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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두선(風頭旋)

소요유 : 2014. 5. 30. 16:08


풍두선(風頭旋)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微笑)라면 대개 모르는 이가 없다.
우선은 고등학교 시절에 이심전심(以心傳心) 운운하고 말을 풀어낼 제,
거기 곁들여 이를 늘어놓음으로써 그 뜻을 새겨 가르쳤음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에 그 장면이 등장하긴 하지만,
여기 말고도 여기저기 산재되어 단골로 등장하는 말씀이다.

大梵天王問佛決疑經 拈華品

爾時世尊著坐其座。廊然拈華。時眾會中。百萬人天。
及諸比丘。悉皆默然。時於會中。唯有尊者摩訶迦葉。
即見其示。破顏微笑。從座而起。合掌正立。有氣無言。
爾時佛告摩訶迦葉言。
吾有正法眼藏涅槃妙心實相無相微妙法。不立文字。教外別傳。有智無智。
得因緣證。今日付屬摩訶迦葉。摩訶迦葉。

때에 세존이 자리에 앉으셔 문들 연꽃을 들어 회중에게 보이셨다.
수많은 사람과 천, 그리고 비구는 모두 묵묵 아무 말도 못하였더라.
(※ 天 : 神을 뜻한다. 인도엔 그리스 신화에서처럼 수많은 신이 나투셨다.)
다만 유일하게 마하가섭존자 만이 그것을 보고는,
얼굴을 허물며 미소를 짓다.
앉았다 일어서며 합장 배례하다.
기운은 흐르는데 말씀은 없다.
때에 부처가 가섭에게 말씀하시다.
내 정법안장열반묘심실상무상미묘법(正法眼藏涅槃妙心實相無相微妙法)이 있음이니,
불립문자, 교외별전, 유지무지라.
인연따라 증득되는 것,
금일 마하가섭에게 이를 부촉하노라.

아, 아름다워라.

말이란 얼마나 부족하며, 아쉬운가?
진리가 있다면 말로써 전할 수 없으리라.
헌즉 연꽃이니 미소니 하는 장치가 등장한다.
이게 굳이 연꽃이니 미소니 특정하여 가탁할 일이 어디에 있는가?
가령 개똥이면 어떻고, 네 녀석 똥구멍이면 어떠하리.

어떤 못난 녀석은 염화시중하니깐,
연꽃이나 미소에 무슨 어마어마한 비밀이 숨어 있는 줄 안다.
그래 연꽃이나 미소를 귀히 여겨,
뒷뜰 제단에 이를 꺾어 올리거나,
연신 실실 쪼개며 미소를 흘린다.
녀석의 제단을 나는 발로 질겅질겅 밟아 뭉개버린다.
썩은 미소를 보면 낯짝에다 개똥을 한 사발 퍼부어준다.
아아, 나의 절절 넘치는 따사로운 은혜를 녀석은 차마 알까나?

한 분이 계셔,
이리 말씀하신다.

‘침묵의 대화.
말은 입을 통하여 나오고 귀로 듣는다.
때로는 묻지 않아도 알고 대답하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마음으로 하는
말은 마음으로 듣기 때문이다.’

그러자 곁에 계신 또 한분 이리 화답하신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고
말이 기교를 부리면 유희가 되고 장난이 된다.
나이 많이 먹으면 가장 경계해야하는 것이 말이 많아지는 것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세상 이치는 다 통하는 때가 많다.’

(※ 내 생각 하나.
우는 아이 젖 준다고, 
현실에선 말을 하지 않으면 쳐다도 보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울기라도 하여야 하다 못해 입에 깨엿이라도 물려준다.
그렇다 하여 내가 우는 것을 잘한다는 말이 아니라,
말을 하지 않아도 세상 이치는 다 통한다 함은 내겐 저으기 의심스럽단 뜻이다.
작금, 주먹으로 으르고 멱살잡이를 하여도 들어줄까말까한 세태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아닌가?

나이 많으면 말이 많은 것을 경계하여야 한다면,
그럼 나이 어린이는 말이 적은 것을 경계하여야 하는가?
아니면 말이 많아도 괜찮은가?
나이나, 말의 다과가 아니라, 진실의 무게가 척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말에 기교가 많으면 때론 유희가 되고 장난이 되리라.
허나 말에 꾸밈은커녕 남의 것 배끼기만 하면 어찌될까?
평생 흉내내고 꽁무니 뒤쫓아가기 바쁘게 되지 않겠음인가?

