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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산이 물을 다투다.

소요유 : 2015.10.26 13:11


諺云:不聰不明,不能為王;不瞽不聾,不能為公。海與山爭水,海必得之。

(慎子)


속담에 이르길,

총명하지 않으면 왕이 될 수 없다.

눈이 멀고, 귀가 멀지 않으면 신하가 될 수 없다.

바다와 산이 물을 두고 다투면,

바다가 반드시 그것을 얻는다.


이게 무슨 말인가?


우리네 속담에 시집살이를 두고,

‘귀머거리 삼년, 벙어리 삼년, 장님 삼년’이란 말이 있다.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사람들은 이리 해야 며느리 노릇을 잘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구체적인 까닭을 물으면 속 시원하게 답하는 사람은 드물다.


人主之患在於信人,信人則制於人。人臣之於其君,非有骨肉之親也,縛於勢而不得不事也。故為人臣者,窺覘其君心也無須臾之休,而人主怠傲處其上,此世所以有劫君弒主也。為人主而大信其子,則姦臣得乘於子以成其私,故李兌傅趙王而餓主父。為人主而大信其妻,則姦臣得乘於妻以成其私,故優施傅麗姬,殺申生而立奚齊。夫以妻之近與子之親而猶不可信,則其餘無可信者矣。(韓非子 備內)


군주의 우환은 다른 사람을 믿는데 있다.

다른 사람을 믿으면 그 사람에게 제압당한다.


그 군주에 대(對)한 신하는 골육의 친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권세에 묶이어 부득불 섬기는 것이다.

고로 남의 신하된 자는 그 군주의 마음을 엿보며 살피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다.

그러나 군주는 게으르고 오만하니, 그 위에 처한다.

이것이 세상에 군주를 겁박하고 주인을 시해하는 이유이다.


군주가 되어 자식을 크게 믿으면,

간신이 자식을 이용하여 자기 사익을 이루게 된다.

그런고로, 이태(李兌)는 조왕(惠文王)의 상국(相國)이 되어 주보(武靈王)를 굶겨 죽였다.


군주가 되어 그 처를 크게 믿으면,

간신이 처를 이용하여 자기 사익을 이룬다.

그런고로, 광대 시(施)는 여희(麗姬)를 보좌하여,

신생(申生)을 죽이고 대신 해제(奚齊)를 태자로 세웠다.

대저 처만큼 가깝고, 자식처럼 친한 사이지만 믿을 수가 없음이다.

그런즉 그 나머지는 믿을 만한 자가 없다.


丈夫年五十而好色未解也,婦人年三十而美色衰矣。以衰美之婦人事好色之丈夫,則身死見疏賤,而子疑不為後,此后妃、夫人之所以冀其君之死者也。唯母為后而子為主,則令無不行,禁無不止,男女之樂不減於先君,而擅萬乘不疑,此鴆毒扼昧之所以用也。故桃左春秋曰:『人主之疾死者不能處半。』人主弗知則亂多資,故曰:利君死者眾則人主危。


장부는 나이 오십이 되어도 색을 좋아하고 아직 줄지 않는데,

부인은 나이 삼십만 되어도 미색이 쇠하고 만다.

미색이 쇠한 부인이 호색한 장부를 섬기게 되면,

애정이 식고 천시 당하지 않을까 의심하며,

자식이 그 뒤를 잇지 못할까 의심하게 된다.

이것이 후비와 부인들이 군주가 죽기를 바라는 바다.


어미가 태후가 되고 자식이 왕이 되면,

영이 행해지지 않는 데가 없고,

금하여 그치지 않는 것이 없으며,

남녀 간의 즐거움도 선군 때보다 줄지 않았는데,

만승의 나라를 마음대로 하는데 조금도 의심함(주저함)이 없다.


이게 짐독으로 독살하고, 손으로 목을 졸라 죽이는 까닭이다.

고로 도좌춘추란 책에서 말하길,

군주가 병으로 죽는 경우는 반도 되지 않는다 하였다.

군주가 이를 아지 못하면 난이 자주 일어날 빌미가 된다.

