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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gent line problem

소요유 : 2014. 8. 30. 11:00


수학적으로는 미분 가능한 함수(differentiable function)의 미분 값이 0일 때,
그 점을 critical point 또는 stationary point라 부른다.

함수에 접선(tangent)을 순차적으로 그려나간다고 할 때,
그 기울기 값이 +에서 -로 바뀌거나, -에서 +로 바뀌는 지점에선 미분 값이 0이 된다.
따라서 이 지점에선 극점 값(local extremum)을 갖게 된다.
그래 이 점을 vertex라고도 한다.
방향을 바꾸려면 도리 없이 멈춰야 한다.
그러함이니 stationary point로 명명한 뜻을 알 수 있다.

(The abscissae of the red circles are stationary points; the blue squares are inflection points.
http://en.wikipedia.org/wiki/Critical_point_(mathematics))

그런데 미분 값이 0이 아니더라도,
함수의 구간 내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기는 지점이 있다.
가령 접선의 기울기 값이 점차 증가하다가 어느 순간 감소한다든가,
반대로 감소하다가 증가하는 순간이 지점이 있다.
이를 inflection point라 한다.
이 지점을 지나서 함수는 결국 stationary point에 이르게 된다.
결국 inflection point는 장차 stationary point의 도래를 예정하고 있다 하겠다.

stationary point는 함수 그래프를 보면 일견하여 바로 알 수 있다.
방향이 정반대로 바뀌는 곳이니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inflection point는 한 눈에 바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수가 많다.
왜냐하면 접선의 기울기 방향이 아직은 바뀐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변화의 속도가 달라졌을 뿐이다.

예민한 사람은 이런 변화도 놓치지 않고 알아채곤 한다.
고대 밤하늘의 별을 보는 사람들은 이를 잘 관찰하여,
지상의 사변(事變)을 미리 알아채곤 하였다.
조그마한 변화로 예징(豫徵), 그 미리 앞선 징조를 찾아냄이니,
과시 지혜롭고 아름답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게 본말이 뒤집히게 되면,
아주 흉하게 이용되곤 한다.
가령 무엇인가 업적을 일군 사람이 나타나게 되면,
없던 태몽이 새로 만들어지고,
소싯적 기이하고도 총명한 짓거리가 꾸며지며,
빈천한 자가 명문귀족의 족보에 끼어 넣어지기도 한다.

개중 종교 지도자들은,
이를 빌려 장엄되어 신심을 길어 올리는 장치가 된다.
석가는 마야부인 옆구리를 째고 태어나며,
예수는 동정녀의 몸을 빌어 세상에 오신다.
이들은 여자의 하문(下門)을 열고 나오지 않았음이니,
태생부터 이미 인간과는 그 취류(聚類)가 다름이 아니겠음인가 말이다.

그런데 저들이 처음 태어났을 때,
당시 사람들이 이를 알아챘을까?
그렇다고 볼 증거는 거의 없다.
부처는 왕자 출신이니,
외부로부터 불신을 받을 건덕지가 별로 없었지만,
예수의 경우엔 박해를 받다 못해 십자가 처형을 받지 않던가?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요즘 세상에선 극적 장치 효과로 그 숭고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본말이 전도되었단 말이다.
결과를 가지고 원인을 동원하며 꾸미는데,
사람들은 잘도 빠져든다는 말씀이다.
원인이 제공된 그 역사 현장에선 그리도 무지하던 인간들이,
이젠 한가하니 결과를 소비하며 잘난 체 우쭐거리고들 있단 말이다.

내가 여기 시골에 있다 보니,
밤에 날벌레들이 여간 성가시게 하는 것이 아니다.
저들이 불빛을 따라 방안으로 들어와,
어느 때에는 머리에도 앉고 팔뚝에다 앉는다.
그저 한 귀퉁이에 가만히 쉬었다간다면 내버려두련만,
성가심이 극에 다다르면 도리 없이 저들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휘 날아다니는 녀석을 잡자하니,
순간 휙 방향을 바꾸어 도망을 가는데,
전광석화처럼 날라 이내 그 종적을 찾을 수 없을 때가 많다.
외계에서 온 우주선인가?
순간이동(teleportation)을 한 것임이라,
나는 이내 포기할 수밖에 없다.
저들의 비행술은 놀랍다.
도대체가 저들이 그리는 비행 궤적 함수엔,
stationary point가 목격되지 않는다.
수학적으로는 이런 함수를 비연속 함수(discontinuous function)라 부른다.

 


Continuous at x = a.
 


Discontinuous at x = a.
 


 Continuous at x = a.
 


 Discontinuous at x = a
(http://www.math24.net/discontinuous-functions.html)

그런데 나는 최근에 사람에게서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였다.
한편에선 울음을 짓던 이가,
어느 날 함박웃음을 짓더란 말이다.
지금,
이 피를 토하고 애를 끓이는 역사현장에서,
그만 홀로 공간이동을 하였단 말인가?

그런데 그도 아니니.
사람들의 반 수 이상은,
그와 함께 공간이동을 하였음인가?
저마다 그 웃음 앞에 두 손 모아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있다.

무릇 함수란 stationary point를 통과하지 않으면,
tangent의 sign이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멍청한 인간이라도 stationary point는 바로 볼 수 있다.
stationary point를 목격하지도 않았는데,
tangent의 sign이 바뀌어 있다면,
이 사태를 어찌 무심히 대할 수 있겠음인가? 

그러함인데,
인간 함수가 하나 예 있어,
stationary point도 없이,
tangent의 sign이 바뀌어 있다면,
어찌 해괴한 사태라 하지 않을 수 있음인가?

더불어,
이와 함께 하는 인간 군상이란,
얼마나 놀랍도록 괴이쩍은가?

미분 불가능을 넘어, 비연속성의 세상을 사는,
오늘날의 우리들은 참으로 불가해(不可解)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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