또 하나.
말이 적으면 쓸 말이 많아지는가?
말이나 글의 다과가 아니라 말씀의 내용이 알과녁에 적중하였는가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
외손바닥으론 소리가 나지 않는다.

여기 부처가 계시고, 마하가섭이 나투셨음이라.
어찌 연꽃으로 말하고, 미소로만 답할 뿐이랴?
쿵하면 호박 떨어지는 소리요,
탁하면 맞장구치는 소리임이라.

그런데 말이다.

부처가 염화시중의 미소로 저리 아름다운 연출을 하셨음이라면,
그것으로 대종상 받으시고 길 떠나시면 족하련만,
어이 하여 이런 무대를 또 마련하셨음일까?

해인사엔 팔만사천대장경이 잠을 자고 있다.
팔리어 삼장이니, 일본의 남전대장경, 서장(西藏) 대장경 ...
따위의 소위 일체경(一切經)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미소 하나면 족할 터인데 팔만사천 법설은 또 어이한 연고인가?

애 지으려고,
아주까리기름 한 됫박 입에 퍼붓고는,
주야장천 아래로 쏟아내기 바쁜 계집처럼,
혓바닥을 길게 늘여 말씀을 뱉어내기 바쁘시지 않으셨던가?

이름하여 장광설(長廣舌)이라,
부처는 평생 혓바닥을 뱀처럼 길게, 부뚜막 위에 놓인 주걱처럼 넓게,
분주하니 보내셨던 게임이라.

이리 쏟아 내놓고는,
시침 딱 떼고는 부처는 마지막에 이리 말씀 하신다.

‘내가 어느 날 밤에 정각을 이루었고,
또한 어느 날 밤에 열반에 들었다.
하지만 그 간 단 한 자도 설한 바 없다.’

大乘入楞伽經

我於某夜成最正覺,
乃至某夜當入涅槃,於其中間不說一字。

변솟간에 슳어놓은 구더기처럼,
일평생 까내놓은 말씀은 팔만사천에 이르심인데,
그는 어이하여 한 자도 설한 바 없다 하심인가?

정녕 염화미소가 깨달음의 길이라면 어이하여,
너절하니 팔만사천 변설을 늘어놓았음이며,
팔만사천 법설이 열반에 이르는 법이라면,
어이하여 연꽃에 화답하는 가섭의 미소가 묘한가 말이다.

어리석은 이 예 있어,
염화미소를 들으면 연신 고개를 까딱거리며 옳구나 외친다.

한편 해인사 대장경판고에 서면,
아 위대하여라 그 말씀의 위용이요.

하며, 엎어져 경배 드리기 바쁘다.

난 순간 풍두선(風頭旋)을 떠올린다.

풍두선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체머리 흔들기(떨기)라 한다.
까닭 없이 고개를 흔드는 병을 일컫는다.

그 까닭은 대개 다음 한가지이다.

風邪入腦

삿된 바람이 뇌로 들어갔다.

또한 소문(素問)엔 이런 말씀이 있다.

故風者,百病之長也

풍은 백가지 병의 으뜸이다.

바람은 동방에 배대되는데,
만물을 생장하게 하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이리 불고 저리 불며 변화가 무쌍하다.
그런즉 병증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가지다.

그런즉 풍은 백병의 근원이다.

‘침묵은 금이다.’

이러면 여기 홀딱 빠져,
세간살이 다 팔아 바치며 엎어져버린다.

‘촌철살인, 현하의 변’

이러면 여기 넋을 저당 잡히며,
자르르 사타구니 흔들며 오줌을 지린다.

도대체가 미소는 무엇인가?
장광설은 무엇인가?
내용은 아지도 모르면서,
거기 금딱지 붙이며 퍽이나 우아해지고, 썩이나 고상해진다.

금딱지는커녕,
단하천연(丹霞天然)이란 중은 목불상(木佛像)을 뽀개 어한(禦寒)을 하였다.

미소가 흐르면 머리를 오른쪽으로 흔들며,
광설이 퍼지면 고개를 왼쪽으로 끄덕이며,
바람에 아첨하기 바쁜 증상.

風邪入腦

이 증후를 일러 한의학에선 풍두선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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