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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사 2

생명 : 2017.02.03 20:12


서울에서 인연 지은 길고양이 두 마리를 농장으로 데려다 놓은지 3개월여가 지난다. 

그 동안 삼 일에 한 번씩 밥을 주려 농장을 들리다가,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자 이틀에 한 번씩 들렸다.

이 일은 처가 맡아서 하였는데, 나는 차례를 두엇 건너 띄어 처와 함께 하곤 하였다.


어제는 처 혼자 농장에 갔었는데,

서울에 머무른 내게 처로부터 다급한 연락이 왔다.

엘사란 이름을 가진 고양이가 죽어 있다는 것이다.

(※ 참고 글 : ☞ 엘사)


부리나케 농장으로 달려가니,

엘사는 하우스 입구에 드러누워 있다.

사지가 경직되어 있으니, 이미 절명(絶命)한 상태임이리라.

이빨에 피가 묻어 있고, 테이블 밑은 피가 여기저기 튀어 있다.

무엇인가와 사투를 벌이다 힘에 부쳐 당하고 만 것이 역력하다.

필경은 떠돌이 개들의 습격을 받아 변을 당하였을 것이다.


여기 시골 농장,

특히 겨울철엔 농장이 비어,

동네 개들이 드나들고,

고라니가 뛰어 논다.


엘사는 또 다른 고양이 ‘예쁜이’와는 다르게,

사람을 잘 따라, 발밑에 발랑 뒤집어지며 자신을 만져주기를 재촉하곤 하였다.

달포 전에는 잘 먹지를 못하여 동물병원에도 다녀왔다.

링거 주사를 맞고 돌아오자마자 행으로 바로 회복하여 건강을 되찾았다.

그러던 녀석인데 이리도 허망하게도 명줄을 놓고 말았다.


농장 가장자리 뚝방 한켠을 파고 묻어주었다.

땅이 얼어 구덩이를 파기가 힘들다.

곡괭이질을 하였으나 충분한 깊이를 확보하지 못하였다.

일단 가매장을 하고 해토(解土)머리께에 다시 수습을 하여야 하리라. 


여기 뚝방엔 내가 시골에 들어서며,

근 10 여년간 음양으로 인연 지었던,

강아지, 고양이들 대여섯이 묻혀 있다.


'나거든 죽지 말고, 죽거든 태어나지 마라.'

(박상륭 - 죽음의 한 연구)


이 말은 존재의 무상성(無常性)을 드러내었다기 보다는,

끝내 회멸(灰滅)되고 마는 존재의 비극적 운명 또는

그리고 생사윤회(生死輪廻)의 수레바퀴에 갇혀 있는 업력(業力)에 대한 저항이다.


아니 저 말은 저항이 아니다.

그렇다고 희구(希求)도 아닌 것이리니,

차라리 체념을 넘은 달관의 경지에서,

피할 수 없는 존재론적 구속 조건에 갇힌 상황을 역설적으로 토로한 말이 아닐까?


‘그래야 해’ 하는,

다짐의 말을 빈 양 싶지만,

이는 거죽 모양이라,

실인즉, 극복이나 도전이 아니라,

정작은 그리할 수 없는 숙명적 존재의,

그 비극성을 앞에 둔,

작가의 반어적 서술에 그치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대개는, 죽음 앞에선, 

절로 이는 슬픔을 통어(統御)할 수 없다.


생자필멸(生者必滅)


이를 벗어날 수 없기에 체념(諦念)할 만도 하련만,

뼛속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나약하기 그지없는 중생들의 실존적 한계상황(限界狀況)은,

끝내 위로받지 못하는 슬픔으로 마감되고 만다.


과연, 박상륭은 시간의 지평(time horizon) 너머,

대흑천 위신력(威神力)의 실체를 엿보기라 한 것일까?


아,

그 역시,

뭐 대단한 것을 알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난해하기 짝이 없다고 중인(衆人)들이 입을 모으고 있는,

‘죽음의 한 연구’에서의,

‘한’이란 한정사는 바로 그가 온전한 것에 다가서지 못하였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 밖에는 ‘백’, ‘천’이 대기하고 있다.

