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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깃발

소요유 : 2019. 3. 5. 19:24


고양이와 깃발


TNR(Trap-Neuter-Return)


TNR은 길고양이를 ‘포획-중성화(수술)-복귀(방사)’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들에게 직접적 위해를 가하지 않고, 

인간과의 타협적 삶을 도모하고자 함이다.

도시에 사는 길고양이는 너무 안타깝다.

저들은 가임률이 높아 연신 새끼를 배고, 번식을 하는데,

그들이 사는 환경은 너무 열악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저들의 생존율은 2년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가병율도 높고, 영양 활동이 열악하여,

고통 속에서 나고, 죽고를 반복하고 있다.


아파트의 경우 대부분 쓰레기(음식물)를 통에 넣거나,

그물, 철망 구조물로 울을 쳐서 그 안에다 처리하도록 채비하고 있다.

이로써 고양이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젠, 저들이 먹이를 취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헌즉, 저들을 어찌할 것인가?

본디 나는 TNR 이것 싫다.

내가 타자의 삶에 관여하는 일 자체가 유쾌하지 않다.  

허나, 농장 안에 거둔 고양이가 나날이 늘어나자,

실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 참고 글 : ☞ 고양이와 풀강아지)


만부득 TNR에 의지하기로 한다.

사는 것이 죄라 하였던가?

아니 이런 말 따위에 기댈 것이 아니다.

나는 바로 죄를 짓고 있음이다.

앞으로 두고두고, 

TNR에 대한 내 생각을 바로 정립하고자 한다.

피할 일이 아니다.

내가 저지른 것인즉,

책임 문제와 정당성 여부를 깊이 헤아려 보아야 한다.


TNR 사업은 지자치마다 조금씩 달리 시행하고 있다.

여기 우리 군(郡)의 경우엔 군에서 나와 직접 조치한다.

얼마 전 군 직원이 TNR 덫을 가지고 나와 설치하고 갔다.

하지만 일부는 덫에 설치한 먹이를 탐하며 몇몇이 그 안으로 들어갔으나,

일부는 심히 경계를 하며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또한 그중 일부는 며칠 있다가 아예 사라진 경우도 있다.

아뿔싸.

저들을 어이할 것인가?

다만, 평소에도 며칠 씩 없어졌다간 다시 나타나는 경우도 있으니,

언제고 다시 돌아오리라 기대한다.


덫에 걸린 아이들은 군청 직원이 직접 병원으로 수송하여 수술을 시키고는,

며칠 있다 다시 데려다 준다.


그런데, 묘한 일이 벌어졌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한다.

그동안 한 번도 덫에 걸리지 않은 아이들은,

며칠이 지나도 절대 덫에 걸려들지 않는다.

저들은 그 위험을 알고, 아무리 먹이의 유혹이 있다한들,

그 흉측한 덫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헌데, TNR이 끝나, 복귀한 아이 중 하나 흰둥이가 있다.

녀석은 복귀 후 거푸 두 번이나 들어가 잡혔다.

허니 도합 세 번이나 덫에 걸린 것이다.

덫엔 맛있는 냄새가 나는 통조림이 들어 있다.

워낙 식탐이 많은 녀석으로서는 이 강렬한 유혹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리라.



어제 아침엔 표범 무늬의 또 다른 하나가 잡혔다.

가서 보니 이 녀석 역시 이미 TNR을 마친 아이다.



그래 생각한다.

저것은 머리가 멍청한 것이 아니라,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식욕(食慾)을 스스로도 어찌 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랴?


‘먹어야 산다.’

이 본능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였을 뿐,

머리가 나쁘다 탓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개중엔 아무리 그렇다한들,

저 덫엔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다 작심한 아이들이 또 있는 것이다.

저들의 어미가 있는데, 녀석은 산전수전 다 겪어,

저 덫의 흉악함을 이미 간파한 것이다.

그리고 제일 막내 꼬맹이 어린 아이도 이를 아니, 여간이 아니다.

녀석은 가을 다 늦게 태어나 비실비실하여,

어찌 겨울을 날 것인가 염려가 컸다. 

헌데, 저리도 조심성이 크고, 의지가 굳세구나.


저 자존심이라니.

경이롭다.

장하다.


모쪼록.

사람이란 제 깃발을 높이 들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제가 지키고자 하는 사상, 신념을 위해, 

자신 만의 기치(旗幟)를 들어야 한다.

헌즉 기치는 기지(旗志)라고도 하는 것이다.

단순한 헝겊이 아니라 한 인격, 그 뜻의 표상(表象)이 깃발인 것이다.

가다 고대 죽더라도,

자신만의 깃발을 들어야 한다.


