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밑줄 긋기, 점사(點射)

소요유 : 2008. 4. 26. 14:43



나는 원래 책을 읽을 때 밑줄을 잘 긋지 않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중요한 부분이라고 하여도 밑줄을 긋는 순간,
다른 부분은 의식의 시야에서 뒷전으로 물러가게 된다.
마치 사진 찍을 때, 촛점심도를 깊이 주면 주 대상은 선명해지나,
주변부는 뿌옇게 흐려지듯이 말이다.

나는 무엇이든 전체를 조감(鳥瞰)하고 싶다.
수리처럼 하늘가 맨 위에서 아래를 온전히 굽어보고 싶었다.
그러다 결정적일 때, 하나를 노려 덮쳐야 한다.
처음부터 좁혀 밑줄 긋고, 탐하는 것은 비린 짓이다.
초장부터 빨강 색연필 들고 대들 까닭이 없다.
나는 허공을 유영하는 솔개처럼 여유롭고 싶다.
책도 그와같이 허허롭게 모두를 아우르며 겸손히 대하고자 하는 것이다.
더듬어보니, 이게 내 소시적이래 내 의식의 근저에 숨은 심리의 내용이다.

농부도, 비정규직도 모두 쓸모가 없다는듯, 저편에 밀려 쓸려가고 있다.
이 땅엔 밑줄은 늘 강한 놈에게만 그어지며,
게다가 한술 더 보태진다.

무작정 줌인(zoom-in)하고,
유공즉출(有孔卽出),
만금몰입(萬金沒入)하는 실용정부야말로 얼마나 탐욕스럽고, 천박하냐 말이다.
이들이야말로 색연필 밑줄정부가 아닌가.

쓸모없다고 저리 내치면, 재껴진 그들인들 적이 섭섭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실인즉 그들이 배경을 만들어 주기에,
주인공이 그 자리에 저리 화려하게 뽐내며 버티고 서 있을 수 있음이다.

금년에 내가 사는 아파트 화단을 부녀회 중심으로 꽃단장을 했다.
북쪽 옹벽 중간엔 좁다랗게 턱진 부분이 있다.
거의 버려지다시피한 그곳에 우리 집식구가 인동초를 심었다.
꽃은 5-6월경에 핀다니 기다려 보기로 한다.
만약 나중에 꽃 핀 인동초가 예쁘다고 그를 취할 양으로 뿌리째 뽑았다면,
그게 온전히 살겠는가 ?
인동초꽃이 예쁜 것은 그 척박한 옹벽가에 피었기 때문에 사뭇 도두라질 것이랴.
한즉, 실인즉 꽃은 옹벽에 의지하였음으로 해서 제 빛을 더욱 발하는 것임이라.

비유가 좀 적절치 않았는가 ?
하여간 나는 밑줄 쳐서 시야를 좁혀 볼 정도로 바쁜게 없었다는 얘기다.
머리가 그닥 좋지도 않은 형편이니, 이는 기억력이 비상함을 자랑하고자 함도 아니요,
그저 내 삶의 태도일 뿐이다.
그렇다고 하여, 종이가 찢어지도록 밑줄 박박 긋는다든가,
갖은 색연필 장만하여 색색이로 칠하는 남들을 나와 다르다고 탓할 까닭도 없다.
그는 그답게 살듯이, 나 또한 나답게 사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어쨌든 나는,
전체속에서 중(重)한 것은 그것대로, 경(輕)한 것은 또 그것대로 대접하며,
‘온전히 함께’ 여유롭게 책 읽기를 즐기고 싶었던 게다.

소시적부터 그랬던 것인데, 이제는 이도 여의치 않다.
기억력이 예전같지 않아 머리에 잘 남지를 않는다.
하여, 얼마전부터 공들여 읽는 책에다 기어히 연필을 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하여, 달달 외우는 것도 아니요,
언제 다시 쳐다볼 것도 아니고,
딱히나 더 기억에 남을 이치도 없다.
다만, 새끼 잃은 원숭이가 제 가슴 두드리듯,
나 역시 그저 공연히 혼자 분주한 짓거리를 행하고 있음이다.

