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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설(饒舌)

소요유 : 2016. 4. 21. 23:17


요설(饒舌)


말이 많은 상태를 일러 요설이라 한다.

보통, 이는 부정적으로 쓰인다.

그런데 주의할 것이 있다.

말이 많다고 누구의 경우라도 요설이라 할 일은 아니다.

나는 지금 요설 중에서도 노인(老人) 요설을 경계하고자 이 글을 쓴다.


가령 한참 말을 배우는 아이라면,

이를 무작정 나무랄 것이 아니라,

그저 가만히 두고 볼 일이다.

그 아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바를 질료로 하여,

제 머릿속에 넣고 맷돌질을 하여 자신 만의 세계 하나를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아이는, 

어쩌다 이지러진 것, 어쩌다가는 바른 것,

어쩌다가는 흉한 것, 어쩌다가는 아름다운 것.

그리 짓고, 허물고 그러면서 세계를 그려나가는 법.


비오는 날,

주모가 녹두 빈대떡을 부쳐,

막걸리 한 병을 곁들여 내오면,

어른들은 잊어버렸던 옛 회상(回想)의 길로 들어선다.

이때엔 말을 할 일이 아니다.

그저 눈을 감고 잠겨들 일이다.

그 회억(回憶)의 강 속으로,


말이 많아지면,

기운이 흩어지고,

마음이 산만해지며,

추해진다. - 노추(老醜)


사람이 늙으면,

그저 지그시 눈을 감고,

마음으로 살 일이다.

입을 열고 말을 부리면,

이내 사태(沙汰)가 일어난다.

자신 속에 들은 모든 것을 게우듯 토해낼 뿐,

좀처럼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외부 정보는 더 이상 들어오지 않고,

자신의 것은 쏟아내기만 할 뿐,

공부(工夫)에 힘을 들이지 않게 된다.

자신은 정체(停滯) 상태이고,

마주한 상대는 공연히 피곤만 하다.

이를 요설이라 한다.


이것은 특히 늙은이에게 심하다.

따라서 이를 특별히 노인 요설이라 한다.

이를 질환(疾患)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沙門位而不發聲音,是故不生起慢心,不表示尊大,捨慢心,捨尊大,正直,不饒舌,不誇大。

(彌蘭王問經)


“사문(沙門)의 위(位)에 있는 사람은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만심이 생기지 않고, 존대한 티를 내지 않으며,

만심을 버리고, 존대를 버리며, 

정직하고, 수다를 떨지 않으며, 과장을 하지 않습니다.”


(※ 沙門 : 沙門原義為能捨離世間貪愛、斷除停止種種不善之惡法 ...

세간 탐애를 버리고, 선하지 않은 나쁜 법을 끈은 자를 이르나,

후대엔 출가승을 이르게 된다.)


不滿者發聲

充滿者為靜

愚者如空瓶

賢者如滿池

(彌蘭王問經)


“(병처럼)

가득 차지 않으면 소리를 내나,

충만하면 적정(寂靜)에 든다.

어리석은 이는 빈 병과 같고,

현명한 자는 가득 찬 못과 같다.


아, 요설은 가득 들었기 때문에 쏟아내지는 것이 아니라,

비었기 때문에 허전하여 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가을걷이 끝난 들판 허수아비는,

빈 바람에도 찢어진 옷을 휘날리며,

수수깡처럼 우우 소리를 내며 운다.


헌데,

도대체 인생치고,

빈 들판에 버려진 허수아비 같지 않은 자가 있던가?


김성동의 만다라에 등장하는 지산은 운수납객을 넘어,

술 처먹고, 계집질 하며 수수깡, 갈대보다 더욱 서럽게 울었다.

사문(沙門)이라 하여 모두 만지(滿池)인 게 아니다.

때론 공병(空瓶)처럼 허무승(虛無僧)이 되어 세상을 떠돈다.


요즘 현대인들은,

블로그를 넘어, 

트위터니, 페이스북이니 

단, 일 각(刻), 일 분(分)도 참아내지 못하고,

조각 말(片言)을 종일 부려낸다.


아, 가여운 허무승(虛無僧)들.


이쯤 되면,

이것은 요설, 농설(弄舌)이 아니라,

밑 터진 계집 설사(泄瀉)질을 방불하니,

나는 이를 한설(寒說)이라 이르고자 한다.

찬 기운이 서리면,

장부(臟腑)를 범해,

싸내게 되는 법.


말이 목구멍을 넘어,

입 밖으로 비어져 나오려 할 때는,

벌판으로 달려가자.


서산으로 떨어지는 붉은 해를 보며,

헤지고 닳아 얇아진 입술을 다물고,

다만, 제 가슴 속을 응시할 일이다.


오늘 같이 비라도 오시는 날이면,

빈대떡 앞에 두고, 막걸리라도 기우리며,

함구(緘口), 봉심(捧心),

지난날을 회억(回憶)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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