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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가기무(聞歌起舞)

소요유 : 2020. 8. 11. 11:06


문가기무(聞歌起舞)


聞歌起舞

노랫가락을 듣고 춤을 춘다.


본디 노랫가락을 들으면 절로 어깨가 들썩거리며 흥이 일게 된다.

그러하다, 급기야는 일어나 춤을 덩실덩실 추게 된다.


생물이라면 당연히 외부 소리에 반응하게 되어 있다.

소리뿐이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이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을 만나,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의

육식(六識)을 일으키는 것은,

존재의 외부의 자극에 대한 반응 형식이다.


그런데, 최근 소리의 화학반응에 대한 연구 결과가 하나 발표되었다.

이것을 처음 시도했다는 것은 그쪽 과학계의 성과라 하겠지만,

그 내용은 새삼스럽게 처음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겠다.


☞ 소리로 분자 거동 제어 … 소리를 화학반응에 접목한 첫 연구


(출처 : postech)


나는 음악농법이니, green music이니 하며,

인공적으로 식물을 자극하는 짓에 대하여 진작에 경계의 글을 쓴 적이 있다.

(※ 참고 글 : ☞ 식물과 음악 ⅰ)

(※ 참고 글 : ☞ 식물과 음악 ⅱ)


도대체가 녹색, green이란 말은 너무 오염되어 있다.

이 싱그러운 말을 말이다.

인간의 삿된 욕망을 감추고,

녹색성장, 그린 뉴딜 ...

말로는 ‘경제와 환경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하여 ...’ 운운하지만,

거개가 환경이란 장식물을 빌어 이악스런, 아니 포악스런 경제를 꾸미기 바쁘다.


도대체가 녹색 ↔ 성장 이란 이 대립적 명제가 한 자리에 있을 수나 있는가?

한계에 다다른 지금, 성장하려면 녹색이 아니라 흑색도 마다하지 않아야 가능하다.

흔히 녹색을 돌봐야 지속가능한 성장(sustainable growth)이 담보된다며,

그럴싸하니 요설을 내뱉지만, 현실을 돌아보면,

이게 구호나 선전에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진정 녹색을 원한다면,

더이상 성장에 목매지 말고,

아니 성장이란 말조차 꺼내지 말고,

염치를 차려 소비를 절제하고,

영혼의 자유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저 논문은 물리적 변화를 넘어 화학적 변화까지 넘보고 있다.

또 무슨 요상한 짓이 일어날까 걱정이다.

제발 행여라도 식물, 동물 상대로 괴롭히는 기술로 전용되지 않길 바란다.


코로나19라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들이 자연계를 능욕하여,

박쥐와 같은 야생동물을 잡아먹고,

바이러스를 조작하여 생화학 무기를 만들고,

결국 적을 괴롭히고자 하는 욕망의 후과가 아닌가?


동물, 식물을 객체화하여,

무작정 쥐어짜고, 괴롭히며, 착취하여,

제 끝없는 허갈진 욕망을 채우려 하기에,

이런 사단이 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여기 유튜브 영상 하나를 소개한다.

오늘의 이 참담한 역사 현실 속에서,

이 영상과 더불어 새로운 각성이 일어나길 기대한다.


(utube,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을 말하다 2회(김누리 교수))


(utube, 기록적 폭우의 원인? 미래 지구의 평균 온도가 1도씩 올라가면 발생하는 '파국적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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