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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역(土役)

농사 : 2016. 10. 10. 22:57


토역(土役)


시골에서 농장을 꾸리다 보면,

순수 농사일 말고도 소위 말하는 토역(土役) 즉 흙일을 많이 하게 된다.

내가 본디 이에 손이 익은 숙수(熟手)가 아닌 어리보기인즉,

서투르기도 하지만 매양 예상을 어긋나 두 배 이상 시간이 든다.


어제 비닐하우스 안에 설치된 싱크대를 옮기는 작업을 하였다.

벽을 사이에 두고 앞에 있던 것을 뒤로 옮기려고 작정(酌定)을 하였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어제 일을 시작하였다.

반나절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하루 종일 걸렸다.


언제나 이리 예상 시간을 벗어나기 때문에,

나는 계획을 잡을 때, 나를 믿지 않고,

그 배로 짐작하면 얼추 맞아 들어간다.


건축, 토목 일을 하는 이들은 일위대가(一位對價)니 표준 품셈이 하며,

적정 비용과 시간을 요량(料量) 하겠지만,

자가로 조그마한 일을 하는 이가 그리 요란하니 차려 챙길 일이 있으랴?

헌즉 매번 머릿속으로 지은 작량(酌量)은 실정을 빗겨가고 만다.


이러하듯 사람의 하는 일은,

철저하지 못하면 계획과 실행 사이엔 큰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허나, 내 작업한 결과를 남에게 보일 일도 없고,

공적을 다투어 상을 바라는 것도 아닌 바라,

춘삼월 봄바람에 춤추듯 일렁이는 일지청수(一池清水) 못물처럼  제 흥대로 노닐 일이다.

이 또한 농부의 특권이니, 

어느 귀인일지라도 감히 탐을 낸다한들 누릴 일일 수 있으랴?


토역(土役)은 다른 말로 이수(泥水)라고도 하는데,

이는 집을 짓거나, 토목공사를 할 때는,

대개 흙과 물을 상대로 일을 하기 때문이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을 이수장(泥水匠)이라 한다.

때론 미장이를 이리 부르기도 한다.


토목(土木), 이수(泥水)

여기 보면 土, 木, 泥, 水가 들어간다.

오행(五行) 중 셋이 들어가는 셈인데,

火, 金은 빠져 있다.

火는 벽돌을 구울 때 필요하고,

金은 미장을 할 때 흙손을 만드는 재료다.

그러고 보면 土, 木, 水는 이보다 더 원천 재료에 해당한다.

火, 金은 이 원천 재료에 가해지는 수단, 도구인즉 2차 재료에 당한다.


토역일은 농사일과 더불어 사람의 노동 중 가장 기초적이랄까 근원적인 바탕을 이룬다.

이런 일들은 참으로 고되다.

근력을 써야 하는 즉, 연신 땀이 흐르고, 숨이 가빠진다.


일찍이 백장(百丈)의 한 마디 말씀. 

一日不作 一日不食

고도의 정신 작용, 선(禪)을 닦는 이가 노동을 말하고 있음은,

단순히 노동 그 자체의 중요성을 이르기 위함이 아니라,

선농병중(農禪並重)이라,

농업과 선을 동일 선상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소림사(小林寺)엔 120 여묘(畝)의 선불장(選佛場)이란 농장이 있다.

(※ 1畝는 약 666.7제곱미터)

소맥과 유채, 그리고 각종 과실, 소채류를 재배한다.

이로써 자급자족을 하며, 일부 남는 것은 수시로 주변 가난한 가정에도 나눠 부조한다.

재미있는 것은 저들도 속가(俗家)와 별다를 것이 없으니,

밭에 비닐멀칭을 하고 작물을 키운다.

헌데 밭에 풀이 보이질 않는다.

봄철 모종 식재시라 밭갈이를 한 직후인가 보다.

중들은 본디 머리카락을 자르면서 이를 무명번뇌에 비유 한다.

혹여 풀조차 이리 여기는 것이 아닌가?

煩惱即菩提

하지만, 번뇌가 곧 보리(지혜)라 하였음인데,

아무렴 불법을 닦는 이들이 풀을 마냥 번뇌로만 볼까?


(출처 : http://shaolin.org.cn/)


(출처 : http://shaolin.org.cn/)


소림사의 선경농장(禪耕農場)은 역사가 오래되었으니,

마조(馬祖)께서 총림(叢林)을 여셨을 때,

농선합일(農禪合一)이라 이로써 사찰을 안돈시키고 살림을 도울 목적이 있었다.

백장(百丈)은 청규(清規)를 세워,

농선병중(農禪並重)으로써 복혜쌍수(福慧雙修)를 목표로 하였다.


내 듣건대 우리나라 저 아랫녁 유명 대찰에서,

중들 전용 골프 연습장을 만들어 즐긴다고 한다.

골프는 이제 사뭇 대중화되어 종교인이라 하여 금할 명분은 없다.

하지만 계율상 음주가무를 못하게 되어 있으며,

심지어 극장에도 가면 아니 된다고 하는 이도 있다.

턱 밑에 송곳을 바치며 수행 정진하던 이들은 이젠 사찰에서도 뵙기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이러하다 종내는 육고기 자시고, 계집 꿰어 차고도,

수행만 잘하면 된다는 이가 나타날 판이다.


若佛子!以慈心故行放生業,一切男子是我父、一切女人是我母,我生生無不從之受生,故六道眾生皆是我父母。而殺而食者,即殺我父母,亦殺我故身。一切地水是我先身,一切火風是我本體,故常行放生。

(梵網經)


“만약 불자라면 자비심을 내어 방생의 업을 지으라.

일체의 남자는 나의 아비요, 일체의 여인은 나의 어미라.

내 생생에,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생(受生)은 없다.

고로 육도(六道) 중생은 모두 나의 부모인 게라.

생명을 죽여 먹는 자는 내 부모를 죽이고,

내 몸을 죽이는 것과 같다.

일체 땅과 물은 나의 옛 몸이요.

일체 불과 바람은 내 본체인 바라,

그런즉 방생을 늘 행하라.”


방생을 권하는 글이지만,


一切地水是我先身 一切火風是我本體


여기 등장하는 지수화풍(地水火風)을 과연 모두 다 부모처럼 여기지 못할런지는 몰라도,

최소 가까이 하는 이로 농부를 빼고 생각할 수는 없다.


만약 천하의 농부들이 지수화풍을 귀하게 여기며 농사를 짓는다면,

세상은 지금보다는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지수화풍(地水火風)을 제 몸과 같이 생각하는 것은,

그저 관념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마조나 백장 같은 스님들은 이를 구체적 실천 현실 속에서 행으로써 거증했다.

농부 역시 지수화풍을 이런 정신으로 모신다면,

이 어찌 복전(福田)을 일구는 일이 아니 될 터이며,

온 세상이 불국토(佛國土)내지는 천국(天國)이 아니 될 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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