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폭무(暴巫)

소요유 : 2016. 10. 25. 20:47


폭무(暴巫)


내 소싯적엔 동네에 심심치 않게 굿판이 벌어지곤 하였다.

어느 집에 병자가 생긴다든가, 우환이 들면,

무당을 초치하여 굿을 열었다.


동네 사람은 물론, 가근방 일대의 사람들이 굿을 치루는 집으로 몰려왔다.

마당이나 대청마루에서 굿판이 벌어지는데,

구경꾼들은 반원을 그리며 이를 둘러쌌다.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 키에 가려 제대로 굿을 구경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적당한 때에 시루떡을 돌리기 때문에,

떡 한 조각씩 얻어먹을 수 있다.

그 궁하던 시절,

시월상달 동제(洞祭)와 함께,

굿하는 이의 기구(祈求)와는 다르게,

뭇 이웃들에겐 마을의 축제에 다름 아니었다.

구경도 하고, 떡도 얻어먹을 수 있었으니,

왜 아니랴?


당시는,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이리 무당에 의지하여 신력(神威)을 구했다.

요즘은 이들을 다 미신으로 치부하고 물리쳤으나, 

대신 중이나 목사들이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이다.

무교(巫敎)는 혹간 삿된 일도 벌어지나,

푸근하고, 넉넉한 정이 흘렀다.

요즘 종교는 제법 의젓하니 차려 입고 예를 찾는 양 싶지만,

이게 타락하면 무교와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폐해가 심대하다.


나는 무교를 비롯하여, 기성 종교 일반에 차별이 없다.

다만, 그 무한의 文, 그 상상력에 찬탄하며,

저들의 무진장(無盡藏) 비의(秘義) 세계 속으로 모험을 떠난다.

나는 그 길을 떠나는 영원한 나그네일 뿐,

어느 집안인들 안에 속해 머무른 적이 없다.

나는 소싯적 학교 도서관에 있는 무교 관련 서적을 탐욕스럽게 거지반 다 훑으며 읽었었다.

당시 김태곤 선생의 무교 연구를 비롯한 여러 책을 섭렵하였었는데,

지금은 빛바랜 기억에 그저 흔적만 남아 있다.


무당의 말을 무작정 믿을 일이 아니요,

나는 다만 그들이 펴는 날개를 빌어 잠시 그들의 세계를 여행함에 족할 따름이다.

그렇다하여 저들의 소설(所說)을 폄하하거나 비웃을 일도 아니다.

존중함을 아낄 까닭도 없다.

내가 취할 만한 것은 취하고, 따를 만한 것은 따르며, 깨우칠만한 가르침은 배운다.

그 외의 것은 나와 상관이 없다.


작금 나라가 어지럽다.

무당 이야기가 나돌고,

그 와류(渦流)에 휩쓸려 여러 사람들이 나뒹굴고 있다.

이는 무교(巫敎)를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여 일어난 사단이며,

기독교이든, 천주교이든, 불교든, 그 교의를 제대로 연구하지 못한 소이(所以)이다.


如奪得關將軍大刀入手。

逢佛殺佛。逢祖殺祖。

於生死岸頭得大自在。

向六道四生中。

遊戲三昧。

(無門關)


“관우의 대도를 뺏어 손에 들고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 생사간두에 대자재를 얻어 육도사생 중 유희삼매하리라.”


아, 이처럼 절절 사무치는 말씀이 이외 더 있으랴?

관우의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빼앗아 휘두르지 않으면,

그 칼에 베어 목숨을 잃고 말리.


魯繆公之時,歲旱。繆公問縣子:「天旱不雨,寡人欲暴巫,奚如?」縣子不聽。「欲徙市,奚如?」對曰:「天子崩,巷市七日;諸公薨,巷市五日。為之徙市,不亦可乎!」案縣子之言,徙市得雨也。

(論衡 明雩)


“노나라 목공 시절, 한 해 가뭄이 들었다.

목공이 현자에게 물었다.


‘날이 가물어 비가 내리지 않으니,

과인이 폭무(暴巫)1)를 하려 하는데 어떻겠소?’


현자는 듣지 않았다.


‘그럼 사시(徙市)2)를 하면 어떻겠소?’


‘천자가 돌아가시면, 뒷골목으로 옮겨 시장을 7일 열고,

제후가 죽으면 5일간 그리합니다.

