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가짜 사나이

소요유 : 2020. 10. 15. 10:29


가짜 사나이


나는 동영상으로 이것 두 번 정도 보았다.

그이후론 애써 찾아보지 않았다.

저것은 훈련을 통해 가짜를 진짜로 만드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폭력으로 길들여지는 인간 경로를 그려내고 있을 뿐이다.


내가 사회 초년병 시절, 

회사에서 차출되어 교육 훈련에 참가하게 되었다.

당시 대개의 회사 조직에선 이런 프로그램을 운용하였다.

일주일 정도 합숙 훈련을 하는데,

거기 교관은 모두 빨간 모자를 쓰고,

흡사 유격대원을 방불하고 있었다.


이리 저리 조리 돌리고, 엄포를 놓는데,

빳따만 때리지 않았지, 군대 생활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들어가면,

조회나 종례도 하지 않고, 알림도 게시판에 공시하는 것에 그쳤다.

저것은 이제부터 자율적인 인격인즉, 

남의 관리, 통제로부터 떠났다는 표증이 아니겠는가?


그러함인데,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다시 퇴행시켜 타율적 인간들을 만들고자 함이 아닌가?

저 해병대식 훈련은 정말 끔찍하였다.

모든 인격을 하나로 묶어, 통으로 캔을 만들겠다는 수작질이 아닌가?

그리하여 조직에 충성하고, 부름에 모여들고, 지시에 순응하는,

그저 허수아비와 같은 조직원을 만들고자 함이 아닌가?


창의적인 인간, 자율적 인격은 쓸모없다는 듯,

모든 인격을 뭉개버리려고 작정들을 한 것이다.

거의 온 사회가.

훈련소, 회사를 넘어, 거의 온 사회가.

물론 독재 권력의 음습한 기도(企圖), 은유적 유인(誘引), 현실적 폭력(강제), 

그게 밑바탕엔 깔려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 못난 경영자들은, 저 짓을 하지 않으면,

큰 탈이 나는 것처럼 안달을 하고,

저 품질 낮은 폭력의 프로그램을 돌렸다.


당시 동료의 청에 따라, 순번을 바꿔 내가 대신 먼저 차출되기로 하였던 것인데,

후일, 공교롭게도 교육 기간 중, 분양 받은 아파트 동호수 추첨일이 결정되었다.

추첨 장소에 직접 나가야 되는데 도리 없이 남을 대리 출석시키게 되었었다.

여기 얽힌 이야기도 또 한참 기이로운데,

이는 다음을 기약하자.


가짜는 남에 의해 결코 진짜가 될 수 없다.

선가(禪家)에서 개인이 화두를 잡고 깨우침을 얻는데,

그게 남이 손잡고 이끌어 만들어내는 것인가?


저들은 안거 결제시 한 곳에 우르르 한데 모였다가, 

해제 때에는 돌 들어내자 흩어지는 가재 떼처럼 헤어진다.


난, 생각한다.

부시식 거리는 옷자락 소리,

어떤 인간은 코까지 골며 졸고,

죽비 소리는 여기저기 터지고,

배는 고파오고, 발은 저려오고, 눈꺼풀은 천근추처럼 내려 앉고 ...

이 버정거리는 짓하다가,

공양 때 되면,

침을 다시며,

허겁지겁 발우를 핥아댄다.


10년, 20년, 30년 이 짓거리를 하여도,

깨우침의 길은 멀고, 

그저 느는 것은 허옇게 서리가 내린 머리털뿐이다.


깨우침은,

저리 모여 있을 때 오지 않는다.

정작은 해제 후,

운수행각(雲水行脚) 만행(萬行)을 할 때라야,

불각시(不覺時) 밤도적처럼,

홀로 찾아오는 것이다.


절대고독

이 자리에 들지 않으면,

깨우침은 오지 않는다.

함께 모여, 단(團) 짓고, 

스승에 의지하고, 동도에 기대는 한,

새벽은 오지 않는다.


가짜 사나이.


진짜가 되려고,

지금 내가 가짜임을 자임하고 있는 저 현장.

시작부터 지고 들어가는 게임이다.

또 거기 교관이라는 이는 가짜를 겁박하며,

진짜를 만들어주겠다 한다.

마치 눈먼 봉사가 또 다른 봉사 손을 잡고 다리를 건네주겠다 하는 꼴이다.


나는 저들을 모두 가짜로 단정한다.

게다가 상당히 위험하다.

저 프로그램들에 내재되어 있는 폭력성은 더욱 더.


나약한 사람들은 기꺼이 저 폭력의 재단(齋壇)에 스스로를 눕힌다.

그리하여, 안도와 위로를 값싼 전시(展示)의 향불 하나 피워 수월하게 구매한다.

그 행위엔 도대체가 독립체로서의 인격에 대한 자각이 없다.

