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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음(妙音)

소요유 : 2016. 5. 30. 19:07


밭에 나가 예초기를 돌리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달가닥 하며 금속성 소리가 난다.

바로 예초기를 끈 후 살피니 금속 부품이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엔진 배기구에 달린 소음기가 탈거(脫去)된 것이다.

이것 볼트로 조여 있어 혹 풀려버릴 수는 있겠지만,

볼트 기둥이 부러져 있으니 흔치 않은 일이다.


수리점에 싣고 갔다.

근 1년 만에 들린 곳인데 옆 자리로 옮겨가 있다.

새로 바뀐 젊은 아낙이 맞이하는데 말씨가 사근사근 시원하다.

먼저 점포 주인은 사업을 거두고,

대신 예전 가게에서 일하던 점원이 이 일을 하게 되었다 한다.

이런 응대는 근래 대해본 적이 없다.

순간 배 씹을 때 느껴지는 사각사각한 감각이 의식 속에서 되살아난다.


배를 씹으면 시원한 단물이 나오기도 하지만,

사각 부서지며 나는 소리, 그 감각이 치근(齒根)을 통해 악골(顎骨)에 전해지며,

이어 관골(髋骨), 측두골(側頭骨)을 지나 두정골(頭頂骨)로 치오른다.

일순(一瞬) 신명(神明)이 맑아지고, 신령(神靈)이 깨어난다.


이런 감각은 배를 먹는다고 누구나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슭부터 산정까지 오르는 감각 통로가 바로 열러 있어야 한다.

집부명고(執桴鳴鼓)

무릇 북소리를 제대로 내려면,

고수(鼓手)가 북채(桴) 쥐는 법을 알아야 한다.


내가 여기 시골 동네로 와서,

별별 험한 일을 다 겪었다.


우리 밭을 근 20여 년 동안 거저 빌려 쓰고는,

나중에 제것도 아닌 공동 우물, 그것도 현재는 폐정(廢井)을 두고 물세를 내라는 심술 사나운 늙은 할머니가 있었고,

우리의 땅을 두고는 도로로 거저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낮도깨비 같은 읍장, 산업계장도 있었으며,

술 처먹고는 느닷없이 방안으로 뛰어 들어와 멱살을 잡는 잡놈도 있었다.


그런데, 배 씹는 소리를 하는 이들을 만나자,

이런 천둥벌거숭이, 무지렁이, 괴물들만 사는 세상에 이런 이가 아직 남았는가 싶었다.

경이로운 일이다.

기다리는 동안, 마음속으로

이 젊은 부부의 사업이 잘 되길 축수하였다.

마음이 일어 아직 필요도 없는 예비용 기계 부품도 주문하였다.


연신 손님이 들어오자,

주인은 예초기를 하나 내어주며 대신 사용하고, 돌아가 기다리란다.

농장에 돌아와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고치긴 하였는데 엔진이 고장이 났단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엔진이 과열되고,

급기야 소음기 볼트를 녹여 떨어뜨린 것이리라.

이 때 엔진을 바로 꺼버리자, 피스톤이 실린더 벽에 붙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기사가 이것을 사전에 확인도 하지 않고,

이젠 쓸모도 없어진 소음기 붙이는 작업에 공을 들인 것이다.

달라는 대로 공임을 주고, 군소리 없이 고장 난 예초기를 들고 돌아왔다.

예초기를 다시 하나 장만해야겠다.


“빌려준 예초기 임대료라 여기고 돈을 주세요.”


쓰지도 않았고, 

내가 원한 것도 아니라,

거저 빌려준 것으로 알았는데,

이리 말하니 아직 서투른 구석이 남아 있구나 싶었다.


“엔진 이상 유무를 먼저 점검하고, 소음기를 고쳤어야 하는데, 제 불찰입니다.

(하지만, 나사 탭 새로 깎고, 용접도 하느라, 고생을 하였습니다.)”


이리 말하였다면,

배 맛이 마지막까지 사각사각거리며,

정수리 백회(百會)를 열며 하늘로 날아올라,

천고(天鼓)를 두드리며, 종일 묘음(妙音)으로 화(化)하였을 것이다. 

 

天樂不鼓自鳴。


“하늘의 음악은 두드리지도 않았지만, 제 스스로 소리를 낸다.”


妙音觀音應化皆能現十界身自天人獄鬼畜脩羅名六凡聲聞辟支菩薩佛名四聖是為十界。

(妙法蓮華經)


묘법연화경을 보면,

묘음, 관음보살은 십계(十界)에 

응신, 화신으로 나투신다 하였다.


여기서 십계란 천상, 인간,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성문, 벽지, 보살, 불계를 말하니,

온 세상을 뜻한다 하겠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관음(觀音)의 화신이요,

귀에 들리는 모든 존재는 묘음(妙音)의 응신인 것이다.


이리 볼 때, 묘음, 관음은 결국 온 세상의 제(諸) 존재라 하겠다.

따라서 묘음, 관음은 나 외의 별격으로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바로 묘음이요 관음의 화신(=응신)이 되는 것이다.

이를 자각하게 되면,

말을 할 때, 묘음(妙音)을 내야 한다.

묘음은 달리 불설(佛說)이라고도 한다.

여기 불설이라 하면,

부처의 말씀만이 아니라,

묘음보살의 말씀이기도 하고,

관음보살의 말씀이기도 하며,

이내 너와 나의 목소리이기도 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배 맛처럼 사각사각 시원하고도 신묘한 묘음을 내며 살기를 빌어본다.


오래간만에 묘음을 듣게 해준,

젊은 부부의 사업이 잘 되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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