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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를 팔다

소요유 : 2015. 12. 28. 14:15


내가 오늘 대한 글 하나.

여기 옮겨 둔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자비를 팔다>(김정환 옮김, 모멘토 펴냄)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마더 테레사는 말기 암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던 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다. "당신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처럼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당신에게 입 맞추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녀 자신은 심장 질환 및 노환과 싸울 때 서양에서 가장 우수하고 값비싼 병원들에서 치료받았다는 사실에 유의하자). 이 아이러니가 지불해야 할 대가를 짐작하지 못한 채 그녀는 환자의 대답을 전했다. "그렇다면 그 입맞춤을 제발 멈추라고 말해주세요."

너무도 절박하고 고통스러운 극한 상황에 처한 많은 사람들이 마더 테레사에게 바라온 바는, 그녀가 저러한 형이상학적 포옹을 좀 삼가고 실제 고통에 더 귀를 기울여 달라는 것이다.

(프레시안)


나는 근래 천주교 수사회의 활동을 곁에서나마 지켜볼 기회를 가졌다.

아직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저 분들이 아니면 가난하고, 고통에 처해있는 이들이 어디에서 편안함을 구할 수 있었을까?

이런 의문을 가진다.

내가 처에게 말한곤 한다.


'불교, 천주교, 기독교 이 삼자 중에서 내가 제일 신뢰하는 종교는 천주교이다.

이 동토의 땅에서 저들처럼 가난한 이, 불쌍한 이들을 위해 구체적인 실천 현실에 앞장 서는 종교를 아지 못하겠다.

그래서 저분들이 귀하고 고맙다.'


나는 종교가 없다.

시골에 가면 '여호와의 증인'이 찾아오곤 한다.

한 분은 서울에 있는 내게 전화를 하며 만날 약속을 정하자고 하기까지 한다.

내 그를 그저 담담하니 대할 뿐,

반겨 맞지도 않지만, 싫어하지도 않는다.

다만 성실하게 임한다.


孟子之滕,館於上宮。有業屨於牖上,館人求之弗得。

或問之曰 若是乎從者之廀也?

曰 子以是為竊屨來與?

曰 殆非也。夫子之設科也,往者不追,來者不距(拒)。苟以是心至,斯受之而已矣。


"맹자가 등나라 상궁(별궁)의 여관에 들었다. 

여관 사람이 창문 위에 삼던 신을 두었는데, 찾다 못 찾았다.

어떤 이가 맹자에게 물었다.


'종자가 가져간 것이 아닐까요?'


맹자가 답하길 이러 하였다.


'너는 그들이 신발을 도둑질하러 왔겠다 생각하는가?'


그 자가 말하다.


'그게 아닙니다. 선생은 학문을 가르치시는데 가는 자는 붙들지 않고, 오는 자는 막지 않는다 하시니,

진실로 이리 도둑질하려는 마음으로 온 이도 그냥 받아들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往者不追,來者不拒。


"가는 자 붙잡지 않고, 오는 자 막질 않는다."


그저 그를 그리 맞을 뿐이다.


저 여호와증인은 아마도 나를 가망 신자로 여기고 있을 터이다.

허나, 내가 가는 길은 이미 예비되어 있음이라,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간 걸어온 역사적 축적의 내용 때문이다.

이 내용을 해체할 만한 외적 충격을 나는 아직 그 누구로부터 받은 적이 없다.


그의 길은 그가 가는 것이요.

나의 길은 내가 가는 것이니,

여기 시비(是非)를 가릴 일이 있으랴?


是非審之於己,毀譽聽之於人,得失安之於數。


그러함이니 이런 말씀이 전해지지 않던가?

이에 대하여는 진즉 쓴 다음의 글을 참고하라.


☞ 2013/12/24 - [소요유] - 안지어수(安之於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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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玄武 2015.12.29 23:12 PERM. MOD/DEL REPLY


    선생님!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전율이 일도록 명쾌하십니다. 선생님 블로그에 오면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학 모가지처럼 늘어집니다. 懸頭刺股라 했는데, 송곳은 타스로 사올 수 있지만 넓적다리를 찌를 엄두는 못 내서 망설입니다. 평생을 張三李四로 보낼 팔자인 게지요. 용기 없는 것을 팔자타령으로 돌리는 요 중늙은이 꼴을 보세요.

