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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剪枝)와 알묘조장(揠苗助長)

농사 : 2019. 2. 13. 20:49


전지(剪枝)와 알묘조장(揠苗助長)


올해 전지를 며칠 전부터 시작하였다.


전지는 처음 배울 때 제일 염려가 많이 되는 분야이다.

나무 앞에 서서, 도대체,

어떤 가지를 잘라야 되는지,

혹은 어떤 가지를 남겨 두어야 하는지,

이를 분별하여야 하는데,

가지 모양새는 천차만별이라,

이를 알아내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전지 교육을 받는다하여도,

강사마다 전지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초보자에겐 더욱 혼란스럽다.


하지만, 해를 거듭 할수록,

그 이치를 터득하여 조금씩 익숙해진다.

그러다 보면, 전지 대가라 이르는 이라 할지라도,

예전에 그가 일러준 것 중에 조금씩 엉터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인,

정부우세성이니, 리콤의 법칙 운운하며,

가지를 눕혀야 열매가 많이 달린다 하는 것이다.


하기에 애써 서있는 가지를 줄로 묶어 땅으로 끌어 내린다든가,

위로 솟은 가지를 잘라 버리고, 누운 가지를 우대하는 방법을 취하게 된다.


나는 여기에 큰 문제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에 대하여는 예전 나의 글을 통해 얼추 그 이유를 밝혔었다.

(※ 참고 글 : ☞ 을밀 전지법 ⅱ)


올해 나흘 정도지만,

밭에 나가, 전지를 하면서 이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전지를 하면서 내겐 두 가지 큰 고민이 있었다.


하나는, 농약, 비료를 주지 않고 키우겠다 하였음인데,

잘 자라는 가지를 내가 마음대로 잘라도 되는가?

하는 근원적인 회의가 일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바로 이 위로 솟은 가지를 잘라내는,

기존의 전지법에 대한 의문이 그것이다.


첫 번째 문제는, 가지를 사람이 잘라내는 행위는,

식물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인즉,

내 농사 철학에 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를 수년래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금년엔 조금 이로부터 헤어 나올 단서가 발견되길 기대한다.

그 자료를 해마다 축적하고 있는데,

향후 몇 년 안에 나의 철학적 고민이 해결이 되리라 전망된다.


두 번째 문제는, 앞글에서도 지적하였듯이,

가지가 하늘을 향해 자라는 것은 저들의 본성이자,

당연한 일인 바, 이를 거스르며, 쳐내는 것은,

전지의 바른 태도가 아니라 생각한다.


태양은 하늘에 있은즉,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려면,

당연 위로 솟구치며 자라야 한다.

아시다시피 광합성이야말로 식물의 제일의적 과제 행위인 것이다.

게다가 광합성 외에도,

식물 역시 생명인 바라, 천기(天氣)를 구하고, 따르고자,

하늘을 우러르며 순정의 푯대를 높이 세우는 것이니,

이 어찌 욕심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범부가 차마 알아 차릴 수 있으랴?

그런데, 이를 인위적으로 방해한다면,

절대 식물에게 보탬이 되지 않으며,

결국은 그 열매를 취하는 인간에게도 매 한가지다.


대저 가지가 하늘을 사모하며, 높은 기상으로 위로 벋칠 때라야,

마음껏 생육, 발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달리 누구에게 물어볼 것도 없이 정(正)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리 튼튼하게 자란 가지에 열매가 달려야,

영양분을 충분히 전달받아, 달고, 건강하게 여물 것이다.

실제, 내가 경험하지만, 분명 이러한 열매가 달고 시원하다.


반대로 축 처진 가지에 열매가 달릴 때,

가지 자체가 부실한데, 어찌 열매가 잘 영글겠음인가?


차차 열매가 커짐에 따라, 

가지는 이 때라서야, 열매의 무게에 의해 고개를 숙이며,

아래로 쳐지게 되는 법이다.