이를 모두 극복하고 있다면,

굳이 ‘한’으로 꾸미며 유보할 이유가 없다.

그냥 ‘죽음의 연구’ 또는 ‘죽음’의

자족적(自足的)인 언술이면 족할 뿐이었으리라.


(출처 : divinehere.com, 大黑天)


大黑天(Mahākāla, 摩訶迦羅, 瑪哈嘎拉)

원래 이 신은 바라문교의 濕婆, 즉 시바(Śiva)신이 불교로 들어와 자리를 잡은 것이다.

불교에선 이를 大自在天(Maheśvara,摩醯首羅)이라고 하는데,

색계(色界)의 꼭대기에 머물며 삼천계(三千界)의 주인 노릇을 한다.

하지만 후대에 밀교로 들어와서는 호법신(護法神)인,

대흑천(大黑天)으로 변신한다.


Mahākāla에서,

Mahā는 크다(大)라는 뜻을 지니며, 

kāla는 黑 또는 時의 뜻을 가진다.

하여, 大黑 또는 大時라 이르는 것이다.


kāla의 자근(字根)인 kal은 원래 계산(計算)을 한다는 뜻이다.

고대 인도에선 kālá는 오늘 날 144초에 상당한다.


kāla는 이리, 본디 시간이란 뜻을 가진 것이로되,

차츰 숙명(宿命), 명운(命運), 사망(死亡)이란 뜻으로 이끌려 나아가며 외연 확장하게 된다.

마침내 이 시간이 신격화되자, 이 신은 죽음을 주관하게 된다.

일체의 모든 것을 완전히 파괴, 소멸 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그리하여 大黑天이라 부르게 되는 것이다.


허나, 죽음 뒤엔 탄생이 있는 법.

大黑天은 죽음을 주재하지만,

한편으론 생성시복(生成施福)도 주관한다.


이 대흑천은 六臂, 四臂, 二臂의 삼종이 있는데,

육비대흑천(六臂大黑天)으로 몸이 백색인 경우 육비호주(六臂怙主)라 칭한다.

호주(怙主)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일컫는데,

이게 곧 관세음보살의 분노상(忿怒相)이 된다.


(ⓒ高野山有志八幡講十八箇院「五大力菩薩像」之一「金剛吼菩薩」 (日本国宝)(西元九世紀))


언젠가 소개한 일본의 금강명왕(金剛明王), 금강후보살(金剛吼菩薩)도,

문화, 역사적 변천과정을 겪으며 변전한 것으로 대흑천과 연관되어 있다.


(※ 참고 글 : ☞ 金剛吼菩薩)


재미있는 것은,

대흑천은 밀교에선 醫神, 財富之神 등의 호법신(護法神)으로 변신되고 있는 것이다.

시간으로부터 출발하여, 숙명, 사망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치병(治病), 재물 따위의 현실적 가치 주재자(主宰者)로 굽혀지고 있는 점이다.

거대한 우주적 진리 체계, 형이상학적 논의 따위는 중생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재물, 건강 등 현실적 만족을 위해 복무하는 신을 다만, 구하며, 설정할 뿐인 것이다. 


아, 보살, 부처들은 이리도 중생의 욕구에 따라 변신 자재가 화려하구나.

기실,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 

네, 너 가릴 바 없이 존재는 모두 부처의 성품을 가졌다 하였음이니,

굳이 나눠 따질 일이 없음이라.

보살이든, 부처든, 아니면 중생이든 존재는 차별적 대상이 아니란 말임이라.

허나, 이 사바세계의 존재는 상하, 존비(尊卑)가 천양지차임이라,


다만, 내 이리 확인해줄 수는 있다.