    그동안 인터넷도 안하고 그냥 멍하게 무책임하게 정신 줄을 노아 두었습니다. 냅 둬도 세상은 잘 가더군요. 그래서 이제 연말이 되었기로 이렇게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남은 며칠 마무리 잘하시고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길 바라오며 ‘불루베리’ 농사가 잘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사이공에서 玄武 배상 -

    사용자 bongta 2015.12.30 11:37 신고 PERM MOD/DEL

    선생님 이리 다시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주신 현두자고란 말씀을 들으니,
    저는 경허 스님이 떠오릅니다.
    당대 제일의 강학이었는데,
    어느 날 이를 박차고 토굴 안에 들지요.
    그리고는 턱 밑에 송곳을 받쳐놓고는 잠을 쫓으며 참선을 합니다.

    문둥이 여자와 한 방에서 자고,
    뱀을 방 안에 들여 같이 살기도 하고,
    개고기 먹고, 술 처먹고,
    이리 제 마음껏 한 세상 휘젓고는 서산의 지는 해처럼 사라집니다.

    김성동의 만다라에서도 지산은 술 처먹고, 계집질 하는 등,
    온갖 만행을 일삼다 끝내는 눈밭에 쓰러져 죽고 맙니다.

    헌데, 이들만 치열하게 사는 것만도 아닌 게,
    제가 주변을 둘러보니 기실 중생 모두가 사는 게 만만치 않더군요.
    저희 부부가 돌보는 버려진 길고양이 두 마리.
    얼굴은 퉁퉁 붓고, 모진 추위에 몸이 언 채,
    지붕 위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습니다.
    녀석들이 밑으로 내려오지 않아,
    제 처가 사다리 타고 올라 매일 밥을 줍니다.
    아, 도대체 사는 것이 무엇이관대,
    저리들 모진 세상을 건너고 있음인가?

    경허나 지산은 술이라도 마음껏 처먹고, 계집이라도 끼고 살았지만,
    저들 고양이들은 어이하여 저리 진저리치는 세상을 그저 견디어내고 있어야 하는가?
    아, 아지 못할세라.
    이 모진 세상의 비밀을.

  2. 玄武 2015.12.29 23:16 PERM. MOD/DEL REPLY


    저는 무신론자입니다. 뒤집어보면 유신론자 같습니다. 신이 너무 많아서 망설이는 것 같거든요. 월출산 서편 자락 대밭 골, 오백 살 자신 당산할아버지도 아직 건제 하시고, 은은한 종소리로 아침과 저녁을 알려주시던 마을 뒤 산사 부처님도 나 몰라라 한다면 당장 싸가지 없는 놈이 될것이며, 우리나라 민주주의 한축을 이끌어주신 정의사회구현 신부님들의 용기도 허투루 볼 것이 아니거든요. 또 멀고 높게만 볼 것이 아니라 저의 삶의 근본을 있게 한 조상님들을 잊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믿음에 대해서 뒤죽박죽인 저에게 운동이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이렇게 묻는 이가 있었어요.


    ‘어느 종교를 가지고 계십니까?’
    ‘제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 종교라고요?’
    ‘제가 믿으면 제 종교 아닙니까?’

    ‘아하! 그게 아니고 어느 신을 믿느냐고요?’
    ‘아네! 저는 어머니 신을 믿습니다.’
    ‘어머니 신이라시면 그럼.., 가톨릭?’
    ‘아니오! 난 玄武지 예수가 아니거든요.’

    사용자 bongta 2015.12.30 11:38 신고 PERM MOD/DEL

    저의 예전 글 한 토막을 다시금 상기해봅니다.
    주신 말씀이 바로 관세음보살의 말씀과 매 한가지군요.

    “장삼은 매일 절에 가서 불공을 드렸다.
    그는 원(願)을 세우길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친견(親見)하는 것이었다.
    정성이 통하였음인가?
    어느 날, 드디어 관세음보살이 나타났다.

    장삼은 너무 기뻐서 수없이 절을 드렸다.
    그리고는 평소 궁금한 것을 여쭈었다.

    ‘관음보살님도 혹시 참불(參佛)을 하십니까?’

    ‘그렇다.’

    ‘어느 佛을 모십니까?’

    ‘관음보살이니라.’

    ‘관음님은 자신이 관음이시지 않습니까?’

    ‘남에게 비느니 자신에게 빌어라.
    사람은 부처께 빌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빌어야 하느니,
    자신이 바로 부처인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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