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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암호화한 사나이

decentralization : 2021. 3. 2. 23:52


자신을 암호화한 사나이

최초의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을 만든 사카시 나카모토에 대하여는,
그 실체에 대해 아직까지 뚜렷이 밝혀진 바 없다.

실존하는 인물인가? 아니면 가상의 존재인가?
한 명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모인 그룹인가?
이 역시 불명이다.

그 무엇이 되었든 자신이 그라고 주장한 이가 몇몇 등장하였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미심쩍을 뿐, 아이덴터티가 객관적으로 확인, 확보되지 않는다.
그가 가공의 인물이 아닌 실존 인물이라 한들,
그는 세상에 드러나길 원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차차 논하겠지만, 혁신엔 언제나 마찰과 저항이 따른다.
기존의 이해 당사자 중 혁신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쪽이 있다면,
그리고 그가 상당히 강력한 힘을 가진 상대라면,
혁신을 주도하는 쪽에선 자신을 저들에게 굳이 들러낼 이유가 없다.

김용의 녹정기(鹿鼎記)를 보면, 어찌 엮이다 위소보가 천지회 간부가 된다.
천지회는 청나라를 극복하고 명나라로의 회복을 꿈꾸는 집단이다.
그 때 위소보의 발바닥에 반청복명(反淸復明)이란 암호를 새겨,
같은 소속임을 인증케 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시간이 없다며, 양쪽 발바닥에 모두 새기지 못하고,
한쪽 발바닥에 반만 써넣게 되지만.

(출처 : 녹정기)

암호(暗號)란 이처럼, 피아를 가리고, 
내 편을 정(正)히 인증하는 기술적 장치이다.

암호화폐에서도 암호란 이런 기술적 장치를 통해,
외부로부터 안전을 확보하고, 간섭 없이, 통화 결제를 가능케 하자는 동기로부터 출발한다.

나는 이 이상(以上)을 지향하는 작지만, 인류의 거대한 일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는 여기 여러 곳에서 간간히 밝힌 적이 있다.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

A purely peer-to-peer version of electronic cash would allow online
payments to be sent directly from one party to another without going through a
financial institution.

이 요약문의 첫 구절은 왜 사토시가 비트코인을 고안하였는지,
그 까닭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기존의 금융기관을 통하지 않고,
직접, 온라인을 통해, 결제를 가능하게 하는,
P2P 전자화폐 시스템을 고안하였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제까지는 기존의 금융기관이 중앙에서,
결제 당사자의 거래를 중계하지만,
이들 양자 사이 거래 내용의 비밀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때론 국가기관의 강력한 통제와 간섭, 방해도 자행된다.
물론 범죄 관련 단속을 위해 개입하기도 하지만,
합법적인 사인 간의 거래에 권력은 물론이거니와,
자신 외 어떠한 세력이든 외부자의 간섭이 정당한 것이라 할 수 없다.

현실에서, 사인 간 필요 욕구 행위를 가능케 하기 위해,
양자를 맺어줄 중계기관이 필요하기도 하고 요청되기도 한다.
하지만, 역으로 이들로 인해 획득 효용 이상의 삥을 뜯기고,
때론 비밀이 침해당하고, 과도한 간섭 나아가 폭력적 결과까지 초래되곤 한다.

사토시가 구현하려고 한 이상(理想)은,
탈중앙화자율조직(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을 통해,
원천적으로 저들을 배제하는 세상을 구축하는 것이다.

만약, 한 사람이 있어, 국외의 특정인에게 돈을 송금하려 한다고 하자.
이제까지는 국제은행간결제시스템(SWIFT)을 통해 결제가 이뤄진다.
이 때, 국가기관, 금융기관 등에 의해 거래가 간섭을 받거나, 제한을 받으며,
거래 시간, 비용, 노고를 부담하여야 한다.
때론 개인의 정보가 의도치 않게 노출되어,
인격권이 침해를 받거나, 정치적 위해를 받곤 한다.
거래 당사자 입장에선 저들이 필요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악인줄 알면서도 피해갈 수 없다는 현실,
이것은 정말 불행한 일이라 하겠다.

이는 결제를 위해 만부득 중앙 기관을 통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의 구속 조건 때문이다.
사토시는 바로 탈중앙화자율조직을 통해 원척으로 이를 배제하고자 한 것이다.
여기 조직이라 하였지만, 기실 조직 주체도, 
그 거래 내용을 알 수 없는 기술적 체계를 완성한 것이다.