六臂, 四臂, 二臂니 하며,

까짓 팔이 여섯, 넷, 둘인들,

그리고, 하마, 

천수(千手), 천안(千眼)이라 요란하지만,

팔 천, 눈 천인들,

아니면, 설혹, 

독비(獨臂), 독안(獨眼)이라한들,

一切衆生悉有佛性인데,

무슨 차별이 있으리오리.


헌데, 언필칭, 보살, 부처인 위격(位格)이언데,

六臂, 四臂, 二臂니 하며,

잔뜩 뻥 치며, 폼을 잡는가 말이다.

이는 실로, 중생을 상대로 겁박(劫迫)하는 것이 아니언가?


아, 중생의 삶은 이리도 어렵구나,

도적에게 뜯기고,

권력자에게 당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대자대비 부처도 되려 겁살(劫煞)을 펴옴인가?


중생은, 

보살이 천수(千手), 천안(千眼)으로 품고, 살핌을 원하기 이전에,

온갖 환난(患難)에 들기를 원치 않음이라,

어이 하여 애시당초 진구렁텅이에 몰아넣고는,

뒤늦게 천 개의 팔로써 거둔다고 힘자랑을 하고 있음이더냐 말이다.

그러면서 복전함(福田函)에 시줏돈 많이 넣어야 복이 많다며,

어리석은 사람을 꾀고 있음이더냐?


나는 본디 세상에 태어나길 원치 않았으되, 태어났으며,

죽어 다시 태어나길 원치도 않음이라.

천수천안 관세음보살도 귀치 않을 뿐더러,

육비 마하가라(摩訶迦羅) 대흑천(大黑天)도 원치 않는다.


'나거든 죽지 말고, 죽거든 태어나지 마라.'


박상륭은 이리 말하지만, 

나는,

애당초, 

나키를 원치 않고, 

설혹,

지붕 위에 채색구름이 몰려와도 죽어 있길 원하며,

태어난다면, 

설사,

태풍, 벼락이 쳐도 까닭 없이 죽기를 바라지 않으리다.


내, 

우리 착한 엘사에게 말하노니,

공연히 다시 환생하길 원치 말지니,

행여,

사람으로라도 다시 태어나길 꿈꾸지 말기를 바라노라.

진실로.


엘사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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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심코 2017.02.04 11:39 PERM. MOD/DEL REPLY

    _()_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세를 주고 빌린 집입니다
    그런데 제가 들어오기 전에 살았던 사람 이름이 '엘사' 였습니다
    집 주인 말인즉,,,,,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온 여성이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생긴 분인지 비록 얼굴은 못봤지만 '엘사'라는 이름은 금방 떠올려 집니다
    오늘 이렇게 라라님이 아끼던 고양이의 죽음에 대한 글을 접하고 보니
    사람이든 짐승이든 언젠가는 소멸 된다는 것,,,,,,

    시골 강변마을 2년차에 접어들었을 때는 아는 사람에게 진돗개 백구 강아지를 븐양 받아와서
    길렀습니다
    이름은 '해탈이' 라고 불렀습니다
    해탈이를 키우는 즐거움이 저의 외로움을 물리쳐 주었으니 해탈이야 말로 저의 스승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였지요

    그러나 부득불, 강변 마을을 떠나야 해서 지금 집으로 이사를 왔지만 동물을 키울 수 없는 주변
    환경으로 인하여, 또 집주인의 난색으로 하여 해탈이는 옆 동네 매형의 지인에게 맡기고
    와야만 했습니다
    동물 한 마리 마음대로 키우지 못하는 이런 환경이 너무 싫어서 또다시 산 속 오두막이라도
    알아보려 돌아댕기려고 하는 것이지요

    본디 나고 죽음이 환상이라고 하지만 제가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해탈이는 진돗개 특성상 새주인을
    따르지 않을터라 해탈이가 받는 스트레스는 언젠가 제게로 와서 업으로 변할 것인 즉,
    살아잇는 순간순간 죄만 쌓여가는 이 산다는 것의 고통은 참으로 무섭다 아니할 수가 없겠지요

    서프에서 처음 알게 되서 지금까지도 마음의 벗으로서 연락을 주고받는 쏭청요우 님은 이별이 싫어서
    동물을 키우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말에 수긍하면서도 나는 나의 외로움을 물리치려고 해탈이를 데려왔지만 끝까지 책임을 지지 못한
    업보는 남아서 제 목숨이 끝나는 날까지 저를 괴롭힐 것입니다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동물일랑 취하지 말고 자연스레 내버려둬야 할 것을.....

