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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와 물여우

소요유 : 2016. 5. 12. 11:12


처음 보는 사이에 나이를 물어보고, 출신 본향(本鄕), 관향(貫鄕)을 가르고, 

학교를, 직업을 따지는 일에 재바른 이들이 있다.


이러할 때의 경험을 나는 여럿 갖고 있다.


특별한 일없이 마주쳤을 때,

과제나 주제를 중심으로 한 의론을 일으킬 꺼리가 없다.

그러한즉 자리가 버성겨지기 일쑤다.

이 때 사람들은 그의 얼굴이나 풍모에서 풍기는 이미지를 건져 올리고,

이내 나이, 학력, 경력 등을 궁금해 하곤 한다.


그런데, 이런 것은 좀 안일하다.

때론 남의 일에 참견을 하게 되는 일이 되며,

내력을 캐어 낸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게다가 상대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싶지 아니 할 때는,

더욱 더 제 분수를 넘겨 결례를 저지르는 짓이 된다.


혹자는 변(辨)하여 이르길,

이로써 보다 친근해지고, 교류를 넓히고자 함이니,

나무랄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남의 신분 정보를 캐묻기 전에,

자신의 신분을 먼저 밝히는 것이 도리다 이르는 이도 있다.

하지만 상대의 입장에선 이리 제 신분을 헐어 거래를 트는데,

자신의 신분을 따라 밝히지 않는 것은 예가 아니니,

부득불 원치 않아도 응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허니, 이 또한 선의일지라도 이로써 양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짓궂게 보는 이도 있겠지만,

저리 상대의 정보를 알고자 함은 나약함의 발로일 수도 있다.

상대를 기준으로 자신을 견주고자 하는 뜻이 감추어져 있을 수 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상대를 내 키(簸)에 얹어두고는 들까불고 싶어지는 심리 저변에는,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거나, 불안이 내재되어 있기 십상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자신을 과시하고 상대를 능멸하기 위한 때도 있다.

어쨌건, 이 양자는 모두 레퍼런스를 외부에서 구하고 있음에,

그 비굴한 근본 심리적 동태(動態)는 일양(一樣)하다고 하겠다.


헌데, 내가 겪은 일은 이 정도가 아니다.

나이를 속이거나, 나이를 핑계로 넘보려 하는 이를 대한 적이 적지 않다.


시골에서 사귄 이가 하나 있다.

농민대학에서 만났는데, 어쩌다 농장으로 찾아왔다.

이이가 내 나이를 묻고서는 자신이 나보다 나이가 둘이 많단다.

그러면서 자기가 형님할 테니 나보고 아우가 되란다.

나는 나이가 나보다 단 한 끝이라도 많으면 그를 대우해 예를 갖추길 소홀히 한 적이 없다.

그렇다한들 내 체면이 구겨질 일도, 그리 생각할 까닭도 없다.

둘 중에 하나가 나이가 많으면, 나머지는 당연히 적은 법이며,

반대로 하나가 나이가 적으면, 상대는 의당 많게 된다.

그러함이니 설혹 나이가 적다한들 이게 뭣이 문제가 되랴?

앞뒤로 나눠 하나는 먼저 태어나고, 하나는 나중에 태어난 것이니,

이는 피차간 흉도 아니요, 책잡힐 일도 아니며, 뽐낼 일도, 위세를 부릴 일도 아니다.

그저 서로 간 인륜(人倫)의 도리를 다하면 될 일이다.


헌데, 인격도 모르고, 품덕도 아지 못하는 이에게 내 어찌 형님이라 호하랴?

두 살 위가 아니라 설혹 수십 년 앞질러 묵은 이라 한들,

내 마음으로 승복하지 않는데 저 말을 아무에게나 내놓고 더럽힐 수 있겠음인가?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나중 농민대학에서 무슨 일로 문서를 작성하는데,

그이의 나이가 실제론 나보다 둘이 아니라 하나가 많은 것이,

우연히 내 눈에 포착이 되었다.


“그래, 그럼 원대로 네가 형님 먹거라.”


내심 내 이러하며, 실소를 금치 못하였다.


바둑도 자작가(自作家)를 지으면 필패인데,

스스로 형님이 되고, 두목이 되면,

그 누가 아우가 되고, 졸개가 되어 따르랴?


한 번은 또 어떤 이가 내 앞에서 술을 먹게 되었는데,

이이가 취기가 한참 오르자 나이를 묻는다.

그러더니 자기가 나보다 여섯이 많다며,

대선배라며 호기를 부린다.


대개 남 앞에서 나이를 속이거나, 나이를 들어 호언(豪言)을 늘어놓는 이들은,

위인(爲人)이 그저 평완(平緩)하거나, 한심(寒心), 용렬(庸劣)한 편이다.

그렇지 않다면 대개는 약삭빠르고, 교활하다.


“天下有達尊三:爵一,齒一,德一。朝廷莫如爵,鄉黨莫如齒,輔世長民莫如德。”

(孟子)


“천하에 달(達)한 존귀한 셋이 있다.

벼슬이 하나요, 연치가 하나요, 덕이 하나다.

조정엔 벼슬만한 것이 없고, 

향당엔 연치(年齒)만한 것이 없고, 

세상을 돕고 백성을 기르는 데는 덕만 같은 것이 없느니.”


동양은 자고로 나이든 이를 소홀히 대하지 않았다.


爵位, 高齡, 德行. 趙岐 注 : 三者天下之所通尊也。


동한(東漢)의 경학가(經學家)인 조기(趙岐)는 이를 주해하길,

삼자를 통존(通尊)이라 하였다.