벼이삭도 처음에 나올 때는 위로 곧추 서 있다가.

이게 나중에 낱알이 조금씩 충실해지면서 무게가 나감에 따라,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것이다.

헌데, 이를 처음부터 고개를 눌러 쳐지게 하면 어찌 되겠음인가?

아마 그리되면 잘 영글지도 않겠지만,

혹 쌀알이 된다한들, 맛도 없고, 충실치도 못하게 될 것이다.


「敢問夫子惡乎長?」

曰:「我知言,我善養吾浩然之氣。」

「敢問何謂浩然之氣?」

曰:「難言也。其為氣也,至大至剛,以直養而無害,則塞于天地之閒。其為氣也,配義與道;無是,餒也。是集義所生者,非義襲而取之也。行有不慊於心,則餒矣。我故曰,告子未嘗知義,以其外之也。必有事焉而勿正,心勿忘,勿助長也。無若宋人然:宋人有閔其苗之不長而揠之者,芒芒然歸。謂其人曰:『今日病矣,予助苗長矣。』其子趨而往視之,苗則槁矣。天下之不助苗長者寡矣。以為無益而舍之者,不耘苗者也;助之長者,揠苗者也。非徒無益,而又害之。」

(孟子)


“‘감히 여쭙습니다만, 

선생께서는 어느 것을 잘하십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시다.


‘나는 남의 말을 잘 알고(知言),

내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잘 기르네.’


'감히 여쭙습니다만, 

무엇을 호연지기라 합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시다. 


'말하기 어렵네. 

그 기(氣)라 하는 것은 지극히 크고 굳센 것이니, 

곧은 것으로 길러서 해치지 않으면, 

천지 사이에 가득 차게 되는 것이네.


그 기라 이르는 것은 도의에 짝하는 것으로, 

이것이 없으면, 기가 허탈해진다네.


이것은 의(義)를 모아서 생기게 하는 것이네. 

외부에서 의가 엄습하여 취해지는 것이 아니네, 

행하여 마음에 찐덥지 않으면, 

기가 허탈해지는 것이니, 

나는 그런즉 고자(告子)가 의를 아직 아지 못한다고 하는 것일세.

그것은 그가 의를 밖에서 오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일세. 


사람이 일을 행함에 있어서, 반드시 바로 되리라 기대하지 말게, 

(다만) 마음으로 잊지 말고, 

또한 조장(助長)할 일도 아니라네.


송나라 사람이 그런 것처럼 하지 말게. 

송나라 사람이 싹이 잘 자라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싹을 뽑아 올려놓고 망망히(피곤한 모습) 집으로 돌아가서, 

집식구들에게 말하였네. 


‘오늘은 지쳤다. 나는 싹이 자라는 것을 도와주었네.’


그 아들이 달려가서 그것을 보았더니, 

싹은 말라 버렸더라네. 

천하에는 싹이 자라는 것을 도와, 뽑아 올리지 않는 사람이 적네. 

무익하다고 하여 버려두는 사람은 김을 매지 않는 사람이요. 

무리하게 자라게 하는 사람은 싹을 뽑아 올리는 사람이니,

이는 무익할 뿐만 아니라 외려 해치는 짓일세.’"


(출처 : 網上圖片)


아, 그러함이니,

사람들은 전지를 합네 하면서,

마치, 저 맹자에 나오는 말씀이듯,

알묘조장(揠苗助長)이라,

싹을 빨리 자라게 하겠다고 뽑아놓듯,

열매를 많이 달리게 하겠다며 멀쩡한 가지를 땅으로 잡아당겨 휘게 만들거나,

하늘 향해 두 팔 벌려, 잘 자라는 가지를 싹둑 잘라버리고 마는 것이며,

서로 싸우지 않도록 하겠다며, 멀쩡한 닭 부리를 잘라버리는 것이다.

