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광빠

소요유 : 2017. 8. 30. 16:08


내가 어느 글에서 ‘나는 문재인 정권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하자,

어떤 이가 좀 섭섭했던 모양이다.


나는 문재인 이 분이 착한 사람으로 여겨지지만,

나의 정치적 지향과는 온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이게 뭐 대수이겠는가?

외려 똑같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그는 노무현을 열렬히 지지하였고,

지금은 문재인을 다시 뜨겁게 지지하고 있다.


오늘 뉴스를 보니,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를 중심으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그는 이승만의 건국 찬양, 뉴라이트 사관, 유신 찬양의 전력이 있다고 한다.


인사란 어렵다.

때론 실수도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문 정권 들어와 인사 참사란 말을 자주 들을 정도로,

야릇한 인사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문빠들은 인사 담당자에 문제가 있을 뿐,

문재인은 잘못이 없다고 감싸기 바쁘다.


문 정권 인사에 실망한 일반인들도 곧잘,

문재인 정권의 인사를 두고 문재인 정권답지 않다고 말한다.

이 정도로 아낀다면, 애정은 아직 식지 않은 것이리라.


하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이 인사야말로 문재인 정권의 실체를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해야 옳다.

그 판단 기준을 진실에 두어야 하지,

결코 자신의 믿음이나 기대에 기초해서는 아니 된다.


나는 앞글에서 빠돌이를 두고 자기애에 빠진 이라고 하였다.

빠는 자기가 믿는 인물에 대한 합리적 비판에 벌떼처럼 일어나 대든다.

그들은 이런 비판을 마치 자신을 향한 모욕이나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하니까 그들이 존경하거나 사랑하는 대상은 그가 아니다.

정작은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박빠, 문빠든 이는 마찬가지다.

저들이 빠져든 대상 인물만 다르지,

빠돌이들의 정신병리학적 기제는 같다.


빠돌이는 자존심이 낮은 이들이다.

학교 다닐 때 보면, 힘센 아이들의 가방을 들어주며,

히히닥거리며 추종하는 녀석들이 있다.

그들을 앞세우고 약한 아이들에겐 으스대지만,

홀로 남을 땐 불안을 이기지 못한다.

가여운 녀석들이다.


흔히 논다는 주먹들은,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을 건드리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영역을 침해하지 않는다.

강자에겐 자존심이 살아있다.

 

빠돌이들은 결핍(缺乏)되어 있다.

그들의 정치적 입장은 자기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따르는 이의 것을 빌려와 자기 것으로 삼았을 뿐이다.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이가 잘못을 하였을 때,

정상적인 사람은 합리적 이유를 들어 비판을 한다.

그의 잘못이 계속되고,

비판이 누적되면,

그를 버리고 미련없이 떠날 뿐이다.

그는 일정 기간 한시적으로 정치를 담임할 대표일 뿐,

그에게 구속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빠돌이들은 그가 아무리 잘못을 하여도,

숨겨진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며, 감싸기 급급하며, 

외려 비판하는 이들을 나무란다.


결핍이 많은 이들은,

무엇인가 외부로부터 들여와 그 빈 속을 채워야 한다.

공허함은 동굴의 어둠처럼 두렵기 때문이다.


자기애에 빠진 이들은,

대상을 향해 자신을 투사(投射)할 뿐이다.

그리고는 이내 투사물인 그 인물에 퐁당 빠져 익사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저들은 그를 떠나서는 결코 홀로 설 수 없다.


그런고로, 자기애는 기실 결핍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슬픈 존재 형식이다.


종교에 홀딱 빠진 이를 두고 광신도(狂信徒)라 한다.

빠돌이들과 거지반 비슷한 행태를 보인다.

영추엔 미치광이에 대한 유의할 만한 기술이 있다.

狂始生,先自悲也,喜忘、苦怒、善恐者得之憂飢,....

狂始發,少臥不飢,自高賢也,自辯智也,自尊貴也,善罵詈,日夜不休,....

(靈樞)


(狂始生) 미치기 시작하면,

처음엔 슬픔에 빠지고, 기쁨을 잊고, 분노를 일으키며,

잘 놀라는 이는 근심에 빠진다.


(狂始發) 미친 것이 퍼져나가면,

조금만 누워 쉬어도 배고픈 것도 모르고, 스스로를 현명하고, 지혜롭고, 존귀한 줄 알며,

쉬지 않고 욕을 해댄다 ...


狂始生은 애초의 존재 조건을 말한다.

이 때에는, 

결핍하면 두려움에 빠지고, 슬픔을 느끼게 되는 법이다.


狂始發에선 표출 전개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를 극복하여야 하지만,

자력으로는 어려우니까,

오도된 이해와 전도된 가치로 해결을 하게 된다.

외부로부터 빌어온 권위와 위세에 기대며,

스스로 지혜롭고 존귀하다 여긴다.

하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은 견고한 바위와 같다.

욕을 해대며 發狂을 할 밖에.


광신도, 빠돌이, 광인,

이들은 하나 같이 모두,

병이 고황(膏肓)에 든 이들이다.



'소요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장과 소통  (0) 2017.09.06
광빠 댓글에 대한 답글  (1) 2017.09.04
생활형  (0) 2017.09.02
만남  (0) 2017.08.29
빠걸과 빠돌이  (0) 2017.08.24
오징어와 땅콩  (0) 2017.08.23
Bongta LicenseBongta Stock License bottomtop
이 저작물은 봉타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3.0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행위에 제한을 받습니다.
소요유 : 2017. 8. 30. 1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