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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quaponics의 문제점 ⅱ

농사 : 2019. 2. 21. 10:14


aquaponics의 문제점 ⅱ


농장 근처 노가다 일을 하는 녀석이 하나 있다.

언제가 그가 말했다.

‘불교를 믿기에 개고기는 먹지 않는다.’

헌데, 그의 집 뒤꼍에 개 한 마리가 묶여 지내고 있었다.


닭도 키우는데,

낱알에 소위 소독약이라는 것이 파랗게 칠해진 씨앗을,

녀석은 아무런 의식도 없이 그냥 뿌려준다.

이것 독이 칠해진 것 아닌가?

이것을 살아있는 동물에게 먹이로 주고,

나중엔 그 닭을 또 잡아먹는다.


이쯤이면 무지하다고 하여야 하는가?

아니면 천하다 하여야 하는가?


어느 날, 개줄이 풀려 개가 동네를 마구 돌아다녔다.

주인이 아무리 불러도 잡히질 않고, 이웃집에 들어가 기물을 훼손하였다.

급기야, 주인은 소방서에 연락하여 도움을 청했으나,

그 개는 끝내 잡히지 않았다.

도대체가 개를 얼마나 묶어 두었으면,

주인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고,

저리 제 자유를 마음껏 즐기고 있는가 말이다.


그 기물을 훼손당한 이웃집이라고 무엇이 다를까?

연년세세 개를 서넛 키우는데, 다 자라면 잡아먹는다.

그 집 할머니 왈, 

‘개장수에게 금을 물어보았는데, 기 만원밖에 안준데,

나쁜 놈이야. 차라리 더 길러 아들 친구들 불러, 잡아먹으라 할 거야.’


시골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피부에 궤양이 생기면,

처음엔 가렵다가도, 나중엔 악어가죽처럼 두꺼워진다.

이때에 이르면 무감각해져 쇠스랑으로 긁어도 아무런 기별이 가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저 제 살기에 급급하여,

감수성 자체가 석벽처럼 메말라 버리고 말은 것이다.


천박한 인격들이다.


조선 순조 때 유씨부인이 조침문(弔針文)을 지었다.

자녀도 없이 오로지 바느질로 낙을 삼던 여인네가,

쓰던 바늘이 부러지자, 이리 제문을 지어 그 안타까움을 한탄하고 있다.


조침문(弔針文)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미망인(未亡人) 모씨(某氏)는 두어 자 글로써 침자(針子)에게 고(告)하노니,

....

아깝다 바늘이여, 어여쁘다 바늘이여, 너는 미묘한 품질과 특별한 재치를 가졌으니, 물중(物中)의 명물(名物)이요, 굳세고 곧기는 만고(萬古)의 충절(忠節)이라. 추호(秋毫)같은 부리는 말하는 듯하고, 두렷한 귀는 소리를 듣는 듯한지라. 능라(綾羅)와 비단(緋緞)에 난봉(鸞鳳)과 공작(孔雀)을 수놓을 제, 그 민첩하고 신기(神奇)함은 귀신이 돕는 듯하니, 어찌 인력(人力)이 미칠 바리요.


오호통재라, 자식이 귀(貴)하나 손에서 놓을 때도 있고, 비복(婢僕)이 순(順)하나 명(命)을 거스를 때 있나니, 너의 미묘한 재질(才質)이 나의 전후에 수응(酬應)함을 생각하면, 자식에게 지나고 비복에게 지나는지라. 천은(天銀)으로 집을 하고 오색(五色)으로 파란을 놓아 곁고름에 채였으니, 부녀의 노리개라. 밥 먹을 적만져 보고 잠잘 적 만져 보아 널로 더불어 벗이 되어, 여름 낮에 주렴(珠簾)이며, 겨울 밤에 등잔을 상대하여, 누비며, 호며, 감치며, 박으며, 공그릴 때에, 겹실을 꿰었으니, 봉미(鳳尾)를 두르는 듯, 땀땀이 떠 갈 적에, 수미(首尾)가 상응(相應)하고, 솔솔이 붙여 내매 조화(造化)가 무궁(無窮)하다.

 

이 생(生)에 백년동거(百年同居)하렸더니, 오호애재라, 바늘이여. 금년 시월 초십일 술시(戌時)에 희미한 등잔 아래서, 관대(冠帶) 깃을 달다가, 무심중간(無心中間)에 자끈동 부러지니 깜짝 놀라와라. 아야 아야, 바늘이여, 두 동강이 났구나. 정신이 아득하고 혼백(魂魄)이 산란 (散亂)하여 마음을 빻아 내는 듯, 두골을 깨쳐내는 듯, 이윽도록 기색혼절(氣塞昏絶)하였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만져 보고 이어 본들 속절없고 하릴없다. 편작의 신술로도, 장생불사(長生不死) 못 하였네. 동네 장인(匠人)에게 때이련들 어찌 능히 때일손가. 한 팔을 베어낸 듯, 한 다리를 베어낸 듯, 아깝다 바늘이여, 옷섶을 만져보니 꽃혔던 자리 없네.

