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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분청

소요유 : 2021. 2. 22. 14:39


애국분청

앞글에 이은 보충의 글을 적어둔다.
(※ 참고 글 : ☞ 국뽕)

애국분청(愛國憤靑)
이 말은 중국에서 흔히 쓰는 유행어인데,
약하여 분청(憤青)이라고도 하며,
여기 분청이란 분노청년(憤怒青年)을 뜻한다.

(출처 : 網上圖片)

하니까, 국수주의에 빠진 그 주 대상이 되는 열혈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말이 되겠다.
이 말 앞에 서면 문득 홍위병이 연상되지 않는가?
하여 저들을 청위병이라 조롱하여 부르기도 한다.

애국을 하는 길은 많을 터인데,
왜 하필 분노해야 하는가?
왜 저들의 피는 저리 끓어야 하는가?

원래는 인터넷 상 중국민족주의를 앞장세우며, 급진적 생각을 펴는 자들을 일컬었는데,
급기야 깃발을 흔들고, 목울대를 붉히며, 잔뜩 흥분하여, 거리로 뛰쳐나오기까지 한다.
저들은 이 짓을 하는 스스로를 애국자라 울부짖는다.

저들을 비웃는 이들은, 憤靑이라 이르지 않고 糞青이라 부른다.
분노한 청년이 아니라, 똥 청년이란 뜻이다.
이 둘의 중국어 발음은 같다.

보통 사람들은 이들 분청에 대하여 부정적이다.
대개 저들은 지능적으로 저열하고 단순하며,
사고가 굳고 일방적이라, 맹목적으로 중국을 지지할 뿐이다.
선후를 분간하기는 쉽지 않지만,
중국 공산당은 이들을 적절히 이용하며 기른다.
당연 알바비를 주고 정치적 선전에 동원한다.

중국엔 전통적으로 한간(漢奸), 노재(奴才)라 하여 매국노를 지칭하는 말이 있다.
멀쩡한 사람도 조금이라도 저들 눈에 벗어나면 노재가 되고 한간이 되고 만다.
당연한 것이 자칭 애국자가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 이들 눈에 거슬리면 매국노가 될 수밖에.

이것은 중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한국에도 태극기 부대나 엄마부대가 있지 않았나?
핏대 올리며 광장에 나와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질을 하였다.
하지만 건전한 상식인만 되어도 저들을 결코 애국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저들 역시 정치적 뒷배에 의해 조정 받고, 기꺼이 달게 복무하며,
제 욕심에 즐거이 부역하였다.

한데, 저것은 속칭 보수 쪽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란,
(기실 현 정권은 진보란 너울을 빌려 썼을 뿐 보수다.
저쪽은 꼴통보수, 이쪽은 위선보수일 뿐, 양자는 모두 보수다,)
깨달음을 우리는 현 정권에 들어와 확인하게 된다.
소위 대깨문들이 나타났고,
조국 사태 때, 광장에 저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시위를 하였다.
그리고 모금 운동을 벌여 소위 조국백서를 만들지 않았던가?

분청이든, 빠돌이든, 피만 절절 끓지 대가리가 없다.
대깨문 역시 매한가지로 대가리가 깨지고 터져 광장 바닥에 흩어지고,
다만 절절 끓는 피만 빈 몸뚱이에 남았지 않은가 말이다.
저들 역시 분청처럼,
정치인과 더불어 서로 밀고, 끌어주는 끽긴한 관계로,
상호 부조, 화간을 즐기고 있다.

자신이 옳고, 애국을 한다 생각하는 한,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은 에스컬레이트 되고,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고,
따르지 않으면 비판하고 규탄하는 데 이르게 된다.
더욱 나아가면 폭력으로 진화한다.

夫冰炭不同器而久,寒暑不兼時而至,雜反之學不兩立而治,今兼聽雜學繆行同異之辭,安得無亂乎?
(韓非子 顯學)

“무릇 얼음과 숯은 같은 그릇에 오래 있을 수 없으며,
추위와 더위는 한 시에 같이 오지 않는다.
...”

