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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깔모자

소요유 : 2020. 10. 18. 11:56


고깔모자

 

내가 이제 글을 쓰려하니,

유치환의 깃발이란 시가 먼저 떠오른다.

헌즉 먼저 모시 쟁반에 찻잔처럼 가만히 올려본다.

이 시는 언제 대하여도 가슴이 바르르 떨린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靑馬 柳致環)

 

깃발이란 본디 의지의 표상일진대,

청마는 애수를 읊고 있다.

 

깃발은 결국 좌절하고 만 것이다.

아마도 이게 인간의 존재 조건이자, 양식일런지도 모르겠다.

 

병가(兵家)엔 깃발을 늘 동원한다.

 

言不相聞故為金鼓視不相見故為旌旗。」夫金鼓旌旗者所以一人之耳目也

(孫子兵法)

 

고대라 하여 신호 체계가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못하였음이라,

저리 깃발과 금고(金鼓)로서, 귀와 눈을 대신한다.

 

군쟁(軍爭)편엔 이런 말이 나온다.

 

無邀正正之旗勿擊堂堂之陣

 

정정(正正)한 정기(旌旗)를 요격하지 마라,

당당(堂堂)한 진을 치지마라.”

 

(참고로 여기 이란, 원래 맞는다는 말인즉,

공격해 오는 적군을 맞이하여친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정기(旌旗)가 가지런히 정비되어 있으면,

상대의 준비가 녹록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장수를 중심으로 뭉쳐,

그 지시대로 일사불란하게 병사가 움직일 것이니,

함부로 치지 말라는 이야기다.

 

旌旗動者亂也

 

반대로 깃발을 이리저리 흔든다는 것은,

적정 안이 혼란스러운 상태라는 것을 암시한다.

 

列旌旗擊鼙鼓

 

따라서 군대를 잘 다스리는 장수는,

깃발을 잘 정비하여 벌려놓고,

북을 잘 다룬다.

 

하니까, 기실 병졸들은 총칼로 싸우지만,

장수는 깃발과 북 혹은 꽹과리 징을 잘 부려 싸우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일어나자,

일본의 소식을 적지 아니 접하고 있다.

저들은 아직도 도장 문화에 머물러 있고,

팩스로 정보를 주고받고 있다.

저들은 아직도 hardcopy 시대에 갇혀 있다.

우리 사회는 이미 1980년대에도 softcopy로 넘어와 있었다.

 

저들 수뇌부는 깃발과 북의 중요성을 아지 못하고 있음이라,

이러고서야 어찌 이 험한 세상을 건널 수 있으랴?

 

하지만, 깃발과 북은 아군만 보고 듣는 것이 아니다,

적군 눈에도 띄고, 귀에도 들리게 된다.

 

하여, 실질은 없으면서도,

깃발과 북으로, 상대를 속이는 일이 벌어진다.

병사는 늙고, 병들고, 다친 자만 남았지만,

잔뜩 기치(旗幟)를 벌여놓고, 북을 치고, 법석을 떨기도 하는 것이다.

 

때론, 아예, 모두 없애버리고, 성을 비우고, 성문을 활짝 열어,

상대를 속이는 소위 공성계도 마다하지 않는다.

 

多其旌旗益其金鼓戰合

 

하지만 대개 깃발과 북은 다다익선이라,

많으면 많을수록 효과가 큰 법이다.

 

이게 어찌 병법에만 당하는 문제인가?

 

오늘날은 더 치열하다.

 

가령 마트에 나가 상표 하나만 보아도,

거기 아주 칠갑(漆甲)을 하며 딱지가 붙어 있다.

 

특제, 알파, 플러스, 골드, 골드+, 나노, 퍼지, 인공지능 ....

한도 끝도 없는 말의 성찬이 따르고,

은장, 금장으로 도색이 되어 있지 않던가?

 

활짝 깃을 편 공작새 뒤꽁무니를 본 적이 있는가?

헛헛하기 짝이 없는 그 모습은,

차라리 비애를 유발한다.

가엽고, 안쓰러웠다.

 

현명한 소비자는,

저 딱지 뒤에 숨은 진짜를 감별할 수 있다.

거죽에 홀리지 말고, 실질에 귀착하여야 한다.

 

나는 블루베리 택배를 보내도,

마트에서 얻어온 빈 박스에 그냥 넣어 보낸다.

외물(外物)에 나를 맡기지 않는다.

 

君子役物小人役於物

 

군자는 물건을 부리지만,

소인은 물건에 부림을 당한다.”

 

순자의 말씀이다.

 

만약, 허름한 박스에 넣어 보냈다고,

나를 믿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거죽 포장에 속은 이인즉, 소인이 되고 만다.

 

寒暑溫涼之變如瓦石之類置之火即熱置之水即寒呵之即溫吸之即涼特因外物有去有來而彼瓦石實無去來譬如水中之影有去有來所謂水者實無去來。」

(文始真經)

 

이는 도가 문시진경이란 책에 나오는 말이다.

대충 해석해본다.

 

춥고, 덥고, 따뜻하고 서늘한 것은 기왓장이나 돌과 같은 따위의 일이다.

