯 시간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이란 얼마나 불완전하단 말인가?
하기에 늘 잃어버리고 마는 기억을 일깨우고,
놓친 근육의 리듬을 되살려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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