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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절벽과 문화 국가

소요유 : 2018. 12. 20. 17:35


내가 인구통계학(demography)이라든가, 

인구사회학(sociology of population)이란 분야에,

크게 관련된 일을 한 바 없다.

하지만, 소위 출산 절벽이란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로,

한국의 인구 문제는 앞날을 전망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다.

절벽을 넘어 요즘 사람들은 거의 출산 공포증(lockiophobia)에 시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나는 일개 필부에 불과하지만,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하나도 문제가 아니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줄어드는 현상에 기초한, 기반한 바른 생각이 부재한 것을 염려한다.


정치인들은, 흔히 이를 망국적 징후로 예단하고,

각종 출산 장려책을 기획하고 있다.

나는 이를 다 부질없다고 생각한다.

man power

정치인들은 사람을 그저 경제 행동 단위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야, 세금을 받아내고, 

제 세비에 충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림없다.

내겐 통하지 않으리라.


이것 그저 인구 양으로 따질 일이 아니다.

다만, 개개 단자(單子)의 인간이 저마다의 창조적 자기표현을 할 만한,

여건이 마련되어 있는가?

이런 일에 문제의식을 일으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런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면,

인구가 줄든 늘든,

그게 어찌 큰 문제가 되랴?

나는 이리 생각한다.

즉 양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성 창달 여부에 집중할 일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대저 사람이 하는 일이란,

인위적 정책으로 땜빵 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일시 강압 정책으로 통계학적 변화를 유도할 수 있지만,

도도하니 흐르는 인민들의 욕구내지는 체념으로 인해,

전개되는 사회학적 변화 트렌드를 근원적으로 잠재울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게 한 나라 안에 갇혀 있는 한,

더욱 더 아무런 실효적 이익을 창출하지 못한다.

인구 숫자만을 고민한다면,

차라리 적극적으로 이민 정책을 펴서,

나라 밖으로부터 충원 받는 것이 사회경제학적으로는 나을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는 저마다 인구를 늘리려 안간 힘을 쏟고 있다.

이것 참으로 괴상한 짓이다.

이리 다른 지방의 인구를 빼앗다시피 하며, 늘인들,

한 지방이 늘면 한 지방은 줄 터인데,

이 짓을 언제까지 할 터인가?

한 나라의 인구 양이란,

인구사회학적 요인에 의해 총체적으로 제한을 받는다.

그런즉, 다른 지방의 인구를 빼앗아,

내 지방의 인구를 늘인다는 것이 얼마나 엉터리인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인구를 빼앗긴 지자체는 감내할 수준 이상으로 무리를 하여,

인구 유인책을 쓸 터인데, 

이게 전국적으로 행해질 때,

나라 전체의 사회경제학적 효용은 아무런 변동이 없다.

아니, 외려 불요 노력과 비용 지출로 인해,

전국적 규모로 환산하면, 큰 허실이 일어날 것이다.


만약 인구 양에 주목한다면,

내국인 상대로 서로 빼앗기 경쟁을 할 일이 아니라,

차라리, 외부 이민을 받아드리는 데 집중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혹자는 이를 지극히 꺼려,

외국인 유입을 막고, 외려 기존의 사람들을 추방하여야 한다는 이도 나타나고 있다.

문화적 갈등과 충돌이 일어나고 있음인데,

나는 이런 순혈주의, 민족주의적 접근엔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

중국인, 남방인, 서양인 ...

나는 어떠한 인종인들,

이 땅에서 인연을 지었다면,

그들이 결코 타인, 타자로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민을 받아들인다한들, 음양으로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은 적지 않다.

나는 이런 차원의 문제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국인, 이민자들을 구별하기 이전에,

과연 이 땅에서 사는 인민들이,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가?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여기 하나의 참고 자료 영상을 견인해 본다.



(출처 : utube, 지방이 사라지고 있다 2018 0917 시사플러스)



내가 바로 예견한 현상이다.


서울은 결코 변방으로 전락하지 않는다.

가령 부동산에 투자한다고 하면,

결코 서울을 외면할 일이 아니다.

덧붙인다면, 강북의 명동, 성북동,

강남은 현재로선 불패 지역인즉,

이들 외의 지역을 투자 적격 지역으로 삼을 이유 없다.


단타, 일시적 투기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면,

이들 지역은 결코 불침항모(不沈航母)의 지위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그렇고,

나는 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반기고 있다.


한국은 사람이 너무 많다.

사람이 적은 곳에서 살고 싶다.

이젠, 서울을 떠나,

쉬이 사람을 마주칠 일이 없는 외지에서 머무르고 싶다.


인구 양과 경제성장은 경제, 통계학적으로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하지만, 이게 개인의 행복을 재는 척도가 되지는 못한다.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그러할 만한 곡절이 있는 법.

이것을 그저 양적 접근으로 만 해석하고 대응할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인구가 적더라도 문화 시민이 많아진다면 외려 다행스런 일이 아니랴?


김구 선생님의 이 말씀은 얼마나 선명한가?

이 말씀 앞에 서면,

언제나 옷깃을 여미며,

현재의 우리들 삶을 반성하게 된다.

욕심에 찌든 우리네 삶이란,

얼마나 부끄러운가?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 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 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우리 국조(國祖) 단군(檀君)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또 우리 민족의 재주와 정신과 과거의 단련이 이 사명을 달성하기에 넉넉하고 우리 국토의 위치와 기타 지리적 조건이 그러하며, 또 1차, 2차의 세계 대전을 치른 인류의 요구가 그러하며, 이러한 시대에 새로 나라를 고쳐 세우는 우리가 서 있는 시기가 그러하다고 믿는다. 우리 민족이 주연 배우로 세계 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는가.

이 일을 하기 위하여 우리가 할 일은 사상의 자유를 확보하는 정치 양식의 건립과 국민 교육의 완비다. 내가 위에서 자유와 나라를 강조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최고 문화 건설의 사명을 달한 민족은 일언이폐지하면 모두 성인(聖人)을 만드는 데 있다. (중략)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 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

우리는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덕을 입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에게, 이웃에게, 동포에게 주는 것으로 낙을 삼는 사람이다. 우리말에 이른바 선비요, 점잖은 사람이다.


(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341528.html#csidx6c63ee1a8c1368cb393d8f8f3b26521) 


우리 때는 이것 교과목에서 접한 적이 없었는데,

요즘엔 고등학교 교과서엔 실려 있는가 보다.


인구 숫자 준다고 걱정할 일이 아니라,

과연 지금 우리네가 사람답게 사는가?

이를 고민하여야 할 일이다.


나는 김구 선생님의 이 말씀에 의지한다면,

사람 숫자가 늘고 줄고에 연연할 것 없이,

당장의 우리의 마음보, 태도를 점검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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