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거시(legacy)

레거시(legacy)

미국 뉴저지 주지사가 코볼(COBOL) 프로그래머를 구한다는 공고를 냈다.

코로나19로 인해 실업자가 대량으로 발생했는데,

실업보험 등 처리량이 늘어 시스템이 죽어버렸던 것이다.

이 시스템은 코볼(COBOL) 랭귀지로 구축되었는데,

개발자가 없어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출처 : cnbc)

우리 때는 공대생들은 포트란(FORTRAN)을,

문과생들은 코볼(COBOL)을 배웠었다.

후에 사회에 나가 코볼(COBOL)도 배우긴 하였지만,

이게 1959년도에 나온 것이니,

지금은 이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거니와, 배우는 이도 거의 없을 것이다.

뉴저지의 경우 코볼로 된 저 시스템이 30년이나 되었는데,

그 동안 업데이트가 전혀 되지 않았다고 한다.

문제가 생기지 않고,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것이니,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전대미문의 사태가 터지자,

시스템이 폭주하는 처리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뻗어버린 것이다.

이리 되자,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저들의 안일함을 탓한다.

저 코볼이 그저 구닥다리니, 성능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내가 생각하기엔 코볼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이를 다루는 이들이 줄어들고, 관심이 옅어지므로,

기술 교류도 자연 약해지고, 소외되었기 때문이지,

언어 자체에 무슨 커다란 결함이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지금도 미국 금융기관 시스템의 43%는 코볼로 짜여져 있다 한다.

나는 사람들이 안일함을 탓하는 것 그 자체보다,

그 내용에 주목한다.

하니까, 대다수는 구닥다리를 왜 아직도 쓰며,

요즘 랭귀지로 대체하지 않는 것인가 하며 의문을 제기한다.

나의 의견은 다르다.

대체가 능사가 아니다.

문제는 그보다, 이를 다룰 인재를 관리하지 못한데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長江後浪推前浪，浮事新人換舊人

장강의 뒷 물결은 앞 물결을 밀어내고,

새사람은 옛사람을 바꿔쳐내는 법.

이런 이야기가 있지만,

때론 옛사람의 지혜가 현재를 구할 수도 있으며,

앞 물결에 미처 챙기지 못한 귀물(貴物)이 속절없이 떠내려 갈 수도 있다.

헌즉, 강물이 마냥 흐른다한들,

뒷 물결을 시원하니 마중만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잘 살펴, 미처 겪지 못한 위험, 위기가 전개될 때,

저들의 경험과 지혜가 큰 힘을 발휘할 경우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춘추시대 관중(管仲)이 제환공을 수행하며 고죽국을 치다가 길을 잃었다.

이에 늙은 말의 지혜를 써볼만 하다 이르며,

늙은 말을 풀어놓고 그 뒤를 따르자,

마침내 길을 찾았다는 고사가 있다.

管仲、隰朋，從桓公伐孤竹，春往冬反，迷惑失道。管仲曰：“老馬之智可用也。” 乃放老馬而隨之，遂得道。行山中，無水，隰朋曰：“蟻冬居山之陽，夏居山之陰，蟻壤一寸而仞 有水。乃掘地，遂得水，以管仲之聖而隰朋之智，至其所不知，不難師於老馬與蟻。今人不知以其愚心而 師聖人之智，不亦過乎？

코볼이 비록 오래된 컴퓨터 언어이지만,

그 역시 사람이 만든 것.

옛사람이 만든 것이라 하여,

어찌 사람의 지혜가 녹아 있지 않으랴?

코볼 프로그래머가 비록 늙었다한들,

그가 산전수전 겪으며 쌓은 경험과 경륜이,

어찌 묵었다 하여 바로 말라버릴 수 있으랴?

헌즉, 장수는 노마를 아끼고, 

샘물을 찾아내는 개미와 같은 미물도 허투루 대하지 않는 법.

레거시(legacy) 시스템은 그저 구닥다리가 아님이라,

老馬識途라,

늙은 말이라야 길을 찾아내며,

언젠가 그에 의지할 때가 있는 법.

그러함이니,

주지사의 안일함을 탓할진대,

중인(衆人) 대다수가 그러하듯, 아직도 코볼을 버리지 않고 있음이 아니라,

코볼 프로그래머를 관리하지 않은 게으름에서 찾는 것이 마땅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