고양이일지라도,

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불의(不義)와 위해(危害)에 저항하여야 한다.


깃발을 흔들 줄 아는 고양이.

이, 얼마나 장한가?


녀석들을 지켜보련다.

한편으론 덫에 걸리라 주문을 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그 장함에 찬사를 보내고 있는,

나의 이 이중성을 저들은 알고 있을까?


배반사건(排反事件, exclusive events)

동시에 일어날 수 없는 사상(事相, 事象)을 말한다.

헌데, 한 인격이로되,

고양이를 두고 덫에 걸려라 주문을 걸며,

또 한편으론 걸려들지 않음을 장하다 이르고 있음이니,

도대체 나란 위인은 위선자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주문왕(周文王)을 생각한다.

그는 주역과 후천팔괘(後天八卦)를 지은 이로 알려져 있다.

은(殷)나라의 폭군인 주(紂)는 그를 유리(羑里)에 가두었다.

그리고는 주문왕을 시험하기 위해,

그의 아들인 백읍고(伯邑考)를 죽여, 이를 먹게 한다.

그는 이를 알면서도 태연히 먹는다.

일설에는 이를 먹고는 몰래 토했다 한다.

후일 토아분(吐兒墳)이란 무덤을 만들어 이를 기렸다.


이리 자식을 죽여 국을 끓인 후, 먹게 한 예는,

역사에선 그리 낯선 장면이 아니다.

가령 위(魏)의 장수 악양(樂羊) 역시 중산(中山)국으로부터 이런 도발을 당한다.


하여간, 자신의 아들로 만든 고깃국(肉羹)을 먹은 이들은,

하나같이 상대를 거꾸러뜨리고 뜻을 이룬다.

 

다만, 식자(食子)의 위인은 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은즉,

그 실질 내용은 사뭇 다르다.

그런즉, 식자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

동일 지평으로 해석하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


지금 예로 든, 주문왕과 악양의 예는 거죽으로 비슷하나,

그 내면의 사정은 같지 않다.


가령 악양의 경우 본디 그는 출신이 중산이다.

그의 입지, 처지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식자로써 대의멸친(大義滅親)이란 기치를 들어,

새로 둥지를 튼 나라에서 자기 현시는 하였을지라도,

결국엔 不近人情이라,

사람의 인정엔 가깝지 않은 일이라,

큰 상은 받았지만, 이후 신임을 받지는 못하였다.

이런 이는 도무지 찜찜하기 그지없는 바라,

그저 거둘 뿐, 크게 쓰지는 않는 것이 통례임이라.


하지만, 주문왕은 악양과는 사정이 다르다.


難得糊塗

“聰明難,糊塗難,由聰明而轉入糊塗更難,放一著,退一步,當下心安,非圖後來福報也。”


“총명하기도 어렵고, 어리석기도 어렵다.

총명한 사람이 어리석게 되기는 더욱 어렵다.

집착을 놔버리고, 한 걸음 물러서, 마음을 놓아버리면, 편안하다.

후에 복을 받고자 함이 아니다.”


(※ 糊塗 : 흐리멍텅하다.)


이 글은 청나라의 정판교(鄭板橋)의 글이다.

이에 대하여는 별도의 풀이가 필요한데,

지금은 더 나아가지 않으련다.

다만 호도란 거짓으로 꾸며 멍청한 양 보이는 짓을 일컫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으리라.


주문왕은 호도라,

짐짓 어리석은 양 꾸며, 위기를 탈출하였을 뿐이다.

악양과는 역할 내용이 같지 않다.


걸왕은,

주문왕이 자기 자식으로 끓인 고깃국(肉羹)을 태연히 먹을 정도의 위인이라면,

결코 은나라에 위험 인물이 아니다.

이리 여기고 풀어주고 만다.


내가 이리 뜬금없이 주문왕 등의 식자의 예를 상기하고 있음은,

세상일이란 때론 거죽에 드러난 것과는 사뭇 다른 것임을 예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의 심리 내용이 ‘(고양이)포획-항거’ 이리 나눠져 이중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실질은 결코 갈등을 생산하고 있지 않고,

담담하니, 세상의 실상을 적실하니 지켜보고자 할 뿐임이라.

당신은 이를 알 수 있을 텐가?


이는 악양처럼 식자로써, 자신의 충의를 팔려고 함이 아니며,

주문왕처럼 전복(顚覆)의 숨긴 깊은 뜻이 있지도 않음이라,

다만, 자연에 내던져진, 저들 고양이, 동물들에,

이르른 내 생각의 일편을 그저 담담하니 드러내고자 하였을 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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