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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오해

농사 : 2020. 4. 22. 18:44


오래도록 한 인물을 지켜보았다.


그는 몹쓸 병이 들어 산에 들어가 수십 년 살았다.

유기농을 하며, 병을 다 고쳤다 한다.

그동안 유기농이니, 약초 이야기를 하며,

관행농을 비판하였었다.


늘, 자신이 약초에 밝고,

유기농을 한다면서,

자부심이 제법 컸었다.


그러던 이가 마음이 바뀌었는가?

오늘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유기농이 병에 도움이 되지만,

다시 옛날로 돌아가 유기농을 하겠느냐?

이리 물으면 아니하겠다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관행농으로 농사짓는 이웃들이,

늙도록 별 탈 없이 다 잘 살고 있다고 한다.


그의 말을 다시 들어본다.


‘유기농 농산물 먹는다고 오래 사는 것도 아니고,

그리 하면서까지 오래 살고 싶지 않다.

힘들게 살 필요 없다.

지금 암에 걸렸다 하여도 더 살고 싶은 생각 없다.

인생에 아무 의미가 없다.

당신들이 오래 살고 싶으면 유기농 하라.

위대하다고 하는 사람들 별것도 없다.

이웃 (관행농) 농부 어르신들이야말로 위대하다.’


그가 짓는 유기농을 나는 비판적으로 지켜보았었다.

가령 비료 주지 않고 키운다 하였지만,

그가 이웃으로부터 축분(畜糞)을 받아다 쌓아놓는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밭에는 흐트러진 채 이리 저리 멀칭 비닐이 날리고 있는 모습을 보자하니,

그의 말을 모두 믿은 것은 아니지만,

철저한 이는 아니란 생각을 가졌었다.


화학 비료를 주지 않는다 하여 모두 유기농이 아니다.

우리가 유기농이라 하면,

축분을 사용한다한들,

항생제, 성장 호르몬 등에 노출되지 않는 것을 취하리라 기대한다.

나는 단지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다 하여,

모두 유기농이라 여기지 않는다.


그는 이제껏 수십 년 동안 유기농을 자랑하고,

그에 의지하여 암도 고치고 욕심 없이 살고 있다고 연신 늘어놓았었다.


이제 와서 나이는 들어가고,

골짜기로부터 하수상한 봄바람이 쓸려 내려오고,

새벽 얼음까지 얼어붙는 날이면,

인생무상이라 마음이 잠시 풀릴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제껏 자신의 삶은 무엇인가?

이제와 다 죽어가다 살아난,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고 있는 삶, 

그리고 그에 대한 확신에 찼던, 

유기농 예찬의 언술(言述)은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그는 오해를 하고 있다.

아니, 오해를 하든 말든, 상관없이,

나와는 사뭇 다르다.


유기농을 하는 것이 꼭이나 오래 살고 건강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란 말인가?


그럴 양이라면, 관행농을 하고,

소출 많이 내어, 돈 많이 벌고,

병이 나면 그 돈으로 고치면 될 일이다.

그의 말처럼, 관행농 농부도, 병원 다니면서 오래 살 수 있다.

이게 좋아 보이기에, 이들을 두고 위대하다 한 것일까?


그처럼 건강을 위하여 힘들게 유기농을 몸소 지었다면,

아닌 게 아니라, 이제 몸도 마음도 늙어가며, 지쳐갈 때,

저녁노을을 치어다 보매,

문득 회의가 들 수도 있겠다.


내가 유기농을 넘어 자연재배를 영위하고 있는 것은,

결단코 말하거니와 오래 살고, 건강하게 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나는 농사를 지을 양이면, 자연재배를 하지, 아니 그러하면 외려 불편하다.

그렇다 하여 안달복달 하며 심사를 괴롭히며, 자연재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농법은 세상의 그 어떠한 농법보다 쉽고, 품이 덜 든다.


매해, 트랙터를 들여 밭을 갈 궁리를 트나?

비료, 농약 뿌리느라 고생을 하고,

그 비용을 걱정하는가?

멀칭 비닐 깔고, 치우느라 골병이 들기라고 하는가?

제초제 뿌리며 행여라도 목구멍, 숨구멍으로 들어올까 노심초사하나?


이 모두로부터 자유롭다.

풀까지 키우다시피 하며,

전장(田莊)을 숲으로 여기며,

유유자적할 뿐이다.


