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술에 취한 듯

소요유 : 2015. 8. 21. 00:25


사채업자 밑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였다는 이를 하나 만난 적이 있다.

그자가 말하길 자기는 치부책(置簿冊)에 사장의 치부(恥部)를 낱낱이 적어 두고 있다고 한다.

그 바닥이 험한 곳인즉 차후의 일에 이리 대비를 한다고 한다.

여차하면 반격을 하되, 그 수단을 이리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스를 보니, 전에 안철수와 함께 하였던 금태섭이라는 이를 다루고 있다.

이 분이 책을 하나 내었는데 당시 은폐되었던 일이 폭로되고 있다.

전부터 그리 준비를 하였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이번 경우뿐만 아니라, 

모였다가 후에 갈라서게 되면,

내부적으로 공유하던 것들이 외부로 알려지게 되는 경로는 기실 일반적이까지 하다.

이는 애초엔 저들 간에 원하던 바가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이런 일들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이 뉴스를 접하자니 예전의 그 사채업에 종사하던 직원이 생각나는 것이다.

아울러 옛글 하나를 다시 음미해보고자 한다.


聽言之道,溶若甚醉。脣乎齒乎,吾不為始乎,齒乎脣乎,愈惛惛乎。彼自離之,吾因以知之。是非輻湊,上不與構。虛靜無為,道之情也;參伍比物,事之形也。參之以比物,伍之以合虛。根幹不革,則動泄(√溶)不失矣。動之溶之,無為而改之。


신하의 말을 듣는 도는, 술에 심히 취한 듯한 모습이어야 한다.

입술이여, 이여, 

내가 먼저 (말을) 시작하지 마라.

이여, 입술이여, 

점점 더 어리석은 척 꼭 다물어라.


상대가 스스로 말을 해오면, 나는 이로써 알게 된다.

시비가 폭주하더라도 군주는 저들과 얽혀들지 않는다.

허정무위의 상태야말로 도의 정형(情形)이다.

사물끼리 여럿을 맞대고 비교하는 것은 사물의 형상(形狀)이다.


(※ 이 부분을 도해하면 이러하다.

虛靜無為 → 道之情

參伍比物 → 事之形

그러니까 도의 세계와 사(事)의 세계가 있는데,

전자는 허정무위로, 후자는 지지고 볶으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모름지기 군주는 세간 일에 관여치 않고 고요하니 무위로 세상을 대하여야 한다.

이러할 때라야 신하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온전히 장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물끼리 비교함으로서 헤아리고,

허정한 도에 합함으로써 함께 든다.


근간이 바뀌지 않으면, 움직임에 별 탈이 없다.

움직인들 다 법도에 맞아 저절로 세상을 변화시킨다.


***


한 때 뜻을 함께 하여, 한 자리에 있었다.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의기투합(意氣投合) 일을 꾸며 나가고,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으며 정분(情分)을 나누었음이라.

허나, 회자정리(會者定離)임이라 만나면 언젠가는 찢어져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법.

비록 그 동안 함께 나눈 시간이 길었다한들,

찰나 간에 적이 되고 원수가 되기도 한다.


이 때 지난 날 별 문제없이 노출되었던 부끄러움과 허물이,

비수가 되고 창이 되어 자신의 멱줄을 겨눈다.


아아, 그러함이니,

결연(結緣)은 맺지 말고,

정분(情分)은 나누지 마라.


溶若甚醉。

술에 취한 듯 하고,


齒乎脣乎,愈惛惛乎。

이와 입술을 닫고 더욱 어리석은 척하라.


허나, 연을 맺지 않고 친구를 사귈 수 있겠음이며,

정을 나누지 않고도 사랑을 할 수 있겠음인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정녕 이리 살 수 있음인가?


猶如獅子不怕聲響,風兒不怕羅網,蓮花不怕污水,讓他像犀牛角一樣獨自遊蕩。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여기 법정의 말씀과 옛 선인(先人)의 말씀을 함께 비교해보자.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법정)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 버려야한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헤프게 인연을 맺어놓으면 

쓸 만한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에 

어설픈 인연만 만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삶이 침해되는 고통을 받아야한다.


인연을 맺음에 너무 헤퍼서는 안 된다. 

옷깃을 한번 스친 사람들까지 

인연을 맺으려고 하는 것은 

불필요한 소모적인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지만, 

인간적인 필요에서 접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위에 몇몇 사람들에 불과하고 

그들만이라도 진실한 인연을 맺어 놓으면 

좋은 삶을 마련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진실은, 

진실된 사람에게만 투자해야한다. 

그래야 그것이 좋은 일로 결실을 맺는다. 

아무에게나 진실을 투자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내가 쥔, 

화투패를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는 어리석음이다.


우리는 

인연을 맺음으로써 도움을 받기도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도 많이 당하는데, 

대부분의 피해는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 부은 댓가로 받는 벌이다. 


上不與共之,民乃寵之。上不與義之,使獨為之。

上固閉內扃,從室視庭,參咫尺已具,皆之其處。

(韓非)


군주는 신하와 함께 나누지 않는다.

백성은 외려 그를 사랑한다.

군주는 신하와 함께 의론을 짓지 않는다.

신하가 홀로 그리 하도록 할 뿐이다.

군주가 안으로 빗장을 잠그고 굳게 닫아,

마치 방 안에서 뜨락을 내다보듯 하면,

지척 간에 다 갖춰져 모든 것이 있을 그 자리에 있게 된다.


법정은 진실된 사람에게만 투자하라 이르고 있다.

하지만 한비는 자신의 본마음을 들키지 않게 간수하라 이르고 있다.


喜之則多事,惡之則生怨。故去喜去惡,虛心以為道舍。 


(군주가 드러내놓고 신하를) 

좋아하면 사고가 많이 생기고,

미워하면 원망이 생긴다.

그런즉 좋아하거나 미워하지 말고,

마음을 비워 도가 절로 깃들 게 하라.


과시 한비는 제왕의 도를 가르치고 계심이라,

허나 법정은 불가의 가르침이라기보다 마치 유가(儒家)처럼,

사람 간의 친소(親疏)와 귀천(貴賤), 그 경중(輕重)을 논하고 계심이고나.


사채업이나 정치의 세계는 參伍比物의 경계임이니,

즉 지지고 볶으며 상대와 경쟁하고 견제하며,

물고 물리며 살아들 간다.


과연,

溶若甚醉。

술에 취한 듯 어리석은 척 하고,

固閉內扃

문빗장을 지르고 굳게 닫아 걸며,

虛靜無為

허정한 무위의 경계로 들어가,

參伍比物의 험한 세상을 대할 수 있겠음인가? 


그대,

중도 아니요,

제왕도 아닌,

민(民)이어거든.

어느 나변(那邊)에 심술(心術)을 부릴 것이온가?

(※ 참고 글(심술) : ☞ 2011/03/21 - [소요유] - 심술(心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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