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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가호위(狐假虎威)

소요유 : 2021. 1. 28. 08:49


호가호위(狐假虎威)

 

이 동영상을 보면, 호가호위란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저것은 종교 현상으로 보아주기 어렵다.

 

 

 

코로나19의 전염, 방역을 보건위생학, 의학 차원에서 보아야 하는데,

종교를 앞세워 이를 단박에 무력화시키며,

이를 피해가며 불한당 짓을 벌이고도 병에 걸리지 않는다며,

이를 두고 저들은 과학적이라 규정한다.

이쯤 되면, 괴이하다 장탄식을 늘어놓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저것을 빌어 과연 무엇을 도모하고자 하는가?

그 내면의 경로 과정을 따져보아야, 사태의 실상을 바로 알 수 있다.

그게 무엇이겠는가?

 

여기서 잠깐, ‘저것을 빌어 과연 무엇을 도모하고자 하는가?’

나는 방금 이리 물었는데, 무엇을 빌린다는 말인가?

종교를 그리고, 과학을 거푸 빌리고 있다.

자, 잠시 전국책에서 기원하는 이야기 하나를 먼저 소개해두며 이야기를 잇자.

 

 

(출처 : 網上圖片)

虎求百獸而食之,得狐。狐曰:「子無敢食我也!天帝使我長百獸。今子食我,是逆天帝命也。子以我為不信,吾為子先行,子隨吾後,觀百獸之見我而敢不走乎?」虎以為然,故遂與之行。獸見之皆走。虎不知獸畏己而走也,以為畏狐也。

(戰國策)

 

“호랑이가 각종 짐승을 구하여 그를 먹으려 하였다.

(호랑이가 이제 막) 여우를 잡았다.

여우가 말한다.

 

‘그대는 감히 나를 먹을 수 없다.

천제가 나를 백수의 왕으로 삼았음이라.

이제 그대가 나를 잡아먹으면, 이는 하늘의 명을 거역하는 일이니라.

그대가 나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내가 먼저 앞설 터니, 그대는 내 뒤를 따르라.

백수가 나를 보고는 어찌 도망을 가지 않으랴?’

 

호랑이가 그럴 상 싶어,

그를 앞세워 따라가 보았다.

짐승들이 이를 보고서는 모두 도망을 가더라.

호랑이는 짐승들이 자신을 두려워하여 도망가는 것을 아지 못하고서는,

다만 여우를 두려워하는 줄 알았더라.”

 

호가호위(狐假虎威)란 고사의 출전이 바로 이 전국책이 되겠다.

여기 가(假)란 빌린다는 뜻이다.

하니까 여우(狐)가 호랑이 위세(虎威)를 빌린다는 말이다.

저들이 연출하는 오늘의 이야기 구조에서도,

여우가 종교, 과학의 위세를 빌린다는 것이,

다시 충실히 재현되고 있음을 우리는 목격(目擊)하게 된다.

 

그럼 여우는 왜 저 짓을 벌이는가?

그것은 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함이 아니더냐?

저 이야기 속에서 백수(百獸)는 청맹과니 당달봉사가 아니다.

여우가 무서워가 아니라 다만 호랑이가 무서워 모두 달아난다.

하지만, 오늘 여기 우리네 인간들은 호랑이에게 복속하는 것이 아니라,

여우에게 기꺼이 돈을 갖다 바치고, 제 눈먼 욕망을 한껏 불사른다.

전국책의 백수(百獸)보다 더 못난 모습이,

여기 우리 이웃들에게서 목도(目睹)되고 있는 것이다.

이 틈에 주최자는 주체할 수 없도록,

저들의 말 그대로 미어터지게, 미어터져죽을 정도로,

수지를 맞춘다.

예수가 정녕 이리 가르쳤음인가?
성전정화사건에서 보듯, 아마 예수가 이 땅에 재림하신다면,
당장 판을 뒤엎으시고 불벼락을 내리지나 않으셨을까?

모든 시민들은,

마스크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하며,

착실한 양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저들만은 여우가 되고, 

그 여우에 혼을 저당 잡힌 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악연실색(愕然失色)할 노릇이 아니더냐?

 

신천지 - 사랑의 제일 교회- 열방센터 - IM선교회

 

도대체 이 땅에선,

왜 유독 기독교 관련 단체에서만,

이런 일들이 연거푸 일어나고 있는가?

여타의 다른 종교인 불교, 천주교, 원불교, 대종교, ...

여기서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데, 왜?

 

게다가, 당국은 어이하여, 저들을 규율하고 단속하지 않고 있는가?

정치인들은 방역 성공하였다 연신 선전해대고 있지만,

기실 별 엉터리 짓을 다하고 있지 않았던가?

이 쪽 문 닫는 시늉하고는, 저쪽 문 슬쩍 열도록 묵인하는 등, 

얼뜨기 짓으로 일관하지 않았던가?

연신 저들 기독교 단체 표를 의식하여,

한쪽 눈 슬쩍 감고 모른 척 하지 않았던가?

 

영업제한으로 존망의 기로에 선 자영업자들만 멍청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하여, 내 저들에게 충고한다.

가령 식당을 예로 들면 요식업협회에 대개는 가입하고 있다.

문체부에 종교 단체 설립 신고를 하고서는,

종교법 안으로 신분을 세탁하여 숨어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점포에 뾰족탑 높이 세우고, 붉은 선교 간판 달며,

칼국수교, 순두부찌개교, 콩나물국밥교 ...

이리 옷 갈아입고, 종교의 탈을 쓸 일이다.

당국의 묵인, 방조 아래, 마음껏 사람을 모으고,

율동, 통성기도, 선교활동으로 포장하여, 신을 영접하라.

이제 비로소 돈을 갈퀴로 긁어모을 준비가 된 것이다.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종교 집회 구실로 사람 마음껏 모을 수 있고,

이제 마음껏 밥집교 영업활동을 할 수 있다.

 

“미어터져요, 미어터져 죽겠어. 너무 많아요.”

 

각 직능 단체들은 모두 일떠 일어나 종교를 창시하라.

저들을 열심히 본받으라.

그리고는 미어터지게 돈을 벌지니라.

코로나19고 무엇이건 간에,

세를 불리고, 욕망을 채우는데는,

이만한 비책이 또 없는 것이다.

 

이만희, 전광훈은 모두 무죄로 풀려났다.

헌즉, 옥에 갈 일도 없으니 안심이다.

아무렴 종교 활동인데, 무슨 걱정이 있으랴?

 

뜻있는 자는,

저들을 급히 초빙하여,

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라,

신책묘산(神策妙算) 영업 비법을 익힐 일이다.

다만 참여할 때는,

어느 목사님께 어여삐 보여야 한즉,

채주(彩綢), 봉채단(鳳彩緞)이라,

화려한 채색 비단 팬티를 잘 챙겨 입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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