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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 문양 소고(小考)

소요유 : 2020. 5. 23. 11:24


태극 문양 소고(小考)


태극을 보면, 보통은 음양으로 된 二太極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유의 태극은 본시 三太極이다.



삼태극은 천지인 3요소로서 그려지는 것이니,

이는 3진법에 속한다.

예전에 모신학대학교수가 퍼지이론과 韓철학을 연결하여 연재한 칼럼을 본 기억이 있는데,

거기에서 그는 삼태극을 거론하며,

컴퓨터에서 2진법보다 3진법을 사용하면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을 소개하고 싶었지만, 

수십 년 전 전자신문에서 본 기사라,

지금은 찾아낼 길이 없다.


여담이지만, 생각난 김에 몇 마디 보탠다.

그림에서 보면 맨 우측 그림은 십여 년 전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로고인데,

이는 삼태극이 아닌 예로 우정 예시한 것이다.



이런 모양의 것이 우리나라 대한항공 로고에도 보인다.

짐작컨대, 디자인된 창작물일 터이지만,

나는 태극문양은 이리 함부로  비틀어 그리면 재미없다라는 것을 특별히 지적하고 싶다.


본래 삼태극은 중심을 향해 삼자가 서로 균등 분할하여 자리를 나누어 잡고 있다.

삼자간 넘치고 기우는 것이 없이 서로 평등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서도

중심을 깃점으로 나선형의 형상을 하고 있어, 

역(易)의 동적 변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허나, 지적한 이들 로고에서는 공간이 삼분되었을 뿐,

삼자간 통일된 세력 균형에 대한 고려가 없다.

오히려 중앙색이 다른 두 색 영역을 가르고 있어 분열상을 노정하고 있는 것이다.

또는 청홍의 음양이 가운데 백색이란 이질적 세력이 가르고 들어와,

필연적으로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는 모습이다.


보라.

이태극이든, 삼태극이든 제대로 된 문양에선, 소용돌이 모양을 하고 있다.

때문에, 나누어진 그대로 고착된 것이 아니라,

음양내지는 천지인의 동태적인 균형이 상보적인 관계속에서 예비되고 있다.

이들 이자 또는 삼자 내에서, 세력간 우열이 없이 대등한 점 역시 주목하여야 할 점이다.


(출처 : 한국문화의 원형인 삼태극의 비밀)


경복국 강령전 돌계단이다.

여기 삼태극 문양이 새겨져 있다.

어느 구성 요소가  하나로 편급되어 있지 않고,

정제된 균제미(均齊美)가 일품이다.

실로 아름답기 그지 없다.


(출처 : 한국문화의 원형인 삼태극의 비밀, 춘천향교)


삼태극은 고대로부터 여러 곳에 등장한다.

내가 여러 자료를 살펴보았지만,

삼요소가 균형, 대칭을 이루지,

오늘날 정부 로고처럼 비대칭, 불균형을 이른 것은 거의 찾아보지 못하였다.


철학이나 미학에 대하여 철저한 공부가 따르지 못하는

문양 디자인 기술자에게 무작정 일을 맡길 노릇이 아니다.


내가 易에 그리 정통한 것은 아니다만,

이들 변형된 태극문양은 易學上 대단히 凶한 형국으로 읽혀진다.

수십년전 한참 우리나라 국적기의 추락사고가 빈번할 때,

나는 그 항공사의 로고에 주목하여, 혼자 의심하며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었다.


특히 태극, 괘상 등을 원용한 디자인은 극히 조심하여야 한다.

태극중 음, 또는 양 하나를 취한다든가,

이를 섣불리 변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태극이란 부호가 뿜어내고 있는 영적기운을 믿건 아니건을 떠나,

변형된 순간 그것은 태극이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그것이 태극이 아닌 이상,

애초에 태극을 빌어 기도(企圖)하고자 했던 상징성도 훼손되고 마는 것이다.

세상에 태극의 상징성을 벗어나 구할 태극 이상의 것으로 무엇이 있을 터인가?

易에 대해 제대로 아지도 못하는 이가 섣불리 나서,

태극 문양을 훼손하지 말고,

다른 것으로 위안을 삼을 일이다.


보라.

역사의 뒷안길로 스러진 우리나라의 몇몇 정당들의 로고 역시

태극의 변형물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국민을 배반하였을 뿐만 아니라, 태극도 모독한 것이 아닐는지?


기실 내가 이 글을 쓰고자 이르게 된 것은,

오늘 우연히 질병관리본부 로고를 보았기 때문이다.



헌데, 이와 동일한 문양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건복지부 등등,

거의 전 국가 기관이 함께 쓰고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들 로고에 등장하는 삼태극을 이루는 삼요소인 천지인은 공간 분할, 점유 비율이 다르다.

이는 곧 이 삼자의 관계도 어그러져 있음을 스스로 온 천하에 천양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가 이러고서야 어찌 천지인 삼자의 동태적 균형, 역동성을 담보할 수 있겠음인가?

실로 참담한 모습이다.

통탄스럽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정부상징체계 통합(박물관·미술관·도서관·수목원)'이란 제목의 사진, 

ohmynews 기사 참조)


디자인이라는 것이,

사물을 그대로 전사(轉寫)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징성을 취하고, 특징을 부각시키기 위해,

무시로 과장, 왜곡, 확대, 축소 등의 변용을 가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이로써, 주목도를 높이고, 심미안을 자극하는 등,

소구력(所求力)를 높이는데 안간힘을 쓴다.


이 짓을 통해, 목적하는 바를 혹 얻을 수 있다한들,

그 본질 가치를 훼손함에 이르게 된다면,

실로 도로(徒勞)를 넘어,

불안을 잉태하고, 위험을 초래하며, 불행을 자초하게 될 수 있다.


헌즉, 어찌 삼가는 도리를 잊을 수 있으랴?


국가기관이 주도하는 일에 있어,

반드시 심의, 평가 장치가 있었을 터.

그러함인데도, 이리 어처구니 없는 짓을 벌일 수 있었겠음인가?

참으로 해고망측(駭怪罔測)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라 하겠다.

심사, 감독 기관의 안일을 되우 탓하노라.

이제라도 바로 잡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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