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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베리 첫 수확과 믿음의 실제

소요유 : 2016. 6. 17. 12:51


내가 최근 블루베리를 올 처음으로 조금 수확하여 서울 집으로 가져왔다.

이중 일부를 이웃에 있는 모 종교 단체에 가져다 드렸다.


거기엔 몸이 불편한 분들 여럿이 모둠 살림을 하고 계시다.

거길 지나다, 가끔 옥상 위에서 목발을 짚고 먼 곳을 쳐다보는 이들을 보게 된다.

몸이 불편한즉, 마음조차 기운이 없는 바라,

눈이 머무르는 곳 역시 정처(定處)가 없다.


내가 블루베리를 수확하면,

이 분들에게 가져다 드려야지 이런 마음을 전부터 품고 있었다.

큰 재보를 가진 게 없는 이라,

이리라도 저분들을 도와드릴 수 있다면,

내겐 여간 다행스런 노릇이 아니리다.


첫 수확한 블루베리는 언제나 그러하듯,

놀라움과 기쁨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서울로 가져오자마자 한 팩을 가지고 갔다.

거기 일하시는 분에게 하나를 드렸다.

하였더니 그 분 말씀이 이것 나 혼자 다 먹어야지 이리 말한다.

그래 농담인줄 알고 그럼 혼자 다 드시라며,

우정 호기롭게 말하면서 너털웃음을 지었다.


아무려면 첫 수확인데,

이를 혼자 다 드시련가 싶었다.

나로선 적은 양이지만 우선 첫 수확 블루베리를 나누는 기쁨을 함께 하고 싶었던 바라,

거기 계신 수 십 분들과 함께 몇 알씩이라도 들면서,

헌소(喧笑) 떠들며 웃으면 이 아니 기쁘랴?


우리 블루베리는 귀하다.


세상에 유기농을 짓는 분이 많다 할 수 없으며,

이를 넘어 자연재배를 하는 이는 더욱 희귀하다.

나는 주말농사 시절부터 밭을 만들어왔다.

아니 자연 상태로 되돌리려 원(願)을 세웠음이다.


지금 우리 밭은 풀이 무성하여 안으로 들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 가운데 블루베리가 제 꿈을 영글리며, 보랏빛 밀어(密語)를 속삭이고 있다.

첫 수확이라 내 이 비밀 정원에 몰래 숨어 들어가 한 줌 가져온 것임이라,

어찌 귀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블루베리 품종 중 풍미와 향이 제일 좋다는 스파르탄임이라,

이것 가져와 우리 처와 함께 모두 먹어도 부족한데,

첫 순정, 첫 사랑, 숨겨둔 보물 같은 우리 블루베리,

이를 먼저 갈라 그 분들을 대접하고 싶었다.

이것은 우리의 기쁨이기도 한 것이다.


헌데, 오늘 그 일하는 분을 만나 보았는데,

혼자 다 먹었단다.


아, 아무렴, 첫 수확인데,

이를 방 안에 들어가 혼자 다 드실 수 있음인가?

수 십인이 계신 곳인데, 몰래 먹는다한들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지난해에도 함께 나누었으니,

새삼 남우세스럽게 여러 분과 나눠 잡수시라 강다짐을 할 것인가 말이다.


이것 배달사고라 하여야 하는가?

나의 불찰인가?

원장님에게도 죄송하고,

거기 계신 여러 분들에게도 미안스럽기 짝이 없다.


난 첫 블루베리를 대하면, 감사함과 기쁜 마음이 인다.

몸이 불편한 저 분들도 첫 블루베리를 먹으면,

몸과 마음이 한결 가볍고 편안해지시지 않으랴? 하는 기대가 있었다.


내, 이리 사람을 알아가누나,

차이고, 깨지며, 그리 뒤늦게 깨닫고 있음이니,

지인지감(知人知鑑) 내 거울은 이리도 때가 많이 끼어 있구나.


鑑往知來


지난 일에 비추어 앞일을 안다 하였음이니,

차후 공연한 걱정을 더하여야 할 판이다.

앞으로 몇 차 더 전할 예정인데,

다른 방도를 강구하여야겠다.


(src : http://blogs.yahoo.co.jp/niteruhitotoyou1103101/folder/1447880.html)


人而無信,不知其可也。大車無輗,小車無軏,其何以行之哉?

(論語)


“사람이 믿음이 없으면, 그 옳음(능력)을 알 수 없으며,

큰 수레에 끌채가 없고, 작은 수레에 끌채가 없으면, 어찌 나아가겠는가?”


믿음을 잃으면,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법.