원문의 달존(達尊)과는 거의 같은 뜻이다.

존귀한 것으로 천하에 통한다는 말이다.


중용을 보면, 和也者,天下之達道也。란 말이 나온다.

여기 달도(達道)에서 달(達) 역시 (도에) 통한다란 뜻이다.


昔者,有虞氏貴德而尚齒,夏后氏貴爵而尚齒,殷人貴富而尚齒,周人貴親而尚齒。虞夏殷周,天下之盛王也,未有遺年者。年之貴乎天下,久矣;次乎事親也。

(禮記 祭義)


“옛날, 유우씨(有虞氏)는 덕을 귀히 여기더라도, 나이든 이를 숭상했으며, 

하후씨(夏后氏)는 벼슬을 귀히 여기더라도, 나이든 이를 숭상했으며, 

은나라 사람은 부유함을 귀히 여기더라도, 나이든 이를 숭상했으며, 

주나라 사람은 육친을 귀히 여기더라도, 나이든 이를 숭상했다.

우하은주는 모두 천하의 흥성한 왕(도)의 나라였기에,

나이든 이를 버리는 일이 없었다.

나이든 이는 천하에 귀하다. 오래어라!(우이래로 오래되었다는 뜻)

어버이를 섬기는 일의 다음이니라.”


예기에 이르면 나이 든 것 자체에 귀한 가치를 두었다.

우하은주 차서로 내려갈수록 각박해지고, 도가 허물어져 간다.

따라서 귀하게 여기는 덕목도 德 → 爵 → 富 → 親으로 차차 속되게 변한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나이 든 이를 귀히 여김에는 변함이 없다.


이는,

強不犯弱,衆不暴寡이라,

곧 강한 것이 약한 것을 범하지 않고, 다수가 소수자에게 폭력을 쓰지 않고자 함이다.


헌데, 자작하여 스스로 나이를 높이고,

나이 많음을 기화로 위세를 부린다면,

이 어찌 弱하고 寡하다 이르겠음인가?

이는 그렇키는커녕 외려 強하고, 衆한 것을 홀로 취하고자 함이다.


謙卑致勝。驕傲必敗。以誠待人。信從心服。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면 승리를 가져오고,

깔보고 교만하면 반드시 패한다.

성실하게 사람을 대하면,

믿음으로 따르고, 마음으로 복종한다.”


사람을 믿음이 아니라,

속임으로 대하니,

설혹 오늘을 가릴 수 있겠지만,

내일 밝은 해가 떠오르면, 어찌 감당하려 함인가?


내 이에 불현듯 다음 성어를 떠올린다.


含沙射影


역(蜮)이라 불리우는 동물은 물속에 산다.

수중에서  모래를 머금고 있다가 사람의 그림자를 향해 쏘면,

그 사람에게 병이 생기게 한다고 한다.

두통, 발열을 일으키다가, 심한 경우 죽는다고 한다.

나는 일찍이 이 동물에 대하여 글을 쓴 적이 있다.

역(蜮)은 우리말로는 물여우라 한다.


(물여우, SOGOU)


이 물여우는 옛 문헌 여러 곳에 소개되고 있다.

이번엔 포박자의 내용을 알아보며 잠시 일어나는 흥미를 돕고자 한다.


又有短狐,一名蜮,一名射工,一名射影,其實水蟲也,狀如鳴蜩,狀似三合杯,有翼能飛,無目而利耳,口中有橫物角弩,如聞人聲,緣口中物如角弩,以氣為矢,則因水而射人,中人身者即發瘡,中影者亦病,而不即發瘡,不曉治之者煞人。其病似大傷寒,不十日皆死。

(抱朴子)


“... 또한 단호(短狐)가 있으니, 일명 역(蜮),사공(射工), 사영(射影)이라 한다.

기실 물벌레이다. 

형상이 유지매미와 같거나, 삼합배와 같은데,

날개가 있어 날 수 있으며,

눈이 없어 귀가 밝다.

입 안엔 가로로 된 각노(角弩)가 있다.

사람 소리를 들으면, 입 안의 각노를 이용하여,

기운을 화살로 삼고 쏘는데,

물속에서 사람을 쏜다.

이를 맞은 사람은 즉시 발창(종기, 부스럼)이 된다.

그림자를 맞아도 역시 병이 나는데,

이 경우엔 즉시 발창이 되지는 않는다.

이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급살로 죽는다.

그 병은 마치 큰 상한(傷寒) 병과 유사하다.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모두 죽는다.”


사람이 하나 있어,

자신의 나이를 거짓으로 숨기고,

사람을 대하는 자는 나이 뿐이랴?

필요가 생기면 언제고 그 이상의 것을 속이고, 상대를 해할 위인이라 하겠다.

저자야말로 물여우라 할 터.

경계할 일이다.


내 주변엔 이리 나이를 속이고, 제 욕심을 챙긴 이가 더 있다.

저만 모르고 있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


“그래, 그럼 원대로 네가 형님 먹거라.”


물여우의 독화살을 맞지 않으려면,

녀석이 노는 물가로 나아가지 않으면 된다.

내가 물여우의 신분을 아는데,

저 독화살을 어찌 두려워 하랴?


그저, 놔둘 일이다.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大學)


“소위 그 뜻을 성실하게 하려는 자는,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그러함이니 남 앞에서 제 나이를 속여, 

무엇을 도모하려는 위인은 성실한 이가 아니다.

경계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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