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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弔

소요유/묵은 글 : 2008. 2. 29. 12:19


問弔

YS 선생님께,
삼가 늦은 禮 차립니다.

애례(哀禮) 모시었던 선생님 생각하자니
아까 문득, 곡용(哭踊)이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애통하여 곡하며 발버둥치니, 마치 춤추는 양 싶음을 이르는 말이지요.
서양 영화를 보면 모두 경건하니 침착한데,
우리네 풍속은 온몸을 내던져 통곡호읍을 하고 맙니다.
돌이킬 수 없고, 이제 끊어져 이을 수 없는 인연은 사무쳐 저리도록 아픕니다.

이도 모자라면,
곡비(哭婢)를 품 사서,
울음조차 젯상에 괴어 올립니다.
구슬피 잘 우는 곡비는 품삯이
나락 수 섬, 베 두어 동을 치루고도
차례를 기다려야 합니다.

이쯤 되면,
가진 재물이 없으면,
고인에 대한 예도 제대로 차릴 수 없게 됩니다.

장자는 아내가 죽자 두 다리 뻗고,
고분이가(鼓盆而歌), 즉 항아리(악기) 두들기며 노래를 불렀다지요.
하지만, 이게 충분히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게,
장자가 아내를 잃자 마자, 바로 항아리 두들긴 게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제 아무리 장자라한들,
이 역시 부자연스럽고, 조금은 위악적인 게 작위적인 노릇이라 할 것입니다.
그 역시 처음엔 놀라고 슬퍼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만 근본을 돌이켜 보면 생이란 없는 것임이니,
생에서 사로 돌아갔을 뿐이라 이리 깨달았기에
슬픔을 그쳤다고 하지요. 

열역학 제2법칙에서 유도되는 엔트로피증가의 법칙은 비가역적입니다만,
죽음은 비가역적일 뿐 아니라, 생사간 불연속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남겨져 겪는 이들의 슬픔은 뼈에 새겨집니다.
하지만, 시간의 강물 따라 그도 흐려지며,
인연의 터럭은 엔트로피처럼 가뭇없이 흩어져 산화되고 맙니다.

장자가 말하는 생이 사로 돌아갔다고 할 때,
그는 계절 순환하듯이 사에서 생으로 되돌아 올 수도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저들이 말하는 생사불여의 이치를 온전히 알지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생사간 去來가 기든 아니든,
당시를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편에 망각의 강이 있다고 하는 이들의 말이 영 미덥지 않습니다.
정녕 그것이 있다면,
그들도 건넜을 터인데,
그들은 어이하여 잊지 않고,
유독 그 강 이름은 기억해내고 있는 것입니까 ?
그것은 망각(忘却)이 아니고,
망각(妄覺)일지니,
곧 환각내지는 망령스런 생각이지 않겠는지요 ?

저의 경우엔 한참 우니까,
purification,
그야말로 순수 정화상태,
머리가 티끌 하나 없이 텅비어
오히려 맑디 맑아,
흔히 쓰는 말이 아니지만,
징징(澄澄)한 상태에 놓이더군요.  (澄: 맑을 징)

원래 상가에선,
조문객과 상두꾼만
술질이 아귀 같고,
쌈질이 수라 같아,
철 맞난 매미처럼,
아우성 치며,
난장을 벌입니다.

정작 상제는 이들 뒤치닥꺼리 하느라,
읍곡(泣哭) 제대로 할 새가 없습니다.
그 부산스러움 속에,
슬퍼할 짬도 없이
장례를 치릅니다.

저는 청해진 바조차 없이 지나는 객이나,
본시 이런 뜨내기가 더 냅뜨는 법.
이리 한 동이 가득
본데없는 주책을 쏟아내고 맙니다.

따지고 보면,
이게 다 상제들의 슬픔을 잠시 앗아가고자 하는
이웃들의 곡진한 부조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상제의 슬픔은 장례 치르고 난 이후,
정작은 그 때부터 스멀스멀 스밉니다.

소슬하니 바람 불 제,
달님만 보아도,
별빛만 보아도,
눈가엔 절로
이슬이 고이게 됩니다.

객들은 하마 아지 못하는
진짜배기 아픔.
순백 눈꽃의 서러움은
소중한 것이 언제나 그러하듯이
홀로 찾아듭니다.

선생님은 새벽 별 헤아려 모시는 마음으로
고인을 마중하셨을 테니,
곡용, 곡비 없다한들
자리를 고이 지키셨으리라 짐작됩니다.

엇그제 읊조린 바, (※ ☞ 2008/02/13 - [산] - 개망초)
“바르도(bardo)의 길은 그의 길일 뿐,
나도, 그도 나뉘어 길을 걷는다.”

이렇듯 각자는 모두 제 길을 걸을 뿐입니다.
갈라 돌아서자 마자,
정작 이제부터 鎭魂하여야 할 것은 산자이니,
망자와는 벌써 이리 베 가르듯 길을 달리합니다.
그래서 이별은 더욱 슬픈가 합니다.

***

선생님이 제 글을 읽으셨으리라 짐작되는,
곧 저 위에 나타날 다음 차례,
바카라 통조림을 쓰레기통에 버리셨을 때쯤,
저 역시 이를 신호로 제 글들을 
내일 해 뜨고, 바람 불면 사라질,
오늘 저녁 이내(嵐氣)를 따라
흩고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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