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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벽청야(堅壁清野)

소요유 : 2015. 7. 12. 19:59


우리가 소싯적엔 어른들이 이런 말을 늘어놓는 것을 늘상 접하였다.


‘요즘 아이들은 예의를 모르고, 염치를 차리지 못한다.’


그러한데, 이리 어른이 아이들을 탓하고 나무라는 것은,

세월이 지나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언제나 당대를 살아가는 어른 눈에는,

어린 녀석들이 서툴고 미욱해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나이 어린 녀석들을 보고 있으면,

이리 탓하는 것조차 부질없어 보인다.


전차(前次)엔 사회상(社會相)이 세대 간 차이라는 것이 그리 큰 변화가 없었으나,

요즘엔 급격히 변화기 때문에 그 질적 내용이 달라졌다.

그저 단순히 어린 녀석들이 배움이 짧고, 경험이 적어,

매사 서툴고 익지 않은 정도를 넘고 있다.


가령 우리 동네 골목길을 걷다보면 계집아이들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예전 같으면, 저런 행실로는 시집을 가기 다 틀렸다.

외려 사내 녀석과 함께 맞담배질을 하며 히히닥거린다.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흡연 여부에 따른 가치 판단, 그 시비를 별론으로 남겨둔다면,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할 까닭이 없다.

좋은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世異則事異。

事異則備變。


세상이 달라진즉 일도 달라진다.

일이 달라지면 그 대비책도 변한다.


세상이 이미 달라졌는데,

어제의 일로 오늘을 규율할 수 없다.

일이 달라지면, 그를 처리할 방책도 따라 변하는 법이다.


上古競於道德,中世逐於智謀,當今爭於氣力。


상고시대엔 도덕을 다투고,

중세엔 지모를 겨루었으나,

지금 세상은 힘으로 싸운다.


그렇다.

이젠 도덕으로 규율하는 것도 어렵고,

지모로 우열을 겨루기도 쉽지 않다.

개명(開明)한 세상이라,

저마다 인격의 주체요,

배울대로 배운 인사들인 바임이라.

이로써 견주며, 겨룬들 도찐개찐이다.


다만, 힘으로 상대를 누지를 뿐이다.

힘의 내용은 도덕이나 지모에서 완력으로,

그게 오늘날엔 돈, 권력으로 변이되어 나타나고 있다.


달포전 동네에 재벌급 회사가 운용하는 마트가 들어섰다.

그러자 바로 곁에 있던 기존 마트는 일순(一瞬) 존망(存亡)의 기로(岐路)에 섰다.

게다가 가근방 농산물 전문 매장, 정육점 따위 생필품 가게들이,

줄줄이 순식간(瞬息間)에 매출이 반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도덕이나 지모가 아니라 기세와 힘으로 밀어붙이는데,

당할 재간이 없는 것이다.


기세와 힘, 즉 기력(氣力)이란,

곧 돈, 권력의 힘으로부터 유출되는 바,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 하에선 가공할 위력을 발휘한다.

그곳에서 멀쩡히 장사를 하던 점포 수 개가 손을 털고,

어느 날 모두 저 마트에 의해 접수되고 말았다.

기존 마트는 우선은 크기에서 당할 재간이 없다.

전격 기존 점포들을 접수하여 몰아내고는,

적게는 두 세배, 경우에 따라서는 십 수배 매장으로 진격하여,

인근 마트들을 초토화시켜버리고 만다.


기실 자본주의(資本主義)란 말본새는 얼마나 흉측한가?

자본(資本), 곧 돈을 본으로 삼는 주의란 뜻이 아니랴?

돈이 더럽다든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정신을 가진 인간이 돈을 앞잡이로 세워,

세상을 경영해나가겠다는 심보를 어찌 마냥 아름답다 할 수 있겠음인가?


초토화(焦土化)란 무엇인가?

이용할 자원을 다 태워버리는 것이다.

하여 적군은 운신할 여지가 없게 된다.

이는 다른 말로 견벽청야(堅壁清野)라 할 수 있다.

성을 굳건히 지키고 곡식을 다 거둬들여 적이 스스로 지쳐 떨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동네 유효 소비 능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켜.

여타 마트들을 고사시켜 버리는 것이다.


규모의 경제 효(效)가 발휘되어,

사입(仕入)부터 유리한 위치에 있는 저들은,

연일 할인 행사를 벌이며 인근 업체들에게 파상공세(波狀攻勢)를 편다.


가근방엔 군소(群小) 마트가 네 개가 있는데,

바로 옆에 붙은 마트 하나는 손을 놓고 그저 당하고 있다.

나머지 셋은 돌아가며 할인 행사를 벌이지만,

벌써 심대한 타격을 입어 실로 앞일을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事異則備變。


사태의 전개 내용이 다른즉,

그 대비책도 변하여야 한다.


헌데,

돈이나 권력이란 것이 어느 날 도깨비가 문득 가져다주는 것이랴?

흥부네 제비가 보물 박씨라도 물어다 주는 것이런가?


돈이나 권력이 없는 이는,

설혹 사태가 변한 줄 안다한들,

대비책을 별도로 세울 재간이 없다.


고작 한다는 것이,

죽림칠현처럼 죽림에 들어,

시 읊고, 술추렴이나 하며,

세월을 농할 뿐인 것을.


이것을 일러 음풍농월(吟風弄月)이라 함이니,

실로 허랑스럽다.

바람, 달을 상대하고 있음이니,

이게 매보다 더 매섭고, 귀신보다 무서운 세파를 감당할 수 있으랴?


그러함이나,

바람과 달을 어찌 돈으로 셈할 수 있겠음인가?

이를 아는 이라면,

매나 귀신을 매섭다며 매양 두려워 할 까닭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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