이것은 실로 기득권 세력을 향한 반란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자유를 향한 오랜 인류의 열망이 이로써,
이제 구체적 실천 현실에서 가능케 되었다는데 의미를 두고 싶다. 

기실, 암호화폐는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역사적 맥락 속에서 살펴보면, 이에 대한 이해가 깊고, 탄탄해질 수 있다.

지구 위에 수많은 나라가 있다.
그런데 하필 미국만이 기축통화국(基軸通貨國)이 되어,
마음대로 통화를 찍어내며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 하고 있는가?
(※ 유로화, 엔화 등도 일정분 기축통화 역할을 하며,
국제결제 수단으로 쓰이긴 하지만, 달러화에 비하여는 제한적이다.)

이런 의문을 일으키면, 자연 어느 한 나라에 묶이지 않는, 
세계 통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자, 자본주의 국가 대표들이 브레턴우즈에 모였다.
영국 대표로 참석한 케인즈는 금을 비롯한 30종류의 기초자산을 토대로 한,
국제통화 방코르(Bancor)를 새로 만들고, 국제중앙은행 설립을 제창하였다.

하지만, 미국의 반대로 무산되고,
달러-금본위제가 채택되었다.
케인즈의 구상이 실패하고 말았지만,
금 태환(兌換)이 보장된 달러인 이상 일정분 신뢰는 유지될 수 있었다 하겠다.
이로써 한 동안 국제 경제 질서가 잘 유지되는 양 싶었지만,
1971년 닉슨 쇼크로 브레턴우즈 체제엔 균열이 생기고 말았다.
달러와 금 태환이 정지되고, 도리 없이 변동환율제로 이행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실로 달러는 금이란 상품(commodity)과 연결되어 태환(兌換)이 보장되지 못하고,
다만 미국이란 나라의 권위, 위력, 그리고 구조적 국제질서 안에서,
그 가치를 보장받을 수밖에 없는 불안한 화폐라 하겠다.

미국 중심의 국제금융질서는,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미국의 실패가 전세계로 퍼지고,
그 책임을 다른 나라가 나눠 갚아가게 되는 모순을 떠안고 있다.

우리는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를 기억하고 있다.
사고는 미국이 일으켰지만,
그 책임은 국외로 강제로 수출되어,
종국엔 세계 인민들이 모두 짊어지고 말았다.
이것은 경제적으로 건전치 못하다.
도덕적으로도 온당치 못하다.

하지만, 온 세계 인민들은,
강고하니 구축된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
누구도 항거하지 못하고,
곱다시 가만히 앉아서 봉욕(逢辱)을 당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훑어보면 기축통화란 힘의 논리에 지배되지 않는 통화의 구상은,
케인즈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화폐의 탈(脫)국가화’란 논문에서,
누구나 화폐를 찍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밀턴 프리드먼은 디지털 화폐를 예견하기도 하였다.

물론, 화폐의 탈국가화를 비판하는 세력도 존재한다.
가령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를 중심으로 한 소위 오스트리아학파에 소속한,
라스바드(Murray N. Rothbard)가 대표적이다.
그는 경제를 통제하는 강제적인 정부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독점적인 힘이야말로, 대중의 자유와 복지에 대한 가장 거대한 위협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종류의 국가를 가장 부도덕하고 탐욕스러운 사람들이 집결된,
‘거대한 도적 패거리’로 정의했다.

그랬던 그지만, 하이에크의 화폐 탈국가화는 어불성설이라 주장한다.
왜 그런가 하니, 화폐란 발행은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이 이를 수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즉, 하이에크가 아무리 화폐를 발행한다한들,
사람들이 이를 화폐로 인정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소위 미제스의 회귀정리(regression theorem)는,
화폐가 자유시장에서 유용한 비화폐적 상품으로부터 발생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누구도 어떤 실체가 수요되고 교환되지 않는다면,
화폐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라스바드는 그의 논문 ‘The Case for a Genuine Gold Dollar’에서 이리 주장하였다.

하지만, 지금 암호화폐는 비화폐적상품과 결합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시장에서 자유롭게 가격이 형성되며, 비교적 제한 없이 거래되고 있다.
그의 논문은 2004년에 쓰여졌다.
비트코인은 2009.01.03일 처음으로 발행되었다.
그는 암호화폐의 등장과 미래를 미처 예견치 못했다.

