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민심이반

소요유 : 2020. 8. 14. 10:33


문득 나의 지난 글이 의식 밖으로 떠오른다.

(※ 참고 글 : ☞ 진선미(眞善美) ↔ 이친호(利親好)

      이글은 본래 십 오륙 전에 쓴 것인데, 

      지금 읽어 보아도, 나의 생각엔 변함이 없다.)


민주당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뒤집혀버렸다.

이것을 민심이반(民心離反)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나는 이에 동의하지 못한다.


원래 민심이란 그런 것이다.

미덥지 못하다.

결코 민주당을 변호하기 위한 말이 아니다.

민심이란 그저 에너지일 뿐, 

신념(信念), 가치 체계를 갖춘 지향체(指向體)가 아니다.

다만 총량이 클 뿐이다.


물리량 중에 스칼라(scalar, ※ 제대로 된 영어 발음은 스케일러)라고 있다.

방향은 없고 그저 크기만 있는 양(量)을 뜻한다.

반면 벡터(vector), 또는 벡터량(vector quantity)은 크기와 더불어 방향성을 함께 지닌 양이다.

(※ A vector is a quantity or phenomenon that has two independent properties: magnitude and direction.)


민심은 평소엔 그저 스칼라(량)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눈먼 떼집단인 것이다.

그러다, 둑방이 허물어지면 그리 우르르 몰려 내려간다.

이유도 모르고, 그리들 쏠려가니까,

남들 뒷꼭지 보고 쫓아갈 뿐이다.


만약 인심이 벡터와 같은 이가 있다면, 

평소에 소신과 신념을 가지고 있기에,

제 지향(志向)의 지향(指向)이 흔들림이 없다.

둑방이 허물어져 모두 떠밀려가도,

벡터의 마음은 결코 변함이 없다.

벡터의 방향성은 제 존재 규정 조건인 것이다.


今之成人者何必然?見利思義,見危授命,久要不忘平生之言,亦可以為成人矣。

(憲問)


“...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태함을 앞두면 목숨을 바칠 줄 알며,

오래된 약속일지라도 전날의 약속을 잊지 않는다면,

가히 성인이라 이를 수 있으리라.”


민심이반이 맞는 말이라면,

그렇다면, 바로 앞전의 민심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불과 수개월 전엔 민심은 민주당을 택하고,

물경 176석씩이나 몰아주지 않았던가?

이리 갈바람에 우쭐거리는 허수아비처럼,

조석으로 바뀌는 민심에 과연 실체나 있기나 한 것인가?


민심은 스칼라 양에 불과한 것.

앞선 글에서 말하였듯,

진선미(眞善美)에 居하는 존재들이 아닌 것이다.


진선미(眞善美) ↔ 이친호(利親好)


진위(眞僞) ↔ 이해(利害)

선악(善惡) ↔ 친소(親疎)

미추(美醜) ↔ 호오(好惡)


진선미(眞善美)란 대궐이 아니라,

다만 이친호(利親好)의 거적대기 집에 居할 뿐인 것이다.


(※ 참고

호오를 남발하는 자를 경계하라.

나는 뭣이 좋다, 싫다 이런 화법을 자주 사용하는 자는,

진선미가 아니라, 이친호의 집에 거주할 공산이 크다.

그런데, 여자들이 주로 이런 화법을 많이 쓰지 않나?


‘어머 너 예뻐졌다.

이 기집애야, 너 그 머리 어디에서 했니, 너무 멋있다.

난 그 사람 싫어, 뻐드렁이잖아.

이번 선거에서 미남이라 난 그이 찍을 거야.’


저들은 하루에도 수 십 차례 예쁘다, 뵈기 싫더란 말을 뱉어내며 산다.


물론 아닌 이도 어딘가에 숨어 계시오다.

이리 덧붙여 두지 않으면,

또 성가실 터.)


내게 이로운가?

나와 친한가?

내 기분을 간지럽혔는가?


여기에 종사할 뿐인 것이다.


그러함이니 민심이반은 없다.

다만 술 많이 팔아주는 손님에게,

치맛자락 벌리는 작부들처럼,

제 이해에 부역하기에 바쁠 뿐이다.


하니까 민심이란 magnitude만 있을 뿐,

그리고 이 크기만을 키우는 데, 온 욕망을 집중한다.