나와 다른 이라면,
용서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남들이 모두 자신과 같은 열정, 의지,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러니, 저들과 아무래도 같을 수가 없다.
할 수 없는 것을 두고 함께 하자 하니, 모순이 일어나고, 갈등이 조장된다.
급기야, 저들은 유아독존, 독선에 빠지게 된다.
저들의 이상이 설혹 옳았다한들, 
이리 되면 세상은 더욱 더 그 실현이 어려워지고, 분열되며,
전선은 고착되고, 분노는 치달아 오르고,
급기야 난이 일어나게 된다.
이는 역사의 필연 법칙이다.

예로 든 冰炭은 기실 현학(顯學)인 유가와 묵가를 비판하기 위하여,
이들이 서로 모순됨을 일깨우기 위하여 동원된 말이다.
도가까지 포함하여 저들 학파들은,
기실 법가의 현실주의적 태도를 따라올 수 없다.

거죽으로는 인민을 위한다는 요설을 내뱉고,
자신들은 한껏 예의염치를 알고 있는 집단이라며 사람들을 속이는 한편,
뒷전에선 폭력과 억압 정치, 아니 장치를 가동시키게 된다.
대개, 정당하지 못한 구린 정권들이 이런 술책에 의지한다.

어느 날 그럴싸한 양심을 가진 정치인이라 선전되는 인간이,
강압적인 주장을 펼쳐낼 때는 슬쩍 대깨문 같은 분청을 앞세우며,
상대 세력을 억압하고, 핍박하는 역할을 맡겨버리고 빠져버린다.

이 양면책을 잘 쓰는 이를 우리는 곧잘 현실 정치 감각이 뛰어나다 이른다.
소위 명유암법(明儒暗法)이라 하여,
옛 통치자들은 거죽으로는 예법을 중시하는 양 유가를 앞세웠지만,
뒤로는 법가를 빌어 엄격한 법의 힘에 의지하였다.
하지만 정작 유가가 거죽으로만 속여 예법을 펴라는 것을 주장한 것이 아니어듯,
법가 역시 권력 유지를 위하여 폭압적 법을 구사하라 주장한 것이 아니다.
헌즉, 저들이 말하는 예법은 결코 유가의 것이 아니며,
법 역시 법가의 것이 아니니,
맞지도 않는 남의 것을 빌려 짐짓 선한 척 남을 속인 것일 뿐이다.

잘, 보아라.
지금 현 정권도 거죽으로는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으며 사람을 잔뜩 꾀지만,
개혁이란 허울을 뒤집어쓰고, 왕법(枉法) 즉 법을 구부리고,
자신들에게 부역하지 않는 사법 권력을 아예 해체하려는 짓을 벌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이 양가(兩家)는 언제나 집권 세력에 의해,
거짓으로 선전되거나, 억압하는 도구로 전용되었을 뿐이다.
그 바른 뜻을 알고, 제대로 편 이가 과연 몇이나 되는가?

나는 예상한다.
저들의 애국질, 빠돌이질, 대깨문질은 미구에 좌절되고, 무너질 것이다.
노무현을 따르던 이들은 실패하고, 물러나며 스스로를 폐족이라 하였다.
저들은 들녘 까마귀 떼처럼 산과 강으로 흩어져갔다.
헌데, 어느 날 촛불 곁에서 곁불을 쬐던 비루한 이들이,
얼결에 대권을 거머쥐고는, 국권을 농단하고, 권력을 사유화하였다.

시민들의 역량은 예전과 다르다.
그들의 기술 능력과 문화 교양 수준은 유사이래 한껏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저들의 패악질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저들은 종내 폐족을 넘어 멸족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노파심에서 첨언하거니와,
내가 지금 어느 특정 세력을 비판한다 하여, 
정치적 상대 세력을 지지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좌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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