1960년대에, 미국 청년들을 중심으로, 기성 사회 제도, 가치관, 통념에 저항하고,
인간성 회복, 자연으로의 귀의 등을 주장하며, 
탈사회적 행동을 하는 소위 히피(hippie)가 출현하였다.
이런 반체제, 반전, 히피 운동을 거쳐, 사이퍼펑크(cypherpunk)에 이르러,
보다 구체적인 지향의 성과가 있었다.
(※ cypherpunk
cypher : 암호
punk : 본래 록 음악, 불량 청소년을 뜻하나, 여기선 기성세력에 저항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추가 정보를 원하면 ‘The Cypherpunks’란 글을 추천한다.)

사이퍼펑크는 암호학을 통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이를 대중화하게 되면, 곧 사회, 정치적 자유를 보장할 수 있게 된다고 믿는 운동이다.
외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기에,
곧잘 무정부주의란 평가를 받곤 한다.

하기사, 국가 권력 치고, 선한 예가 얼마나 되는가?
권력은 스스로 자신 만의 성을 쌓고, 외부를 향해 총칼로 위협하며,
자유 민주 시민을 핍박하고, 유린하지는 않았던가?

국가는 국민으로부터 일시 유보된 권리를 이양 받고,
이를 기초로 국민을 위해, 그 위임받은 권력을 행사하여야 한다는,
양해 계약을 맺은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번 권력을 쥔 국가 권력, 수임자들은,
국민이 아니라, 자기 계산 하에, 자신을 위해 복무할 뿐이기 십상이다.

이제,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실 세계를 극복하기 위한 이들이 한데 모였다.
위에서 지적한 자유정신적 가치를 따르는 이들, 특히 암호학을 전공하는 이들이 모여,
국가 권력에 대항하여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였다.

(David Chaum)

그 중심에 데이비드 차움(David Chaum, 1955년 ~ )이란 인물이 있다.
그는 거대 권력으로부터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려면,
개인의 자금 거래를 추적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 급선무라 판단하였다.

버클리 대학원 시절, 미국 정부의 도청으로 칠레 대통령을 끌어 내린 문서를,
도서관에 처음 읽고는 프라이버시의 중요성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한다.
실로 그는 기술적 능력을 넘어 정치적, 철학적 도전 과제를 스스로에게 부과한 것이다.
이에 그는 암호학 공부에 일로 매진하게 된다.

그가 쓴 박사학위 논문엔 ‘작업증명(Proof of Work)’을 제외한,
비트코인의 모든 내용이 이미 언급되었다.
1990년엔 익명 지불 시스템을 개발하여,오늘날 암호화폐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실제 그는 최초의 암호화폐인 이캐시(E-Cash)를 만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견제로 실패하였다.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혁신적 도전은 언제나 기득권을 긴장시키고, 폭력적 방해, 반격을 유발하고 만다.

나는 결론에 이르기 전 앞서 말하지만,
사토시가 익명으로 계속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기득 권력인 국가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암호화폐의 성공을 위한 겸손한, 그리고 사려 깊은 배려라 생각한다.

한편 사토시가 보유한 비트코인은 110만 BTC로 알려져 있다.
이를 2021년 3월 현재 시장 가치로 환산하면 61조원이 넘는다.
만약 그가 이를 일시에 시장에 내다 푼다면,
현 시가총액 910B 즉 1009조원 규모의 시장을 교란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아마도 그가 비트코인, 그리고 암호화폐의 성공적인 장래를 원한다면,
이런 일을 저지르는 것을 참아낼 충분한 인내심을 가졌으리라 본다.

실로 그는 자신을 스스로 암호화함으로써,
탈중앙화 운동의 역동적 고갈되지 않는 로켓 연료가 되길 자임하였다 하겠다.
이로써, 사이퍼펑크 이래 촉발된 인류의 자유정신 운동은,
수많은 선각자들의 예지, 열정, 모험과 함께, 커다란 성과를 내고 있다.

기억하는가?

이 땅에 어설픈 정권의 만행이 저질러졌던 것을.
2017년 금감원장, 법무부장관, 금융위원장 등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암호화폐를 멸살시키려 작정하였었다.
(※ 참고 글 : ☞ 봄꿈)

사정이 이러한데, 오늘은 어떠한가?
암호화폐는 이제 누구도 개폐할 수 없는 상태로 성장하였다.
아마 세계와 연동, 결합되지 않았다면, 이 패악의 현정권하에선 이미 진작에 없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땅엔 더욱 한심한 일이 예비되고 있다.
내년부터는 시장 수익의 20%를 삥 뜯겠다고 잔뜩 입맛을 다시고 있다.
기껏 지키고, 살려놓았더니,
어느새 밤도적처럼 다가와 숟가락을 얹고 행세를 하겠단 수작이 아니겠음인가?