하지만 공자가 말한 성인(成人, 된사람)은,

direction 즉 신념을 가졌음이라,

결코 그 방향을 허물지 않고,

magnitude 크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예전 노빠들이 극성을 부렸을 때,

뜻있는 이들은 말하였다.


‘노무현을 죽이는 것은 상대 당이 아니라,

종국엔 노빠들이 될 것이다.’


노빠란 빠돌이들이 진화하여,

이제는 대깨문이 되었다.

대가리가 깨져도 문이라니,

이쯤 되면, 이것은, 혼을 저당 잡힌 강시(僵尸) 수준이라 하겠다.

본디 강시란 얼어 죽어 몸이 빳빳해진 시체를 말한다.

허나, 대깨문들은 강시란 이름을 빌었지만,

냉기가 아니라, 열기로 혼백이 모두 삶아진 형국이라 하겠다.

마냥 열탕 속에서 달여져, 항상 달뜬 상태에 놓인 모습을 그려 보아라.

이들 역시 강시처럼 몸과 마음이 경직되기는 매한가지다.


문재인을 죽이는 것은,

문 자신과 함께 이들 대깨문이 될 것이다.


당시, 노무현을 따르던 이들은 스스로를 폐족(廢族)이라 이르며,

들로 산으로 훝어졌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슬그머니,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기어 나왔다.


그런데,

이제,

장차, 

문의 문턱을 뻔질나게 드나들던 이들은,

멸족(滅族)이 되려 함인가?


금태섭의원의 경우처럼,

바른 말, 다른 의견을 말하는 이는,

이들이 떼거지로 몰려들어 다구리를 놓아, 축출해버린다.


혹여 바른 정신을 가진 이가 있다한들,

이들은 모두 자라목이 되어, 장독대 뒤에 숨어 있을 뿐,

감히 나서질 못하고 있다.


이재명도 보아라.

그럴싸한 행동을 하다가도,

적지 아니 저들 눈치를 보며,

비위짱 맞추는 언사를 늘어놓지 않는가 말이다.


그의 처지를 이해하지만,

그마저도 대깨문들의 극성에 목이 잡혀 있는 현실을 목도한다.

슬픈 일이다.


민심은 없다.

다만 magnitude 경쟁에 올인한 헛깨비, 강시들만 있을 뿐이다.


민심은 이리 부평초(浮萍草)처럼 흔들리고 있는데,

대깨문들은 이친호의 늪 속에 빠져,

하늘의 푸른 눈을 가리고 있다.


내 가만히 진단하거니와,

오늘의 저들이 저리 망가진 이유는 여럿이 되겠으나,

가장 결정적인 피봇(pivot, 軸心)이 하나 있다 생각한다.


둑은 개미구멍으로부터 터진다.


울산시장부정선거

이거야말로 드렁허리가 뚫어논 논둑의 구멍이라 생각한다.


문이 성인이라 여기거나, 그리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 없다.

하지만, 

見利思義,見危授命 

이를 배우고, 조금이라도 삶의 지표로 삼고 따르려 하였다면,

결코 오늘의 어지러운 사태를 맞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공화국 대통령이 되었음인데,

뭣이 더 아쉽기에, 대의를 쉽게 저버렸음인가?

그는 결코 장부라 할 수 없다.


겁 많은 이는

자신의 허물을 덮고자 별 짓을 다하게 된다.

이에 따라 기강은 허물어지고,

아랫것들은 그 약점 잡고 길길이 날뛰게 된다.


한편,

외부 적대 세력은,

욕심 많은 자 하나 내세워,

망나니 칼춤을 추게 하며, 

족치면 그 뿐인 것이다.


지금 딱 그 상황이다.

이제 저들에겐 파국만 남았다.


문은 조국에게 빚졌다 하였지만,

시민에게 진 빚은 천만 냥이 넘는다.

이제, 어찌 할 것이냐?


촛불정신 네다바이 하여,

종국엔 제들 친구 도와주고, 

땅 사고, 

떨거지들 호궤(犒饋)하는데,

다 낭비한 것 아니냐?


정녕,

저들은 역사의 죄인이 되고자 함인가?


참고로,

오늘을 웃고자,

여기 외부 링크 하나 걸어두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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