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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례(普禮)

소요유 : 2008. 4. 22. 01:58



나는 산에 오를 때,
동네를 피하여 부러 멀리 빗껴 산기슭을 에돌아 지난다.
동네를 지나려면 이것저것 번거로운 일이 많아 이리 길머리를 잡은 것이다.
거기 기슭에 제법 너른 선원(禪院) 하나가 있다.
대문을 겸한 일주문에 해당하는 기둥 좌우에 주련(柱聯)이 걸려 있다.

普禮十方一切佛, 功德充滿如虛空

나는 ‘노는 입 염불이라도 한다’는 속언처럼
이를 속으로 외우며 지나곤 한다.

나의 주식강의 중에 ‘삼세번’이란 말을 강조한 적이 있다.
염불의 경우에도 특히 삼세번으로 운을 맞춘 경우가 태반이다.


普禮偈(보례게)

普禮十方常住佛
보례시방상주불

普禮十方常主法
보례시방상주법

普禮十方常住僧
보례시방상주승 



普禮三寶(보례삼보)

....

普禮十方無上尊  五智十身諸佛陀
보례시방무상존  오지십신제불타

普禮十方離欲尊  五敎三藏諸達摩
보례시방이욕존  오교삼장제달마

普禮十方中衆尊  三乘四果諸僧伽
보례시방중중존  삼승사과제승가


이렇듯, 보례(普禮)로 운을 띄어 거푸 연세번을 더하는 거진 정형화된 형식을 보인다.

보례로 시작하지 않는 염불일지라도 대개는 매한가지 삼세번 형식이 많다.
이런 반복 형식은 여러 뜻이 있을 터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하나로 그치지 않고
삼세번 되새김은 삼가 두터이 하고자 하는 예법일 터다.
그렇다고 삼세번을 넘으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외려 번거로움이 지나쳐 작폐가 되리라.

보례(普禮)에서
보(普)는 이어지는 시방(十方)과 어울려 ‘두루 온 우주’란 뜻이다.
시방(十方)이 온 세상 공간을 뜻하지만,
보(普)란 그 공간을 예로서 두루 충만히 흘러넘치게 하겠단 말이다.

보(普)는 번역하자면 영어의 universal 쯤이면 어떨까 싶다.
보편(普遍) - 普, 遍 모두 ‘널리’, ‘두루’란 뜻을 갖는다.
어느 특정한, particular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란 의미의 universal이 그런대로
가깝다는 생각인 것이다.
예(禮)가 편만(遍滿)한 세계라, 이야말로 불국토가 아니겠는가 ?

그런데, 나는 이 말을 새삼 어찌 새기고 있는 것일까 ?

오늘 만난 이에게 어떤 스님의 허물을 말하는 죄를 지었음이다.
무슨 이야기 끝에 성직자 일반에 대한 이야기에 미치게 되었다.
이에 나는 마침 내가 겪은 이야기를 보태다,
멈추어야지 하는 생각을 한편으로 하였으면서도 꺼낸 이야기의 탄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끝내 모두 다 해버리고 말았음이다.

그 이야기인즉슨,
당시 인연 따라, 내가 컴퓨터를 가르치던 스님의 남사스런 청이 하나 있었다.
그를 대하고 나는 몹시 혼란에 빠졌다.
나는 집에 와서 기억을 더듬어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 청에 응하면 3아승지겁 지옥불에 빠진다는 것인데,
이런 내용들을 오늘 이야기 상대에게 말하였던 것이다.

당시 그 청에 응하지 않았지만,
오늘 스님의 허물을 남에게 이야기 하였으니,
이 또한 불법승 삼보를 훼한 것이 아닌가 말이다.
하니 이야말로 3아승지겁 벌을 받을 일이 아닌가 ?

내 집 앞에 있는 절의 염불 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지난 여름에는 자못 심했다.
하여 나는 짜증을 내며 비록 집안에서지만 한참 스님을 나무랬었다.
평소에 나는 출세간인을 가리지 않는다.
뭐 출가인이라한들 뾰족히 다른 구석을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더우기 출세간을 넘어 누구든간에 남에게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자 미망인 것임에랴.
목사나 스님이나 신부나 그저 심드렁하니 대할 뿐이다.

저쪽 산기슭에 자리 잡은 법화종 스님은 법화경 도법이 높으신지,
책도 많이 내시고, 강연도 정기적으로 하시는 법 싶다.
그 스님은 나보다 한참 연배가 윗길이시지만,
길 가다 뵈오면 서로 점잖히 예를 차려 인사하며 지난다.
깊은 말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미루워 짐작컨데 법력이 깊으시리라.
그분은 대처승이시다.
그 스님 부인이 언젠가는 지나는 내게 스님이 지으신 책을 한권 주셨다.
법화경 관련 논문이었는데,
기술된 내용이 모두 해방전후 문투라 참으로 짚어 나가기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출세간에 따라 사람 됨됨이가 차이 나는 게 아니라,
사람 따라 됨됨이가 차이가 날 뿐,
나는 출가인이라 굳이 속인보다 수양에 별다른 차이가 있다고 여기질 않는다.
물론 출가인을 대함에 그에 상응하는 예를 소홀히 한 적은 없다.
하여튼, 목사, 중, 신부 무릇 성직자라 부르는 이에 대한
나의 (평가)태도는 여늬 일반인과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겪은 바, 신부님은 삼자 중에선 제일 낫지 않은가 싶다.
내 집안에서 우스개 소리로 내가 하는 말이 있으니,
그 이유중의 하나가 목사나 스님은 사업주이나 신부는 월급쟁이인지라,
물욕 부릴 여지가 한결 덜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목사님이나, 스님은 교회나 사찰을 꾸려 나가시려면 재정을 직접 챙겨야 하나,
신부는 직접적으로 당신이 재정에 관여하는 바 없으니 좀더 청정할 수 있으리란 생각인 게다.
본시 개결(介潔)하다라는 말은 선비를 평할 때 많이 사용한다.
성직자쯤 되면 개결이 아니라, 도고(道高)라든가 법력이 높다, 성령이 충만하다라는 식으로
부름을 높여야 마땅할 노릇이다.
하지만 그리 부를만한 예가 별로 없으니 ...
민망한 노릇이지만, "그래도 사뭇 개결한 신부님" 이리라도 불러보며 조금이나마 안심한다.

하여간 평소에 태도가 이리 불손한 주제에,
오늘 따라 새삼 나의 허물을 되돌아 보게 되는 까닭이 무엇인지 나도 딱히나 잘 모르겠다.
아마도 지은 죄가 차고 넘쳐 제풀로 스믈스믈 기어나오며 몸부림을 친게 아닐까 ?

아무튼 이 때에 보례(普禮)란 어귀가 떠올랐던 게다.
하여, 저 선원의 주련 글귀를 빌어,

普禮十方一切佛
普禮十方一切法
普禮十方一切僧

이리 삼세번 읊조려 참례(懺禮)드리며, 삼가 오늘을 경계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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