도전, 모험, 비전도 없는 그저 보수적 법률가 집단이자,
공부도 없이 풍찬노숙하며 건달처럼 운동이나 하던 치들의 예정된 한계라 할밖에.
아무리 입만 살은 문과생일지라도, 모두가 그런 것이 아니다.
경영학의 거두인 슘페터(1883~1950)는 혁신을 말하지 않았던가?
현 정권은 발명은커녕, 혁신은 물론, 상품화할 의지, 능력도 되지 않는 그저 한 무리 도적 떼거리에 불과하다.
이런 형편인데 연일 검찰 개혁 운운하며, 실제론 제들 허물 덮기에 급급할 뿐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온 세계는 암호화폐를 도입하려 적극 모색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전자화폐 도입은 거의 완성단계에 들어 시행을 코앞에 두고 있다.
도전과 혁신을 두려워하고, 기득 권력을 지키기에 급급한 정권은,
일시 자신을 지킬 수는 있겠지만, 시민들의 장래를 위협하고,
세계 온 인민들의 행복 증진에 기여하지 못하고 방해꾼으로 전락하고 만다.
실로 저들은 역사의 죄인이라 하겠다.

이젠, 아마도 세상을 거꾸로 돌리려 하여도 돌릴 수 없을 것이다.
잠깐 한 눈 팔고 딴짓거리 하는 사이 세상은 크게 변하였다.
암호화폐, 그리고 그 관련 세력은 눈덩이처럼 커버렸다.
일개 멍청한 정권이 흔들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허나, 암호화폐를 건전하게 북돋고, 창신한 기운을 불러일으키기에 아직 늦지 않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렸으면 싶다.

그러나 그럴 역량도 의지도 읽혀지지 않는다.
그저 개혁이란 허울 뒤집어쓰고,
자신들의 허물, 과오, 범죄를 가리기에 급급할 뿐인 것을.

(src : goldprice, 2021.03.02)

차움은 1985년 ‘빅브라더를 이기는 방법(Security without identification: transaction systems to make big brother obsolete.)’이란,
15 pages 짜리 논문을 내었는데,
이는 사이퍼펑크 운동에 더욱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하였다.
(※ 첨부 문서 참조)

chaum1985bigbrother.pdf
1.69MB

(src : Security without identification: transaction systems to make big brother obsolete.
Unconditionally untraceable messages
무조건적 추적 불가능 메시징 시스템)

***

그런데 왜 암호(暗號)인가?

암호가 아닌 공개된 명호(明號)를 쓰지 못하는가?
이는 인간 불신을 전제로 한다.

세상 밖은 험하디 험한 것.
쉼 없이 도발이 일어나고, 위협이 상존한다.
그런즉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정보를 은휘(隱諱)하고,
저들의 눈을 가린다.

헌데, 역설적이게도 이런 작위(作爲)를 통해,
모든 인민들의 자유를 확보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지향하며,
궁극적으로 그런 세상을 구축하고자 한다.

실로 아이러니한 우리네 삶의 실상이라 하겠다.

이와 관련된 주제는,
혹 차후 기회가 되면 별도의 글로 되돌아올 것이다.

***

암호화폐는 이런 인류의 자유를 향한 열망으로 출발하였다.

헌데, 지금 암호화폐 거래소엔, 
이와는 전혀 무관한 그저 시장 현상,
즉 욕망만 거래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주식시장이라고 뭣이 다른가?
자본시장을 통해 자본이 기업으로 환류 되고,
기업은 이로써 여타 생산 요소를 버무려 기업 활동을 영위한다.

암호화폐 시장도 보는 이에 따라서는,
단지 달러가 비트코인으로 바뀌었을 뿐,
욕망 방정식의 작동은 하등 달라진 것이 없다는 지탄의 대상이 되곤 한다.

하지만, 시장의 존재를 통해 암화화폐(탈중앙화) 연구와 실험 동력이 확보되고,
인류의 꿈은 한 발자국씩 나아가게 되지 않으랴?
이런 기대를 가져보는 한편,
시장을 욕망 배설 출구로 여기는 악당들, 소위 먹튀들의 준동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실제 지근거리에서,
먹튀들을 지켜본 경험이 있다.
(※ 참고 글 : ☞ 암호화폐와 야간도탈(夜間逃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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