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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지속

소요유 : 2014. 4. 30. 09:14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가 지난 24일 생방송 중에 토해낸 일갈이다.

“연합뉴스 기자 개XX, 니가 기자야 개XX. 오늘 낮에 연합뉴스에서 '지상 최대의 구조작전'이라는 기사를 봤다. 너 내 후배였으면 죽었어”

그의 분노의 근거가 된 연합뉴스의 선행 기사는 다음과 같다.

"(서울·진도=연합뉴스) 특별취재팀 =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9일째인 24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바다 위와 수중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수색 작업을 벌였다.
물살이 평소보다 크게 약한 소조기가 이날로 끝남에 해군과 해군구조대, 소방 잠수요원, 민간 잠수사, 문화재청 해저발굴단 등 구조대원 726명이 동원됐고 함정 261척, 항공기 35대 등의 장비가 집중 투입됐다.""
(참조 : http://tvshowdictionary.tistory.com/2511) 

이 내용대로라면 그야말로 사상 최대의 수색작업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현장의 실종자 가족이라든가 이상호 기자의 현실 인식 내용과는 천양지차인 바라,
그는 끝내 불붙은 화약처럼 폭발하고 만다.

기자는 언제나 사태 현장과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고,
냉정하게 사실과 대면하여야 하며,
진실을 증언하여야 한다.

그가 어찌 이를 몰랐을까만,
그 역시 혈관에 뜨거운 피가 도는 하나의 인간이었다.

‘구조대원 726명이 동원됐고 함정 261척, 항공기 35대 등’

나중에 들어보니 이 엄청난 물량 기술(記述) 내역은,
이제까지 투입된 누적량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문장을 분석해보면 좀 애매한 구석이 있다.

마지막 문장인 ‘장비가 집중 투입됐다’라는 술어부를 한정하는 조건구(條件句)를 따져 보자.
바로 앞에 ‘소조기가 이날로 끝남에’라는 부사절을 우리는 목격하게 된다.
이것은 저 투입된 물량의 계량 시간을 끝난 시점 이후로 한정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사태이후 전 기간에 걸친 누적량으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 하겠다.

다만, 그 앞의 문장 ‘사상 최대 규모의 수색 작업’은,
‘참사가 발생한지 9일째인’ 이로 꾸며지고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전 기간을 둔 언설(言說)로 보아야 한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참사 현장에서 기사를 날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리라.
기사가 논문을 지어내는 일이 아닌 이상 위의 문장 분석처럼,
엄밀한 잣대로 따지는 것은 좀 각박한 짓이리라.

각자는 기사를 두고,
나름 이미지를 형상화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 내용은 내가 관여할 수 없는 각자의 몫이다.
이상호 기자는 분노로서 형상화된 이미지를 외부로 표출했다.

여기까지.
이에 대하여는 더 이상 내 의견을 보태지는 않겠다.

그런데 내가 이 글을 이리 쓰고는,
확인차 연합뉴스 기사를 검색해보하니,
내용이 좀 다른 것도 목격된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9일째인 24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물살이 평소보다 크게 약한 소조기가 끝나기 전에 바다 위와 수중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수색 작업을 벌였다. 해군과 해군구조대, 소방 잠수요원, 민간 잠수사, 문화재청 해저발굴단 등 구조대원 726명이 동원됐고 함정 261척, 항공기 35대 등의 장비가 투입됐다. 합동구조팀은 물 속에 잠긴 선체 3~4층 선수와 선미 부분의 다인실을 집중 수색한 끝에 12구의 시신을 추가로 수습했다. 이로써 오후 4시 현재 사망자수는 171명으로 늘어났다."
(참조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04/24/0200000000AKR20140424158200011.HTML?from=search) 

속보 형식이라 조금씩 달리 편집된 기사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내가 맨 앞에 인용한 기사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04/24/0200000000AKR20140424141700034.HTML?from=search 
그러함이니 어느 특정 기사 하나만을 뽑아 두고,
문리 분석을 하는 것이 현재로선 적당치 않을 수 있다.
선후 관계를 따져야 하고, 그 사실 확인도 하여야 정확을 기할 수 있으리라.
나는 그럴 위치에 있지 않고 그리 자원을 동원할 형편에 있지 않다.
그러함이니 앞의 내 판단은 철회하고 더이상의 분석은 그만 중지하고자 한다. 
따라서 앞의 분석은 주말(朱抹) 처리하고 참고 자료로 남겨두련다.

내가 사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음이다.
그 배경 지식을 사전에 깔고 싶어 이리 조사를 해본 것이다.

난 고발뉴스를 평소에 거의 읽지를 않는다.
고발뉴스를 싫어하거나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여서가 아니다.
늘상 이런 고발 분위기에 젖어 있으면,
사고가 편향되어 균형 있는 시선을 유지하기 어렵다.
하지만 깨어있는 비판의식을 유지하고,
사회 전체가 경각심을 갖도록 끊임없는 정보를 제공하는 저들의 공덕은 사뭇 크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최근 세월호 참사를 접하고는,
다른 기사 링크에 이끌려 거기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관련 기사를 며칠 동안 보게 되었다.

이상호 기자는 이후 지병이 도져 입원을 했다고 한다.
그가 왜 병원에 눕게 되었는가?
나는 일련의 과정을 가만히 관찰하다가 한 가지 추론을 하게 되었다.