    그동안 수 많은 책들을 취하고 버리기를 반복했어도 끝까지 제 책장에 남아있는 몇 권 안되는 책들 중
    하나가 '티벳, 사자의 서' 입니다만......
    본래 마음 깊이가 부족하여 읽다 포기하기를 반복하니 이 또한 업으로 쌓여지는 것 아니겠는지요
    수 많은 책을 두고도 공부하길 게을리 하면 이 또한 염불보단 잿밥에 눈 먼 땡중들 심사와
    디를리 없을 터,
    이래저래 저는 똥폼을 잡고 풍류나 즐기는 한량에 다름 아니겟지요
    마구니들이 득시글거리는 세상인지라 공부를 할 환경이 안된다는 변명으로 위안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잇습니다

    엘사와 해탈이는 인간들이 보지 못하는 세상을 알고 있을 것이라 믿으며 이렇게 마음이나
    전하는 것으로 스스로 위안을 해봅니다

    정월 대보름이 다가옵니다
    대보름 밤에 둥근 달을 바라보며 이 집에 살았던 필리핀인 엘사와 라라님의 고양이 엘사를 위해
    기도하겟습니다
    행복하라고.........!!

    _()_







    bongta 2017.02.04 23:58 신고 PERM MOD/DEL

    원래 제가 2월부터는 농장에 가서,
    한 달 작정하고 농장 일을 하려 하였습니다.

    헌데 처가 오늘 주말 촛불 집회에는 나간 후에,
    시골로 가라고 권했습니다.
    그래 며칠 시골 행을 미뤘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양이들이 농장 환경에 잘 적응하였기에,
    이 진겨울만 벗어나면, 마음껏 뛰어 놀며 한 철 행복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廣結善緣, 莫結惡緣

    옛 사람들은,
    선한 인연은 널리 맺고,
    악한 인연은 짓질 말라 하였으나.
    이 말씀을 저는 엉터리라 생각합니다.

    인연이란 것은 애시당초 선악을 불문 짓지 말아야 합니다.
    해탈이란 것은 억겁으로 얽힌 업력을 벗어난다는 것이지만,
    인연이란 숨이나 맥박처럼 살아 있는 한,
    늘 도리 없이 짓고, 이내 수미산처럼 높이 쌓게 됩니다.

    이것 간단히 쓸어 없애기 어렵습니다.
    한즉,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애초에 맺지를 말아야,
    그나마 도를 이루기 쉽지 않겠습니까?

    촛불 시위를 두고 어떤 자가,
    위대한 대한민국, 거룩한 국민들이 이룬 놀라운 역사라 합니다.
    웃기는 소리지요.
    그리 위대하고 거룩한 이들이 박가를 왜 권력자로 만들었는가요?

    제가 방금 촛불 집회를 마치고 귀가 하였습니다.
    여기 11차례 나아갔지만, 가슴 한 켠에선 자괴감이 듭니다.
    도대체 박가란 괴물을 만들어내지 않았더라면 이 고생을 할 이유도 없는데,
    제가 왜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란 말입니까?
    게다가 과연 저들이라고 어느 날 제 집 잇속을 위해,
    태연히 번신하여,
    불의에 몸을 담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느 한 곳에 집중하는 태도는 위험한 것이라 저는 생각을 합니다.
    박사모가 박가에게 충성하듯,
    노사모도 노씨에게 충절을 받칩니다.
    하지만 박이든, 노든 잘못하면 가차 없이 나무라고,
    나아가 버릴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어디 매임이 없어야 바로 보고, 바른 도리를 다할 수 있음인데,
    하나에 매어 있으면, 시비를 가리지 못하고,
    무작정 편을 갈라 응원하거나, 탓하기 바쁘게 됩니다.