이는 사시(徙市)를 위함이라, 어찌 가하지 않겠습니까?,’


현자의 말을 살피건대,

사시 즉 시장을 뒷골목으로 옮김으로써 비를 구하고자 함이라.”


(※ 1) 暴巫 : 여기서 暴는 曝과 같은 뜻이다.

무당을 태양 아래 잡아놓고는 얼굴을 햇빛에 태우는데,

이로써 비를 내리게 하려 함이다.

이를 또한 焚巫라고도 하는데,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태워 죽이는 데 이르기까지 한다.


2)徙市 : 시장을 옮기는 일을 말한다. 

고대엔 군주가 사망한다든가 하는 대상사(大喪事)가 일어나면, 

정상적인 시장 기능을 멈추고, 골목 뒷길에서 장을 연다.

여기서 사시(徙市)란,

소위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에 따라 가뭄이 군주의 잘못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이로써 죄를 참회하고자 함이다.

우리나라에도 신라 때부터 이런 풍습이 있었다.)


상서에 이르길, 달이 필숙성 근처로 다가오면 비가 내린다 하였다.

일월의 운행엔 일정한 규칙이 있다.

시장을 뒷골목으로 옮겼다하여,

필숙성(북쪽)과 가까이 있지도 않은데 비가 내릴까?

달이 필숙성 가까이 있을 때라야,

사람들은 홍수와 가뭄을 예측할 수 있다.


시장을 옮긴다하여 달의 운행 궤도를 어찌 바꿀 수 있으랴?

달이란 본디 30일에 한번 하늘을 돈다.

한 달 중 한 번은 필숙성을 지난다.

필숙성 남쪽에 있으면 천기(날씨)가 맑다.

가령 시장을 옮기는 것으로써 하늘을 감동시켜,

달을 필숙성 북쪽으로 옮겨가게 할 수 있는가?

달이 필숙성 남쪽을 지나고 있는데,

시장을 옮김으로써 달이 필숙성 북쪽으로 옮겨가,

비를 내리게 할 수 있음인가?

이를 볼 때, 현자의 말은 택할 수 없다.


變復之家,以久雨為湛,久暘為旱,旱應亢陽,湛應沈溺。或難曰:夫一歲之中,十日者一雨,五日者一風。雨頗留,湛之兆也;暘頗久,旱之漸也。湛之時,人君未必沈溺也;旱之時,未必亢陽也。人君為政,前後若一,然而一湛一旱,時氣也。

(論衡 明雩)


“기복술사는 비가 내리되 오래면 홍수가 나며,

볕만 내리쬐길 오래면 한발이 옴을 안다.

한발이 오는 것은 군주가 교만하여 하늘이 견책하는 것이오,

홍수가 일어나는 것은 군주가 주색을 밝혀 하늘이 나무라는 것이라.


혹인이 있어 힐난하며 이르다.


‘년중 십 일 정도면 비가 나리시고,

오 일이 지나면 바람이 분다.

비가 오래도록 나리시면 홍수의 징조며,

맑은 날이 계속되면 가뭄의 징조임이라.


홍수가 났다하여 군주가 반드시 주색에 빠졌다 할 것은 아니며,

가뭄이 났다하여 군주가 반드시 교만하다 할 수는 없다.


군주가 정치를 폄에 있어, 전후가 일치하면,’

홍수, 가뭄을 막론하고,

이 모두는 다 당시의, 재해의 기운을 맞이하였을 뿐이다.”


내가 이 글을 막 쓰고 있는 중에,

박근혜의 사과 회견 뉴스가 막 지나고 있다.


무당은 내가 다스릴 일이지,

이에 내가 놀아나게 되면, 망신을 당하게 됨을 알아야 한다.


어찌 이게 무당뿐이랴,

목사나 중도 매한가지라.


세상에 좋은 무당, 목사, 중이 왜 아니 없겠음인가?

하지만 이들은 내 택함의 대상이지,

그들이 나를 택하게 할 일은 아니다.


나는 애시당초 이들과 인연을 짓지 않으니,

택하고, 택함을 당할 일조차 없음이다.


***


무당 이야기는 나의 다른 글에도 등장하는데,

이 중 다음 글을 여기 새겨둔다.

오늘의 사태를 비추는 거울이 되길 바란다.

☞ 2009/05/27 - [소요유] - 서문표와 하백 귀신 & 도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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