다 큰 성인이 왜 타자에 자신을 맡겨 제 무게를 확인해야 하는가?


게다가 집단적으로, 

저 허위의식에 동참하고,

연봇돈을 바치고, 시주를 하며,

연신 두 손을 싹싹 비비며,

감동씩이나 하고 만다.

이것은 뭐 집단 최면이라고나 할까?


진짜를 찾겠다고 사람을 나래비로 줄 세운다.

상남자니 하는 따위도 나는 듣고 있자면 영 불쾌하다.

자신은 쏙 빠지고 남을 두고 이리 칭하며,

그 역(役)을 남에게 기꺼이 맡긴다.

그리고 히히닥거린다.

이 순간, 상남자, 진짜 사나이는 결코 내 안에서 자라, 크지 않는다.

다만, 전시된 물품처럼, 돈 주고 사서 소비하는 행위만 남아 있다.

광대 하나 사서, 진짜란 고깔모자 씌우고,

자신은 스스로 찌질이, 가짜로 전락하고, 

여기 그 자리에 처한 자신을 외려 편안하게 느낀다.

그리고 한껏 즐긴다.


하룻밤 술 한 잔에 천하를 거머쥔 영웅이라도 된다.

하지만 저들은 온 인생을 오락처럼 희화화한다.

그것도 집단으로.

최인호의 ‘바보들의 행진’처럼.

찌질이들의 행진을 난 목격한다.


(출처 : windowsonworlds)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부처의 이 말씀 역시 이 자리의 엄정한 사태를 언명하고 있는 것이다.


及至初生。則震動一切世界網。便一手指天。一手指地。作大獅子吼道。天上天下惟我獨尊。為一大事因緣故。開佛知見。示佛知見。悟佛知見。入佛知見。


처음 태어남에 이르러, 온 세계가 진동을 하다.

문득 손가락 하나를 들어 하늘을 가리키고,

또 다른 손가락 하나는 땅을 가리키며,

대사자후로 도를 말하다.

천상천하유아독존.

일대사인연인 바임이라.

진리를 열고,

진리를 보이며,

진리를 깨달아,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다.


세상에 대한 이해는 독립적인 감관경험(感觀經驗)으로 이뤄지는 것이지,

떼거리로 몰려다니고, 남에게 의탁하여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독(獨)이란 원래 상상 속의 동물이다.


北嚻山有獨𤞞獸。如虎。白身,豕鬛,尾如馬。


북효산에 獨이란 짐승이 있다.

호랑이 같고, 몸은 하얗다.

돼지 갈기를 하고 꼬리는 말과 같다.


羊爲羣。犬爲獨。犬好鬥。好鬥則獨而不羣。


양은 무리를 짓는다.

개는 홀로 다닌다.

개는 싸움을 좋아한다.

싸움을 좋아하는 즉 홀로 다니지 무리를 짓지 않는다.


獨一叫而猨散,鼉一鳴而龜伏。或曰鼉鳴夜,獨叫曉。獨,猨類也。似猨而大,食猨。今俗謂之獨猨。蓋猨性羣,獨性特,猨鳴三,獨叫一,是以謂之獨也。


독(獨)이 한번 울부짖으면 원숭이들이 흩어진다.

악어가 한 번 울면 거북이들이 조복(調伏)한다.

혹자는 이리 말한다.

악어는 밤에 울고(or 울어 밤을 알리고),

독(獨)은 새벽에 운다.

독(獨)은 원숭이 종류로서 이들과 비슷하나 크며, 

원숭이를 잡아먹는다.


이제 속어로 독원(獨猨)이라 이르는데,

원숭이는 무리를 지으나,

독(獨)은 홀로 다니는 성질이 있다.

원숭이는 세 번 우나,

독(獨)은 한 번 운다.

그런즉 그를 일러 독(獨)이라 하니라.


참다운 지성, 독립된 인격은 독(獨)과 같다.


한 번도 아니고 삼세 번 울면,

떼거리로 모여 들며 환호성을 질러대는 것들은 다 흑싸리 쭉정이들이다.


그러함인데,

내가 받은 저 해병대식 훈련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가?

또한 내가 목격한 가짜 사나이 저 프로그램은 얼마나 엉터리인가?


독(獨)은 딱 한 번 울고 만다.

왜 그런가?

두 번 울면 자신이 없기 때문인 것이요, 

세 번 울면 구차스러우니 사뭇 부끄럽다.

원숭이 무리는 연신 울어 재끼며 밤을 알리지만,

독(獨)은 단 한 번 울어 신새벽, 곧 새로운 세계가 왔다는 것을 알린다.

이를 일러 홍몽(鸿蒙)을 깨는 개벽(開闢)이라 한다.


이것이야말로 장부의 모습이다.

高志確然,獨拔群俗。

뜻은 높고, 홀로 무리의 속됨을 딛고 우뚝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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