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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영원히 사랑하는 방법

소요유 : 2016. 7. 7. 17:23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를 보면 유비(劉備)가 노모를 위해 차(茶)를 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차는 귀하여 그는 칼 끈에 달려 있는 낭간(琅玕)을 상인에게 주고서야 겨우 구한다.

하지만, 이 장면은 三國志通俗演義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요시카와가 소설에서 꾸민 이야기로 보인다.

유비는 서민은 감히 먹기 어려운 차를 어머니에게 드리려,

조상이 물려준 가문의 칼 끈을 장식하는 구슬까지 기꺼이 상인에게 넘긴다.

이는 유비의 효(孝)를 드러낸다.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


유비가 집에 돌아와 차를 노모에게 드리자,

노모는 이를 강물 속에다 버린다.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


어머니가 보인 이런 계유(戒諭)의 소설적 장치는 일본 소설에서 흔히 보는 모습이다.

자주 대하다 보면 식상할 수도 있지만,

이런 장치 구조에 빠지면,

대개는 강한 인상을 받게 되며,

진한 감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내가 이 장면을 상기하는 까닭은 어제 그럴 만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비가 살던 당시 차가 귀하였지만,

오늘 날도 제대로 된 차는 여전히 쉬이 구하기 어렵다.


그리 귀한 차를 내게 주시겠다는 분이 계셨다.

나는 이를 정중히 사양하였다.


왜 그런가?


내가 그 분께 무엇인가를 전해드렸는데,

그 분께서 답례(答禮)를 차리심이라.

이는 내겐 분에 넘치는 고마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以答禮行誼。


“답례로서 정의(情誼) 또는 도리를 행한다.”


인간사 답례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함인데 이를 내치는 나는 얼마나 무례(無禮)한가?


그렇다.


나는 예의와 염치를 모르는 무뢰한(無賴漢)으로 비추었을 터.

하지만 이를 담담히 받아들인다.


내가 그 분께 무엇인가를 드린 것은,

그저 순수한 마음을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이 마음을 그냥 그 자리에 놔두고 싶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당시의 그 자리가 다칠 수 있다.


대가수수(代價收受)는 물론 아니지만, 이를 넘고,

우정어린 답례란 형식도 건너,

그냥 그 순수한 마음자리를 남겨 두고 떠나고 싶었다.


그러니까 지키려고 함이 아니라,

버리려고 함이다.


만약 답례를 받으면,

그 분의 뜻과는 상관없이,

애초의 그 자리를 잠깐이라도 내가 지켜내게 된다.


이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秋天


가을 하늘이 어느 날 내 가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꽉 찼다.

만약 이것을 영원히 껴안고, 남겨 두고자 하면,

사람 꼴이 영 아니게 된다.

필시 그 때의 가을 하늘은 바람 하나 지나자 이내 변하고 말 것이다.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릴 수도 있다.

만약 당시의 가을 하늘이 아름답다면,

그냥 내버려 두고 갈 일이다.


명승지에 가서 열심히 사진을 찍는 경우가 있다.

도대체가 사진을 찍으러 왔는지,

경치 구경을 하러 왔는지 모를 지경이다.

저들은 찍느라 바빠, 정작 감상할 틈도 내기 어렵다.


아름다울수록 당전(當前)하는 지금을 그저 눈으로 받아들이며,

가슴으로 느낄 일이다.

그리고 남겨 두고 떠날 일이다.

진정 그 아름다움을 사랑한다면.


거기 바윗돌 위에 정으로 파서 글을 새기는 일은 지나친 일이다.

나무 위에 끌로 글자를 남기는 일은 추한 짓이다.


이미 마음속을 지나며 거문고처럼 깊은 울림을 주지 않았더냐?

무엇을 더 원한단 말인가?


추억을 남기려 또는 사러 간다는 이도 있다.


추억은 먼 미래에 오는 것.

이를 위해 정작 현재를 잃는다면,

지금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도대체 그 빛바랜 추억을 위해,

지금을 버려도 좋은가? 


난 저 분과 우연히 교직된 그 날 그 순간을 사랑하였다.

그리고 그를 그 자리에 고이 남겨 두고 떠나고 싶었다.

왜냐?

그 당시, 그 장면을 사랑하니까.


이게 내가 순간을 영원히 사랑하는 방법이다.


저분께서도 아마 이해를 해주실 것이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줄 아실 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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