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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R 이후

소요유 : 2016. 5. 4. 19:27


TNR 이후


길고양이 두 마리에 대해 얼마 전 TNR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다.

(※ 참고 글 : ☞ 2016/04/22 - [소요유] - TNR)

다행스럽게도 녀석들이 며칠 후 무사히 귀환하였다.

그런데 풀어놓자마자, 녀석 중 하나가 자리를 이탈, 도망을 가버렸다.

안전에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그 동안의 친절을 한껏 의심하였을 것이다.

역시 사람은 미더운 존재가 아니야, 

아마도 이리 여겼을 터이다.


연신 녀석을 불렀으나 자취가 묘연(杳然)하다.

녀석을 꾀려고 파우치로 포장된 맛있는 고양이 밥을 사러 동물병원에 들렸다.

이른 아침이라 병원 1층 로비는 한가하다.

2층에 있는 원장 의사와 통화를 하였다.


그로부터 TNR 이후 귀환 시 생기는 문제에 대한 정보를 혹 들을 수 있을까 싶었다.

허나, 그는 이 분야에 대해선 공부가 거의 되어 있지 않았다.  

다만 발사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단박에 발사가 무슨 뜻이지 알아 듣는다.


발사(拔絲)


아마도, 수술실을 뽑는다는 뜻일 것이다.

원래 발사는 중국요리에 등장하는 고급기술인데,

설탕이나 꿀을 실처럼 뽑아내는 조리용어이기도 하다.


전문용어가 전문인의 입에서 나오면,

비전문인들은 투덜대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전문인들을 비난한다.

어려운 말을 써서,

비전문인들이 자기들 영역을 쉽게 넘보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라고,

분개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전문인들이 전문용어를 쓰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다.

그저 폼 잡으려 하는 것도 아니요,

이유 없이 국외자를 골탕 먹이려는 것도 아니다.


우선은 집단 내적 요구 때문에 그리 사용하게 된다.

서로 간 소통을 원활히 하고, 신속하게 하기 위해선,

의미 함축이 잘되어 있는 용어를 새로 만들어 내거나, 

찾아내 사용하게 된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물론 보안 유지를 위해,

외부에서 잘 알 수 없는 용어를 부러 쓸 경우도 있다.


한편, 외부자와 문제를 공유하고 소통하기 위해선,

전문 용어를 다른 쉬운 말로 풀어 쓸 필요가 있다.

이 때는 열심히 용어 변환을 시도하곤 한다.

가령 판결문에 들어 있는 어려운 용어를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순화시키자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전문인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일이 되기도 한다. 

새로 만들어진 용어서 충분한 개념을 담지하지 못할 수도 있고,

두 가지 용어를 동시에 사용하여야 하는 부담이 있다.

따라서 시간이 흐르면, 원래의 상태로 복귀하곤 한다.


다시 돌아와 이야기를 마저 잇는다.

내게는 발사가 문제가 아니라,

당장은 도망간 고양이의 귀환이다.

맛있는 냄새도 피워보고, 고급 사료도 가져다 놓았는데,

녀석은 며칠이 지나도 돌아온 자취 하나 남기지 않고 있다.


TNR 이것이 결국은 사람 좋자고 한 것이 아닌가?

저들의 묘생고(猫生苦)를 덜고자 한다는 것은 허울 좋은 핑계가 아닌가?

이런 회의가 들기도 하고,

녀석을 자칫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에 시달렸다.

게다가 녀석은 얼마나 가여운가?


녀석은 TNR을 마치고 월요일에 돌아왔는데,

풀어놓자마자 지붕을 타고 사라져버렸다.

이제나 저제나 노심초사하는데,

화요일, 수요일이 지나고 목요일이 되자,

만사휴의(萬事休矣)라,

녀석은 우리를 저버리고 영영 떠나고 만 것이 아니랴?


그러함인데,

금요일이 되자,

녀석은 태연히 자리로 돌아와 시침을 떼고 앉아 있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얼굴은 무표정해졌고,

애교도 부리지 않았다.

배가 고프니 도리 없이 네들 신세는 지지만, 

이제부터는 마음을 주지는 않겠다는 태도가 아니겠는가?


그렇더라도,

살아 돌아와 준 것만도 고마울 따름이다.

이젠 아무 걱정 없이 마지막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재미나게 살길 바란다.


발사


구조협회에 문의를 하니,

수술한 지역 병원 사정에 따라,

흡수사를 쓸 수도 있고, 비흡수사를 쓸 수도 있단다.

내부는 모두 흡수사를 쓰지만,

외부(털가죽 피부)는 병원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로는 고양이가 입으로 뜯어버리기 때문에 절로 뽑힌다고 한다.

별반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투이다.

그런데 말의 분위기가 좀 미덥지가 않다.


하지만 길고양이가 아닌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의 경우,

수술을 하고 나서는 병원에 가서 발사를 해준다.

당연히 실이 몸에 남아 있는 것이 좋을 턱이 없다.


실밥을 뽑다가 또 도망갈 수도 있으니,

함부로 해줄 수도 없다.

시간이 지나 좀 안정이 되면,

그 때 가서 좋은 도리를 찾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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