눈이 침침해지면서 돋보기 쓰게 되는 이들의 심정이 이러할까나 ?
어느 날 문득 경도(經度)가 내비치지 않는 중년 아주머니 심사가 이럴까 ?

나의 젊은 날은 이리 밑줄긋기와 함께 사라지고 있음인가 ?
조금 섭섭하다.

나는 앞 선 글(☞ 2008/02/22 - [소요유] - 디카는 총구다.)에서 디카(디지탈카메라)에 대하여 말했다.
나는 그글에서 자세히 밝히질 않았지만,
원래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한다.
하여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필름카메라 외에,
그 흔한 디카 하나 없다.

사진 찍는 것보다, 차라리 눈에다 담아 두고 싶다.
지금 이 현장, 여여(如如)한 실상을 내 살아 있는 육안(肉眼)을 통해,
심상(心象)에 그려두는게, 사진 찍느라 분주한 것보다 나는 더 귀하다.
귀한 장면은 가던 길 멈추고 서서 그저 망연(茫然)히 한참 마주한다.

책에 밑줄 긋듯,
사진기를 들이대어 한순간을 포착하는 게, 마치 사물에 밑줄 긋기를 하는 게 아닌가 ?
나는 이런 의심을 해보는 게다.
순간포착이란, 밑줄이란, 결국 편벽된 강박의식의 소산이 아닌가 말이다.

나는 책도, 사물도, 풍경도 온전함으로서 내 마음밭에 겸손히 초대하고 싶은 게다.
가르고, 쪼개고 임의로 재단하지 않고 저들의 온존재를
그날, 그곳에서 생(生)으로 마주하고 싶은 것이다.
나같이 죄 많은 이의 고백의 형식은 이러해야 하지 않겠는가 ?
사랑은 탐하여 취하는 것이 아님에랴.

그런데 산을 오르다보면 가끔은 언짢은 모습을 보게 된다.
대부분 이를 지나치며 관심조차 보이질 않는다.
나는 이를 공원당국에 신고하여 바로잡고 싶다.
그냥 놔두면 산이 너무 안쓰럽기에 지나치지 못하겠다.

얼마전에는 등산로 초입부터 펼쳐진 계곡 밑에 겨우내 버려진 쓰레기를
치워 달라고 공원당국에 신고를 하였다.
몇년 겪는 바로되,
일년 내내 쓰레기가 버려지지만 이들은 하다 못해 봄맞이 정비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근 2주 가까이 수수방관하더니,
어느 날 일부 쓰레기를 치웠음이 목격되었다.
하지만, 긴 계곡 중 앞쪽 일부만 치웠지 위쪽 구간은 그대로였다.

저걸 어쩌나 하면서도, 방책이 쳐진 그곳을 내려가지는 못했다.
일반인은 출입금지지역이기도 하지만, 장비가 없어 그리 수월한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벚꽃이 지면서 꽃비가 계곡변 바위에 가득 뿌려져 쌓여있다.
나는 멈추어 서서 한껏 취(醉)하곤 한다.

헌데, 어느날 보니, 저들이 미쳐 쳐가지 않은 쓰레기 봉지가 저 아래 널따란
바위 위에 갈갈이 찢겨 놔뒹굴고 있는게 아닌가.
고양이가 찢어논 것일까 ?
거기 벚꽃잎과 쓰레기의 묘한 대비가 차라리 상장(喪章)처럼 숙연하다.
미(美)와 추(醜)가 공존하는 현장을 두고 가슴이 뭉긋하니 저리다.
게다가 저 꽃잎은 방금 생을 지나친 것이 아닌가 말이다.
쓰레기까지 장엄하는 꽃의 숭고한 덕성(德性)이라니...

이덕보원(以德報怨)이라더니,
얼마나 영혼결이 맑으면 원망도 없이,
가없는 손길내어 가시는 길까지 저리 고은가 말이다.

취주포덕(醉酒飽德)
시경에 ‘既醉以酒, 既飽以德’라듯이,
나는 벚꽃에 취하고, 그 덕에 감읍(感泣)하고 만다.