이상호 기자가 욕설을 퍼붓고는 그 다음 날 사과 방송을 하였다.

“그날 욕설을 했다. 기자는 욕을 먹어야 하는 직업이다. 방송 이후 욕설을 한 것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며 “아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들이 ‘사랑한다’면서도 ‘욕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아무리 그래도 욕하는 건 아닌거 같아요’

나는 바로 이 부분에 주목한다.

‘욕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아무리 그래도 욕하는 건 아닌거 같아요’

아들은 아버지를 걱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적절치 못한 말을 지적하는 것일까?

이 둘 모두 일 수도 있다.
여느 가족이라면 이 둘 모두에 갇히는 것이 상례이리라.

하지만 난 이런 상상을 한다.

‘잘 하셨어요 난 아빠가 자랑스러워요. 사랑합니다.’

만약 아들이 이런 말을 하였다면,
이상호 기자는 지금도 여전히 흙바람, 찬바람 맞으며 방송을 계속하고 있지 않았을까?
난 그런 모습을 그려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결정은 이상호 기자가 하였을 터이고,
아들의 말을 빌어 사과의 변(辯)을 돋아 이끌어내었을 수도 있다.
여러 사정과 곡절이 있었을 터이지만,
난 이에 대하여 자세히 알 위치에 있지 않다.

우리네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아버지가 아들의 말을 받아 자신의 결정을 이끌어내는 형식을 접한 적은 없었다.
요즘이라 예전과 달리 아들, 딸을 귀히 여기는 부모들이 많아져서가 아닐 터이지만, 
세상이 한결 좋아져 가족들 관계가 사뭇 열려 있고, 도타운 정이 가림 없이 흐른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자신을 비난하여도 가족만큼은 믿음과 사랑으로 지켜준다.
이 어찌 아름답다 하지 않을쏜가?

이상호 기자는 그간 그의 말대로 흙바람 가운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도대체 그의 업보란 무엇이기에 이리 모진 풍진(風塵) 속에 버러져야 했음인가?
정작 그의 업보는 사회적 모순과 갈등을 일으킨 이들이 감당해야 할 마땅할 노릇이온데,
직장에서 내쳐지고 마이크 하나에 의지하여 세상을 표류하며, 홀로 포효(咆哮)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하나 같이 등을 지고 외면을 해도,
아들만큼은 ‘아빠를 난 지지해’ 이리 말해줄 수 있다.
설혹 범죄를 저질렀다한들.
이러하고서도 그의 지병이 도질 터인가?
‘아빠 나도 저 녀석들에게 아빠처럼 욕을 해대었어.’
이러하고서도 그가 병원 침상에 누웠을 터인가?
‘아빠 난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이 말을 듣고서 그는 다시 용기백배 광풍폭우(狂風暴雨) 속으로 달려 나갔으리라.

葉公語孔子曰:「吾黨有直躬者,其父攘羊,而子證之。」孔子曰:「吾黨之直者異於是。父為子隱,子為父隱,直在其中矣。」

섭공이 공자께 말하다.

‘내 봉지에 궁이란 정직한 자가 있습니다.
그 아비가 양을 훔치니 자식이면서도 고발하여 그 증인이 되었습니다. ’

공자가 말하다.

‘우리의 경우엔 정직한 자가 이와는 다르오.
아비가 아들을 숨기고,
아들이 아비를 감추오이다.
정직함이란 바로 이러함이외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공과 사의 분별이 아니다.
여기 매몰되면 저 문장의 해석은 사뭇 고민스럽다.
공이 먼저인가 사가 먼저인가?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를 취하고자 하나 영 신통스럽지 않다.

도대체가 정치를 얼마나 엉터리로 하기에,
아들이 아버지를 고발하는 사태가 일어난단 말인가?

아비가 자식을 숨긴다든가,
자식이 아비를 숨긴다는 말은,
그러한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를 빌어 곧 저런 사태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 상황구조를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섭공이 뻐기고 있음에,
공자는 발끈하여 되쏘아주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그리 인심을 사고,
정치를 잘하고 있다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래 고작 저 따위로 엉터리였는가?

공자가 그저 비꼬는데 그쳤을까?
정작은 분노하고 계셨음이라.

부자지간 고발 또는 은닉에 초점을 맞출 일이 아니다.
여기 매몰되면 저 이야기가 내뿜고 있는 의미공간을 재대로 해석해내지 못한다.

세월호 참사는,
그저 눈물 흘리고, 어줍지 않은 사과나 하고 끝날 일이 아니다.
분노를 지속함으로써,
부자지간에 상대를 고발하거나 숨기는 사태가 원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세상을 꿈꾸고,
더러운 현실을 혁파해나가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노다.

‘분노의 지속’


(http://www.butsuzou.com/jiten/5dairiki.html
金剛吼菩薩 像
金剛吼菩薩, 龍王吼, 無畏十力吼, 雷電吼, 無量力吼
國土安穩 佛敎守護 災難除去)  

그래 나는 
이상호 기자에게 말씀 하나를 전해드린다.

‘이상호 기자,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가 전처럼 지속하여 분노하길 바란다.
아들이 아비를 고발하지 않고서도,
사회 정의는 강물처럼 흐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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