    이거, 어디 하나에 매어 있게 되면,
    제 인격에 스스로도 아주 기분이 더러운 것이거든요.

    저는 다만,
    오늘, 이 자리에,
    있을 만 하니 있을 뿐.
    그 밖의 다른 것을 구하지 않습니다.
    설혹 탄핵 인용이 되든, 아니든,
    오늘 다만, 이 자리에 임할 뿐입니다.

    허니, 선한 인연이라 애써 쫓아다니면 맺으려 할 일이 아니라,
    그게 마땅한가, 옳은가를 먼저 알아야 할 노릇이며,
    설혹 옳다한들, 쉽게 인연을 지으려 노력할 것도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연이란 상대적인 것이라,
    이쪽에서 옳다 여겨도,
    상대편에선 그렇게 판단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그 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시골에서도 아주 험한 꼴을 하도 많이 당하여,
    저는 아예 이들을 상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잇속에 재바른 졸장부, 소인들만 그득할 뿐,
    의로운 인사들을 찾기 어렵습니다.

    제가 애초 아쉬웠기에,
    저들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인간사 도리를 져버릴 이유가 없어 만났음인데,
    이를 딛고 넘보려함이라,
    이젠 아예 냉정히 가까이 다가오는 자들을 그저 건조하게 대할 뿐입니다.

    그런데,
    뒤늦은 것이로되,
    이로써, 하나의 깨달음을 얻은 것은,
    무슨 일이든, 어떤 인사이든,
    기대를 접고, 저만의 제 길을 가면 족하다라는 것입니다.

    푸는 것도,
    옭 안감는 것도,
    다 부질없음이라,
    다만 중정을 가지런히 추슬러,
    저 자신에게 충실하면 그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한 것입니다.

    아주 늦게 깨달은 것이지만,
    이리 저들을 대하고 있지만,
    너무 심사가 편합니다.

    이젠 제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하니,
    아주 거침이 없더란 말입니다.
    처음엔 저들을 우정 인격적으로 대하고, 베풀었으나,
    이게 다 저들 소인배들의 버릇을 고약하게 만드는 일임을 깨우친 것입니다.

    이곳에선 그야말로 제가 왕입니다.
    누구 눈치 볼 것도 없이,
    제 양심대로 살고자 하는데 거침이 없습니다.
    이제 이러하다보니,
    아주 살만 하더군요.

    해탈이와 엘사.
    저들 그리 착한 아이들의 명운을 빕니다.

    혹 기억하십니까?
    제이버드님의 ‘개는 행복할까요?’라는 글을.

    개는 쳐다보기 위하여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쳐다 보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인식이란 체에 걸러 사물을 보지만,
    개는 사물의 본성 그 자체를 전격 바로 만난다라는 말씀이지요.

    저는 여기 시골에서,
    이제야 개처럼 그저 본성, 그 본바탕을 직접 만나는 법을 시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프의 그 시절 여러분들께 좋은 가르침을 받았던 것이 고마운 것입니다.

    제가 지금 곡주 두 병을 들으켰습니다.
    그래 글이 좀 정돈이 아니될 수도 있습니다.

    날이 한참 기울었습니다.
    무심코님 오늘 밤 편안히 주무시길 빕니다.