그즈음 내 등산길에 이야기를 나누는 유일한 분을 그 길에서 만나뵈었다.
금년에 우연히 알게 된, 일흔 노객이시다.
경우가 밝으시다.
그날 나는 스님 하나를 욕뵈었었지.
그리고는 이내 보례(普禮 - ☞ 2008/04/22 - [소요유] - 보례(普禮))란 글을 지어올렸었다.

나는 계곡을 가르키며,
사연의 일단을 말씀드렸다.
신고해도 해결이 아니되니, 동영상 잘 되는 디카를 하나 장만하여 저 장면을 찍어
인터넷에 올려야겠다는 말씀을 내비쳤다.
그러고 보니 이것 말고도 여기 산엔 내 맘에 두고 있는 미제(未濟)의 일이 몇 개 더 있다.

저들 공원당국 직원은 퍽 게으르다.
나는 이제 만부득 저들을 상대하지 않기로 한다.
차라리 만인을 상대로 저들의 나태함과 안일함을 알려,
깨우침의 길을 되찾아 주기로 한다.

여기 도시에서,
이곳 북한산은 위대한 축복이다.
마지막 남은 이곳은 그대로 소도(蘇塗)다.
방울과 북 달아 솟대를 세워두어야 한다.
나는 도시의 끝, 이곳마저,
저들 불한당에게 능욕 당하고 있는 현장을 참을 수 없다.

나도 이젠 삭고 있음인가 ?
기어히 사물에 밑줄을 긋고자 하는 것이다.
책에도 밑줄을 긋고,
사물도 잡아채고자(snap) 하고 있음이 아닌가 ?

나이 들어가면 욕심이 많아진다고 한다.
바삭바삭 마른 가지처럼 톡 부러질 그 몸둥이 하나가,
잔명(殘命)을 노욕(老慾)으로 가까스로 부지(扶持)하고 있는 게다.
그래서 노인네는 의외로 욕심이 많으시다.
이게 이내 노추(老醜)가 되곤 한다.
사뭇 경계할 노릇이다.

그리고는 그분과는 헤어졌다.

얼마전 다시 그 분을 뵈었다.
내게 의논하실 말씀이 계시단다.
나는 계곡을 가로질러 선뜻 선생께 다가갔다.
선생은 홀로 사신다.
도움을 드릴 수 있다면 기꺼이 드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말씀 듣잡길 청한다.

"조심스러운데..."

"어르신께서 젊은 것한테 조심스러울 것이 뭣이 있겠습니까 ?
타이르고 일러주실 것이 계시면 가리실 것없이 말씀 나리시는 것이지."

"그런 일 하는 데, 나도 디카 사는데 보태주고 싶어."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꼭두새벽에 일어나 ebay에서 낙찰받았습니다."

dsrl은 내게 필요없다.
다만 장촛점이어서 먼거리 장면도 잘 잡아낼 수만 있으면 족하다.
‘point & shoot’
그래 그냥 밑줄 긋는거야.
시쳇말로 쏘는 게야.
한 2주 정도면 도착한단다.

이젠 내게도 밑줄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내 순결한 순정과 정열의 시대는 지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참 늦되다.

하지만,
어느 학원장이 나와 유행시킨 "밑줄 쫙 ~"이란 말은 언제 들어도 너무 천박하다.
왠지 "요령주의", "결과지상주의"가 연상된다.

그냥 잘 모르는 영어로 ‘point & shoot’이라고 해두자.
요게 '점사(點射)'쯤 되니 나는 이게 오히려 편하다.
우리 말로는 '똑딱이 디카'이니 얼추 뜻이 어울리지 않는가 말이다.

문득 눈 들어 보니 젊은 것들이야말로 디카를 들고 설치지 않는가 말이다.
그렇다면,
요즘 젊은이들이 피기도 전에 시어, 늙어버린 것인가 ?
아니면, 내가 철 모르게 젊어지고 있는가 ?

호랑이 등에 타 올랐으면 내리지 못한다.
내리면 호랑이에게 먹힌다.
죽으나 사나 호랑이 등에 올라타 끝장을 보아야 한다.
나는 이렇게 점사(點射) 인생을 시작하기로 한다.

옛말에,
“용이 구름을 일으키고,
범이 바람을 부른다”는데,
나 역시 홀연 풍운아(風雲兒)가 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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