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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

소요유 : 2019.08.07 12:17


봉사


이 시대, 봉사란 말처럼 오염된 것이 또 있을까 싶은 깨달음을 요사이 재삼 경험한다.

최근 관에서 횡포를 부려, 이들을 상대로 몇 차 대응을 하고 있다.

그들의 반응이 왔는데, 한참 미흡하여 다시 응대를 하고자 하나,

지금 한참 휴가철이라, 내 저들을 편안케 하고자, 잠시 내버려 두고 있다.


그런데, 저들 관의 부름을 받은 용역 심부름꾼이 와서 일을 벌였다.

내가 인터럽트를 걸자, 6인 중 책임자급이란 자가, 말한다.

‘의용소방대원인데 봉사 차 나왔다.’

어림없는 소리다.

요즘 세상에 어떤 놈이 염천지절을 무릅쓰고 봉사씩이나 할까?

행색을 보아하니, 모두 거무죽죽 지친 기색이다.

헌데, 나중에 알아보니, 관에 의해 동원된 자들임이라,

이자들이 자신을 숨기고 있음이다.

(※ 후에, 봉사가 아니라, 일당에 뜻을 둔 자들이었음이 확인되었다.)


돌이켜 보면,

이 자가 3년 전쯤에도 나를 찾아와 봉사하겠다 하여,

내 단호히 내쳤음을 기억해내었다.

어림없는 소리, 

내 앞에선 감히 봉사란 고깔모자 쓰고, 광대 춤을 출 생각을 하지 말지라.

니기미, 

봉사할 생각하지 말고,

작년 그러께 먹다 네 놈 옷섶에 흘린 김칫국물이나 먼저 닦으라지. 


봉사?


진정 봉사를 하려는 자는,

이리 요란을 떨지 않는다.


흔히 조폭들이 교도소에 들어갔다 나오면, 

이리 변신을 하며, 가래침 돋아 뱉어 내놓고 한참 헛기침을 하며 토해 내놓는다.


“하느님의 부름에 따라, 내 남은 여생 사회에 봉사하는데 바치겠다.”


그러다, 종내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며, 때론 목사 안수까지 받는다.

신앙 간증한다며, 전국을 순회하고,

고아원, 양로원을 방문하여, 라면 박스 높이 쟁여놓고 사진도 박는다.


쌓아 놓은 박스 키가 높을수록 위용은 빛나고,

양심은 회복되어 새사람으로 거듭났음을 거증한다.

아울러 이들을 앞세워, 교회 위신은 높아진다.

짭짤하니 남는 장사가 된다.


헌데, 우리는 저들이 머지않아 다시 죄를 짓고 옥에 갇히게 된 소식을 접한다.


빤~쓰 목사로 유명한 전~광~훈.

그를 향해 손봉호는 이리 말했다 뉴스는 전한다.

(※ 이리 ~를 섞어 넣지 않으면, 그의 추종 세력에 의해 본 글이 추적되어, 

글을 내리라 시비를 걸 우려가 있음이라, 이리 처리함.)


“손 교수는 전광훈 목사를 향해 “회개하고 아주 건강한 시민으로 봉사하라”며 “목사직도 그만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아, 봉사를 하라 함인가?

봉사란 말을 대하자, 나는 흠칫 놀란다.

이 시대 오염된 말의 전형 ‘봉사’ 더는 이 말은 설자리가 없다.


내가 사숙하는 한비자는 회개, 봉사 따위를 권하지 않는다.

그저 죄를 지었으면 벌을 주어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 故忠臣危死於非罪,姦邪之臣安利於無功。忠臣危死而不以其罪,則良臣伏矣;姦邪之臣安利不以功,則姦臣進矣;此亡之本也。

(韓非子 有度)


“... 고로 충신은 죄 없이도, 위태롭게 되며 죽임을 당하며,

간신은 공이 없으면서도, 편히 이익을 누리게 됩니다.

충신이 위태롭게 되고 죽임을 당하면서도 (그것이) 죄 때문이 아니라면,

어진 신하는 몸을 숨길 것입니다.

간신이 편히 이익을 누리면서도 (그것이) 공적 때문이 아니라면,

간신들이 벼슬길을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멸망하게 되는 근본입니다.”


이 시대 목사들이 과연 어찌 하느님을 섬기고 있는지 제시 영상을 보라.


(※ 출처 : 김의성 주진우 스트레이트 59회 -추적 친일 찬양과 색깔론 교회발 조작뉴스/ 추적 캄보디아로 간 예금)



(※ 출처 : 김의성 주진우 스트레이트 59회 -추적 친일 찬양과 색깔론 교회발 조작뉴스/ 추적 캄보디아로 간 예금)


나는 예수를 사랑하지만,

이리 예수를 동원하는 목사를 보고 있음이라,

도대체 저들을 따른 신도들은 어느 나변(那边)에 서 있음인가?

목사보다 저 신도들이야말로,

요해(了解) 불가능하다 하겠다.


아아, 그러함이니,

正見, 正思惟, 正語, 正業, 正命, 正精進, 正念, 正定을 따를 일이다.

죽을 때까지.


지혜수행(vipassanā) 

죽을 때까지 지혜 수행을 지속하여야 한다.

방금 전까지의 내 생각조차 과연 옳은가?

끊임없이 회의, 반성하며, 正見 바로 보아야 한다.


봉사란 말은 아무리 삿됨이 없는 진심일지라도,

지혜가 없다면, 맹목이라, 죄의 길로 나와 너를 이끌 위험이 있다.

항차, 그러함인데, 남을 위해 봉사를 하겠다고?

차라리, 동굴 파고들어 앉아 있다면,

그가 도를 이루곤 말곤, 최소 사회에 악해(惡害)를 끼치지 않으리.


독재 폭압 시절, 고문 기술자 이근안도 목사가 되었었다.

하지만, 앞에서 주워섬긴 말과 다르게,

그는 따로 뒷전에선 다른 말을 늘어놓으며 과거의 자신을 가렸다.


“대표적인 고문 피해자인 故 김근태 의장의 회고에 따르면, 어느 날 출소한 이근안과 마주쳤는데 이근안이 울면서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근안의 우는 모습에서 너무나 가식이 느껴져 용서해주지 못했는데, 그 일이 마음에 계속 걸린다는 것. 그런데 그 이후에 이근안은 설교 중에 자신이 김 의장을 고문했던 이야기를 꺼내며 "건전지 하나 들이대면서 겁을 줬더니 빌빌거리더라."고 비웃으며 본색을 드러냈다.”

(출처 : namu.wiki)


근원적으로 악하기도 하고, 한없이 나약하기도 한 인간.

결코 그의 말을 믿지 말지라.


세상에 봉사는 없다.

있다면, 그것은, 어둑 밤,

내가 홀로 자존의 두 발로 서있을 때,

내 가슴 속에 절절 끓는 뜨거운 피로 쓸 수 있을 뿐인 것을.


헌즉,

예수는 말하지 않았던가?


你施捨的時候、不要叫左手知道右手所作的。

要叫你施捨的事行在暗中、你父在暗中察看、必然報答你。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이리 말씀하고 있음이 아닌가?


허나, 불교에선, 무상보시(無相布施)라,

태없이 하라 하였으니, 

행여라도, 외부 신불(神佛)로부터의 갚음조차 기대하지 않는다.


봉사?

내 앞에서 봉사 운운하는 자가 나타난다면,

내 그를 시랑(豺狼, 승냥이와 이리), 사갈(蛇蝎, 뱀과 전갈)로 여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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