내 농법은 자유를 향한 몸짓조차 아니다.

그냥 자유다.


건강, 장수, 돈, 욕심 ...

그 어떤 세속적 목적을 가지고,

농사를 짓지 않는다.


이는 내가 도인이라,

이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가치에 매몰되지 않는단 말이다.


도법자연(道法自然)


자연을 본받고 사는 것이 즐겁기에 이리 사는 것이다.


건강, 장수, ...

이런 따위의 목적의식을 가지고 유기농을 짓는다면,

저자처럼,

어느 날, 문득,

늙어가며, 

이제까지의 자신의 삶을 쓱 부정하며,

모든 것을 무화(無化)시키며,

마치 인생을 달관한 양,

의젓하니 이바구를 털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 찾아와 유기농이나 자연재배를 짓겠다하면,

내가 늘 되묻는다.

이로써, 돈을 벌겠다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차라리 관행농으로 나설 일일지도 모른다.

잘 생각할 노릇이다.


유기농, 자연농은,

그저 단순한 여러 농법 중에 하나인 농법이 아니다.

기술, 작법 법식을 넘은 생각, 사상, 철학적 태도를 갖추지 못하였다면,

이를 제대로 영위할 수 없다.

아니면,

거짓 가짜 노릇하다,

염라대왕에게 잡혀가 혼줄이 나고 말 것이다.


을밀농철(乙密農哲)


내 블로그 앞에 걸쳐둔 표찰이다.


내 농사터는, 내 삶 철학의 구현 도량이다.

예서, 건강, 명예, 돈을 겨냥하고 있지 않다.


古之真人,其寢不夢,其覺無憂,其食不甘,其息深深。真人之息以踵,眾人之息以喉。

(大宗師)


옛날 참 사람은 잠을 자도 꿈을 꾸지 않고, 깨어도 근심이 없으며,

음식을 먹어도 단맛에 빠지지 않고, 숨을 쉬어도 깊다 하였다.

하기에 참 사람은 발뒤꿈치로 숨을 쉬고,

뭇 사람은 목구멍으로 쉰다 하였음이다.


유기농을 건강해지려고 짓는다면,

이 또한 욕심이라 할밖에.

목구멍으로 숨을 할딱거리는 이가,

어찌 발뒤꿈치로 숨을 쉬는 진인(眞人)을 닮을 수 있으랴?


屈服者,其嗌言若哇。其耆欲深者,其天機淺。


하기에, 외물에 (혼이 팔려) 거꾸러진 자는,

그 목소리가 신음하는 것과 같고,

욕심이 심한 자는,

그 성품의 기틀이 얕다 하였음이다.


몹쓸 병이 걸렸다가,

유기농으로 살아났던 그.

이젠 그 유기농을 다시 부정하고 있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유기농을 시작한 자체가 허물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유기농이 다만 건강 때문에 영위되는 것이라 여긴다면 곤란하다.

이는 유기농을 짓는 여러 참 농부를 모욕하는 짓이다.


유기농, 자연재배를 다만 기능적인 것으로만 치부하는 한,

그는 바른 농부도 아니었고, 될 수도 없다.

그가 용케 암을 고쳤을는지 모르지만,

그는 유기농이 아니라,

차라리 장사꾼으로 나아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한결 나았으리라.

그랬다면 돈으로 병을 고치고,

너른 집에서 안락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를 병마로부터 살린 것은,

유기농산품이 건강식품이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실제 나는 그의 농법이 완전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축분 넣고, 납 성분이 있는 폐플래카드로 땅을 덮고, 폐비닐이 밭에 뒹구는데,

이를 어찌 제대로 된 유기농이라 하겠음인가?

다만,

그가,

자연의 품에 안겨,

욕심을 좀 줄이고,

일정분 낙도안명(樂道安命)하였기에 덕을 보았을 뿐이라 생각한다.


사람이 평소와 다른 말을 하면,

죽음이 가깝다 하였다.


그의 공부는 제 곳을 찾지도 못한 채, 평생 온 산을 헤매었을 뿐인데,

그나마 긁어놓았던 조그마한 개미산을 오늘 스스로 무너뜨렸다.

이제 어디로 돌아가려 함인가?


不忘其所始,不求其所終

그 시작을 잊지 않고,

그 마침을 구하지 않는다 하였음인즉,

翛然而往,翛然而來而已矣

어찌 어디 매임 없이 오고 감을 알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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