그것을 불에 두면 열이 나고, 물에 넣으면 차가워진다.

입김을 내뱉으면 따뜻해지고, 들이마시면 시원해진다.

이런 특별한 상황조건에 따라 거래가 일어날 뿐이다.

그러한즉, 와석(瓦石) 그 자체엔 아무런 거래가 없다.

비유컨대, 물속의 그림자가 오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은 실질적 변화, 거래가 없는 것이다.”

 

명문이다.

 

박스 따위가,

우리 농장에서 자란 블루베리를 대표할 수 있음인가?

 

일광(日光), 뇌우(雷雨)로 기쁨과 놀람이 새겨지고,

월광(月光), 상로(霜露)에 슬픔이 스며든,

여기 블루베리는 實無去來,

그냥 그대로 온전한 블루베리일 뿐인 것을.

 

여기 시골 동네, 농장이 하나 있다.

농장은 쓰레기를 치우지 않아 발을 골라가며 딛어야 할 판이지만,

그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휘황찬란하다.

남토북수, 친환경, 유기농, 자연재배, 맑은 물 ....

하지만 나는 안다.

그가 제초제를 치고, 화학비료, 농약을 서슴없이 사용하는 것을.


(출처 : 알리익스프레스)

고깔모자.

 

광대가 코를 빨갛게 칠하고, 불룩 부풀어 오른 옷을 입으며,

머리엔 잔뜩 솟은 고깔모자를 쓰지 않던가?

 

아아, 나는 순간, 광대의 모습으로부터,

깃발을 보며, 북소리를 듣는다.

 

마트에 가봐라,

나올 때, 웬 놈의 묻는 것이 그리 많은지.

포인트 있어요, 현금 영수증 해드릴까요 ...

이것은 뭐 나찰귀가 수문장을 보고 있단 말인가?

포인트라야 기껏 몇 푼에 불과한 것.

그것을 적립하려고 사람들은 그 성가신 일을 기꺼이 감수한다.

 

포인트, 마일리지

저것은 상인들이 아우성치며 흔드는 깃발인 것임을 나는 안다.

결코 소비자를 돕고, 챙기려 하는 짓이 아니다.

헌데도 그 알량한 10원에 손발이 묶이고,

욕심을 저들의 마수에 저당 잡혀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

 

내 공연한 수고를 지불하고, 시간을 저들에게 내어주고 만다.

그리고는 꿈에 부푼다.

포인트 적립 많이 하고,

나중에 비비고 만두 하나 거저 사야지

 

나는 여기 시골 동네 마트 점원에게 미리 말해두었다.

내겐 그 따위 것을 묻지 말라.

하여, 돈만 치루고, 무사히 빠져 나온다.

나는 이제 내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저 악당들로부터 내 것을 회수하였다.

 

전에 마트 직원과 이 일을 두고 말을 나눴다.

포인트를 두고, 마트 여직원의 말을 들어 보자.

 

그리 세상은 세상을 엮고, 또 엮이며 돌아간다.’

 

이 얼마나 영악한가?

하니까 자신은 이 세상의 어지러운 연못 속에 기꺼이 몸을 담그겠다는 말이다.

 

大隱隱朝市

(여기 朝市는 아침 시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朝廷과 市井이라, 곧 조정에 나아가 벼슬을 사는 조정과,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인가(人家)를 지칭한다. 

그러하니, 결국 사람이 사는 속세 일반을 일컫는다 하겠다.)

 

과시 그는 大隱이라 할 만하구나.

 

허나 나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이 되련다. (Jonathan Livingston Seagull)

나는 하늘을 비행하는 갈매기가 되고자 한다.

 

兵者詭道也

 

손자는 병가의 일이란, 속이는 것이다라고 갈파 하였다.

그래 저 마트 직원처럼, 세상이 전쟁터일진대,

열심히 깃발 흔들고, 북치고, 징 두드리며,

세상을 속이는 일에 종사할 일이다.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역시 저 일에 능하다.

 

녹색 성장하겠다며, 깃발 요란히 흔들며, 삽질에 여념이 없었고,

창조경제 운운, 북 치며 법석을 떨었지만, 순실과 함께 옥에 가있다.

평등, 공정, 정의의 징을 요란히 쳐대었지만, 조국에 빚만 졌다고 고백하고 있다.

 

兵者詭道也

 

저들은 손자병법에 달통한 것인가?

 

하지만,

손자는 공을 이루자,

공수신퇴(功遂身退),

표표히 전쟁터를 떠나고 말지 않았던가?

오늘날 소주(蘇州) 땅인 고소(姑蘇) 땅으로 물러나 은거하였다.

전쟁터는 詭道가 판치는 곳이지만,

세상 모두가 그리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그가 주장한 것은 아니다.

그가 떠날 때, 오자서(伍子胥)에게도 권했지만,

한 많은 그는 이에 답하지 않고 남았다가

참변을 당하고 만다.

 

***

 

여기 블루베리 농장 언덕 위에 올라,

나는 조나던 갈매기가 되어 날개를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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