이제, 여기 이야기 하나를 떠올려 본다.


상구개(商丘開)는 범씨(范氏)가 여러 사람들을 잘 대우하는 것을 알고는,

그에 의지하기로 하였다.

허나, 늙고 가난한 그는 무리로부터 비웃음을 받았다.

어느 날, 어떤 이가 터무니없는 말(漫言)을 뱉었다.


有能自投下者賞百金。


“스스로 뛰어내리는 사람이 있으면 백금을 상으로 주겠다.”


商丘開以為信然,遂先投下,形若飛鳥,揚於地,肌骨无毀。


“상구개는 이를 믿고, 먼저 뛰어내렸는데,

몸이 마치 나르는 새와 같이 땅에 슬쩍 떴다.

살과 뼈가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


이러했던 것인데, 

재아(宰我)가 이를 듣고는 공자에게 고하였더니,

공자께서 이리 말씀하셨다.


汝弗知乎?夫至信之人,可以感物也。動天地,感鬼神,橫六合而无逆者,豈但履危險,入水火而已哉?商丘開信偽物猶不逆,況彼我皆誠哉?小子識之!

(莊子)


“너는 아지 못하느냐?

무릇 지극한 믿음을 가진 이는 만물을 감응시키게 할 수 있느니라.

천지를 움직이고, 귀신을 감동시킬 수 있으니,

천지 사방을 가로지르면 다녀도 거스릴 것이 없느니라.

어찌 단지 위험한 것을 밟고, 물과 불에 들어갈 뿐이겠는가?

상구개는 거짓된 것을 믿었는데도 오히려 방해 받질 않았는데,

항차 자신과 외물이 진실된 경우라면 어떻겠는가?

너희들은 이를 잘 알아야 할 것이니라.”


상구개는 거짓일지라도,

믿음을 팔아 신인(神人)으로 추앙을 받았다.

공자는 피아(彼我)가 모두 성(誠)을 다하면,

외물로부터 방해를 받을 바가 없다 하였다. 


헌데,

나는 도대체가 어떤 때는 남을 잘 믿고,

또 어떤 때는 잘 믿지를 않는다.


전자는 처음 만났을 때이고,

후자는 한번 믿고는 그 믿음을 배반당하였을 때이다.

이게 나의 병통이니,

처음부터 상대를 의심하고 조심하여야 하나,

매번 당하면서도, 처음 대하였을 때는 믿음으로 대한다.


왜 나는 상구개를 따르지 못하고 있는가?

아직도 믿음이 부족한 것일까?

아니면 어리석기 때문인가?


게다가, 한번 속으면 다음엔 그를 의심하는 것을 그치지 않는다.

이것 또한 나의 병통이다.


공자는 피아(彼我)가 모두 성(誠)을 다하면,

천하에 거칠 것이 없다 하였다.

이 말씀이야 말로 빛나도록 아름답구나.


헌데, 어째서 당신 자신은 철환천하(轍環天下), 주유열국(周遊列國)하고서도, 

뜻을 펴지 못하고, 빈손으로 고향으로 돌아오시고 말았음인가?


또한, 나 역시 어찌 하여 상구개 같은 신인(神人)을 한 번도 보지 못하였음인가?

내 아무리 견식이 좁고, 위인이 아둔하다 한들,

믿음의 공덕이 저러하다면, 

일평생 상구개를 하나 정도는 만났어야 하지 않겠음인가?


功當其事,事當其言,則賞;功不當其事,事不當其言,則罰。

(韓非子)


“공이 그 일과 합당하고, 일이 그 말과 부합되면, 상을 내린다.

공이 그 일과 맞지 않고, 일이 그 말과 부합되지 않으면, 벌을 내린다.”


한비자의 사상은 인간불신을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 선을 적극 닦는 데는 관심이 없다.

다만 발양(發揚)시켜, 일을 일으키고, 공을 쌓는 데, 있을 뿐이다.


나 자신의 양심 문제나, 수양(修養) 여부를 떠나,

다중(多衆)을 상대할 때는,

한비자의 태도가 현실 적응성이 높은 게 사실이다.


이들 법가가 성악설에 서있다 하지만,

성선설이니 성악설이니 나눠 따지는 일보다,

차라리 저들은 무관심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효익(效益)이 문제지, 선악은 기실 부차적이다.
그렇지만 이들이 선악문제에 무지한 것이 아니다.
외려 어떠한 학파보다 더 깊은 연구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법가는 제 이론을 전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저들의 결론, 그 슬픈 도리를 저들인들 마냥 편히 받아들였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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