고로 군주의 죽음이 이익으로 여겨지는 사람이 많아지면,

군주는 위험하게 된다.


사람이란 것이 의(義)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기까지 하지만,

이(利)를 위해 도리어 남을 죽이기까지 한다.


故輿人成輿則欲人之富貴,匠人成棺則欲人之夭死也,非輿人仁而匠人賊也,人不貴則輿不售,人不死則棺不買,情非憎人也,利在人之死也。


고로 수레를 만드는 이가 수레를 만들면, 사람이 부귀해지길 바라고,

관 짜는 이가 관을 만들면, 사람이 요절하길 바란다.

이는 수레 만드는 이가 어질고, 관 짜는 이가 흉악한 적당이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이 귀해지지 않으면 수레가 팔리지 않고,

사람이 죽지 않으면 관이 팔리지 않는다.

사람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죽는데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군주와 신하의 이해는 서로 상충된다.

그러므로 신하된 자는 소경, 귀머거리가 되어,

군주의 이익을 침해할 의사가 없음을 나타내야 한다.


不瞽不聾,不能為公。


신하가 소경, 귀머거리로 행세함은 충(忠)을 드러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군주에게 자신이 이(利)를 넘보는 사람이 아님을 보이기 위함이다.

하지만 본심을 숨기고, 호시탐탐 군주를 욕보이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 전화가 오면,

대출 광고 아니면, 오빠 시간 있으세요? 하며 묻는 것이 대부분이다.

저들 말이라는 것이 거죽에 기름집 됫박처럼 기름이 반지르 흐른다.

내가 사양의 말을 전하면,

단박에 말이 거칠어지거나 아무 말도 없이 툭 끊어버리고 만다.

말인즉슨 내게 도움을 주고 이(利)를 보태주겠다고 접근하지만,

실제론 제 사익(私益)을 꾀하려 하였을 뿐이다.

그러함인데 그럴 가능성이 없어지면,

바로 본색을 드러내며 돌아서 버린다.


이들은 술(術)이 없기에 나 같이 세상 물정에 어두운 이도,

목소리만 듣고도 바로 그들의 정체를 알아차린다.


不瞽不聾,不能為公。


군주는 신하의 소경, 벙어리 흉내를 잘 살펴야 한다.

저것이 본심을 숨기고자 함인지,

아니면 자신의 분수를 잘 알고 하는 처신인지 구분하여야 한다.

그러려면 거죽으로는 놀고먹는 듯 보여도,

내적으로는 도를 지키고 외적으로는 법으로써 규율하여야 한다.


聖人任道以夷其險 立法以理其差

(尹文子)


성인은 도에 맡겨 그 위험을 고르고(없애고),

법을 세워 그 차이를 조리(調理)한다.


헌데,


海與山爭水,海必得之。


바다와 산이 물을 두고 다투면,

바다가 반드시 그것을 얻는다.


이러하다면, 

신하라 한들 어찌 영원히 산으로 남아 있길 원할까나?

바다가 되어 물을 제 마음껏 마시고자 하지는 않을까?


*****


이리 써놓고 보니,

왕과 신하 사이엔 매양 엄청난 갈등과 긴장이 흐르는 양 보인다.


해서 현명한 신하의 전형으로써,

제나라의 순우곤(淳于髡)을 소개해두며 마치고자 한다.

威王大說,置酒後宮,召髡賜之酒。問曰:「先生能飲幾何而醉?」對曰:「臣飲一斗亦醉,一石亦醉。」威王曰:「先生飲一斗而醉,惡能飲一石哉!其說可得聞乎?」髡曰:「賜酒大王之前,執法在傍,御史在後,髡恐懼俯伏而飲,不過一斗徑醉矣。若親有嚴客,髡帣韝鞠跽,待酒於前,時賜餘瀝,奉觴上壽,數起,飲不過二斗徑醉矣。若朋友交遊,久不相見,卒然相睹,歡然道故,私情相語,飲可五六斗徑醉矣。若乃州閭之會,男女雜坐,行酒稽留,六博投壺,相引為曹,握手無罰,目眙不禁,前有墮珥,后有遺簪,髡竊樂此,飲可八斗而醉二參。日暮酒闌,合尊促坐,男女同席,履舄交錯,杯盤狼藉,堂上燭滅,主人留髡而送客,羅襦襟解,微聞薌澤,當此之時,髡心最歡,能飲一石。故曰酒極則亂,樂極則悲;萬事盡然,言不可極,極之而衰。」以諷諫焉。齊王曰:「善。」乃罷長夜之飲,以髡為諸侯主客。宗室置酒,髡嘗在側。

