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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튕기기

소요유 : 2015. 10. 26. 16:58


타향지(打響指, finger snap)


내가 최근까지 15년간 육식을 하지 않고, TV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중이 지키는 계율(戒律)을 내가 새로 세워 그리 한 것이 아니라,

한 생각 일자 바로 행하였던 것이니 남이 뭣이라 하든 나로선 유별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이 계 아닌 계를 파계하게 되었다.

그러자니 가끔 케이블 TV를 볼 때가 있다.

이거 영 매일 매달려 볼 것이 아닌 것이,

우선은 재방(再放)이 쉼 없이 되풀이 되고,

광고가 징그럽게도 많은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혹간 어쩌다 만나는 것,

그게 정보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로되,

한 줌 좁쌀을 얻어먹기 위해,

말 쌀을 내다 팔 수는 없지 않은가 싶다.


거기 어떤 이가 나와 건강식품인지 약 광고를 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더라.


‘딱 좋아!’


이리 기합을 넣듯이 한 마디 질러내는데,

단정적인 말투 하며,

흔히 보는 이웃 아저씨 같은 풍모가,

단박에 사람들을 옭아맬 듯한 기세다.


그런데 이 사람의 손짓이 제법 인상적이다.

갑자기 엄지손가락을 튕기듯 일으켜 세우며,


‘딱 좋아, 여자에겐 더 좋아!’


이리 기세 좋게 말을 뿜어댄다.


순간 나는 구지일지(俱胝一指)를 떠올린다.

나는 전에 이 이야기를 말해둔 적이 있다.

(※ 참고 글 : ☞ 2010/02/22 - [소요유] - 손가락 없는 부처)

이 이야기는 워낙 유명하여,

선사들 마다 자신의 문집에 적어놓곤 한다.

헌데 전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난다.

이번엔 지난번과 약간이나마 다른 버전을 소개해보련다.


俱胝有一童子。每見人問事亦竪指。人謂師曰。和尚童子亦會佛法。凡有問皆如和尚竪指。師一日潛袖刀問童曰。聞你會佛法是否。童曰是。師曰。如何是佛。童竪指。師以刀斷其指。童呌喚走出。師召童子。童回首。師曰。如何是佛。童舉手不見指。忽然大悟。 (禪宗頌古聯珠通集)


구지선사는 동자 하나를 두고 있었다.

매번 사람들이 불법에 대하여 물으면 역시나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사람들이 구지선사에게 일렀다.

화상의 동자는 역시 불법을 배웠습니까?

무릇 물어볼 때마다 화상께서 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것과 같이 손가락을 올립니다.

선사는 어느 날 소매 속에 칼을 숨기고는 동자에게 물었다.

네가 불법을 배웠는지 아닌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더구나,

동자는 그렇다 아뢴다.

선사가 말한다.


‘어떠한 것이 불법인고?’


동자가 손가락을 세웠다.

선사는 칼로 그 손가락을 뎅강 잘라버렸다.

동자는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선사가 동자를 불러들였다.

동자가 돌아오자,

선사가 물었다.


‘어떠한 것이 불법인고?’


동자가 손을 들었으나 손가락이 이미 없음이라,

홀연 크게 깨닫다.


저 광고 속의 사람 하나 있어, 손가락을 쳐들고 있음이다.

시도 때도 없이 매양 저러고 있다.


동자승은 남이 물을 때나 손가락을 쳐들었으나,

저이는 묻지도 않았는데 저 홀로 저리도 줄기차게 손가락을 대차게 들어 올리고 있다.

동자승은 그래도 염치가 남아 있었으나,

저이는 무엇을 구하기에,

타는듯 붉은 털옷 입은 여우가 되어, 

가만히 있는 이를 홀려 꾀며 저리도 친절히 구는가? 


구지선사일지라도 시도 때도 없이 저리 손가락을 쳐들었다면,

진작 스승인 천룡(天龍)으로부터 틀림없이 열 손가락이 모두 잘리고 말았을 터이다.


동자는 손가락이 붙어 있을 때는 불법을 몰랐으나,

정작 잘리고 나자 비로소 깨우침을 얻었다.


저 약장수의 손가락은 자르고 싶어도 자를 수 없음이니,

과시 불노(不老), 불사(不死)의 금강지(金剛指)이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저이는 남에게 묻질 않고,

스스로 주인이 되어 시비여하 간에 외려 답하고 있지 않은가?

옳건 그르건 간에 저 약장수의 손가락은 남에 의해 절대 잘리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뭐 영악하다 하여야 할까나?

아니면 손가락을 잘렸기에 불법을 깨우친 동자승이 될 수 없으니,

영원한 방내지인(方內之人)쯤으로 치부하여야 할까나?


금강보다 더 단단하니 굳센 손가락을 들어 올렸으되,

중인(衆人)은 그저 물두꺼비 형상을 하고 눈만 껌벅이고 있구나.


구지의 칼을 빌려오지도 못하고,

모니터 저 태허환경(太虚幻境) 속으로 들어가지도 못하며,

그저 호주머니 속 돈만 만지작거리고 있다면,

그게 청맹과니 당달봉사와 무엇이 다르랴?


吾得天龍一指頭禪,一生用不盡。


내가 천룡(스승) 일지두선을 얻어,

일생 써먹었으되 다함이 없었다.


구지선사가 입적할 때 남긴 말씀이다.


저 약장수 역시 엄지손가락 하나 쳐들어,

약을 팔고 팔아 다함이 없이 돈을 벌 것인가?


이 물음에 바로 답하려면,

과연 그대 손가락은 온전한가?

먼저 그대 자신에게 이리 물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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