  2. 무심코 2017.02.05 10:49 PERM. MOD/DEL REPLY

    _()_

    우물 안 개구리들에게 바다의 엄청난 크기를 제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우물 안 개구리들은 당최 이해 불가합니다
    우물 안은 개구리들에겐 세상 그 자체일터니 말이지요

    여기서 생겨난 말들 중에 하나가.......
    "사람은 딱 자기가 아는 만큼만 남을 이해하는 법" 이라는 말 입니다

    박ㄹ혜 라는 칠푸니를 왕좌에 앉도록 만들어준 사람들은 우물 안 개구리들이지만
    그런 개구리들을 만들어낸 괴물은 '언론'이란 껍데기를 뒤집어 쓴 사이비 언론인들 입니다
    진실을 거짓으로 둔갑시키고 날이면 날마다 개구리들에게 세뇌를 시켜버렸으니
    한 번 세뇌당한 정신머리는 되돌리기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마지막 단추는 꿸 구멍이 없듯이 여분의 구멍이 낳아버린 괴물 박ㄹ혜,,,
    그런 괴물의 실체를 알리 없는 개구리들 합창은 노래가 아닌 소음이 되어 대한민국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음이나 이제는 목청이 아파오고 소리도 작아져서 제 풀에 주저앉고
    병들어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갈 일만 남겠지요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이니 ......!!

    촛불집회에 줄기차게 참석하시는 라라님께서 들고 계신 촛불 하나는 미미한 빛이 아닙니다
    광명천지가 되기 전에 씨알같은 빛 하나로 시작되듯이 내가 들고 있는 촛불 하나는 이미 온 우주를
    밝히고도 남는 거대한 빛이라 믿습니다

    시골에서 블루베리 농사를 하신다 하니 언제 한번 베리를 주문하여 맛을 음이해보고 싶군요
    농사 후에 목마름은 탁주로 해결하고 풋마늘 풋고추 된장에 찍어 한 입 베어물고
    서산에 지는 낙조를 바라보면 그나마 평화로워지는 마음이 들 것 같습니다
    하여, 그대로 좌탈입망에 든다면 그것보다 더한 행운도 없을 터.....

    그나저나 세월 앞에선 이 육체란 것도 속수무책인지라 저도 병신년 한 해 동안은 생식기관에
    병이 들어 무척 고생을 했습니다
    지금은 괜찮아졌는데 앞으로도 병원 출입이 잦아질 것 같습니다

    가끔씩 상상을 해봅니다
    누군가 제 앞에 타임머신을 타고 온 이가 있어.
    제가 원하는 곳에 데려다 준다고 한다면 저는 지체없이 세종 시대의 묘향산으로 가고자 합니다
    묘향산 기슭에 도요를 만들어서 각종 자기들을 빗고 한편, 약초연구를 하며 병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집니다

    자연속에는.........인간사 희노애락 모든 해결책이 고스란히 있으리라 믿으니까 말이지요
    부질없는 상상이라 해도 어차피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니까요 허헛 ^^;;

    봄이 찾아드는 3월 경,
    인천의 쏭님을 찾아보는 것을 시작으로 남도땅을 훑어보려고 합니다
    사람들과 이리 부대끼며 산다는 것이 즐겁지가 않다면 산 속에 숨어들어 저만의 천라지망이라도
    깔아놓고 신선 흉내나 내며 살아갈까 합니다

    그때는 해탈이를 수호신 삼아 산골짝을 맘껏 나래차며 남은 생을 조롱이나 해줄까 합니다

    '제이버드' 라는 닉은 기억에 남습니다만 .......(해외에 계시던 분 같던데요?)
    개는 그냥 바라볼 뿐이다 라는 글은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인터넷, 그 무한한 바다에서 떠돌던 수 많은 글들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두 사람은 기억합니다
    '원경'과 '소농자'
    인간의 (편협한) 기억이란 게 이토록이나 집요하고 무섭습니다
    아울러서 인연이란 것을 선과 악으로 구분짓지 말아야 한다는 라라님 말씀에 동의하면서.....!!

    _()_




    bongta 2017.02.05 11:07 신고 PERM MOD/DEL

    묘향산에 가고 싶습니다.
    마음의 고향같은 이미지가 절로 이는 그곳.

    제가 어제 늦게까지 잠을 못이루다가,
    좀전에 일어났습니다.
    이제 행장을 추려 시골로 내려가렵니다.
    밀린 일을 하며 겨울을 보낼 것입니다.

    무심코님,
    추운 겨울 건강하게 지내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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