(史書 滑稽列傳)


위왕은 크게 기뻐하며 후궁에 주연을 열고 순우곤(淳于髡)을 불러 술을 내렸다.

왕이 물었다.


‘선생은 어느 정도 마시면 취하시는가?’


이리 아뢰다.


‘신은 한 말이라도 취하고, 함 섬이라도 취합니다.’


위왕이 다시 묻는다.


‘선생은 한 말이라도 취한다면서, 어찌 한 섬이라도 마실 수 있다 하는가?

그 까닭을 말해보라. ’


순우곤이 말한다.


‘대왕 앞에 내려주신 술을 마주한다면, 

옆에는 사법관이 있고, 뒤에는 감찰관이 버티고 있기에,

저는 마음이 두렵고 떨려 엎드려 마십니다.

불과 한 말도 마시기 전에 취합니다.


만약 아버님의 손님이 찾아오셨다면, 

저는 팔소매를 거둬 올리고 꿇어 엎드려, 

앞전에서 술을 대접합니다.

때로는 내려주시는 술을 받아 마시고,

또 장수를 빌며 술잔을 돌려 드린다든지 하기 때문에,

불과 두 말을 마시기 전에 취해버립니다.


만약 오래간만에 벗을 만났을 경우라면,

갑자기 만났기 때문에, 

옛 이야기를 하며 즐기고, 

서로 정을 나누며 떠들기 때문에,

대여섯 말을 마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을에서 모임이 있다면,

남녀가 섞여 앉아 술을 주고, 받으며 오래 즐깁니다.

주사위 놀이나 투호까지 하며 서로 끌며 끼리끼리 모입니다.

손을 잡아도 벌 받을 일이 없고,

눈짓을 하여도 누구하나 금하지 않습니다.

여기저기 귀고리를 흘리고, 비녀가 벗겨지도록 놉니다.

저 역시 남 몰래 이를 즐깁니다.

그래서 여덟 말 정도는 거뜬히 마실 수 있습니다.

때문에 두 세 번은 잔뜩 취하고 맙니다. 

해가 저물면 주연이 무르익었을 경우라면,

남은 술동이를 모으고 가까이 앉아, 

남녀가 뒤섞여 신발은 어지럽게 흩어지고,

배반이 낭자하게 됩니다.

당상의 촛불이 꺼집니다. 

주인은 저를 남게 하고 손님들을 배웅합니다.

여민 저고리 옷깃은 풀어지고,

문득 (여인의) 은은한 향기가 풍겨 옵니다.

이러한 때는 저도 한껏 취해 올라 능히 한 섬을 마실 수 있게 됩니다.


그런즉 술이 극에 이르면 문란해지고,

즐거움이 극에 이르면 슬픔이 있는 법입니다.

만사는 다 그러한 것이지요.

말인즉슨 극에 치달으면 아니 되고,

극에 이르면 다 쇠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로써 왕을 풍간(諷諫)을 한 것이다.  


제왕이 말하다.


‘옳구나.’


이내 밤을 패는 연회는 파해지고,

순우곤은 제후의 접대역을 맡게 되었다.


종실에서 술자리가 열릴 때는,

순우곤은 항상 곁에 있게 되었다.” 


(※ 첫 문장은 威王으로 시작하였는데,

마지막엔 齊王으로 바뀌었다.

이는 齊威王으로 양자는 동일한 왕인 것이다.

혹인이 있어 이를 의심하기에 여기 이리 밝혀둔다.

이는 그가 혹 威王을 衛王으로 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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