기실 닭들이 싸우는 것은 좁아터진 곳에 밀식함으로 인해 생기는 일이지,

저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살도록 하면, 싸우라고 부추겨도 싸우지 않는 법이며,

나무가 햇빛을 잘 받아 건강하게 잘 자라면,

후에, 열매가 충실해져 절로 가지게 휘게 되는 법이며,

그냥 놔두면 알아서 절기가 천시(天時) 따라 잘 굴러가면, 

싹이란 절로 자라는 법이다.


以為無益而舍之者,不耘苗者也;助之長者,揠苗者也。非徒無益,而又害之。


“무익하다고 하여 버려두는 사람은 김을 매지 않는 사람이요. 

무리하게 자라게 하는 사람은 싹을 뽑아 올리는 사람이니,

이는 무익할 뿐만 아니라 외려 해치는 짓일세.’


아아, 그러함이니,

나는 농사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르는 초보 농부 시절부터,

不耘苗라, 

밭에 풀을 매지 않는 기본 태도를 견지하였으며,

지금에 와서는 외려 풀을 기른다 하여야 할 것이다.

(다만, 유목(幼木) 때라든가, 번무(繁茂)시에 제한적인 예초 작업을 시행한다.) 


나의 농사철학, 언필칭 을밀농철 하에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식물의 본성을 해치지 않도록 하니,

이는 불개입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에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외려 가급적 간섭을 하지 않고 놔버려 두면 될 일이다. 


直養而無害,則塞于天地之閒。


“곧은 것으로 길러서 해치지 않으면, 

천지 사이에 가득 차게 되는 것이네.”


이러함인데,

전지하는 사람들은 모두 고자(告者)의 후예들로써,

곧은 것을 내버려 두지 않고 해치며,

애써 눕혀 저들의 기(氣)를 꺾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의(義)를 모른다 할 밖에.


天下之不助苗長者寡矣。


“천하에는 싹이 자라는 것을 도와, 뽑아 올리지 않는 사람이 적네.”


알묘조장의 고사를 들으면,

저마다 입을 가리켜 킥킥 거리며 비웃는다.


하지만, 밭에 나가 전지를 할 때 되면,

십중팔구는 모두 스스로 저 알묘조장의 송나라 사람이 되고 만다.


사람들이 사본축말(捨本逐末)이라, 

근원을 돌보지 않고, 말단을 쫓기 바쁘다.

헌즉, 식물의 본성을 돌아보지 않고, 

그저 사람의 편의만 쫓는데 혈안이 되어,

제 잇속과 욕심을 채우기 바쁘다.


여담이지만,

알묘조장의 주인공은 송나라 사람이다.

한편, 우리가 잘 아는 기우(杞憂)의 주인공은 원래 하(夏) 나라 사람이다.

송나라나 하나라는 모두 망한 나라이다.

이렇듯, 우스꽝스런 짓을 하는 이들의 주인공은 하나 같이,

이들 망국지인(亡國之人)에게 맡겨지는 것이다.


이런 예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서도 자행된 적이 있다.

박정권 당시 호남 사람을 푸대접하여,

악역은 모두 이들에게 미뤘던 일도 있지 않은가?

(참고로 나는 서울 토박이다.)

그런데, 커가면서, 이것이 다 허구인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외려 저들 일부 경상도 패거리들이 더욱 무리지어 가며,

나라 국권을 농단하며, 세상 사람들을 농락하고들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내가 겪은 바로는,

본토박이 경상도 사람들은 씩씩하고, 의기로우며,

호남사람들은 점잖고, 예의 바르다.


고자(告者)라.


我故曰,告子未嘗知義,以其外之也。


“나는 그런즉 고자(告子)가 의를 아직 아지 못한다고 하는 것일세.

그것은 그가 의를 밖에서 오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일세.”


전지법 역시 나무 밖의 인간이 아니라,

식물 자신(입장)에게서 서면,

바른 도리가 구해지는 법이다.

사람의 욕심으로 나무를 대하기에,

만병, 만악이 생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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