.....


농부가 수년 호미질을 하다 이빨이 빠져 못쓰게 되면,

뒤꼍 처마 밑에 고이 매달아 두고, 차마 버리지 않는다.

우리네 농부들은 예전에 이리 곱게 살았다.



내가 그동안 농장 일을 하면서,

부러지고 깨진 삽을 버리지 않고 모아둔 것이 여기에 있다.

저것 고쳐 쓰려고, 철물점에 삽자루 가격을 물었더니,

그냥 새 삽이나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노가다 인부들은 삽이 부러지면,

그냥 아무데나 내버리고 만다.

물량주의, 물신주의가 팽배하여,

도대체가 사물에 감정 이입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하기사, 동물 보기를 돌멩이보다 더 못하게 대하는데,

삽이 무슨 대수랴?


何少何多,是謂謝施

(莊子)


‘무엇을 작다 하며, 무엇을 크다하랴?

이를 일러 사시(謝施)라 한다.’


여기 사시는 베풀어준 은혜에 대해 감사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헌데, 동물을 뜬장에 가둬 평생 지옥 속에서 신음하게 만들어,

그 육고기를 취하고,

식물을 흙도 없이 알뿌리 채 물 속에서 흐물거리며 평생을 지내게 한다.

식물은 물을 만나면 뿌리를 스스로 잘라버린다.

홍수가 지면 수분 흡수를 하지 않으려 이리 하는 것이다.

헌즉 홍수가 지나고 나도, 이미 모든 뿌리가 절단이 나서,

도리어 시들어 죽고 만다.


저 수경재배, aquaponics 따위의 천박한 공법의 경우,

양액 농도를 고단위로 높여 흡수를 강제로 도모하게 된다.

이게 통상 토양일 때에 비해 그 척도인 EC로 볼 때, 4~5배 이상 높다.

마치 예전에 소를 잡기 전, 입에 호스를 박고,

펌프질을 하여 증체를 도모하는 짓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게 식물이라, 눈이 어두운 사람들은 그저 지나치고 말기에,

잘 알아차리지 못하고들 있다.


정신 차리고, 예민한 감수성을 유지하면,

동물, 식물 가리지 않고, 저것이 참으로 끔찍한 짓임을 이내 알 수 있다.


나는 수경재배나, aquaponics 따위를 보면,

바로 뜬장, 물펌프질이 오버랩 되며 참을 수가 없다.


저것들은 천박하기 짝이 없는 악행이다.


존재는 누구도 예외 없이 남의 것에 의지하여,

제 명을 부지하는 슬픈 숙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비록 저들의 살을 저며내 씹고, 뼈를 발라 취하며 산다한들,

그로써 은혜를 입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何少何多,是謂謝施


도대체 무엇이 미물이며, 무엇이 만물의 영장인 것인가?

이에 대한 자각을 하는 것을 일러 謝施라 하는 것이다.


兼懷萬物,其孰承翼?是謂無方。萬物一齊,孰短孰長?


‘만물을 포섭하여, 누구를 (차별하여) 덜 또는 더 보아주랴?

이를 일러 무방(無方)이라 한다.

(무방이 되면) 만물이 하나로 가지런하게 된다.

누구를 두고 짧고 길다 하랴?’


천하가 제 욕심 차리기에 급급하고,

정책 당국자 역시 이를 뒤에서 부추기고, 앞에서 상을 주어,

이끄는 일을 태연히 저지르고 있다.


실제, 식품 GMO 표시제를 엉터리로 방임하고 있는 것이 이 땅의 정책 당국이며,

농진청에서 GMO 벼를 기르고 있는 현실인데,

연목구어라 도시 이들에게서 무엇을 구하리?


아, 그런즉, 천하가 이리,

소방(小方)의 무리들로 가득 차있음을,

나는 탄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모(方)가 날려면, 그 크디 큰 방으로써,

뭇 소방을 극(剋)하여야 한다.

모조리 소방을 거꾸러뜨릴 정도가 되어야 한다.

이를 대방(大方)이라 한다.


대방에 대하여는 내가 간간이 글을 쓴 편인데,

언젠가 이를 주제로 글을 쓸 것이다.

다만, 약간이나마 다룬 나의 다음 글을 여기 걸어둔다.

(※ 참고 글 : ☞ 大方無隅)


장자(莊子)가 말한 무방(無方)과 내가 말한 대방(大方)은,

그래 한 치도 다름이 없다.


(※ 참고 글 : ☞ aquaponics의 문제점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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